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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무역영웅들 - 정병도 웰마크 대표 

“위험할수록, 황금시장이다” 

박지현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사진 김현동 기자
“틈새를 찾지 않으면 틈새에 끼인다.” <틈새마케팅>의 저자 로버트 린먼의 말이다. 무역으로만 20년 가까이 존속한 웰마크는 수출 효자 기업 중 하나다. 남들이 위험하다고 말린 중남미와 아프리카의 틈새시장을 공략해 성공했다. 연 수출 규모는 1000만 달러에 달한다.

▎9월13일 만난 정병도 대표가 인조피혁 바닥재를 들어 보이고 있다. 바닥이 붙지 않고 분리돼 있어 수출 효자 상품이기도 하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을 복사하는 순간 망합니다.

벤치마킹보다 ‘맞는 옷’이 중요합니다.”

9월13일 충북 청주 사무실에서 만난 정병도(50) 웰마크㈜ 대표는 ‘역발상 수출전략’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웰마크는 1999년 출범한 인조피혁 회사다. 소파용과 가방용 인조피혁과 생산방식이 비슷한 바닥재를 만들어 중남미·아프리카·동남아 지역까지 섭렵한 100% 수출기업이다. 합리적인 가격과 다양성을 추구하는 ‘실속형 소비’가 트렌드로 자리 잡으며 신규 브랜드에 대한 수용이 넓어진 것도 요인이다.

정 대표는 협상 전문가로 불린다. 이미 1992년 ‘신신화학’에 첫 입사했을 때부터 해외영업에 대한 자질을 인정받았다. 새벽 2시 퇴근, 아침 7시 출근은 일상이었고 한 해 3분의 2 정도를 해외에 나가 바이어들을 만났다. 그의 판매 실적은 300만 달러 가까이 됐다. 정 대표는 “경쟁기업들이 e메일과 전화 업무를 할 때 대형 가방에 샘플을 넣고, 20~30시간의 장기비행을 견뎌내며 현지인들을 만났다”며 ‘대면마케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전략은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그의 항공 마일리지는 200만 마일이 넘는다. 지구를 80여 바퀴 이상 돈 셈이다.

1999년 그는 해외수출의 청운을 안고 웰마크를 설립했다. 직원 1명과 시작한 회사는 초기 바이어들의 격려와 투자로 호기를 맞는 듯했다. ‘중국에 투자하면 어떻겠냐’는 주변의 제안에 2000년 한국 기업 최초로 중국 절강성 소흥에 인조피혁 공장과 현지법인을 설립했다.

하지만 3년간 매출은 계속 곤두박질쳤다. 생산이 부진해지며 직원들의 6개월치 월급이 밀리기 시작했고, 부채는 50억원 가까이 이르며 부도 코앞에 직면했다. 정 대표는 당시 실패의 원인을 문화 차이로 인한 리스크 관리 부족을 꼽았다. “중국 관료들이나 현지 직원들의 태도, 국가세무총국 등 정부기관의 환경도 많이 달라 대처 방안이 부족했죠.”

가성비 높이고 외상거래 허용하며 물꼬 터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단 생각에 머리를 식힐 겸 중남미로 떠났다. 정 대표는 칠레를 둘러보며 ‘유레카!’를 외치고 싶어졌다. 시장은 가능성을 태동하고 있었다. 네 개 국가의 식민지를 겪어 다양한 문화에 대한 수용성이 컸고 언어가 브라질을 제외한 나머지가 스페인어로 통용되는 점도 용이했다. 무엇보다 회사 대표가 전권을 가지고 업무를 하고, 대인관계를 중시하는 문화가 한국인들과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정 대표는 중남미 시장에 진입하면서 제품의 가성비를 높였다. 예를 들어 3.0㎜인 바닥재를 2.5㎜로 얇게 경량화했고, 가격은 더 저렴하게 밀어붙였다. 피혁제품은 수익성도 좋은 편이었다. 정 대표는 “제조업 매출이익이 5% 정도라면 인조피혁은 20%까지 된다”고 설명했다.

과감하게 외상거래(Long Credit)도 허용했다. 새로운 시장이니만큼 3개월에서 12개월까지 95% 가까이 되는 거래처에 다양한 방식으로 제품을 외상으로 납품했다. 미수금 발생 등 비즈니스적으로 너무 위험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정 대표는 오히려 “경쟁국들의 수출 업체들이 선호하지 않는 거래방식이라 거래가 쉽다”며 “어차피 모든 실전거래에서는 안전한 거래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물론 국내 수출보험에 가입하고, D/A(외상수출어음)와 CAD(서류상환방식)를 활용하거나 담보 제공을 요구하는 등 방법은 다양하다”고 덧붙였다.

중남미 시장 공략 후 2009년 웰마크는 처음으로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섰다. 당시 많은 아시아 공장들이 중남미까지 시야를 돌리기도 전이라 인조피혁으로는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다.

몇 년 후 같은 방식으로 아프리카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2013년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의 탄핵으로 중남미 전체적으로 경제 침체가 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또 중국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밀려들어오면서 경쟁업체들이 늘어났다. 정 대표는 새로운 시장의 필요성을 느꼈다. 아프리카는 인프라가 더 불편하고 경제 수준이 낮아 다들 꺼리는 시장이었다. 정 대표는 이를 ‘황금 시장’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금을 캤다. 웰마크의 수출 규모는 현재 한 해 1000만 달러에 육박한다. 아프리카 시장에서 2011년 10만 달러에서 2012년 50만 달러로 5배가 증가했고, 2013년에는 150만 달러, 2014년 250만 달러, 2015년 400만 달러로 고공행진을 멈추지 않았다. D까지 떨어졌던 기업신용평가등급은 최고등급(AAA)이 됐다.

수출의 성공엔 무엇보다 국가별 문화나 선호도에 대한 깊숙한 이해가 뒷받침됐다. 정 대표는 ‘바이어 맞춤형 전략’을 말했다.“친밀도를 높이는 것이 가격과 품질보다 더 중요하다”는 게 정병도 대표의 철학이다. 국제통상 박사과정으로 이문화(cross culture negotiation)와 비언어(행위) 커뮤니케이션(nonverbal communication)을 공부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은 한마디로 ‘행동’에서 드러나는 소통이다. 정 대표에 의하면 말은 숨길 수 있어도 얼굴색과 손발은 숨기지 못한다고 한다. 예컨대 “만족스러울 때는 대답을 잘 안 하지만 오히려 불만족스러우면 10명 중 9명이 대답한다.” 정 대표는 바이어가 가진 태도·성향·취미 등 특징을 세세하게 메모해 바이어별 맞춤형 보고서를 만든다.

관상 볼 줄 아는 동양철학이 밑거름 돼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바이어들과 면담 중인 정병도 대표.
거래처에 대한 정보는 소통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비즈니스맨으로 쌓아 올린 30년 경력 노하우는 바로 ‘관상’이기도 했다. 정 대표는 주역도 공부했다. 실제 거래에서도 관상이 심하게 안 좋은 사람은 피했다. “세상의 이치를 알아야 경영을 하는데 동양철학은 그 밑거름을 제공했다”는 정 대표는 “흥미롭게도 아프리카 지역에서도 관상을 중시한다”며 사례 하나를 언급했다. 에티오피아의 한 바이어가 세 번째 만남까지 마음을 안 여는가 싶더니 어느 날 “내가 본 사람 중 제일 좋은 관상이라 계약을 체결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관상이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어도 ‘사람 보는 눈’이 길러진 건 확실한 듯했다. 수많은 계약에서 단 한 번 사기를 당하거나 속은 적이 없다고 하니 말이다.

정 대표는 문화를 이해하는 데 독서만한 스승이 없었다고 강조한다. 월급의 10%로 무조건 책을 샀다. 2주 가량 출장기간에 7권 정도의 책을 들고 간다. 호텔이나 기내에서 틈틈이 읽는다. 국내에 출시된 아프리카에 대한 책은 대부분 읽었을 정도다. 문화의 맥락을 파악해 대화에 동참하는 건 협상 성공율을 높이는 플러스 요인이 됐다.

중남미·아프리카 시장에 뛰어든 지 20년차 베테랑이지만 정 대표 또한 문화 차이를 모두 극복했다고 하긴 어렵다. 중남미의 인사법은 양 볼에 키스를 세 번해야 하는데 특히 바이어 부인들과 서툴게 인사를 하다가 얼굴을 부딪히기 일쑤였다고 한다. 만약 바이어의 부인이 볼키스를 거부하면 신뢰도에서 밀려 있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볼키스 인사를 ‘실수 없이 잘 하기 위해’ 늘 긴장한다고 한다.

생고기를 즐겨 먹는 아프리카 전통 결혼식에선 소 한 마리를 통째로 걸어두고 육회를 먹는데 일반인이 먹을 수 있는 부위는 5㎏ 정도밖에 안 된다. 나머지 부위엔 기생충이 많아서다. 그렇다고 초대를 받았는데 못 먹는다 할 수도 없어서 입에 넣는다. 콜라도 챙기고, 회충약도 먹지만 배탈을 피할 순 없었다. 심지어 수단 음식은 호텔에서조차 샌드위치 한두 개나 달걀밖에 입에 맞는 게 없을 정도다.

정 대표는 시장 개척을 멈추지 않는다. 지난해 5월부터는 동남아로 눈을 돌렸다. 동남아는 조심스러운 시장이었다. 이미 대만·한국 업체들이 줄줄이 진출해 있어 망설였다. ‘백척간두(百尺竿頭)’의 현장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베트남은 높은 습도에서 견딜 수 있는 인조피혁 제품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임을 알게 됐다. 2016년 5월 베트남에서 열린 박람회에서 현지 바이어와 상담을 통해 마음을 바꿨다. 지난해 100만 달러 이상 계약을 체결했다.

정 대표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도 실천하고 있다. 경영철학 중 하나가 ‘적선지가필유여경(積善之家必有餘慶;적선을 많이 하면 좋은 일이 있다)’이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에 6년 전부터 후원하던 중학생이 최근 약학대 입학 소식을 알려왔다. 정 대표는 “회사가 돈을 안 쓴다고 성장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윤리경영의 초심을 잃지 않으려 한다”고 말한다.

웰마크의 성공사례가 주목을 받는 건 현재 해외수출 국내 중소기업이 매우 적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국내 중소기업 10개 중 9개가 해외수출에 참여하고 있지 않고, 전체 중소기업 96.1%는 해외 진출 계획조차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병도 대표는 “돈을 버는 데 쉬운 길은 없다”며 강조했다. “사업하는 사람들에게 위험하지 않은 시장도, 안전한 시장도 없습니다. 하지만 위험할수록 잠재력이 큰 시장이기도 하죠. 과감한 도전과 철저한 준비는 기업의 가치를 180도 바꿀 수 있습니다.”

- 박지현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사진 김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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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호 (2017.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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