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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럭셔리 산업의 리더들(4) 아미 에우제니 김영덕 회장 & 전지현 대표 

토종 브랜드로 대한민국 명품사에 한 획 긋는다 

오승일 기자 osi71@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
순수 토종 브랜드로 국내 명품 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주인공들을 만났다. 국내 최초의 고급 기계식 시계를 비롯해 프랑스 파리의 감성을 담은 주얼리와 향수로 대한민국 하이엔드 브랜드의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는 아미 에우제니 김영덕 회장과 전지현 대표다. 오는 9월7일 브랜드 공식 출범을 앞두고 있는 그들에게 소감과 각오를 들어봤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아미 에우제니 부티크에서 만난 김영덕 회장과 전지현 대표.
아미 에우제니는 하이엔드 럭셔리를 지향하는 토종 브랜드다. 순수 국내 디자인 인력과 자체 보유한 기술력을 토대로 시계·주얼리·향수 카테고리에서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지난 2014년 국내 최초로 경기도 평택에 시계 매뉴팩처를 짓고, 선진화된 시계 제조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곳에서는 시계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무브먼트를 비롯해 시계의 주요 부품들을 자체 제작한다. 아미 에우제니는 반도체 설비 제조로 국내외에서 명성을 쌓아온 (주)화인이 모기업이다. 김영덕(46) 회장과 그의 아내인 전지현(37) 대표가 브랜드를 이끌고 있다. 김 회장은 시계 제조와 재무 부문을 관리하고, 전 대표는 주얼리와 향수 제조 부문을 비롯해 마케팅·인사·총무 등 경영 전반을 담당하고 있다.

지난 8월14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아미 에우제니 부티크에서 이들 부부를 만났다. 김 회장은 “한국에서 명품 산업이 시작된 지도 벌써 30년이 넘었다”며 “처음 시작부터 하이엔드 럭셔리를 표방한 아미 에우제니를 100년, 200년 가는 브랜드로 만드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포부를 밝혔다. “사실 그동안 글로벌에서 인정받는 한국의 명품 브랜드는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최근 K-뷰티가 워낙 강세라 몇몇 브랜드가 인기를 끌고 있는데요. 하지만 해외에 널리 알려져 있다고 해서 그것을 명품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글로벌 브랜드와 명품 브랜드는 분명히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업계에선 이제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하나쯤은 나올 때가 됐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어요. 하지만 유럽 선진국에 비해 국가적인 지원도 미흡한 상황이고, 여러 가지 제약으로 인해 제대로 안 되고 있는 실정이죠. 이처럼 척박한 한국 명품 시장에 아미 에우제니가 새롭게 도전장을 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하이엔드 럭셔리를 지향하는 토종 브랜드로서는 아미 에우제니가 국내 최초가 아닐까 싶네요. 물론 아미 에우제니가 한국을 대표하는 명품 브랜드로 남을 수 있느냐는 고객들이 판단할 문제라고 생각해요. 어쩌면 우리 세대에는 명품으로 인정받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빠른 결과물을 얻기 위해 꼼수를 부린다거나 돈벌이에만 연연하며 브랜드를 운영해 나갈 생각은 없습니다.”

이에 대해 전 대표는 “명품 브랜드가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경영자의 의지가 확고해야 한다”며 “경영철학과 장인정신이 조화를 이루면서 가치 있는 제품을 위해 노력하다 보면 돈은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사실 한국에서 기업을 한다는 것이 그리 녹록한 일은 아닙니다. 특히 제조업들은 대부분 대기업에 종속돼 움직이는 구조에요. 대기업의 입김에 망할 수도 있고 흥할 수도 있는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명품은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입니다. 사실 제품만 놓고 보면 얼마나 많은 원가가 들어가겠어요. 물론 일반적인 공산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죠. 명품 브랜드들은 제품마다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입히고 훌륭하게 마케팅을 해서 고객들에게 다가갑니다. 그리고 원가의 수십 배가 넘는 이윤을 창출하죠. 우리에게도 그런 브랜드가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사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에이미 스탠다드(Amy Standard)’를 만들다


▎프랑스 그라스 지역의 일류 조향사가 제조한 아미 에우제니 2012. / 사진 : 아미 에우제니 제공
김 회장 부부가 명품 산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10년 마카오 여행 중 우연히 들른 고급 시계 매장이 계기였다. 그때 처음 기계식 시계를 접한 김 회장 부부는 작은 손목시계 하나의 가격이 적게는 수천만 원, 많게는 수억 원이나 되는 것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당시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찾고 있던 김 회장은 바로 이거다 싶어 무릎을 쳤다. 이후 한국에 돌아온 김 회장은 서울 종로에 있는 시계 수리 학원에서 시계의 구조와 원리, 조립 과정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다. 2012년 경기도 평택의 (주)화인 본사에 정밀기계 사업부를 신설해 시계 제조 기술을 연구했고, 2014년에는 새로 부지를 마련해 시계 매뉴팩처를 짓고 본격적으로 시계 제작에 몰두했다.

“사실 저는 고교 시절부터 30년 가까이 기계와 인연을 맺고 있는 엔지니어 출신의 사업가에요. 그래선지 명품 사업도 다분히 엔지니어적으로 접근했어요. 시계 하나 조립하는 게 뭐 그리 어렵겠냐며 우습게 본 거죠. 그런데 막상 시계를 만들고 나니 홍보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판매는 어디서 해야 할지 막막하더군요. 오랜 고민 끝에 결국 우리만의 브랜드를 만들기로 결심하고 마케팅 전문가였던 아내에게 도움을 요청했어요. 이후 제품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작업을 하는 동시에 주얼리와 향수 등으로 카테고리를 확장했죠. 사실 향수는 전혀 계획에 없던 거였어요. 오감을 통해 브랜드를 느낄 수 있도록 하자는 마케팅 전략이 나오면서 시작하게 됐는데요. 나중에는 브랜드 음악도 만들게 됐죠. 현재 시각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어떻게 하면 제대로 어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모든 순간을 함께하는 동반자 되고파


▎손목 위에 그리스 아테네의 신전을 구현한 AE TN001(왼쪽)과 영원한 사랑의 약속을 의미하는 시그니처 프로메사(오른쪽).
김 회장의 진두지휘 아래 독자적인 기술로 탄생되는 시계와 달리 전 대표가 담당하고 있는 주얼리와 향수는 프랑스 유명 공방과의 협업을 통해 제작된다. 특히 주얼리의 모든 품질관리(QC)는 전 대표가 손수 맡아 엄격히 진행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미세한 흠집은 물론 의도한 선과 각의 연출이 조금이라도 기준에 미치지 못할 경우 단호하게 퇴짜를 놓는다. 심지어 해외 유명 브랜드의 제품보다도 품질심사 통과 비율이 높지 않은 것을 두고 현지 공방과 날카로운 설전도 심심치 않게 벌인다. 하지만 전 대표는 이런 상황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업 초기 반품 주얼리에 대한 항공운송료와 각종 부대비용을 기꺼이 지불하면서 유럽 장인을 상대로 자신의 기준을 관철시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한국의 수준을 깔보던 그들 사이에서 ‘에이미 스탠다드(Amy Standard)’란 말이 나오게 된 시기도 바로 이때였다.

“초창기에는 주얼리 디자인을 이태리에서 했어요. 그런데 그들이 평가하는 우리 수준이 생각보다 너무 낮은 거예요. 당신네 수준에는 이 정도만 돼도 감지덕지 아니냐며 우리의 요구사항을 무시하기 일쑤였죠. 한번은 너무 화가 나서 이태리 장인정신이 이거밖에 안되느냐며 독설을 퍼붓고 돌아온 적도 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그들의 인식도 많이 바뀌더군요. 당시 우리를 깔보던 업체들이 지금은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있어요. 단기간에 이만큼 성과를 낸 것만 해도 훌륭하다고 칭찬도 해줄 정도에요. 그때마다 아미 에우제니가 우리만의 브랜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브랜드라는 생각에 자부심이 생기더군요.”

전 대표는 주얼리뿐만 아니라 명품 산업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 에르메스·샤넬·루이비통 같은 명품 브랜드의 해외 매장을 수시로 방문해 직접 서비스를 체험하고, 그들의 마케팅 전략과 스토리텔링, 고객 서비스 노하우 등을 면밀히 분석하고 있다. 특히 국내에 들어와 있는 시계 브랜드를 비롯해 패션 및 뷰티 브랜드의 신제품 론칭 행사에 꾸준히 참석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메모해둔 것을 모두 합치면 책으로 몇 권은 나올 정도다. 또 국내외 전문가들을 찾아다니며 주얼리 디자인과 향수의 조향 과정을 배우는 것은 물론 정기적으로 프랑스를 방문해 공방 장인들의 섬세한 공예 기술을 경험하고 있다.

“예전에는 명품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것이었어요. 어느 브랜드인지 누구나 한눈에 알아봐야 하고, 너무 비싸서 함부로 가질 수 없는 것이어야만 했죠. 그런데 지금은 그런 외형적인 요소보다는 스토리를 반드시 품고 있어야 해요. 스토리를 통해 가치와 의미를 전달해야만 진정한 명품으로 대접받는 시대가 된 거죠. 또 단순히 제품을 구입하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브랜드에서 제공하는 최고의 환경과 서비스까지도 포함하고 있어야 해요. 특별한 날 부티크를 방문해 브랜드에 대한 스토리를 들으면서 의미를 부여하고 제품을 구입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죠, 한마디로 온라인을 통해 제품을 구입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라고 할 수 있어요.”

브랜드명 아미 에우제니(Amy Eujeny)는 부부의 영어 이름인 ‘에이미 전(Amy Jeon)’과 ‘유진 킴(Eugene Kim)’에서 따온 것이다. 인생의 모든 순간을 함께하는 동반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처럼 아미 에우제니는 인간의 마음속에서 쉽게 잊히지 않는 의미 있는 시간, 즉 소중한 기억의 가치에 주목한다.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추억을 영원히 떠올려줄 매개체로서 존재한다. ‘카이로스의 조각(Wisp of Kairos)’은 그러한 바람에서 지어진 브랜드의 정체성을 담은 첫 슬로건이다. 카이로스는 특정한 때나 기회, 타이밍을 의미하는 그리스어다. 개인의 현실과 상황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주관적 시간을 뜻한다. 이에 대해 전 대표는 “한마디로 아미 에우제니는 인생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는 브랜드”라고 설명했다.

“토종 명품 브랜드는 아미 에우제니”를 목표로


▎프라이빗한 공간으로 꾸며진 아미 에우제니 부티크 3층 전경. / 아미 에우제니 제공
“아미 에우제니는 어린 시절 누구나 경험했던 엄마의 체취 같은 브랜드에요. 성인이 되어서도 비슷한 냄새를 맡았을 때 어머니를 떠올리는 것처럼 말이죠. 우리 브랜드를 통해 간직하고 싶은 추억이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인간의 다양한 삶 속에서 의미 있는 순간들을 기념할 수 있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합니다. 브랜드의 콘셉트를 카이로스로 정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죠.”

지난해 말, 아미 에우제니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3층 규모의 플래그십 스토어를 선보였다. 이곳에서는 인생을 항해에 비유한 AE ST001 모델과 손목 위에 그리스 아테네의 신전을 구현한 AE TN001 모델 등 2가지 시계 라인을 비롯해 시그니처(Signature) ·메카니코(Meccanico)·콜로라토(Colorato)·에우제니(Eugenii)·비아찌오(Viaggio) 등 5가지 라인의 파인 주얼리를 감상할 수 있다. 또 ‘세계 향수의 수도’라 일컬어지는 프랑스 그라스 지역의 일류 조향사가 제조한 향수도 만나볼 수 있다. 김 회장은 “토종 브랜드로서 고객들의 요구에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 아미 에우제니만의 장점”이라며 “개개인의 라이프스타일에 어울리는 희소가치 높은 제품을 꾸준히 개발해 해외 브랜드들과 경쟁해 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토종 명품 브랜드 하면 아미 에우제니가 떠오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에요. 국내에서도 이제 토종 브랜드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토종 브랜드라고 무조건 무시하기보다 관심을 갖고 지켜봐 주셨으면 합니다. 주위의 따뜻한 격려와 응원이 우리에겐 큰 힘이 되거든요. 브랜드 공식 출범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솔직히 겁이 나고 두려운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우리 브랜드가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나면 지금보다 더욱 다양한 반응들이 있겠죠. 지금보다 더 많은 시련과 고난이 예상되지만 브랜드가 단단해지기 위해 당연히 거쳐야 할 담금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6년간 사명감 하나로 버텨왔습니다. 돈만 보고 시작했으면 결코 지금까지 올 수 없었을 거예요. 그간의 노력들이 브랜드 공식 출범을 계기로 좋은 결실을 맺길 바랍니다. 수십 년 후 아미 에우제니가 한국 명품사에 한 획을 긋는 브랜드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 오승일 기자 osi71@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

201709호 (2017.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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