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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안 개구리, 금융지주사_(2) 

지주사 회장 선임, 문제가 끊이지 않는 이유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
KB·신한·하나 등 3대 금융지주사는 자산 규모만 1200조원이 훌쩍 넘는다. 그래서인지 이곳 수장자리는 항상 화제다. 자리싸움엔 당국도 금융사도 너 나 할 것 없이 으르렁댄다. 회장은 우리가 알아서 잘 뽑겠다는 금융사, ‘감독 혁신단’도 만들테니 두고 보자는 당국. ‘관치’와 ‘전횡’ 사이를 오가는 최근 금융업계 상황을 들여다봤다.

“금융지주사 회장 되기, 한 번이 어렵지 일단 맡으면 수년간 해먹는다.”

금융권에 도는 말이다. 금융업계 지주회장 자리는 으레 ‘낙하산’이나 ‘셀프 연임’으로 채워지는 게 관행으로 굳어진 탓이다. 1월 22일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연임되자 관행은 다시금 논란이 됐다. 기존 관행 중 문제로 꼽혔던, 회장이 뽑은 사외이사들이 결정해 3연임에 성공한 것이다. 당장 금융당국의 시선부터 곱지 않다.

지난해부터 갈등도 불거졌다. 지난해 말 최종구 금융위원장과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이 금융지주사를 향해 잇따라 쓴소리를 던졌다.

“시중의 우려처럼 유력하다고 여겨지는 경쟁자를 다 인사조치해서 대안이 없다는 식으로 만들어 계속 연임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조성한다면 중대한 직무유기다.”
-최종구 금융위원장

“전반적으로 (금융지주회사) 회장 후보를 추천하는 데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점이 있었다. 내·외부에서 회장 후보군을 구성하는 데 경영진이 과도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고 CEO 승계 프로그램도 형식적이었다.”
- 최흥식 금융감독원장

금융당국 수장들이 현 회장이 새 회장을 뽑는 회장후보 추천위원회(이하 회추위)에 들어가는 ‘셀프 연임’을 강도 높게 비판한 것이다. 말뿐만이 아니다. 1월 12일 금감원은 하나금융에 회장 선출 일정을 연기해달라고 공식 요청했다. 하지만 하나금융은 예정대로 회장 선출을 강행했다. 정부가 ‘면허’를 내준 금융회사가 공식적인 요구를 무시한 건 굉장히 이례적이다. 청와대까지 ‘민간 금융회사 인사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운 상황이어서 금융 당국이 무리하게 관치(官治)를 시도한 게 아니냐는 평까지 나왔다. 총자산 360조원이 넘는 규모를 자랑하는 하나금융에 정부 지분이 하나도 없는 것도 한몫했다.

정부도 할 말은 있다. 은행은 규제 산업이다. 일반인의 돈을 모아 빌려줄 수 있는 ‘수신 기능’을 줬다. 다른 곳에서 이 같은 기능을 하면 ‘유사수신행위’로 처벌받는다. ‘돈 놓고 돈 먹는’ 업무를 허가해줬기에 정부가 간섭할 수 있다. 정부 입장은 한결같다. 금융사는 일반 기업보다 더 무거운 공공성과 책임성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은행처럼 정부 지분이 전혀 없는데도 인선에 개입하려는 시도는 이 때문이다.

금융지주사 회장 인선, 관치냐 전횡이냐


특히 금감원이 내세우는 명분은 최고경영자(CEO) 리스크다. 하나은행을 향해 이미 칼을 빼든 금감원은 김정태 회장과 함영주 하나은행장이 관여한 아이카이스트 특혜대출 과정을 면밀하게 살펴보고 있다. 아이카이스트는 비선 실세로 드러난 최순실 씨의 전 남편 정윤회 씨의 동생 정민회 씨가 부사장으로 재직했던 곳이다. 지난해 말 하나금융 노동조합 측이 박근혜 정부 ‘창조경제 1호’ 관련 특혜대출 의혹을 검사해달라며 금감원에 조사를 요청했다. 앞서 금감원이 하나금융의 회장 선출 일정을 연기해달라고 공식 요청한 사유이기도 하다.

금융당국과 하나금융의 갈등은 주요 대형 금융지주사 전체로 번지는 양상이다. 국내 금융지주사는 사실상 하나금융과 거의 흡사한 구조다. 외국인·기관·신탁·연기금 등이 주주의 대부분을 구성하며, 사외이사가 후임을 추천하고, 지주사 회장은 사외이사와 서로서로 추천하는 구조다. 어찌 보면 ‘진짜’ 주인은 없는 셈이다.

실제 다른 금융사들도 지배구조 문제로 한동안 홍역을 치렀다. 이른바 ‘KB사태’, ‘신한사태’는 물론 BNK 금융지주 주가조작 사태 등이 금융당국이 우려하는 CEO리스크의 대표적인 예다. KB사태는 2014년 전산 시스템 교체를 두고 임영록 전 지주 회장과 이건호 전 행장 간 갈등이 빚어진 사건으로 결국 후임 회장 선출을 앞두고 임 전 회장과 이 전 행장 모두 중도 하차했다. 신한사태는 라응찬 전 지주 회장과 신상훈 전 사장 간에 고소∙고발까지 이어진 사건이다. 이후 라 전 회장은 4연임에 성공했으나, 같은 해 금감원이 금융실명법 위반 혐의로 중징계 방침을 세우면서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BNK금융은 또 어떤가. 올해 1월 9일 성세환 전 회장은 170억원대 규모의 자사 주식 시세를 조종한 혐의로 부산지법 형사6부로부터 징역 1년 6개월, 벌금 700만원을 선고받았다.

여기에 최근 은행 채용비리까지 터졌다. KB금융지주 회장 사무실 등이 압수수색까지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서울남부지검에 따르면 2월 6일 업무방해 등 혐의로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사무실과 채용담당 부서 등 6곳에서 압수수색이 이뤄졌다. 이날 압수수색은 금융감독원으로부터 KB국민은행과 KEB하나은행 등 5개 은행이 ‘VIP 리스트’를 만들어 면접전형 점수를 조작했다는 자료를 넘겨받은 데 따른 것이다. 금감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채용비리 사례는 하나은행이 13건, 국민은행이 3건, 대구은행이 3건, 부산은행이 2건, 광주은행이 1건으로 총 22건에 달했다. 물론 은행 측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인선에 관해선 전혀 문제없다며 당국에 맞섰던 은행도 한 발 물러섰다. 압수수색이 있기 바로 전날인 2월 5일 KB금융과 하나금융이 사외이사 및 회장 선임 과정에서 대표이사 회장을 배제하기로 했다. ‘셀프 연임’ 논란에 각종 비리사건까지 더해지자 당국의 지적 사항을 수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특히 하나금융보다 앞서 지난해 9월 윤 회장 연임을 결정한 KB금융 측은 회추위와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이하 사추위)에서 현직 회장을 완전히 제외하겠다고 밝혔다.


당장 사외이사 후보 추천 작업부터 사추위에서 윤 회장을 제외하고, 유석렬∙최영휘∙이병남 등 사외이사 3인으로만 구성하기로 했다. 후임 회장 인선을 마친 하나금융도 연임에 성공한 김 회장을 회추위, 사추위에서 빼기로 했다. 업계에선 두 금융지주사 모두가 지난 몇 개월간 금융당국과 껄끄러워진 관계를 풀어보겠다는 시도로 보기도 했다.

하지만 당국은 여전히 개선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앞서 본 대로 금융지주사에서 끊임없이 잡음이 발생하는 건 지주 회장과 은행장의 역할 구분이 명확하지 않고, 경영 승계 기준도 모호하기 때문이라는 것.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과 시행령이 생긴 이후로 금융지주사마다 각종 승계 절차를 담은 규정이 있지만, 이 또한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게 당국의 주장이다.

‘신관치’라는 논란에도 금융위가 ‘금융 혁신단’ 구성에 박차를 가하는 이유 중 하나다. 지난해 말 금융위는 ‘금융그룹 감독 혁신단’ 구성을 발표했다. 금융그룹 통합감독 관련 정책 수립을 담당하는 ‘감독제도팀’과 금융그룹의 지배구조 제도 개선을 맡은 ‘지배구조팀’으로 구성된다. 이 두 팀은 2019년부터 본격 가동할 계획이다. 결국 금융지주사가 마련한 현 규정을 바꾸겠다는 소리다.

KB금융∙신한금융∙하나금융∙농협금융 등 주요 금융지주사의 이사회 규정을 살펴봤다. 후보를 추천하는 경우 각 사가 정한 추천위에서 선출했다. 주주총회에서 결의한다는 농협 말고는 모두 이사회 결의 방식을 채택했다. 임기도 최대 3년 정도로 대동소이했고, 연령 제한을 두고 있다는 점 말고는 별다른 제한 사항은 없었다. 뚜렷한 문제가 없다면 평생 연임도 가능하단 얘기다. 자연스레 회장을 추천하는 위원회 구성원이 비슷해질 가능성이 큰 방식이다. 즉 장기 집권에 대한 금융사와 당국 간 뚜렷한 시각차가 존재하는 셈이다.

해외 금융회사에 비하면 큰 문제가 아니라는 의견도 있었다. 업계에 따르면 KB금융∙신한금융∙하나금융∙우리금융∙농협금융 등 국내 주요 금융지주회사 역대 회장의 평균 재임기간은 평균 3년 정도였다. 신한금융의 라 전 회장과 한동우 전 회장,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이 6년 이상 집권했지만, 대다수 회장은 3년을 넘기지 못했다.

반면 미국 10대 은행 CEO 평균 재임기간은 8년에 가까웠다. 대표적으로 미국 4대 투자은행 중 하나인 JP모건 수장인 제이미 다이먼 회장은 10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캐피탈원 파이낸셜의 경우 1994년부터 리처드 페이뱅크 회장이 24년째 이끌고 있다.

생각의 차이다. 단기 성과보다 장기 성장 전략을 중시하는 미국 은행업계의 풍토 때문이다. 재임기간이 짧으면 중장기 전략 자체를 짜는 것은 고사하고, 이를 실현하기도 전에 물러나야 할 수도 있다. 오히려 단기 실적에만 집착하면 CEO가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에 빠질 위험도 있다는 우려도 업계 전반에 깔려 있다. 사외이사 구성원 성격도 한국과 좀 다르다. 미국에선 대다수 경륜 있는 전직 CEO들이 업계에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사외이사로서 회장 선출 업무를 맡는다. 한국의 경우 현직 CEO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교수∙관료 출신 생계유지형 인사가 사외이사로 재직한다.

그래서일까. 한국에선 장기 집권(?)보다 다양한 견제 시스템 마련이 더 시급하다는 의견이 많다. 최근 정치권부터 관련 업계까지 다양한 대안을 내놓고 있다. 먼저 노동이사제 도입 문제다. 노동자 대표가 이사회의 의사 결정에 참여해 기업과 대주주를 견제하는 시스템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간사인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노동이사제’ 도입을 검토할 만하다”며 “공공기관부터 노동이사제가 도입될 예정이지만 금융기관도 공공성과 책임성 제고를 위해 노동이사제 도입을 앞당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금투협, 200개 넘는 회원사 비밀투표 전통


이 밖에 이사 연임 제한 규정을 신설하자는 의견이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등도 회자됐다. 이사 연임 제한 규정의 경우 무조건적인 연임 반대가 아니라 전체 임기 동안의 객관성이 담보될 성과를 가지고 연임 여부를 결정하자는 얘기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뭘까. 국민연금을 염두에 둔 제도로, 기관투자자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를 의미한다. KB금융∙신한금융∙하나금융 등 국내 대표 금융지주사의 최대주주가 국민연금이다. 물론 정치권 공방은 여전하다. 정부가 조만간 도입하기로 방침을 정한 가운데 자유한국당은 “영국에서 성과가 불투명한 제도로 기업 활동을 제약할 수 있다”는 쪽으로 부정적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기업 내부적 지배구조 문제에 선제 지침을 갖게 해 도움이 될 수 있다”며 반기고 있다.

각종 논란이나 대안과 상관없이 국내 금융업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기도 한다. 최근 우리은행은 과점주주들이 추천한 사외이사들의 판단에 따라 차기 행장을 선정했다.

금융사는 아니지만, 금융투자협회는 회장을 뽑을 때면 241개나 되는 회원사 대표들이 직접 모여 비밀투표를 한다. 후보자 사퇴로 단독 후보가 자동 당선되는 일도 없다. 회추위는 반드시 3배수로 후보를 추천하고 후보 자격도 엄격하게 적용해 관료나 정치인은 아예 선정 대상에서 배제한다. 한국에서도 ‘셀프 연임’ 논란을 잠재울 롤 모델은 얼마든지 있다는 소리다. 일단 주요 대표 금융지주사 회장들은 연이은 당국과의 신경전을 의식한 듯 금융당국의 지배구조 개선책에 충실히 따르겠다는 입장이다. 현재 사태를 지켜본 한 전직 은행권고위직 임원은 전화통화에서 익명을 요청하며 이렇게 말했다.

“금융가 회장 인선 때가 되면 꼭 한국은행 얘기가 나온다. ‘한국은행 총재 자리는 정권이 변해도 임기 4년을 꽉 채운다.’ 지난 20년이 그랬다. 한은에서 은행감독원이 분리돼 권력기관 명패를 떼버렸기 때문이다. 반면 금융 권력을 쥐는 금감위원장, 금감원장은 임기는 좀 다르다. 금융지주사 회장 자리에 당국이나 그들 스스로 이렇게 집착하는 걸 보면 그 자리가 지닌 힘이 남다르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

201803호 (2018.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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