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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조선업 보릿고개 넘을까? 

 

조용탁 기자 ytcho@joongang.co.kr·울산=최은경 중앙일보 기자
해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2018년 한국 조선업은 여전히 어두운 밤 속에 빠져 있을 전망이다. 하지만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고 아침을 맞이한다면, 이듬해인 2019년에는 조선소 곳곳에서 힘차게 울리는 망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지난 7월 문 닫은 군산 현대중공업 조선소에서 한 퇴직 직원이 텅빈 작업장을 바라보고 있다.
12월 18일 오후 4시, 울산시 동구 전하동 현대중공업 조선소 앞 먹자골목. 가게에 있던 상인들은 “경기가 좋지 않아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이곳은 하청업체 직원들이 출퇴근하는 출입문과 가깝다. 오후 5시, 퇴근 시간이지만 음식점이나 술집 앞에 멈추는 오토바이는 거의 없었다. 날이 어둑해지는데도 불을 켜지 않은 식당이 여럿 눈에 띄었다. 치킨집을 하는 신영옥(58) 사장은 “문을 열어도 개점휴업인 영업점이 많다”며 “못 견디고 가게를 내놔도 거래하겠다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1년 전 기자가 이곳을 찾았을 때도 신 사장은 어렵다고 했지만 지금은 더 상황이 좋지 않다고 한다.

조선소 근처에서 고깃집을 하는 신용화(38) 대표는 “3년 전만 해도 현대중공업 직원들이 탄 오토바이들이 장사를 못할 만큼 시끄럽게 돌아다녔는데 요즘은 오토바이 소리가 안 난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 가게는 11, 12월 단체 손님을 한 건밖에 받지 못했다. 상인들에 따르면 이곳은 평일 오후 10시면 인적이 뜸해진다. 2차 문화도 사라져 노래방 타운의 불야성도 옛말이 됐다. 물량 부족으로 주말 근무가 없어져 토요일 저녁 시간에도 먹자골목을 다니는 사람이 10명 남짓이다. 일요일에는 식당들이 거의 문을 닫는다. 그나마 희망적인 의견도 나오기는 했다. 한 공인중개사 소장(58·여)은 “요즘 수주 소식이 들리는 것을 보면 내년 하반기에는 좀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해본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수주 소식은 사실이다. 국내 조선업계에 2017년 들어 조금씩 희망의 기운이 엿보이는 중이다. 다시 배를 수주하기 시작했다. 2017년 한국의 선박 수주량은 전년 대비 거의 4배에 달한다. 영국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11월 말 기준 한국은 2017년 573만6182CGT(CGT는 표준화물 환산 톤수), 모두 152척을 수주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 같은 기간 수주량인 156만9439CGT(56척)보다 3.56배 많은 수치다. 한국의 글로벌 조선 시장 점유율도 지난해 16.6%에서 2017년 12월 기준 29.4%로 늘었다.

조선 수주 전년 대비 3.5배 성장


▎2019년이면 다시 한국 조선업에 생기가 돌 전망이다. 사진은 활황기의 울산 현대 중공업 모습.
중국 조선소에 배를 맡겼던 선주들이 돌아오고 있다. 시한부 인생 선고받은 4기 암 환자 같던 한국 조선 업체들의 눈빛에도 생기가 돌아왔다. 이들은 지금 어렵게 잡은 실낱 같은 기회를 살리기 위해 노력 중이다. 2년에 달한 ‘수주 절벽’ 기간을 버티고 살아남기 위해 이를 악물고 나섰다. 현대중공업은 정부가 요구한 구조조정을 이행하며 자회사를 정리해 3조5000억원을 마련했다. 삼성중공업은 1조5000억원의 유상증자를 진행해 실탄을 마련했고, 대우조선도 2017년 초 정부로부터 2조9000억원 규모 추가 자금지원을 받아 2018년을 버틸 여력을 만들었다. 강환구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장(현대중공업 사장)은 지난 12월 1일 조선해양의 날에서 “올해 수주 상황이 지난해보다 나아졌고 내년은 올해보다 상황이 좀 더 나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며 “수주에 사활을 걸겠다”고 말했다.

변화의 원인으론 산업 환경과 기술력을 꼽을 수 있다. 글로벌 선박 시장이 다시 기지개를 켜며 선박 주문이 늘었다. 이때 선주들이 한국 배를 다시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일단 중국 배보다 연비가 좋고, 오염 물질 배출이 적다. 여기에 배를 더 빨리 인도해주고 잔고장도 적은 편이다. 이 점을 선주들이 인식하기 시작했다. 당장은 중국산 선박이 더 저렴해 보일지 몰라도 10년을 넘기면 한국 배를 운행하는 것이 더 이익인 것이다. 국내 업체들도 이를 잘 인식하고 있다. 박대영 삼성중공업 사장은 “중국과의 경쟁은 가격으로 어렵다고 보고 기술력으로 승부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나금융투자가 한국과 중국 조선소를 비교한 자료가 있다. 1억 달러 상당의 컨테이너선 입찰 시 중국 조선소는 한국보다 1500만~2000만 달러 정도 낮게 가격을 불러 왔다. 그런데 10년만 몰면 앞선 연비 덕에 한국 배가 더 경제적이라는 분석이다. 대우조선해양이 2012년 건조한 1만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컨테이너선 ‘APL 살랄라’호를 10년간 운영하면 중국 다롄 조선이 건조한 ‘CSCL 서머에 비해 2200만 달러, 양즈장 조선이 건조한 ‘한진 나무’호보다는 3200만 달러의 연비를 절감할 수 있다. 박무현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중국의 새 선박 건조비가 한국보다 약 15% 저렴하나 10년간 선박을 운영하면서 발생하는 연비 차이를 감안하면 실질적으론 한국 선박이 더 저렴한 셈”이라고 말했다.

중국 조선업계의 만성적인 인도 지연도 문제다. 다롄조선은 2013년 8월 자국 선사로부터 초대형 원유운반선 2척을 수주했다. 그리고 선박을 2016년 2월과 8월에 인도했다. 각각 2년6개월과 3년이 걸린 셈이다. 대우조선은 2015년 1월 마란탱커스에서 수주한 초대형 원유 운반선을 1년 9개월 만인 2016년 10월에 인도한다. 여기에 환경문제가 중국 조선사들의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국제해사기구(IMO)는 2020년부터 선박연료의 황 함유량을 기존 3.5%에서 0.5%로 줄이는 환경규제를 적용할 계획이다. 국내 빅3는 이미 보유한 기술이다. 하지만 중국은 아직 고성능 친환경 선박 엔진을 제조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지 못했다. 박 연구원은 “중국 조선업계는 설계 인력이 부족해 인도 지연이 지속되고 있다”며 “이 같은 문제로 인해 중국은 한국이 해양플랜트 시장에서 겪었던 것과 같은 실적 악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환경문제가 중국 조선 발목 잡는 중

모처럼 훈풍이 불기 시작했지만 아직 넘을 고비가 있다. 국내 조선업은 지난 2년간 ‘수주 절벽’을 겪었다. 조선업은 선박을 수주해도 설계와 자재 구매 등을 거쳐 조업을 시작할 때까지 짧게는 수개월에서 길게는 1년 넘게 걸린다. 삼성중공업은 올 들어 11월까지 수주한 선박이 67억 달러(약 7조3100억원)로 지난해보다 13배 증가했음에도 올해와 내년에 각각 4900억원, 2400억원 등 총 7300억원의 영업손실이 날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해의 수주 절벽이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지난해 10조4142억원이었던 삼성중공업의 매출액은 2017년 7조9000억원, 2018년엔 5조1000억원으로 줄어들 것으로 봤다. 조선업의 위기는 2019년은 돼야 해소될 수 있다는 게 일반적인 전망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올해 업황이 개선되고 있어 수주가 늘었는데 이게 설계 등 과정 때문에 당장 일감이 되려면 1∼2년이 걸리고 매출에 반영하려면 2∼3년이 걸린다”면서 “내년까진 일감 부족에 시달릴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지금 허리띠를 졸라매는 중이다. 삼성중공업이 1조500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단행한 것도 ‘일감 절벽’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2018년을 버티기 위한 ‘실탄’ 마련이 목적이었다. 어느 정도 버틸 자금을 마련했지만 삼성중공업은 2018년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할 계획이다. 대우조선해양도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신한은행을 대상으로 816억원 규모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대우조선해양은 해양플랜트 인도, 자산 매각 등을 통해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을 2016년 말 2242억원에서 2017년 9월 말 4871억원으로 확충했다. 여기에 정부로부터 2조9000억원 규모 추가 자금지원을 받아 2018년을 버티려는 중이다. 현대중공업은 현대로보틱스 지분과 호텔현대, 하이투자증권을 매각했다. 자금을 마련해 2018년을 버티기 위해서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조선업계는 지금 보릿고개를 넘고 있다”며 “2018년 혹독한 고통을 이겨내고 2019년까지는 버텨야 비로소 한숨 돌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조용탁 기자 ytcho@joongang.co.kr·울산=최은경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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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호 (2017.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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