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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 아미 에우제니 매뉴팩처 

대한민국 시계 산업의 메카를 꿈꾸다 

평택=오승일 기자 osi71@joongang.co.kr
국내 최초의 시계 공방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아미 에우제니 매뉴팩처를 다녀왔다. 그곳에는 오래전 명맥이 끊긴 국내 시계 산업의 부활을 위한 열정과 도전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왼쪽부터) 그리스 아테네의 웅장한 신전을 구현한 AE TN001. / 인생을 항해에 비유한 AE ST001.
서울을 출발한 지 1시간30분쯤 지났을까. 경기도 평택의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다 보니 고향에 온듯 정겨운 풍경이 바로 눈앞에 펼쳐진다. 과수원과 목장으로 둘러싸인 고즈넉한 마을에 들어서자 모던한 느낌의 2층짜리 회색 건물 하나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곳은 2014년 국내 최초로 설립된 아미 에우제니 매뉴팩처다. 반도체 설비 제조로 국내외에서 명성을 쌓아온 (주)화인의 김영덕(46) 회장이 1980년대 이후 사양길에 접어든 국내 시계 산업을 되살릴 목적으로 마련한 공간이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30년 가까이 기계와 인연을 맺고 있는 김 회장은 전문 엔지니어 출신 사업가다. 2012년 시계 제조 기술을 연구하기 위해 사내에 정밀기계 사업부(현 매뉴팩처의 전신)를 신설하고 디자인 기획부터 제조 공정까지 전 과정을 총괄하고 있다. 특히 매뉴팩처 공간 설계 및 장비 선정, 제조 프로세스 정립 등 모든 영역에 걸쳐 그의 아이디어와 노력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매뉴팩처 설립 이후 김 회장은 17년간 반도체 회사를 운영하며 체득한 정밀가공 노하우를 기초로 티타늄뿐 아니라 세라믹·실리콘·카본 등 다양한 신소재를 활용한 제품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를 통해 제품 경량화와 내구성 등을 무기로 해외 유수 시계 브랜드와 경쟁을 펼쳐나갈 계획이다.

지난 9월11일 만난 김 회장은 “아미 에우제니 매뉴팩처는 설계 초기부터 스위스의 유명 매뉴팩처를 참고했다”며 “시계 제조에 있어 가장 중요한 자연 채광을 위해 건물 곳곳에 커다란 창문을 낸 것이 무엇보다 큰 특징”이라고 말했다. 또 “매뉴팩처 주변에 반도체 관련 인프라가 잘 구축돼 있어 특수 소재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라고 덧붙였다.

시계 제조 부활의 신호탄을 쏘다


▎(왼쪽부터) 자연 채광을 고려해 설계된 작업대. / 시계 조립 담당 엔지니어의 작업 모습.
스위스 워치메이커에 버금가는 선진화된 시계 제조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고 있는 아미 에우제니 매뉴팩처는 40평 규모의 디자인 공방과 100평 규모의 제작 공방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곳에는 디자이너 1명을 비롯해 설계 및 가공 담당 엔지니어 2명, 조립 및 수리 담당 엔지니어 3명, 보조 인력 등 총 8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또 무브먼트와 케이스, 주요 부품을 제조할 수 있는 최소한의 설비를 갖추고 있다. 대표적인 설비로는 케이스와 무브먼트 플레이트, 브리지를 가공하는 5축 CNC 머신센터, 피봇(pivot)과 크라운 등을 가공하는 스위스 타입 CNC 선반, 피니언(pinion)과 휠 제작을 위한 기어 호빙 머신 등이 있다. 또 표면을 매끄럽게 가공하는 폴리싱 및 표면처리 설비와 열처리 설비, 가공된 부품을 측정하는 광학측정기, CNC 머신센터용 캠소프트웨어, CNC 선반용 캠소프트웨어, 무브먼트 전용 설계 프로그램 등도 보유하고 있다.

현재 매뉴팩처에서 생산 가능한 모델라인은 3개 정도며, 옵션별로는 12개 제품을 제작할 수 있다. 수작업으로 제작되는 부품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모델별로 한 달에 2~3개 정도만 제작이 가능하다. 매뉴팩처에서 만들어진 모든 제품은 엄격한 테스트 과정을 거친다. 무브먼트 조립 시 48시간 동작 테스트, 분해 및 세척 후 48시간의 동작 테스트를 진행한다. 또 제품이 완성된 후에는 와인딩 테스트와 이에 따른 일오차 측정을 별도로 실시한다.

김 회장은 “현재 두 곳으로 분리돼 있는 매뉴팩처를 한 공간에 모을 계획”이라며 “조만간 설계가 완료되면 인허가를 획득한 후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 “설비가 들어갈 공장동 200평을 비롯해 시계를 조립할 수 있는 클린룸과 접견실, 휴식 공간, 사무실 등을 모두 포함해 400평 규모가 될 것”이라며 “앞으로 이곳은 시계 제작 외에도 시계에 관심 있는 이 들을 위한 교육 공간 및 시계 관련 서적이나 제품들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김 회장의 안내를 받아 2층에 자리한 디자인 공방을 방문했다. 아미 에우제니 시계의 디자인 콘셉트와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결정되는 중요한 공간이다. 인생을 항해에 비유한 AE ST001과 그리스 아테네의 웅장한 신전을 구현한 AE TN001, 선박의 타륜을 형상화한 AE AT001 등 브랜드의 대표 모델이 모두 이곳에서 탄생했다.

선진 시스템 갖춘 명품 시계의 산실


▎(왼쪽부터) 경기도 평택에 위치한 아미 에우제니 매뉴팩처. / 디자이너의 시계 설계 작업 모습.
이곳에서 설계 및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는 배효용(31) 대리는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미 에우제니만의 스타일을 완성하는 것”이라며 “작은 나사 하나부터 무브먼트, 케이스까지 시계를 이루고 있는 모든 요소에 우리만의 스토리를 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디자인 공방을 나와 자동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제작 공방에 도착했다. 이곳에서는 무브먼트 설계와 조립, 기계 가공, 시계 조립, 폴리싱 작업 등이 이루어진다. 때마침 현장에서는 무브먼트 및 시계 조립을 담당하는 임신혁(47) 이사의 작업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220개의 미세한 부품으로 이루어진 무브먼트를 조립하는 데는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된다.


▎(왼쪽부터) 5축 CNC 머신으로 가공 중인 무브먼트 베이스 플레이트. / 폴리싱 담당 엔지니어의 작업 모습.
임 이사는 “보통 무브먼트의 조립은 밀링 부품과 선반 부품, 보석을 결합하는 전 공정과 완성된 베이스 및 브리지에 기어 부품과 스프링류를 조립하는 후공정으로 나눠진다”며 “각 부품의 표면 처리 및 루비 보석 세팅을 해야 하는 전공정이 훨씬 까다로운 작업”이라고 말했다.

바로 옆방에서는 윤필호(59) 이사의 폴리싱 작업도 감상할 수 있었다. 폴리싱 작업은 시계의 완성도를 최종적으로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척도다. 대부분의 워치메이커들이 시계 제조 공정 중 가장 공을 들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윤 이사는 “폴리싱은 시계에 아름다운 빛을 부여하는 디테일한 작업”이라며 “마음에 드는 빛이 나올 때까지 섬세하게 제품을 매만지는 끈기와 포기하지 않는 열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예정된 취재 일정을 모두 마치고 김 회장을 비롯한 임직원들이 사진 촬영을 위해 매뉴팩처 앞에 섰다. 시계 제조 산업이 전무하다 싶은 한국에서 시계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지만 그곳에서 그들은 정말로 시계를 제작하고 있었다. 디자인부터 부품 가공, 무브먼트 및 시계 조립, 폴리싱까지 시계를 대하는 그들의 자세는 매우 진지해 보였다. 대한민국 최고의 시계 매뉴팩처를 꿈꾸는 그들의 다음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 평택=오승일 기자 osi71@joongang.co.kr

201710호 (2017.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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