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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 여제’ 꿈꾸는 정유경의 도전 

 

조득진 기자 chodj21@joongang.co.kr
지난해 연말 공식석상에 첫 등장하며 ‘은둔의 경영자’ 타이틀을 뗀 정유경 신세계 총괄사장(백화점 부문)의 광폭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명품 브랜드 확보, 면세점·백화점 확장에 이어 화장품 제조에도 진출했다. 공격적인 경영은 신세계그룹 분리를 촉발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15일 대구 신세계백화점 그랜드 오픈식에 참석한 정유경 신세계 총괄사장의 모습. 20년 만에 처음 공식석상에 모습을 나타낸 그는 이후 광폭행보를 보이고 있다
6년 전인 2011년 2월 1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뜬 “신세계에서 ‘이마트’를 인적 분할해 신설한다”는 공시는 신세계그룹 남매 경영의 ‘신호탄’이었다. 당시 신세계 측은 “분할 신설되는 이마트는 대형마트 사업 부문을 영위하고, 분할존속회사 신세계는 백화점사업 부문을 맡는다”고 설명했다. 분할에 따라 신세계인터내셔날·신세계첼시·광주신세계·신세계의정부 역사 등은 백화점 사업부문인 신세계로, 조선호텔·신세계푸드·신세계아이앤씨·신세계건설·스타벅스코리아·신세계L&B·이마트중국현지법인은 이마트로 귀속됐다. 자본금 기준 신세계 26.1%, 이마트 73.9%로 분할했다.

“전문성을 제고하고, 핵심 경쟁력을 강화해 지속적인 성장토대를 마련하기 위해서”라는 신세계 측의 설명과 달리 재계 안팎에선 “사실상 정용진-정유경 남매의 ‘분리경영’을 위한 발판”이라고 분석했다. 이명희 신세계 회장이 자녀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과 정유경 신세계백화점 총괄사장의 3세 경영승계를 본격화했다는 것. 이후 2016년 4월 두 사람은 각자 보유하고 있던 신세계와 이마트 주식을 교환 매입하면서 지분 교통정리에 나섰다. 정 부회장의 이마트 지분율은 7.3%에서 9.8%로, 정 사장의 신세계 지분은 2.5%에서 9.8%로 높아졌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15일 대구 신세계백화점 오픈식 현장에 정유경 사장이 20년 만에 모습을 나타냈다. 1996년 조선호텔 마케팅담당 상무보(당시 25세)로 입사한 이래 단 한 번도 공식석상에 등장하지 않아 ‘은둔의 경영자’로 불렸던 그다. 업계에선 “정 사장이 본격적으로 경영일선에 모습을 비추며 후계구도를 더 확고히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틀 후 정 사장은 서울시내 면세점 사업권(반포 센트럴시티점)까지 따내며 더욱 주목 받았다.

후발주자지만 펄펄 난 면세점 사업


▎대구 신세계백화점은 1976년 문을 닫은 후 꼭 40년 만에 다시 오픈했다. 부산 신세계 센텀시티점에 이어 전국 두 번째 큰 규모로, 체험공간을 늘려 인기를 얻고 있다
정유경 사장의 ‘공격모드 경영’이 주목받고 있다. 정 사장은 지난해 백화점 신규 프로젝트 전략을 진행하며 두 자릿수 성장을 이뤘고, 자체 의류 브랜드와 주얼리 브랜드를 내놓았다. 최근엔 수년간 공들여온 뷰티 사업을 본격화하면서 제조공장도 완공했다. 유통업계뿐 아니라 패션·화장품업계에서도 ‘게임 체인저’로 등장하고 있다.

우선 백화점과 면세점에서 큰 성과를 내고 있다. 정 사장이 총괄하는 신세계의 백화점 사업부문은 올해 3분기 매출 9853억원, 영업이익 743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분기보다 각각 34.3%, 80.4% 증가했다. 특히 정 사장이 크게 공을 들이고 있는 신세계디에프의 시내 면세점 사업이 본격적으로 궤도에 올랐다는 평가다. 신세계디에프는 뒤늦게 면세점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3분기에 매출 2707억원, 영업이익 97억원을 기록하면서 신규 시내면세점 중 유일하게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이는 지난해 5월 오픈한 신세계면세점 명동점이 신규 시내면세점 중 유일하게 중국인들이 선호하는 루이비통 매장을 유치하면서 매출이 급상승한 덕분이다. 신세계디에프는 디올·펜디·까르띠에 등을 잇달아 유치한데 이어 샤넬·에르메스 측과도 입점 논의를 진행 중이다. 손윤경 SK증권 연구원은 “면세점 수요 회복기에는 수요 부진을 잘 견뎌온 대형 업체의 수혜가 예상된다”며 “신세계는 신규 사업자이지만 사업 규모를 유지하면서 경쟁력을 강화했기 때문에 중국인 관광객 회복에 따른 실적 개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정 사장의 안목을 높이 평가한다. 명품과 프리미엄 브랜드는 시황을 잘 타지 않는다는 점을 정 사장이 꿰뚫었다는 것이다. 정 사장은 동남아와 무슬림에서 온 개별 관광객 유치에 공을 들였고, 각국 현지 유명 인사를 유치해 브랜드 인지도를 높였다.

매출 비중이 가장 큰 백화점 역시 어려운 업황 속에서도 선방했다. 신세계백화점의 3분기 매출액은 4426억 원을 기록해 지난해 동기 대비 8.6%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397억원으로 7.7% 늘었다. 같은 기간 롯데백화점과 현대백화점은 매출과 영업이익이 모두 줄었다. 업계에선 “롯데·현대백화점이 중국의 사드 보복과 소비 침체 여파로 고전을 면치 못한 반면 신세계백화점은 신규 출점 효과 등으로 매출이 늘었다”며 “백화점 내에 아쿠아리움, 옥외 테마파크, 스포츠 테마파크 등을 입점해 차별화에 성공했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8월 새로 단장한 강남점은 재오픈 1년 만에 매출이 21.8% 증가하는 등 순항 중이다. 지난 연말 동대구역복합환승센터에 문을 연 대구점 역시 오픈 100여 일 동안 하루 평균 10만 명을 끌어 모으는 등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업계에선 현재 롯데-현대-신세계인 백화점 매출 순위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명품 브랜드 잡고 죽은 브랜드 살리고


신세계의 면세점·백화점 사업 성장 원동력은 ‘명품 브랜드 확보’에 있다. 특히 정유경 사장은 남매 분리 경영 이후 패션·화장품 분야에서 돈 되는 ‘메가 브랜드’를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우선 유명 해외 브랜드 확보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지방시·셀린·브루넬로쿠치넬리·알렉산더맥퀸·아르마니·돌체앤가바나·스텔라메카트니 등 40여 개의 명품브랜드 판권을 보유했다. 올해는 폴스미스·끌로에 등을 새로 선보였다.

정 사장은 고사 직전의 브랜드를 인수한 뒤 꾸준한 투자로 부활시켰다. 대표적인 사례가 ‘스튜디오톰보이’다. 2010년 “한국에서도 오랜 역사를 지닌 헤리티지 브랜드가 나와야 한다”며 부도난 여성복 브랜드 ‘톰보이’를 사들인 후 지속적으로 투자해 지난해 매출 1413억원의 메가 브랜드로 부활시켰다. 앞서 정 사장은 1998년 외환위기로 어려움에 빠진 유니섹스 브랜드 ‘보브’를 인수해 지난해 매출 1430억원으로 키웠고 2002년 인수한 여성복 브랜드 ‘지컷’은 500억원대 브랜드로 성장시켰다. 업계 관계자는 “패션업계엔 ‘망한 브랜드를 되살리는 것은 새 브랜드 띄우기보다 힘들다’는 말이 있다. 정 사장의 성공 사례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이른바 ‘브랜드 부활 프로젝트’는 잘나가는 디자이너를 영입해 그에게 브랜드 콘셉트부터 디스플레이, 매장 인테리어까지 전권을 맡기는 식이다. 미국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에서 공부한 정 사장은 평소 패션사업에서 디자이너 역할의 중요성을 높이 쳐왔다. 이처럼 부활시킨 브랜드는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성장동력이 됐다. 2013년 8000억원대에 머물던 매출은 2015년 1조원을 넘어선 후 매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정 사장의 패션사업에 대한 영토 확장 의지는 자체 브랜드 개발로 이어졌다. 수입브랜드와 달리 시즌에 맞게 기획·생산이 가능해 높은 수익률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신세계백화점은 최근 자체 란제리 브랜드 ‘언컷’을 선보였다. 지난해 9월 캐시미어 브랜드 ‘델라라나’ 출시 후 뷰티편집숍 ‘시코르’, 럭셔리 주얼리 ‘아디르’에 이은 4번째 자체 브랜드다. 업계 관계자는 “몇 해 전만 해도 ‘신세계 패션사업은 해외 브랜드에 의존한다’는 인식이 컸지만 최근 자체 브랜드 확보에도 주력하며 그런 이미지를 떨쳐내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엔 뷰티사업에서도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세계 1위 색조화장품 브랜드 인터코스와 합작한 세계인 터코스코리아는 경기도 오산공장에서 색조화장품을 생산하고 있다. 제조 노하우를 익혀야 제대로 된 자체 브랜드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신세계 관계자는 “정 사장의 화장품 시장 진출 전략은 소비자 중심에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브랜드 판권을 인수해 당장의 수요를 충족시키고, 비교 평가할 수 있는 편집숍을 확대하면서 기존 시장의 구조를 소비자 중심으로 재편해나간다는 설명이다. 장기적 목표는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제품을 자체 생산하는 것이다.

화장품 제조업 등 외연 확대


▎신세계백화점 강남점과 JW메리어트 호텔 서울이 위치한 서울 반포동 센트럴시티는 ‘정유경 경영’의 본거지다. 지난 9월 신세계백화점 본사가 이전했고, 내년 초엔 신규 시내면세점이 들어선다. 정유경 사장이 백화점·면세점에 이어 호텔 사업도 맡을지 주목된다.
백화점과 면세점 등 오프라인 매장의 확장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연말 문을 연 대구 신세계백화점은 투자비만 8800억원으로 신세계백화점 단일점포로는 역대 최대의 규모다. 1973년 삼성그룹 계열 신세계백화점은 대구 동성로에 점포를 차렸지만 3년 만인 1976년 문을 닫았다. 정 사장은 이번엔 현지법인을 통해 지역 친화전략을 내세웠다. 그는 오픈 전 다섯 차례 이상 현장을 방문하는 등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고 한다. 정 사장의 작품으로 불리는 뷰티멀티숍 ‘시코르’에는 20개가 넘는 화장품 브랜드가 들어섰다. 업계 관계자는 “패션시장 불황 탓에 업계가 브랜드 철수 등 사업 규모를 줄이고 있는 것과 대조된다”며 “주력사업인 백화점이 유통시장의 변화 등으로 위기를 겪으면서 결국 패션 브랜드 강화를 통해 백화점의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 사장의 본격적인 경영 시험 무대는 내년이 될 것으로 보인다. 면세점 추가 개점, 호텔 개·보수, 백화점 본사 이전 등 신규 사업이 줄줄이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분리경영이 2년째에 접어드는 만큼 과거와는 다른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줄 때가 됐다는 목소리도 높다. 게다가 ‘이마트는 정용진, 신세계는 정유경’으로 교통정리를 끝냈지만 면세사업과 호텔사업을 누가 맡게 될지 아직 명확한 정리가 이뤄지지 않은 터라 경영성과가 더욱 중요한 시점이다.

최근 면세사업은 정 사장 중심으로 재편되는 모양새다. 현재 신세계그룹의 면세사업은 이마트 자회사 신세계조선호텔이 부산 시내면세점과 인천공항면세점을, 신세계 자회사 신세계디에프가 서울 명동·강남의 시내 면세점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 신세계그룹은 이 두 사업체를 일원화해 ‘신세계면세점글로벌’(가칭)을 세운다는 방침을 정했다. 통합된 면세사업을 정 사장이 맡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아직 ‘면세·호텔’ 교통정리 남았다


이에 반해 호텔사업의 일원화에 대한 전망은 분분하다. 내년 초부터 6개월간 리뉴얼 공사에 들어가는 서울 반포동 JW메리어트 호텔 서울은 신세계 지분이 60%인 센트럴시티 소유로, 정 사장이 경영하고 있다. 문제는 정 부회장이 책임지고 있는 신세계조선호텔 역시 호텔 사업 확장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신세계조선호텔은 서울·부산에 웨스틴조선호텔, 서울 용산에 포포인츠바이쉐라톤 서울남산을 운영하고 있다. 내년엔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웨스틴을 떼어내고 독자 호텔브랜드로 새롭게 출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서울 중구에 새로운 호텔도 오픈 예정이다.

일단 호텔사업은 면세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정유경 사장과 연관성이 높다. 국내 면세업계 양강인 롯데 면세점과 신라면세점을 각각 호텔롯데와 호텔신라가 운영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정 부회장 역시 호텔사업에 강한 애착을 보이고 있다. 업계에선 “신세계그룹 호텔사업에 대한 교통정리에는 시간이 다소 걸릴 것이다. 결국 호텔과 연관한 사업의 경영 실적이 결정 요소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호텔업계 관계자는 “자체 브랜드 강화를 통해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낸 정 사장이 향후 면세점 사업에서 어떤 성과를 내느냐가 호텔사업 획득의 기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 사장은 어머니 이 회장과 미술 전공, 패션 감각뿐 아니라 브랜드 이미지 강화, 트렌드 파악 등 사업 풍토까지 닮아 ‘리틀 이명희’로 불리기도 한다. 1997년 삼성그룹에서 신세계백화점 2곳과 조선호텔만 들고 나와 국내 최대 유통그룹 신세계를 세운 이 회장의 길을 정유경 사장이 걸을 수 있을지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 조득진 기자 chodj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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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호 (2017.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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