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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 대담] ‘벤처가 대한민국의 희망이다’ 

 

조용탁 기자 ytcho@joongang.co.kr / 사진 전민규 기자
한국 벤처가 나아갈 길에 대해 이민화 카이스트 교수, 황철주 주성 엔지니어링 대표, 남민우 다산 네트웍스 대표, 안건준 크루셜텍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이들은 한국 벤처 기업의 현황과 위기, 그리고 나아갈 길에 대해 솔직하고 깊이 있는 의견을 나눴다.

문재인 정부는 적극적인 벤처 지원 정책을 준비 중이다. 중기청을 중기벤처부로 승격했고,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벤처인을 만나 의견을 경청하고 있다. 새 정부가 벤처에 주목한 배경엔 성장 동력을 잃어가는 대한민국호가 있다. 기존 산업 구조만으론 한계가 보인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제외한 주요 산업군은 예전의 위상을 잃고 고전 중이다.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 같은 중후장대 산업군의 부진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혁신 기업의 필요가 어느 때보다도 높다. 성장 동력을 찾기까지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다. 지난 수년간 성공한 글로벌 기업 대부분은 혁신 기술을 확보하며 경쟁력을 높였다. 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인류 역사상 가장 강해지는 시기다. 기술 흐름을 읽고 선도하는 기업이 글로벌 강자로 살아남는 세상이다. 미국을 살펴보자. 지난 30년간 30대 기업의 70%가 새로운 기업으로 바뀌었다. 혁신 기술을 앞세운 실리콘밸리 벤처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중국과 일본에서도 벤처 기업인이 경제를 이끌기 시작했다. 중국에선 창업에 나선 젊은이들을 ‘창궈’라고 부른다. 칭화대 주변의 중관춘이나 선관 일대 분위기는 실리콘밸리에 못지 않다. 일본은 지난 5년간 혁신 기술 관련법을 대대적으로 뜯어 고쳤다. 클라우드, 인공지능, 핀테크, 개인정보 이용 관련 규제가 사라지며 벤처 창업이 대폭 늘었다. 하지만 미국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70%가 한국에선 불법이다. 규정에 없으면 하면 안 되는 한국법의 특성이 벤처 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래서는 국가 경쟁력 확보가 어렵다. 4차 산업혁명이 지날 무렵이면 일본과 중국에게 한참 뒤진 국가로 밀려날 가능성도 있다.

지금 한국의 가장 큰 문제로 청년 실업이 꼽힌다. 갈수록 악화되는 중이다. 대기업 일자리가 줄었고, 공공기관 채용 확대로는 한계가 있다. 우량 기업이 늘어야 한다. 한국 경제 성장과 일자리 확보를 위한 가장 명확한 방법이다. 이를 위해선 기업가 정신이 투철한 벤처인들이 마음 놓고 도전하며 꿈과 끼를 펼칠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소개하기 위해 포브스코리아는 ‘벤처 맏형 4인의 대담’을 준비했다. 이민화 카이스트 교수, 황철주 주성 엔지니어링 대표, 남민우 다산 네트웍스 대표, 안건준 크루셜텍 대표다. 이들은 지난 20여 년간 벤처 기업에 몸담으며 한국 벤처의 문제와 개선점을 이야기해왔다. 모두 벤처기업협회장을 지냈고 벤처 산업 발전과 후배 양성에 열과 성을 다한 인물들이다. 11월 13일과 15일 양일에 걸쳐 판교 경기창조경제센터 ‘K-라운지’에서 이들을 만나 한국 벤처 기업의 현황과 위기, 그리고 나아갈 길을 들었다.

벤처의 위기 | 남들은 달리는데 우리는 걷고 있다


▎이민화 카이스트 교수
바쁘신 중에 감사합니다. 먼저 한국 벤처 산업의 현황을 짚어 봤으면 합니다. 한국 벤처의 미래는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요.

이민화: 미래는 우리가 디자인하기 나름입니다. 대한민국에서 기업가 정신이 발휘되면 미래가 있고 이를 못 살리면 없는 것이지요. 이야기를 위해 먼저 혁신이란 무엇인가 생각해야 합니다. 슘페터는 혁신을 창조적 파괴라고 했어요. 파괴가 없는 혁신은 어렵습니다. 모두 만족하는 변화는 불가능합니다. 기존 산업 가운데 일부가 사라져야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집니다. 한국은 규제가 촘촘히 얽혀 있어 혁신 기업 등장이 어렵습니다. 예컨대 한국 중·고등학교 80%가 무선인터넷(Wi-Fi)이 안됩니다. 설치하려면 정부에 연락해 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지요. 혁신을 이야기하며 규제를 늘려온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황철주: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새로운 경쟁을 의미합니다. 우리 기업의 무대는 5000만 명인 한국 시장이 아니라 수십억 명의 글로벌 시장이어야 합니다. 글로벌 강자와 경쟁에서 앞서 나가야 미래가 있습니다. 경쟁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잘하냐가 아니라 경쟁자보다 앞서는 일입니다. 내가 부족해도 경쟁자가 못하면 이기고, 아무리 잘해도 상대가 더 잘하면 지는 게 세상입니다. 잘할 생각보다 이길 전략이 중요한 이유지요. 우리가 가진 자원과 시간을 어디에 집중할지, 어떤 분야에서 속도를 올릴지 고민해야 합니다. 그게 우리가 지속성장할 수 있는 길이라고 봅니다.

남민우: 저는 미래를 긍정적으로 봅니다. 앞으로 더 힘든 상황에서 기업을 하겠지만, 그래도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부의 정책이 부족할 수 있어요. 하지만 기관의 도움이 없더라도 한국 기업이 가진 경쟁력이 있기에 어떻게든 살아남을 거라고 봅니다. 월드컵 축구에서 4강 신화가 나오기는 어렵겠지만, 어떻게든 본선까지는 꾸준히 나가겠지요. 다만, 정부 정책이 잘 나오고 기업 환경이 나아지면 4강 진출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호랑이에 날개가 달리길 바랍니다. 아 그리고 저는 벤처 산업이라기보단 벤처 기업계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고 봅니다. 벤처를 산업이라 규정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황철주 주성 엔지니어링 대표
안건준: 한국은 가능성이 있습니다. 벤처 기업하기에 유리한 점이 많이 있습니다. 서울 중심의 수도권은 일본 도쿄나 중국 베이징, 심지어 미국 실리콘밸리에 비해도 장점이 많습니다. 인재와 기술, 자본, 글로벌화에 최적화된 지역입니다. 전 세계에서 종합대학이 제일 많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경제는 세계 11위 수준인데 한국에선 이 중 90%가 수도권에 몰려 있습니다. 이 점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미래 먹거리로 바이오 분야가 뜨는데 한국이 강한 분야입니다. 여기에 삼성의료원·아산병원·세브란스 병원 같은 수준 높은 대형 병원도 여럿입니다. 150국에서 모인 다양한 인재들이 있고, 글로벌 기업 사무실도 서울에 있습니다. 역으로 보면 여기에 기회가 보입니다. 수도권은 세계에서 창업하기 가장 유리한 지역입니다. 우리가 가진 가능성을 살리면 우리 벤처가 글로벌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할 확률이 높아진다고 생각합니다.

기회를 살리기 위해서는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큰 위기는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남민우: 예전엔 중국이 없었습니다. 지난 20년 사이 중국의 산업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무섭게 성장했습니다. 거대한 시장, 인력, 강력한 정부가 치밀한 계획을 가지고 움직입니다. 경제 성장률과 주식 시장은 삼성전자가 끌고 가는 것일 뿐 우리 체질이 건강한 것은 아닙니다. 마음 놓고 있으면 안됩니다. 여기서 머뭇거리면 큰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황철주: 저도 중국이 위기 제공 국가라고 봅니다. 반도체를 예로 들지요. 중국이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는 도시로 우한이 있습니다. 수십조원을 들인 생산단지가 건설 중입니다. 도시 입구에 ‘빛의 속도로 변하는 도시’라는 표어가 붙어 있습니다. 중국 사람들 돈 좋아합니다. 벌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입니다. 중국은 뭐든지 만들기만 하면 팝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허가 받고 만들고 눈치 보며 팔아야 합니다. 중국이 잠자고 있을 때는 괜찮았었는데, 빛의 속도로 달리는데, 우리는 제도에 묶여 있습니다.

안건준: 위기 의식이 부족합니다. 우리나라도 벤처 창업 활성 많이 합니다. 그런데 중국 벤처 창업 현황을 보면 올해 훅 올라옵니다. 중국이 인구가 많지만 고등교육을 받은 인재는 한국보다 많아야 10배 정도 됩니다. 그런데 올 상반기 법인 설립 수가 한국의 100배를 넘었습니다. 한국 기술벤처는 전체 창업의 21%인데, 중국은 43%에 달합니다. 1년 뒤엔 차이가 더 벌어질 것이고 이렇게 몇년 지나면, 돌이키기 어려워질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요즘 일본도 무섭습니다. 한국 벤처 제도를 부러워하던 게 10년 전인데, 지금은 우리보다 더 혁신적입니다. 일본엔 자본과 기술이 있고, 세계 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높습니다. 우리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시속 30km로 달리는데 상대는 100km로 달리고 있습니다. 절대 마음 놓을 때 아니라고 봅니다.

황철주: 청년들이 모두 공무원이 되려 하는 점도 문제입니다. 꿈을 가지고 도전해야 하는데, 큰일입니다. 취업이 어렵고 좋은 일자리가 줄다 보니 나온 현상인데, 답을 찾아야 합니다. 공무원만으론 미래가 없어요.

이민화: 옛날에야 가진 게 없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요. 지금은 어느 정도 부를 축적한 덕에 안정을 추구하는 성향이 강해졌습니다. 문제는 지금 우리가 안전하지 않은 상황이라는 점입니다. 냄비 물이 데워지는데 개구리는 따듯하다고 느끼는 상황입니다. 4차 산업혁명의 영향이 커지고 있습니다. 산업 패러다임이 변하고 기술 변화 속도가 무섭습니다. 세계가 이렇게 변하는데 우리는 구경만 하는 것 같아요. 경각심을 가지고 대응해야 합니다. 변화 속도를 따라갈 것인가, 탈락할 것인가, 앞서갈 것인가, 운명의 기로에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 기술은 세계 10위권입니다. 하지만 이를 제도가 못 받쳐주고 있어요. 예컨대 우리나라에선 디지털 헬스케어가 어렵습니다. 병원 정보를 디지털화해서 진단하면 불법입니다. 개인 정보 보호도 중요합니다만 이를 의학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선 융통성이 있어야 합니다.

안건준: 일본 은 정부의 전폭적 지원 아래 중소·벤처 중심으로 산업 생태계 전환에 한창입니다. 쇠락해가는 산업의 새로운 활로를 찾으려는 노력이 있고 그 덕에 기술창업이 활발해지고 일자리가 남아도는 지경입니다. 한국경제의 위기는 미국과 유럽을 볼 필요도 없습니다. 중국의 굴기와 일본의 부흥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벤처의 한숨 | 20년간 벤처 정책은 실패했다


▎남민우 다산 네트웍스 대표
새정부가 벤처 기업에 힘을 실어주려는 모습이 보입니다. 2018년 정부가 벤처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어떤 정책들이 필요하다고 생각십니까.

이민화: 차라리 아무것도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더 좋습니다. 지난 20년간 정부의 벤처 정책 가운데 성공 사례가 없습니다.

남민우: 그렇습니다. 과유불급이란 말이 있어요. 벤처와 정부는 속성상 잘 안 맞아요. 벤처는 기본적으로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인데, 이건 관이 하기 어렵습니다. 벤처가 살아날 수 있도록 마중물을 지원하고 기다리며 지켜봐야 합니다. 개입해서 이거 해라 저거 해라 가르치기 시작하면 배가 산으로 갑니다. 지난 정부들에서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습니다. 이번 정부도 비슷한 것 같아 걱정입니다.

황철주: 혁신은 항상 제도보다 앞에 있어요. 시장에 새로운 변화가 있고 그 다음 제도가 나타납니다. 그런데 우리는 혁신을 외치면서 제도를 벗어나면 안된다고 해요. 혁신과 신뢰는 공존할 수 없어요. 변하며 앞서 가려는 힘을 가진 혁신에게 오랫동안 지켜보며 믿음을 쌓아야 하는 신뢰를 요구해요. 이건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입니다.

이민화: 2018년 벤처 업계의 화두를 두 가지로 봅니다. 벤처 생태계 복원과 대·중소 기업을 아우르는 인수합병(M&A)의 활성화입니다. 생태계가 입구라면 M&A는 출구입니다. 들어오고 나가는 길이 열려야 생태계가 성장하지요. 현 정부는 생태게 복원까지는 노력하겠지만 M&A 분야는 미진할 것으로 봅니다. M&A는 대기업에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대기업 성장을 막는 정책 기조를 가지고 있어 문제입니다. 이건 바람직하지 않아요. 큰 기업이건 작은 기업이건 다 키워야 합니다. 기업 육성은 제로섬이 아니예요. 대기업이 중소기업 시장과 기술을 빼앗는 것 아닙니다. 옛날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그렇지않아요.


▎안건준 크루셜텍 대표
안건준: 한국 대기업이 가진 역량이 있습니다. 이걸 보기 싫다고 지우면 안됩니다. 대기업이 가진 능력을 활용해서 벤처 기업을 키워 나가야 합니다. 벤처정책의 핵심은 어떻게 선순환 구조를 만드냐는 것입니다. 미국은 벤처기업 M&A를 통한 투자 자금 회수가 74%, 기업공개(IPO)를 통한 자금 회수가 10%대인 데 비해 한국은 M&A를 통한 엑시트 비중이 0.4%에 불과합니다. 벤처 강국으로 가려면 대기업의 생태계가 벤처 생태계와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미국이 그래요. 정부와 대기업·벤처 업계가 머리를 맞대고 답을 찾아야 합니다. 지금 분위기가 좋습니다. 선순환 구도에 접어들었다고 봅니다. 대기업과 국책연구소의 우수 인력이 창업을 시작합니다.

벤처 생태계는 나라가 강제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민간 기업들이 모이고 빠지는 과정에서 만들어 진다. 지금 전국 주요 도시엔 대기업이 지원하는 창조경제센터가 있다. 주요 대기업에선 사내 벤처를 육성하고 벤처 창업지원 자금을 운영하는 중이다. 안 대표는 대기업이 적극적이라고 말한다. 벤처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대기업이 역할을 할 분위기가 무르익었다는 것이다. 이런 환경을 살려 대기업과 벤처기업이 어울릴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면 벤처 활성화에 큰 동력이 생긴다.

안건준: 물 들어 왔을 때 노 저어야 합니다. 대기업 총수가 벤처 지원을 실천으로 옮길 수 있도록 지원하고 그런 사회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민간이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일을 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정부가 중간에 끼면 ‘창조경제 시즌 2’일 뿐입니다. 한국에는 이스라엘이 부러워하는 생태계가 있습니다. 이를 활용해야 합니다. 현 정부는 역대 정부가 한 번도 못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 주제는 정책에서 기술 분야로 넘어왔다. 한국이 기술을 보호할 여건이 부족하다는 것이 주요 화제였다. 3년 전 안건준 대표가 관심을 보인 기술 기업이 있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창업자와 미팅을 하며 협상을 진행하는데, 돌연 방해꾼이 나타났다. 삼성이 미국 벤처를 1800억원이나 주고 M&A한 것이다. 회사는 루프페이로 지금 삼성페이의 원천 기술을 가진 기업이었다.

이게 한국 회사였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안건준: 기술만 빼냈겠지요. 하하. 당시 저는 ‘삼성이 드디어 기술에 주목하는구나’라고 생각하며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회사 원천기술이 그렇게 복잡한 편은 아니었거든요. 아마 제생각에는 몇년 전 한국이었으면 기술만 빼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제가 삼성 출신인데, 예전에 그렇게 배웠고 후배들도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많이 변하고 있어요. 주요 대기업 경영진의 마인드가 변했고, 제값을 주고 투자를 하거나 M&A 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더 살려가야 합니다. 대기업을 벤처 생태계로 끌어와서 좋은 방법으로 묶으면 시너지가 커집니다. 적폐대상으로 공격만 해서는 좋지 않습니다. 미국 대기업들도 과거엔 윤리적 문제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1940년대에 법과 제도를 대폭 강화하며 문화를 개선했습니다. 지금 미국·일본 독일 등의 선진국에선 대기업이 혁신 생태계 한축을 담당하고 있어요. 배울 점이 있다고 봅니다.

황철주: 혁신 기업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기술 보호가 정말 중요합니다. 그래야 혁신이 따라옵니다. 혁신은 리스크가 커요. 위험을 무릅쓰는 도전인데 보호 장치가 필요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열심히 기술을 개발해봤자 나중에 빼앗깁니다. 기술의 소중함을 인정하고 보호해야 합니다.

이민화: 특허법원이 문제입니다. 특허 출원 시스템은 잘 운영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판결 시스템이 아주 낙후되어 있어요. 한국 기업만 봐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판결 기준을 글로벌 수준에 맞춰달라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특허를 침해하면 벌금 7800만원이 나옵니다. 중요한 특허 같으면 일단 베끼고 보는 겁니다. 미국에서는 심하면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의 과징금이 나옵니다. 미국도 특허 도용 문제가 심각했어요. 70년대 특허를 보호해주는 판결이 나오기 시작하며 기술이 보호받기 시작합니다. 이는 미국의 기술 기업 등장과 맥을 같이 합니다.

정부가 지나친 간섭을 피하고, 특허를 보호해주는 것도 좋습니다. 여기에 더 필요한 정책은 뭐가 있을까요.

남민우: 스케일업입니다. 벤처는 창업 못지않게 살려 키우는 일이 중요합니다. 중소기업이 중견, 중견이 대기업으로 성장하며 올라가야 합니다. 여기서 정책금융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지금 정책금융은 대기업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필요한 중소·중견 기업엔 도움을 못 주고 있습니다. 벤처 기업 대상 금융기관을 따로 만들거나 기존 기관의 역할을 키워주는 식으로 변해야 합니다.

안건준: 스케일업은 좋은 일자리를 위한 중요한 방법입니다. 우리나라에 매출 1000억원 벤처는 모두 513개입니다. 이들의 매출을 합하면 약 110조 원입니다. 국가 경제에 이만큼 기여하고 있지요. 10조, 100조 기업도 좋지만 나오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100억원 기업의 성장을 도우면 1000억원 기업으로 키울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스케일업 할 수 있는 기업을 찾아 키워 이들이 국내 시장을 넘어 글로벌 시장에 도전하게 이끌어줘야 합니다. 우량 기업이 늘면 좋은 일자리는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사회의 반기업 정서도 기업인에게 부담이 되고 있습니다. 노력해서 성공한 기업인조차 비난 받는 모습을 종종 봅니다.

이민화: 롤 모델이 필요한데 우리 스스로 롤 모델을 부수고 있지요. 실패한 벤처인을 응징하고, 성공한 벤처인은 숨어 버립니다. 결과적으로 성공하든 실패하든 벤처의 영웅이 사라집니다. 국력의 차이를 감안해 볼 때, 네이버의 이해진 의장은 구글의 래리 페이지에 견줄 만하고, 넥슨의 김정주 회장은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에 비견할 수 있으며, 다음카카오의 김범수 의장은 저커버그보다 못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기업가 정신의 확산은 롤모델을 통한 꿈의 전달입니다. 이게 창업을 활성화하는 정말 효과적인 방법인데 한국 상황을 보면 너무 아쉽습니다.

남민우: 중국 창업 열풍에는 알리바바 마윈의 성공사례가 큽니다. 그가 여기저기서 성공을 떠들고 다니자 젊은이들이 자극받고 도전을 시작하고 있어요. 한국에선 그런 말하고 다니면 큰일납니다.

안건준: 대기업 총수도 그렇습니다. 다 피해 다녀요. 이건 진보나 보수의 정치적 문제가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사회에서 기업가의 소중함을 인정하지 않아서에요. 능력과 재주 있는 사람을 존중하지 않고 흠집 내서 끌어내리려 합니다.

남민우: 사농공상이란 낡은 신분의식이 아직 사람들에게 있는 것 같습니다. 기업인을 천시하고 업자라 부릅니다. 그래서는 기업이 크기 어렵습니다.

벤처의 희망 | 어려운 창업을 하라


여러 문제점들은 말씀하셨습니다. 대안이 필요한데요, 2018년 한국 벤처 기업이 힘을 내서 뛸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요.

황철주: 벤처의 역사를 보세요. 혁신과 거품은 항상 공존해왔습니다. 거품을 없애려면 혁신을 이야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혁신을 이야기하면서 거품을 우려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남민우: 거품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그만큼 세상이 역동적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거품에서 새로운 기업이 나옵니다. 그리고 한두 개 살아남는 기업이 경쟁력을 갖고 글로벌 시장을 노리는 것이지요. 거품이 있는 것은 생명력이 있다는 방증입니다. 문제는 어디나 생겨요. 나쁜 놈은 어디나 있습니다. 기업인, 공무원, 금융인 등에도 다 있습니다. 무서워하지 말고, 이제는 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구더기는 솎아 내며 장 만들어야 같이 나눠 먹을 수 있습니다.

이민화: 두 분 대표님은 혁신이 뭔지 아시는 분들이라 거품의 필요를 말씀하시지만, 제도와 규제를 만드는 사람들은 이게 뭔지 몰라서 못하는 겁니다.

안건준: 벤처의 혁신을 이야기하면 담당자가 아직도 20년 전 거품을 이야기 합니다. 지금 시스템은 그때와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정교해지고 투명해졌습니다. 물론 예외는 있겠지만 시스템과 투자 성향이 한층 발전했습니다.

이민화: 2000년 당시 벤처 정책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벤처 특별법과 코스닥이었지요. 특별법으로 창업을 지원하고 코스닥에서 회수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거품이 일자 정부가 시스템을 정지시켰습니다. 코스닥에는 매년 200개 넘는 기업이 상장했는데 이후 연간 20개로 줄었습니다. 8조원 투자시장이 5000억원으로 쪼그라들었습니다. 코스닥을 설립할 때 정부 돈도 안 들어갔습니다. 생태계 조성은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정부에서 5년간 2조원을 쏟아부었지만 효과는 없었습니다. 생태계가 중요한데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이번 정부가 10조원을 준비해 지원한다고 합니다. 감사한 일이지만 시스템을 먼저 만들어야 합니다.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줘야 하는데, 생선만 던져주면 경쟁력만 약해지게 됩니다.

안건준: 과거 김대중 정부 때의 벤처육성정책과 최근 발표된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비교해보면 전체적으로는 비슷한 수준입니다. 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혁신해야 하는 부분을 풀지 못한 점들이 보입니다. 보여주기식 정책으로는 변화를 이끌어 내기 어렵습니다. 우리나라는 정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경제규모가 큰 나라입니다. 모태펀드로 7000억원을 만들어 벤처 기업에 투자한다고 하니, 벌써 난리입니다. 돈 어디에 쓸거냐, 일부 언론에선 누구 퍼줄 생각이냐며 공격합니다. 자금 규모는 중국과 일본의 3분의 1 수준입니다. 그리고 벤처캐피탈이 투자할 곳이 없다고 하는 것도 이유가 있습니다.

남민우: 벤처에 투자하며 수익률에만 매달려서 그래요.

안건준: 당장 성공이 임박한 기업만 찾다보니 투자할 것이 없습니다. 벤처 모태펀드는 그런 게 아닙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 벤처 특성인데, 벤처 펀드가 로 리스크 로 리턴을 따르고 있습니다.

기업인 후배를 위한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안건준: 쉬운 창업 말고 어려운 창업을 권하고 싶습니다. 기술 창업을 해야 경쟁력이 있고 차별화가 가능해 성공 가능성도 높습니다. 어려운 창업을 해야 좋은 일자리도 생기지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기술 창업이 줄기 시작했습니다. 성공 사레를 찾기 힘드니 대기업과 국책연구소를 나와 고생할 이유가 없는 것이지요. 한국에 실력 있는 인재가 많습니다. 이들에게 화끈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실패를 보호해줘야 합니다.

남민우: 기업을 한다는 것이 사명의식이 없으면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면 할수록 느낄 것입니다. 사회적 사명감을 가지고 도리를 지키며 노력하는 기업인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이민화: 과거 패턴대로 따라가면 실패합니다. 구글은 혁신을 하드웨어와 인공지능, 소프트웨어의 결합이라고 말했습니다. 기술 발전 방향과 본질을 설명한 말입니다. 이를 읽어야 합니다. 창업이란 과거에 없는 핵심 역량을 찾아 변화의 흐름을 읽어가며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본질을 잊지 마세요.

황철주: 기업을 설립하면 평생 성장을 추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사업이란 것이 내가 커질수록 맞서 싸우는 상대도 커지는 것이랍니다. 한 고개 넘으면 더 큰 고개가 기다리는데 끝이 없어요. 그게 이 바닥입니다. 따라서 산 하나를 넘었다고 자만하지 말고 바로 앞에 더 큰 산이 있는 것을 알고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모두 바쁘신 중에 감사합니다.

- 조용탁 기자 ytcho@joongang.co.kr / 사진 전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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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호 (2017.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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