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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주의 ‘세계의 콜렉터’ 

최초의 콜렉터 그룹 ‘곰가죽 클럽’ 

박은주
멋진 작품을 찾아 나서는 열정은 언제나 흥분 그 자체다. 아트 콜렉션의 과정에는 감동과 행복이 동반한다. 프랑스에서 전시 기획자 및 예술가 에이전시로 활동하고 있는 박은주가 유럽 최초의 콜렉터 그룹 ‘곰가죽 클럽’을 소개한다.

▎Johannes Vermeer 요하네스 베르메르, 우유를 따르는 여인 (The Milkmaid) 1658년께 캔버스에 유채, 45,5x41cm
16세기 프랑스를 유럽 최강의 국가로 만들었던 프랑수아 1세는 당시 이탈리아에서 최고의 명성을 얻고 있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진심으로 존경했다. 그는 당시 생의 말년을 보내고 있는 다빈치를 프랑스에 초대해 자신이 묵고 있는 블루아성에서 가까운 클로뤼스성을 통째로 선물했다. 그리고 다빈치가 여생을 편안히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그와 그의 제자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등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런 프랑스 국왕의 예술가들을 향한 메세나 정신은 훗날 부르봉 왕가의 루이 14세에게까지 이어져 세계에서 가장 장엄한 왕실 컬렉션을 자랑하게 된다. 프랑스대혁명 이후 왕정을 붕괴시킨 나폴레옹 1세 또한 예술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그의 발아래 정복된 나라들의 예술작품이 프랑스에 흡수되었다. 현재 루브르박물관의 46만여 점의 작품은 과거 통치자들이 예술을 숭상한 대가로 얻은 국가 번영의 산물이다.

하지만 정작 예술작품이 일반 대중에게 확산되며 투자의 대상이 된 곳은 네덜란드였다. 16, 17세기 네덜란드는 해상 무역의 발달로 자본이 집중되었으나 좁은 땅덩이로 부동산 투자에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미술품 투자로 눈을 돌렸다. 당시 칼빈주의의 영향으로 종교화를 그리던 화가들은 그것으로 생활이 되지 않자 초상화·풍속화·풍경화·정물화 등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생활의 장면을 그린 장르화(Genre painting)를 그려 아틀리에에서 직접 고객에게 판매하였다. 때마침 수많은 노점상이 갤러리 역할을 하면서 미술품들의 활발한 거래가 이루어졌다. 150년에 걸친 네덜란드 황금기 동안 1000만 점의 미술품이 제작되어 서민들의 생활 공간 어디든지 그림이 걸려 있던 풍요의 시대를 열었다. 이렇게 미술 시장의 기반을 만들고 보통사람들이 일상에서 예술을 접할 기회를 만든 주역은 성공한 상인들이었다. 렘브란트 (Rembrandt), 루벤스(Rubens), 베르메르(Johannes Vermeer)와 같은 세계적인 거장들이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들 상인의 미술에 대한 투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르누아르 Auguste Renoir 앙부르아즈 볼라르 Ambroise Vollard, 1908, oil on canvas, 81,6 x 65,2cm 사진 저작권 : Public Domain
기업가들의 메세나 활동

현대에 들어와서 수많은 신예 작가를 키우고 예술이 일반인들의 생활 속으로 스며드는데 공헌한 사람들은 기업가다. 1904년 프랑스의 젊은 선박회사 회장인 안드레 르벨은 예술 애호가였다. 그는 늘 예술가들에게 호감을 가졌고 어려운 삶을 살고 있는 그들에게 연민을 가졌다. 그러나 혼자서 작품 몇 점을 사는 것으로는 실질적으로 예술가들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는 어떻게 하면 어려운 작가들을 돕고 더불어 멋진 작품들을 구입해 감상하는 즐거움을 만끽하며 진정한 예술 후원자가 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러던 중 미술상 앙부르아즈 볼라르를 만난다. 그는 인상파, 후기 인상파, 나비파, 야수파, 입체파, 상징주의, 점묘파, 몽마르뜨르 화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작가와 깊고 넓은 인맥을 지닌 사람이었다. 안드레는 볼라르와 같은 컨설턴트의 도움이 있다면 모임을 만들어 신예 작가들의 작품을 공동으로 구입해 그들의 예술 활동을 도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형제들과 지인들을 설득했고 모두 기꺼이 메세나의 길에 동참했다. 이들은 안드레 르벨처럼 대부분 여러 분야에서 성공한 사업가들이었고 이로써 진정한 의미의 메세나가 시작되었다. 이때 14명의 기업가가 메세나 활동을 위해 만든 투자클럽이 ‘곰가죽’이다

그들의 투자 방식은 14명의 회원이 각자 매년 250프랑(현재 기준 약 1400만원)의 회비를 내고 볼라르의 조언을 받아 젊고 재능 있는 작가의 작품을 10년간 꾸준히 구입하는 것이었다. 구입한 작품들은 제비뽑기로 회원들이 돌아가며 자신들의 집에 소장하고, 10년 후 일괄 경매를 통해 판매하기로 했다. 투자 클럽의 목적이 젊은 예술가들을 지원하는데 있으므로 10년 후 작품을 일괄 판매했을 때 손해가 날 수 있다는 것은 모두가 인지하고 있었다. 설령 이익이 나더라도 수익의 3.5%만 회원에게 배당하고 그 이상의 수익은 자신들이 구입한 작품의 작가들에게 배당하기로 했다. 10년이 지났을 때 곰가죽 클럽이 구입한 작품은 60여 작가의 400여 점에 달했다. 그들이 구입했던 작품에는 당시 무명이었던 피카소·마티스·고갱·세잔느·피사로, 고흐 등의 작품이 포함되어 있었고 그들은 어느덧 진정한 아트 콜렉터가 되어있었다.

10년 후 작품을 판매하기 위해 경매회사에 내놓았을 때 작품을 가장 먼저 입찰한 사람은 그 작품에 깊은 애정을 가졌던 회원들이었다. 그들은 작품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파악했으며, 작품 한 점 한 점은 10년 동안 그들이 만든 소중한 추억이자 그 어떤 곳에서도 맛볼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외 콜렉터들이 대거 입찰하는 등 기대 이상으로 많은 사람이 그들의 콜렉션에 관심을 보여 경매 결과는 예상을 뒤엎고 엄청난 수익을 남겼다. 그 당시 경매의 스타는 피카소와 마티스였다. 예를 들어 피카소가 1905년에 제작한 ‘곡예사 가족’은 당시 1000프랑에 구입했는데 10년 후 1만1500프랑으로 10배 이상의 수익을 얻었다. 초기 무명이었던 피카소·마티스·고갱·세잔느·피사로·고흐 등의 작가들은 곰가죽 클럽이 경매에 성공한 이후 더욱 유명해졌고 작품 가격은 급상승했다. 이와 같은 성공의 배경에는 볼라르와 같은 유능한 컨설턴트의 조언과 사업 수완이 탁월한 안드레 르벨이 경매를 위해 언론을 최대한 활용한 덕분이었다.

‘집의 벽을 채우고 꾸미기 위하여’라는 분명한 목적을 지녔던 곰가죽 클럽의 이야기는 투자 측면에서 보면 예술을 향한 무모한 모험가들의 이야기이다. 젊은 작가들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무명 작가들의 작품만을 구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는 여러 가지 면에서 기대 이상이었다. 회원들은 초기 약속한 대로 투자한 비용에 더해 단지 3.5%의 수익금만 받았지만 10년이라는 기간 동안 볼라르가 소개하는 작가들을 만나 작품 설명을 들으며 예술에 대해 눈을 뜨고 안목을 높였으며 그 작품과 함께하는 풍요로운 삶을 살았다. 또한 사업가로서 그리고 20세기를 사는 한 프랑스인으로서 사고의 영역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경매 후 작가들에게 약 1만2000프랑이나 되는 이익금을 후원했고, 당시 무명이었던 수많은 작가를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들의 특별한 콜렉션 얘기를 하다 보면 사람들은 왜 모임의 이름을 ‘곰가죽 클럽’이라고 했을까 궁금해 한다. 이는 17세기 프랑스의 문인 라퐁텐의 우화 <곰과 두 친구>에서 유래했다. 이 우화는 곰 사냥을 떠나기도 전에 미리 골동품 상점 주인에게 곰가죽 값을 받는 이야기다. 여기에는 아직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사냥꾼과 모피 가게 주인, 양쪽 모두 위험을 감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 최초의 콜렉터 클럽을 만들었던 그들의 용기는 아트 콜렉터가 되는 길은 모험가의 길임을 깨닫게 한다. 이들과 같은 아트 콜렉터가 되기 위해서는 3가지 요건이 필요하다. 첫째 예술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 둘째 그 열정을 모험으로 이끌 수 있는 과감한 용기 그리고 셋째 장기투자가 가능한 경제적 여유다. 곰가죽 클럽의 성공담은 시간이 흐르면 유럽뿐 아니라 미국의 미술계에서조차 전설이 되었다. 유럽에서는 이들의 이야기를 모태로 점차 새로운 형태의 콜렉터 클럽이 만들어졌고, 수많은 기업가가 메세나 활동을 겸하는 아트 콜렉터의 대열에 들었다.

구찌를 포함해 입생로랑·발렌시아가 등 20여 개 명품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케링 그룹의 회장 프랑수아 피노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아트 콜렉터이며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대 콜렉터 중 한 명이다. 그는 베네치아와 파리에 총 3개의 개인 박물관을 소유하고 있는데 그가 전시하고

있는 컬렉션 작품은 약 4000점에 달한다. 또한 렁스에 레지던스를 만들어 작가들을 물심양면 돕는 그는 기업가에게 예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 밖에 루이비통 모에페네시(LVMH)의 베르나 아르토회장, 엘리 브로드, 아실럼 레코드와 게펜 레코드사의 오너 데이비드 게펜 ,그리스 선박재벌, 필립 니아죠스 등 전 세계 사업가들이 아트 콜렉터로 활동하고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예술을 통해서 미래를 예견한다는 점이다. 이처럼 예술은 기업가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예지력을 충족시켜주는데 큰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 본다면 113년 전 파리에서 세계 최초로 아트 컬렉션 클럽을 만든 안드레 르벨이 기업가였던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프랑수아 피노는 “기업가들이 미술품을 수집하는 이유는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 오늘과 미래를 보기 위해서다. 오늘날 동시대 작가들과 대화하고 작업실을 방문하다 보면 우리의 미래가 보인다”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기업가들도 아트 컬렉션을 통해 예술적 안목을 넓히는 동시에 능력있는 신예 작가들을 지원하고, 예술을 통해 기업 경영에 대한 통찰력을 기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곰가죽 클럽을 잇는 한국의 콜렉터


▎한국 국제 아트 페어 KIAF 2014년 당시 인 갤러리에서 로버트 슈에이몽 작품을 배경으로 쥬벙스와 피에 르 스텍스와 리오넬 에스테브. / ⓒ 박은주

▎2013년 바젤 아트 페어 기간에 유럽 콜렉터 클럽에게 작품 설명을 하고 있는 피에르 스텍스. / ⓒ 박은주
16, 17세기에 미술 시장의 모태가 되었던 벨기에 사람 에르제는 틴틴의 만화가이다. 1971년 그는 이미 성공한 만화가이며 동시에 사업가였다. 그는 곰가죽 클럽처럼 당시 아직 30세도 되지 않은 젊은 예술 문학 평론가 피에르 스텍스를 컨설턴트로 사업가 친구 12명을 모아 12인의 그룹(Le Groupe des 12)이라는 콜렉션 클럽을 만들었다. 이들은 이익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으므로 10년 동안 협회로 운영되었다. 그들 역시 피에르 스텍스에게서 아방가르드한 동시대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들을 소개받았고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작품들을 선별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단 한 점의 원본 예술품을 자신이 소장한다는 관념을 뒤집고 피에르 스텍스가 유명인의 사진, 만화, 보도 사진 등 대중적 이미지를 차용해 실크 스크린이라는 새로운 기법으로 고상한 위치에 머물렀던 예술의 지위를 끌어 내린 앤디 워홀의 작품을 소개했을 때 회원들은 모두 당혹해 했다. 그러나 당시 저렴한 값에 앤디 워홀을 구입했던 그들에게 피에르 스텍스는 수십 년 후 신과 같은 존재가 된다. 그가 소개한 앤디 워홀의 작품 (Ten Marilyn : 1970년 약 2500 유로에 구입)등 수많은 예술품은 회원들이 분배해서 소장했고 10년 뒤에 회원들 내부에서 나누어 가졌다. 그 후 피에르 스텍스를 아트 컨설턴트로 한 콜렉터 클럽이 벨기에뿐만이 아니라 스위스·프랑스 등지에서 여러 개가 생겨났다. 그리고 2013년 피에르 스텍스와 함께 한국 최초의 콜렉터 클럽 쥬벙스를 만들어 작품 구입을 컨설팅하고 있다.

쥬벙스는 프랑스어로 청춘이란 뜻이다. 클럽의 이름과 같이 그들은 예술과 함께 영원히 젊음을 유지하는 충만한 삶을 목표로 했다. 협회 방식으로 운영되는 쥬벙스 클럽의 회원들은 해외 아트 페어에 참가하여 세계 예술 시장의 흐름을 배우고, 피에르 스텍스의 추천으로 매년 공동으로 예술품을 구입해왔다. 이들은 경매를 통한 투자금 확보와 수익 창출보다는 그룹 내 회원들 간의 작품 분배를 선택했다. 이는 피에르 스텍스가 추구했던 방식으로 그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갖게 해준 작가와 작품들에 대한 애정의 표현이다. 그가 제안했던 작가들의 작품이 수많은 박물관에서 전시되며 작가들이 성장하는 것을 보고 쥬벙스의 콜렉션은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쥬벙스 회원들은 10년 동안 국제 페어뿐만 아니라 베니스 비엔날레, 카셀 도큐멘타 등 예술 이벤트를 따라 멋진 여행을 하고 있다. 사업가·변리사·변호사·은행가·의사·주부로 구성된 쥬벙스는 아트 컬렉션이라는 부모의 특별한 경험을 아이들에게 상속하는 것 뿐아니라 예술과 함께 하는 은퇴 이후 노년의 삶을 미리 준비하고 있다.

※ 박은주는…
박은주는 1997년부터 파리에서 거주, 활동하고 있다. 파리의 국립 에콜(GRETA)에서 예술사를, IESA(LA GRANDE ECOLE DES METIERS DE LA CULTURE ET DU MARCHE DE L'ART)에서 미술 시장과 컨템퍼러리 아트를 전공했다. 파리 드루오 경매장(Drouot)과 여러 갤러리에서 현장 경험을 쌓으며 유럽의 저명한 컨설턴트들의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2008년부터 서울과 파리에서 전시 기획자로 활동하는 한편, 유럽 예술가들의 에이전트도 겸하고 있다. 2010년부터 아트 프라이스 등 예술 잡지의 저널리스트로 예술가와 전시 평론을 이어오고 있다. 박은주는 한국과 유럽 콜렉터들의 기호를 살펴 작품을 선별해주는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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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호 (2017.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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