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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 CEO(4) 오한남 대한배구협회장 

중동에서 사업가로 ‘강 스파이크’ 성공 

정영재 중앙일보 스포츠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
오한남 신임 대한배구협회장은 정통 배구인 출신이자 중동에서 사업으로도 큰 성공을 이룬 CEO다. ‘페르시아만의 사랑방’으로 불리는 오 회장의 사업장에는 중동 명사들과 비즈니스맨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대한배구협회 회의실에서 오 회장을 만났다.
지난 6월30일, 서울 강남구 라마다서울호텔에서 제39대 대한배구협회장 선거가 열렸다. 오한남(65) 전 대학배구연맹 회장이 유효표 117표 중 77표를 얻어 한국 배구를 이끌고 갈 새 수장이 됐다. 오 회장의 임기는 2020년까지다.


▎오한남 회장은 외유내강 리더십과 비즈니스 마인드로 한국 배구판을 바꿀 준비를 마쳤다.
오 회장은 정통 배구인 출신이자 중동에서 사업으로도 큰 성공을 이룬 CEO다. 배구 명문 대신고에서 공격수와 세터로 뛰면서 경이적인 공식경기 148연승을 이끌었고, 명지대-대한항공을 거치며 국가대표로도 활약했다. 은퇴 후에는 여자 실업팀 한일합섬 감독을 역임한 뒤 중동으로 날아가 두바이 프로배구 팀과 바레인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일했다. 오 회장은 이후 바레인의 명소로 손꼽히는 음식점 ‘아리랑&에도’와 킹덤 팰리스 호텔을 운영하는 사업가로 변신했다. 사우디·쿠웨이트 등 인근 국가의 부호들은 아리랑&에도 식당에서 한식과 일식을 즐기고, 식당 바로 옆 킹덤 팰리스 호텔에서 며칠씩 쉬었다 간다. ‘페르시아만의 사랑방’으로 불리는 오 회장의 사업장에는 중동 명사들과 비즈니스맨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배구협회장 선거가 끝나고 일주일 뒤,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 안에 있는 대한배구협회 회의실에서 오 회장을 만났다. 1m83의 헌칠한 키에 온화한 미소가 인상적이었다. 오 회장은 “배구계 원로들이 ‘한국 배구의 오랜 적폐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당신 같은 정통 배구인이 나서야 한다’고 강력하게 요청하셨어요. 그 동안은 외국에서 사업을 한다는 핑계로 뒤에서 돕기만 했는데 이번에는 정말 나서야 되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들었어요. 제 성공의 기반이 배구였으니 이제 그 빚을 갚을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배구인의 자존심을 지키면서 비즈니스를 통해 몸에 밴 유연함과 소통으로 한국 배구를 살려보겠습니다”고 말했다.

바레인 한식당은 ‘페르시아만 사랑방’


▎오한남 회장(왼쪽)은 정통 배구인 출신이다. 배구 명문 대신고에서 공격수와 세터로 뛰면서 경이적인 148연승을 이끌었고, 명지대- 대한항공을 거치며 국가대표로도 활약했다. / 사진 : 오한남
대신고 148연승의 주역이시네요.

연승의 주역이기도 하고 연승을 깬 장본인이기도 합니다.(웃음) 저희 3년 선배 때부터 대신고가 전국 최강이었어요. 저는 라이트 공격수를 맡다가 선배 세터(공격을 하도록 공을 띄워주는 포지션)가 졸업하는 바람에 3학년 때는 세터로 뛰었어요. 우리 전력이 워낙 압도적이어서 그랬는지 전주에서 열린 종별선수권대회 기간에 코치님이 일본 국제대회를 따라갔어요. 예선에서 인창고한테 져서 148연승이 깨졌죠. ‘이제 우린 죽었다’ 싶어서 저를 포함해 주전 6명이 이리(현재 익산)로 도망을 쳤어요. 결국 감독님한테 잡혀서 게임을 뛰었는데 결승에서 인창을 다시 만나 3-0으로 압승했죠.

중동은 어떻게 가게 된 겁니까.

1991년까지 여자배구 한일합섬에서 감독을 했습니다. 당시 중동에서 한국 지도자 인기가 높았어요. 배구 실력이 뛰어나고 열심히 가르치는데다 인건비도 싼 편이었거든요.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곳은 프로배구가 1-2-3부로 나눠져 있는데 한국 지도자가 많을 때는 40명까지 있었어요. 카타르·사우디·쿠웨이트 등에서 제안이 왔는데 걸프만 국가 중에서 가장 형편이 안 좋은 바레인 국가대표팀을 맡게 됐죠.

바레인 대표팀 감독을 하면서 사업도 시작하셨네요.

한국 분이 하던 ‘아리랑’이라는 식당을 넘겨받아 시작했는데 결과적으로 실패를 했어요. 지금 하고 있는 데서 새로 시작하면서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죠. 한국 음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싶어서 한식과 일식을 함께 하고 이름도 ‘아리랑&에도’로 바꿨어요. 일식 먹으러 온 사람들이 호기심에 하나둘 한식을 시키기 시작하더라고요. 활어회 수족관도 현지인의 호기심을 끌었어요. 섬나라인 바레인 연안에서 잡히는 ‘하무르’(한국의 다금바리와 비슷한 생선)를 사다가 수족관에 넣고 회도 떠 주고 스시도 만들어줬죠. 식당 2층에 바와 스테이지도 꾸몄습니다. 필리핀 가수를 고용해 팝송과 아랍 노래를 들려줬죠. 아랍 분들이 이런 자유스러운 분위기에 끌리면서 손님이 바글바글 했습니다. 한류 바람을 타고 우리 드라마가 이곳에서도 방영됐는데 드라마에 소주 마시는 장면이 자주 나오잖아요. 한 달에 100박스 가까이 소주가 팔렸어요.

바레인은 아라비아 반도와 카타르 사이의 페르시아만(灣) 상에 위치한 33개의 섬으로 구성된 국가다. 지금은 아라비아반도와 25km에 이르는 해상다리(킹 파드 코즈웨이)로 연결돼 있다. 사우디 사람들이 자유로운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 주말에 바레인으로 많이 넘어온다.

눈 빠른 배구선수, 사업 감(感)도 빨라


▎오 회장은 중동에서 사업으로도 큰 성공을 이룬 CEO다.
오 회장은 식당 경영의 핵심을 꿰뚫었다. 음식의 맛이나 가격보다 훨씬 중요한 건 ‘친절한 서비스’라는 점이다. 오 회장은 “우리 직원들은 대부분 10년 이상 이곳에서 근무한 베테랑입니다. 제가 처음에는 운동선수 대하듯이 엄하게도 해 봤는데 이 친구들 기만 죽고 마음에서 우러난 서비스를 못 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예절 교육을 철저히 시키되 정말 큰 잘못이 아니면 해고하지 않았어요. 아직까지 스스로 그만둔 경우는 있어도 잘린 사람은 없어요”라고 말했다.

오 회장은 언제나 손님의 이름을 불러드리도록 직원들을 교육했다. 손님이 식사를 마칠 때 쯤 계산을 하려고 카드를 주면 거기 적힌 이름을 보고 계산서에 적도록 했다. 식사를 하고 나갈 때 “OOO님, 맛있게 드셨나요. 감사합니다”하고 인사를 한다. 손님은 대접받은 기분이 들어서 흡족한 마음으로 식당을 나가게 된다. 그리고 그 손님이 다시 오면 이름을 기억했다가 “어서 오세요. OOO님”하고 인사를 하면 손님들이 깜짝 놀라고, 팁도 더 주게 된다는 거다.

사업은 계속 번창해 식당을 4개까지 늘렸다. 그런데도 오 회장은 성에 차지 않았다. 이번에는 호텔 사업에 진출했다. “무슬림 전통인 라마단(금식 기간)이 끝나면 사우디 사람들이 몰려오는데 호텔이 모자라 애를 먹는 걸 봤어요. 이걸 한번 해봐야겠다 싶었죠. 객실 30개 정도의 소규모 콘도식 호텔을 임대했죠. 이곳 사람들은 호텔 안에서 요리도 해 먹고 응접실에서 담소도 나눌 수 있는 콘도식을 좋아하거든요. 이것도 하나씩 하나씩 늘려가다 보니 7개까지 됐고, 거기서 번 돈으로 지금의 킹덤 팰리스 호텔을 인수한 겁니다.”

평생 배구만 한 오 회장에게 어떻게 이런 ‘비즈니스 촉’이 생긴 걸까. 오 회장의 설명이 설득력 있었다. “배구 선수는 눈이 빨라야 합니다. 구기 종목 중에서 공이 바닥에 바운드 되지 않고 계속 살아서 공중에 떠 있는 건 배구밖에 없어요. 살아 있는 공을 다루면서 상대방의 움직임을 읽고 빈틈을 노리려면 눈이 보통 빨라선 안 되죠. 그래서 옛날에는 VIP 경호원으로 투기 종목 선수를 선호했는데 요즘은 배구 선수 출신이 각광받고 있다잖아요.”

요즘은 아파트 렌트 등 부동산 임대 사업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중동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서울 마포에 오피스텔을 지어 임대 사업도 시작했다. 오 회장은 사업을 잘 하려면 머리도 좋아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성실과 신의’라고 강조했다. “중동에서는 왕족 라인만 잘 잡으면 성공할 수 있다고 막연히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지 않아요. 손해를 보더라도 한번 약속한 건 반드시 지키는 모습을 보여줘야 그분들도 도와줍니다. 세상 사는 원칙은 한국이나 중동이나 다르지 않아요.”

현재 40대 이후 세대는 학창 시절이나 군대에서 배구를 해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당시에는 반 대항이나 중대 대항 체육대회에서 배구가 빠지지 않았다. 배구 잘 하는 사람은 어디 가도 대접을 받았다. 그런데 요즘은 배구 하는 사람을 보기 힘들다. 동네 공원에 가도 농구대는 많지만 배구 코트는 잘 보이지 않는다. 농구는 혼자서 드리블·레이업·슈팅 연습을 할 수 있고 두 명 이상이면 경기를 할 수 있지만 배구는 여러 명이 팀을 이뤄야 하고, 리시브·토스·스파이크 등 기본기를 익히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국내 프로배구(V-리그)가 프로농구(KBL리그)보다 훨씬 인기가 높다는 점이다. TV 시청률은 배구가 농구의 두 배 이상 나온다. 배구가 ‘하는 스포츠’에서 ‘보는 스포츠’로 바뀌는 양상이다. 이런 현실에서 오 회장은 배구 활성화의 큰 짐을 지게 됐다.

배구 하는 사람을 보기 어려운 게 현실인데요.

옛날에는 끼리끼리 모여서 할 수 있는 운동이 축구·배구 정도였는데 지금은 워낙 종목이 다양해졌죠. 그래도 비관할 정도는 아닙니다. 배구도 엘리트 스포츠와 생활 스포츠가 합쳐져서 대한배구협회가 통합 운영을 하는데요, 생활체육 배구대회를 하면 200개 팀은 기본이고 300개 가까운 팀이 나올 정도로 열기가 뜨겁습니다. 이게 배구의 자산입니다. 생활체육의 탄탄한 저변을 바탕으로 엘리트가 발전해야죠.

그러려면 엘리트 팀이 많아져야 할 텐데요.

지금 초·중·고 팀이 너무 적어요. 그러면 우수한 자원이 나올 확률이 떨어집니다. 학교 팀이 많아지려면 프로 팀(현재 남자 7개, 여자 6개) 숫자가 늘어나고 선수도 더 많이 뽑아야 해요. 그런데 프로 팀들이 운영비를 주는 모기업 눈치를 보고만 있어요. 빨리 프로 2군을 만들어서 기존 실업팀과 함께 리그를 해야 합니다. 프로배구를 관장하는 KOVO에 새 총재(조원태 대한항공 사장)가 오셨으니 그분과 허심탄회하게 배구 발전을 위해 토론해 봐야죠.

배구 국가대표팀 성적이 예전만 못한 것 같습니다. 대표팀 성적이 좋아져야 배구 인기도 높아질 텐데요.

맞습니다. 대한민국 올림픽 구기 종목 첫 메달(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여자배구 동메달)이 배구에서 나오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요즘은 프로 구단들이 정예 선수들을 대표팀에 안 보내려는 경향이 강해요. 팀의 에이스가 대표팀 나가서 다칠까봐 걱정하는 건데, 그건 너무 근시안적인 생각이라고 봅니다. 대표팀이라면 최고의 선수가 오는 곳, 선망의 대상이 돼야 하고, 대표팀 성적이 좋아지고 스타가 나와야 리그 인기도 높아지는 법이거든요. ‘월드 스타’ 김연경 선수 덕분에 여자배구를 보는 시선이 얼마나 달라졌습니까.

외유내강 리더십과 비즈니스 마인드가 강점

오 회장은 자신을 경계하는 상대에게 먼저 다가가고 부드러운 태도로 상대를 무장해제 시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파벌이 심한 배구계에서 적(敵)이 거의 없다. 불명예 퇴진한 전임 서병문 회장에게도 먼저 손을 내밀었다. 서 전 회장은 ‘공약 미이행, 인사 전횡’ 등을 이유로 자신을 해임한 대한배구협회에 대해 효력정지 가처분 소송을 내 1심에서 패소한 상태였다. 오 회장은 선거가 끝난 뒤 서 전 회장을 만나 “억울한 점이 많겠지만 배구 발전을 위해 대승적인 행보를 보여 달라”며 예를 갖췄다. 서 전 회장은 이후 항소심에서도 패소했고, 대한체육회는 오 회장을 대한배구협회 수장으로 승인했다.

오 회장은 외유내강 리더십과 비즈니스 마인드로 한국 배구판을 바꿀 준비를 마쳤다. 그는 두 가지 만큼은 확실히 해 내겠다고 약속했다. 하나는 10여 년 이상 국내에서 열리지 않은 국제배구대회를 유치하겠다는 것이다. 오 회장은 “국제배구연맹이나 아시아배구연맹 사람들을 만나면 ‘한국이 왜 국제대회를 유치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대회를 자주 유치해야 배구 붐도 일어나고 국제무대에서 발언권도 생기는 겁니다”고 설명했다.

또 하나는 초등학교 배구부를 많이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큰 관심을 갖고 챙기는 게 ‘전국 교대생 배구대회’다. 초등학교 교사가 될 교대생들이 배구 대회를 경험하면서 배구에 대한 호감도를 높이면 자연스럽게 초등학교에 배구부가 만들어질 거라고 본 것이다.

눈이 빠르고 가슴이 넉넉한 오한남 회장의 ‘배구 인생 제3세트’가 시작됐다.

- 정영재 중앙일보 스포츠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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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호 (2017.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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