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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티.듀퐁클래식에 새긴 그의 스토리(16) 건축가 최욱 

바다는 빗물에 젖지 않는다 

대담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 진행·정리 유부혁 기자 yoo.boohyeok@joongang.co.kr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이화여대 후문과 연세대 동문 사이에 있는 원오원 건축사무소에서 최욱 소장을 만났다. 최 소장은 “채움보다는 비움을 생각하는 것이 좋은 건축물, 좋은 건축가의 자질 중 하나”라고 했다.

▎최욱 원오원 건축사무소 소장. / 사진. 에스.티.듀퐁클래식 제공.
송길영 : “거긴 집장사가 지은 집이야”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살 사람을 위한 집이 아니라 팔 사람이 그냥 지은 집이란 의미다. 개인이 아닌 기능주의적 공간을 만들다 보니 정주 개념도 사라지는 것 같다.

최욱 : 우린 조선시대 좋은 주거 문화를 가지고 있었지만 일제시대, 한국전쟁 이후 정주 개념을 체험하지 못했다. 이후 세대가 경험한 아파트가 대표적이다. 개인이 배제된 공간에 살고 있다. 효율성을 생각하다 보니 가정 내 갈등을 해결해낼 수 있는 완충 공간도 없다.

송길영 : 채움만 있고 비움이 없는 상황을 말씀하신 걸로 이해하겠다. 셔츠에 새긴 글자는 무엇인가?


▎사진 에스.티.듀퐁클래식 제공.
최욱 : 해불유어우(海不濡於雨·바다는 빗물에 젖지 않는다). 중용, 담백함이란 말이다. 치우치지 말고 조급해 하지 않는 태도가 중요하단 생각을 하고 있다.

송길영 : 언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나?

최욱 : 직업이 사람을 만든다. 건축현장엔 잡부부터 정치가, 관료 등 만나는 사람이 다양하다.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껴안지 않고 하나의 잣대로 보면 실수하게 되더라. 인내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직업적 고찰이 빚어낸 삶의 태도인 것 같다.

송길영 : 데이터로 사람들의 생각을 읽고 해석해내는 일을 하고 있다. 사람들이 가장 활발하게 사용하고 있는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중 하나인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게시물을 분석해 봤더니 사람들의 기호가 매우 모던하거나 레트로한 양극단의 정서로 읽히더라. 한 예로 부산 게시물의 경우 해운대 마천루와 해변이 찍힌 이미지와 산동네인 감천마을 이미지가 공존한다. 또 몇 십 년간 방치됐던 서울의 익선동, 서촌 그리고 목포가 관심을 받고 있다. 덕분에 도시재생사업이 화두가 됐다. 이러한 상황을 지켜보는 건축가의 마음은 어떤가?

최욱 : 우선 도시재생사업은 흩어진 커뮤니티를 복원한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 또 하나는 정부나 지자체가 땅의 가치를 돈이 아닌 콘텐트로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젠 제도적 도움 없이 개인이 익선동이나 서촌을 지키기 어려워졌다.

동네문화 자리 잡으려면 시민의식 갖춰야

송길영 : 기존 커뮤니티 입장에선 부동산의 자산가치가 올라가면서 손바꿈이 일어나고 쫓겨나는 경우가 생겨나면서 정주의식이 흔들린다. 그 예로 전주 한옥마을엔 낮에 관광객으로 북적이지만 밤엔 조용하다. 도시의 기능 중 커뮤니티가 뜨내기들의 모임으로 활용된다. 북촌의 경우 자산가들의 사랑방이 됐으니.

최욱 : 우선 이런 흐름이 만들어진 건 다행이다. 문제는 시민의식이 해결해야 한다. 일본 나오시마가 좋은 예가 될 것 같다. 쓰레기 섬으로 알려진 나오시마는 원래 일본 금화를 찍어내던 부유한 섬이다. 그런 섬이 낙후되기 시작했고 일본 교육기업인 베네세 그룹에서 섬을 매입하려고 했다. 이 때 섬 주민들이 3가지 조건을 그룹에 제시했다. ‘첫째 대형 식당을 짓지 말라. 지역 커뮤니티가 깨질 수 있다. 둘째 쓰레기통을 만들지 말라. 관광객이 쓰레기를 가지고 돌아가도록 해라. 셋째 평소처럼 관내 모든 도로를 이용할 수 있게 해달라. 우리는 땅을 판 거지 풍경을 판 게 아니다.’ 이탈리아 역시 식당 권리를 얻기도 힘들고 월세도 쉽게 오르지 않는다. 정주성은 문화의 지속가능을 위해 꼭 필요한데 이를 유지하는 건 시민의식이다.

송길영 : 공유 공간이 뜨고 있다. 한 예로 ‘스세권’이 있다. 전국의 스타벅스 1000개 점포를 놓고 분석해보면 해당 지역의 상권과 경제활동을 추정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원룸이나 작은 집을 소유한 젊은 층이 개인공간을 확장하고 싶어 한다는 욕망을 읽어낼 수 있다. 이들에게 집 근처 스타벅스는 거실 역할을 할 뿐 아니라 백색소음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이제 사적 공간은 위워크, 현대카드 블랙스튜디오, 현대카드 4개의 라이브러리 등을 통해 확장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이런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이 늘다 보니 정작 정주자는 별로 없다.

최욱 : 공간은 공유하지만 공유를 소비화시키는 사람은 여전히 존재한다. 소유가 공유되는 건 아니니까.

송길영 : 공유는 결국 상업적으론 가능하지만 감성적으론 불가능하다고 이해하겠다. 최근 스타필드가 들어선 지역 인근의 아파트 시세가 많이 올랐더라. 상권이 형성됐으니 당연한 거겠지만 조금 확장해서 생각해보면 지역민들은 ‘스타필드도 우리동네’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송도국제도시 엄마모임’처럼 지역 엄마 커뮤니티가 강화되고 있다. 예전과 달리 지역 커뮤니티에 애착을 가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ICT 발전으로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다양해지면서 커뮤니티가 복원되는 경우도 생겨난다.

최욱 : 커뮤니티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생겨난다. 예로 일본 교토는 지역 커뮤니티가 워낙 발달해 방문하는 사람 입장에선 좋지만 정작 사는 사람 입장에선 불편한 점도 많다고 들었다. 익명성 원하는 사람은 교토에 못 산다.

송길영 : 요즘은 인스타그램에 많이 나오는 장소가 뜬다. 사진이 예쁘게 찍히는 장소가 주목 받는 거다. 그러다 보니 신규 건축물까지는 아니지만 빌딩을 리노베이션하는 경우 건축가가 아닌 사진작가가 미술 감독처럼 디렉팅하는 사례도 나오더라.

최욱 : 최근 1~2년 새 사진 잘 나오게 해 달라는 주문을 하더라.

송길영 : 인스타그램의 확산과 궤를 같이 하는 것 같다.

최욱 : 건축은 시각적인 부분에만 의존할 수 있는 건 아니라 한계점이 있다고 본다.

송길영 : 건축주 이야기도 해보자. 건축물엔 비전문가인 건축주의 열망이 녹아 있는 경우가 많다.

최욱 : 유럽에선 건축가의 사회적 영향력이 상당하다. 한국에선 승효상 선생님 외 몇 분을 제외하곤 없다. 그러다 보니 비전문가인 사용자이자 건축주가 쉽게 자신들의 요구사항이 반영되기 원한다. 아직 손을 빌릴 뿐 머리를 빌릴 생각을 안 한다.

송길영 : 상당 기간 우리에게 건축가는 기능인일 뿐 사상가는 아니었던 것 같다.

최욱 : 한국에서 건축가란 직업은 오래되지 않았다. 조선시대는 대목장이 있었고 일제시대는 일본인이 디렉팅을 했다. 이상은 건축가였지만 시를 썼다. 6·25 전후엔 시대적 어려움으로 건축가가 필요하지도 않았다. 이후 독재정권 시대는 건축가가 자신의 철학을 가지고 건축하기 어려웠다.

송길영 : 건축가 없이는 건물을 지을 수 없나?

최욱 : 건축가가 사회적으로 개척가 역할을 했던 모더니즘 시대엔 가능했다. 기존 방식을 허물던 때였으니까. 설계도를 드로잉으로 대신했다. 이런 방식을 시도했던 이탈리아의 미래주의 건축가 산텔리아(Antonio Sant’Elia)는 화가였다. 모더니즘 이후 1960~70년대에 많은 건축가가 드로잉을 경험했고 이를 페이퍼 아키텍이라 부른다.


▎원오원 건축사무소에서 마주 앉은 최욱 소장(왼쪽)과 송길영 부사장. / 사진 에스.티.듀퐁클래식 제공.
건축가는 디자인 능력보단 인문학적 해석 능력 필요

송길영 : 설계 당시 상상한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공간을 채우는 경우도 있을텐데.

최욱 : 어차피 건축물은 사람보다 오래 남는다. 사람은 주인공이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론 사용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건물 주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역사가 주인 아닐까.

송길영 : 하지만 30년 정도 지나 안전진단을 통과하지 못하면 허물고 다시 짓는다. 건축에 있어 이런 빠른 호흡은 왜 만들어진 건가? 어떤 건축가도 그리 짧게 생각하고 짓진 않을 텐데.

최욱 : 통상적으로 콘크리트는 100~200년, 아니 그 이상 간다. 로마시대에 만든 콘크리트가 지금도 남아 있으니까. 지금과 같은 환경에선 콘크리트 연한은 상당히 길다.

송길영 : 요즘은 철근도 쓰나.

최욱 : 건물을 지을 때 사용한 철근파이프 등 설비 교체 연한이 그 정도다. 자본주의에서 그 상황을 편하게 이용하는 거다. 상식적인 건축가라면 자기 건축물이 사람보다 오래 존속하는 역사의 부분이라고 인정할 거다. 또 한 가지는 정치적 상황과 밀접하다. 우리나라는 독재시대를 겪었다. 비평적이고 크리에이티브한 기질을 가진 건축가를 좋아할 리 없었다. 때문에 상당히 많은 건축가가 해외로 나갔다.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가 토목으로 만들어낸 결과가 30년 연한의 아파트다.

송길영 : 건축가 승효상 선생은 박조(朴朝ㆍ박정희 독재정권을 빗댄 말)시대의 건축이란 표현을 하시더라.

최욱 : 정권의 정당성 확보가 안 됐던 시절엔 크고 위압적인 건축물을 많이 지었다. 독립기념관처럼 민족 역사관을 보여주는 거대한 건축물도 만들지 않았나.

송길영 : 100층 이상 고층빌딩이 늘어나고 있다. 상업적 효용성은 낮지만 완공 이후의 가치를 기대하는 마천루효과 때문이다. 건축가 입장은 어떤가?

최욱 : 건축의 기본적인 속성은 ‘세우다’이다. 어릴 적 모래성 쌓기를 했던 것처럼 인간적·사회적 욕망의 산물 아닐까 생각한다.

송길영 : 하지만 고층빌딩을 짓는 건 공학적으로도 어려운 일이다. 건축가에겐 고층빌딩을 세웠다는 건 훈장과 같은 의미 아닐까?

최욱 : 기술의 진보를 신봉하는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것 같다. 철골의 발달, 엘리베이터의 발달로 고층빌딩이 가능해진 거 아닌가.

송길영 : 건축가가 상당히 많다. 좋은 건축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자질은 무엇인가?

최욱 : 디자인 능력이 우수한 사람은 많다. 공학적 지식은 기본이고. 다만 사회와 역사 안에서 건축물을 해석해내는 능력이 필요하다. 호기심과 인간에 대한 애정도 당연히 갖춰야 한다. 결국 인문학적인 교양이 승패를 가른다고 본다.

송길영 : 그렇다면 건축학은 인문대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최욱 : 건축학이 공대에 속한 나라는 독일과 일본, 우리나라뿐이다. 미국은 대학원에서부터 건축을 가르치는 경우가 많다. 이탈리아의 건축과는 예고를 졸업했거나 인문학·디자인을 공부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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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호 (2017.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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