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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많은 록펠러 센터 

 

ANTOINE GARA 포브스 기자
1989년 10월, 미츠비시 지쇼(Mitsubishi Estate)가 맨해튼 록펠러 센터 지배지분을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을 체결하고 수 주 만에 일본 증시는 폭락했고, 허세로 내린 결정은 두고두고 미츠비시의 발목을 잡아 미국의 아이콘이었던 오피스빌딩 복합단지가 파산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1. 대공황 속 탄생

1929년 말 컬럼비아 대학 소유의 황량했던 맨해튼 미드타운 땅을 임대한 곳에 초고층 건물이 세워졌다. 처음에는 록펠러 센터에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가 들어설 예정이었지만, 대공황 한파가 퍼지면서 존 D. 록펠러 주니어(석유왕 록펠러의 아들)가 과감하게 방향을 대폭 수정했다. 록펠러는 상당한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스탠다드오일 보유 지분을 매각해 자금을 마련했고, 1억2500만 달러(현재 가치 21억 달러)에 달하는 건축비 중 4분의 3을 직접 감당했다. 그렇게 해서 아르데코 양식의 걸작이라 할 수 있는 건물 12채가 완공됐다. 1930년대 초 대공황의 여파로 힘들던 미국에서 4만 명의 건설 노동자를 고용하기도 했다.

2. 건물의 현금화

수십 년간 록펠러 가문이 소유했던 건물은 가문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수도꼭지가 되어줬다. 1985년 상속자 수십 명은 부동산투자신탁과 진행한 담보대출로 13억 달러를 받아 갔고, 1989년에는 지주사 록펠러그룹의 지배지분 80%를 미츠비시에 매각하며 14억 달러를 현금화했다.

3. 쓰라린 구매자

미국 경제가 호황을 이어갈 거라 기대한 미츠비시는 록펠러센터 임대료로 평방피트(ft2)당 100달러를 기대하고 있었다. (계약 체결 당시는 33달러) 그러나 90년대 초 미국 부동산 경기침체가 시작되면서 시장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1995년 미츠비시는 결국 담보대출 상환에 실패했고, 데이비드 록펠러(존 록펠러 주니어의 아들)와 제리 스페이어, 샘 젤, 당시 28살이었던 문제적 투자자 빌 애크먼을 비롯한 억만장자 사이에서 입찰 전쟁이 벌어졌다. 1년 뒤 승리는 록펠러와 상업용 부동산 개발업체 티쉬만 스페이어, 골드만삭스가 구성한 컨소시엄에 돌아갔다. 매입가는 18억5000만 달러였다.

4. 두 번째는 다를까?

요즘 외국 투자세력은 다시 한 번 맨해튼 명소를 기웃거리며 투자감을 물색 중이다. 3년 전에는 중국 대기업 안방보험 그룹이 월도프-아스토리아 호텔을 19억 5000만 달러라는 놀라운 가격에 매입했다. 아시아 자금의 새로운 흐름이 형성됐음을 보여주는 계약이었다. 금융시장 조사기관 딜로직(Dealogic) 자료에 따르면, 2014년 이후 미국 자산으로 흘러든 ‘차이나 머니’는 1000억 달러에 달한다.

- ANTOINE GARA 포브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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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호 (2017.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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