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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 무역영웅들_(6) 정현호 메디톡스 대표 

보톡스 명가(名家) 메디톡스 “인간의 시간을 연구했습니다” 

박지현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
‘1g만으로 100만 명을 죽음으로 몰고 갈 수 있다.’ 2001년 미국 의사협회지 논문에 기재될 만큼 고위험 물질로 알려진 보툴리눔톡신은 한국의 미용시장을 이끄는 ‘보톡스’ 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미생물학자였던 정현호 메디톡스 대표는 미생물학자이자 국내 보톡스 분야 ‘박사 1호’다. 1월 30일 경기 광교R&D센터에서 정 대표를 만났다.

▎미생물학자였던 정현호 메디톡스 대표는 미생물학자이자 국내 보톡스 분야 ‘박사 1호’다. 그는 연구개발(R&D)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체감한다고 했다.
#1.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은 예기치 않은 사상자를 냈다. 오염된 통조림 때문에 식중독에 걸린 독일군이 전장에서 대거 사망한 것이다. 청산가리로 불리는 시안화물보다 1조 배 이상 강한 치명적인 독이지만, 생화학무기 개발에 열을 올리던 정보당국 입장에선 흥미로운 물질이었다. 2차 세계대전 때는 미국과 독일이 이 물질을 정제해 생화학무기로 개발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했다.

#2. 그로부터 1세기가 훨씬 지난 1973년 미국에선 새로운 치료제가 각광받는다. 이 물질은 안구를 움직이는 근육이 지나치게 수축돼 일어나는 사시 증상을 완화하고, 눈꺼풀 경련, 목 근육이 한쪽으로 과도하게 기울어지는 사경(목 근육 통증, 몸의 틀어짐과 기울어짐)까지 치료했다. 게다가 깊은 주름이 있는 미간에 주사하면 주름이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두 사례 모두 같은 물질이다. 보툴리눔톡신(Botulinum Toxin)이라 불리는 이 재료는 약 100g만 있어도 전 세계 인구를 죽음에 이르게 할 정도로 치명적인 독이다. 하지만 한국에선 ‘연예인주사’로 불리며 대표적인 미용성형술에 필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야누스의 두 얼굴을 지닌 이 물질의 변신은 1989년 미국 앨러간사가 ‘보톡스(Botox)’란 이름으로 ‘주름 펴는 미용주사’의 상업적 유통에 성공하면서부터다.

이후 보톡스 균(이하 보톡스)은 일명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떴다. 미용뿐만 아니라 다양한 치료에도 활용될 수 있다는 게 알려지자 글로벌 제약사가 달려들었다. 최근 타임지에 따르면 보톡스는 뇌졸중 후 상지 근육 경직 등을 포함해 난치성 질환에 쓰일 수 있는 영역만 약 800개에 달한다. 시장도 빠르게 크고 있다. 보톡스를 활용한 글로벌 의료 시장 규모는 지난해 4조원에서 오는 2020년이면 7조원 대에 육박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국도 보톡스 활용 선진국이다. 벌써 60여 개업체가 보톡스를 활용한 치료제를 시장에 내놨고, 30여 개 기업은 관련 치료제 개발로 시장 진출을 준비 중이다.

1990년대 한국에서 이 독소를 연구하던 30대 청년 미생물학자는 국내 상품화를 시도했다. 이른바 ‘K보톡스’ 산업의 강자로 떠오른 정현호(55) 메디톡스 대표다.

시장 수요가 너무 많아 물량이 부족할 정도


▎오창, 판교 등 흩어져있던 광교 R&D센터 / 사진:메디톡스
메디톡스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특장점만을 살린 3종류의 보툴리눔톡신 제제(메디톡신, 이노톡스, 코어톡스)를 자체 개발한 연구개발(R&D) 기반의 바이오제약 기업이다. 2009년 국내매출 1위를 달성한 이후로 메디톡스는 매해 자체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2017년 연간 매출(연결기준)은 전년 대비 36% 증가한 1812억원으로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포브스는 메디톡스를 2015년과 2013년 두 차례에 걸쳐 ‘아시아 200대 유망기업’에 선정한 바 있다.

‘물건이 없어 못 팔 정도로’ 물량공급에 실패하기도 했다. 정 대표는 “(보톡스) 시장 성장 속도가 예상보다 너무 빨라 수요를 맞추기 힘들 정도”라며 혀를 내둘렀다. 다행히 지난해 6월 제3공장을 본격 가동하면서 연간 1170만 병 생산 규모를 갖추게 됐다.

히알루론산 필러 ‘뉴라미스’도 자체 개발한 제품이다. 2013년 누적 판매량 800만 개를 넘어 국내 시장을 대표하는 필러 제품으로 자리매김했다. 해외 언론에서도 앞다투어 메디톡스를 조명했다.

메디톡스의 거침없는 성장세에 정현호 대표는 “이제 시작인 것 같다”며 자신했다. 그는 “글로벌 시장에서의 수요가 활발해지는 만큼 완벽한 차별화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정 대표는 우연히 이 사업에 발을 들였다. “당장 연구비가 필요했기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마련한 창업 길이었다. 서울대 미생물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 세포생물학 석사와 분자생물학 박사학위를 딴 정 대표는 1998년 교편을 잡고 있었다. 외환위기가 터지자, 정부에서 교수들에게 지원하던 연구비가 줄줄이 끊겼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교수들의 창업을 적극 독려하며 창업 자금의 80%를 지원했다. 상당수 교수가 연구 제안서를 제출해 CEO 타이틀을 내걸었다.

정 대표는 당시 국내 제약사가 미국 앨러간사의 보톡스를 수입해 판매하고 있는 점을 보고, 톡신을 자체 개발해보자고 판단해 대학원 제자들과 함께 연구실에서 2000년 5월 창업했다.

과정은 녹록하지 않았다. 개발에 착수한 지 6년이 지나서야 ‘메디톡신’이 탄생했다. “당시 바이오 공장도 없었을 때고 약사법도 미비했어요. 맹독 관리 시설에 노하우를 지닌 사람도 없었죠.” 보툴리눔톡신 공장은 일반 의약품 공장과는 달리 100% 흡기, 배기를 해야 한다. 자칫 보톡스 물질이 공기 중에 조금이라도 날아다니면 바로 노출돼 사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보툴리눔톡신 제제는 용량이 일정하지 않다거나 부작용도 있었고, 중동지역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동물성 세균 배양배지를 사용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정 대표는 이 단점을 한 번에 해결하는 제품을 만들어보고자 했고, 세계 최초 비동물성 액상제 ‘이노톡스’ 개발에 성공했다. 이란에서 이 제품이 맹활약을 펼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저희 제품은 중동의 ‘할랄’ 개념과 맞습니다.”

독성물질 균주 관리 철저히 해야


▎물량공급 부족을 해결한 오송의 메디톡스 3공장.
대부분의 바이오 기업은 R&D를 기반으로 사업을 시작한다. 하지만 연구가 상업화로 이어지거나 성공하는 기업은 많지 않다. 정 대표는 연구에 남다른 애착을 보인다. “지난 17년간 회사를 운영하며 느낀 것은 많은 회사가 R&D를 비즈니스의 부속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학자 출신의 CEO라는 강점도 여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연구 경험이 있어 연구원들이 조금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한 고민도 함께하고, 애로사항은 공감하며 개선책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2016년 오송과 오창, 판교 등에 흩어져 있던 연구인력을 광교 R&D센터로 집결시켰다. 이날 찾은 일부 개방된 연구실은 넓고 쾌적했다. 실험실에는 안전사고에 대비한 시설물이 별도로 구비돼 있었다.

시장이 커지는 한편, 보톡스 균주 관리는 또 한 번 이슈를 몰고 있다. 균주(Strain)란 인공적으로 배양한 하나의 세포가 분열해 만들어진 유전자 구성이 같은 세포집단이다. 콜레라 등이 발생해 가축이 갑자기 죽은 토양이나 썩은 통조림 등 부패한 음식물에서 얻을 수 있다. 그렇다고 우수한 균주를 갖거나 상품화할 수 있는 단계까지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독소인 만큼 정밀한 기술로 관리와 희석률에 전문 지식이 있어야 하는 품목이다. 세계에서 상용화한 곳이 메디톡스를 포함해 8곳밖에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국내에선 30여개 업체가 시장에 진출했거나 준비 중이다. 과연 제대로 된 균주를 사용하는지 의구심이 증폭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메디톡스는 대웅제약과 균주 출처를 놓고 법정공방을 벌이고 있다. 메디톡스에서 “톡신 생산에 개입했던 직원이 대웅제약에 균주 정보를 전달하고 12만 달러(약 1억3000만원)의 대가를 받았다”고 주장하자 대웅제약 측은 “당사와 메디톡스의 균주 출처가 다르다. 독소 단백질의 염기서열이 일치하는 건 흔한 일이고 기업 비밀을 공개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분쟁의 핵심은 ‘염기서열’이다. 염기서열은 탄저균인지 보툴리눔균인지 구별할 수 있는 고유한 정보다. 정 대표는 메디톡스의 염기서열 전체 380만 개 중 1만 2912개가 대웅제약의 것과 일치한다고 지적한다. 정 대표는 “국내 보툴리눔 학자들은 염기서열까지 똑같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고 못박았다.

“마치 사람 지문과도 같은 염기서열이 토양이 아예 다른 곳에서 나왔다면 믿겠습니까? 우리 균주는 미국에서 들여왔는데 대웅제약은 경기도 용인 마굿간 토양에서 발견했다고 주장합니다.” 정 대표는 목소리를 높였다. “앨러간과 메디톡스는 뿌리가 같은 제품인데도 베이스 표 두 개가 달라요. 그런데 (대웅제약과) 베이스 표도 같고, 위치도 같고, 종류도 같은데 어떻게 의아하지 않겠어요?”

세계 세 번째로 중국 시장 진출

정부의 책임도 있다고 꼬집었다. 일반적으로 위험한 균을 찾으면 질병관리본부에 신고하면서 한 장짜리 간단한 발견 경위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질병관리본부가 역학조사를 제대로 실시하지 않은 탓이라는 것이다. 정현호 대표는 설명을 이었다.

“혹여 IS 테러 집단 등에 의해 생화학무기 등 악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 아찔하지 않습니까? 선진국 수준으로 규제를 강화해야 하죠. 유전자 염기서열도 정부에 제출하고 정확한 역학조사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한편 메디톡스는 해외 진출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본, 태국, 브라질과 이란 등 수출 호재 국가에 메디톡신(수출명: 뉴로녹스)과 뉴라미스를 주력 품목으로 수출하고 있다. 수출 국가는 60여 개국에 달한다. 전체 매출액 중 약 70%가 해외에서 발생한다.

매년 20~30%씩 성장하는 중국 미용시장 진출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최근 중국 시판허가(NDA) 신청을 완료하며 국내 업체 중 가장 먼저 중국 진출을 가시화했다. 지난해 6월 메디톡스는 중국에서 3상 임상시험을 완료했다. 현재 중국에 정식 등록된 보툴리눔톡신 제제는 중국 란주와 미국 앨러간이다. 메디톡스는 진출에 대비해 2015년 중국 현지 파트너 ‘블루미지 바이오테크놀로지’와 합작법인 ‘메디블룸 차이나’를 설립했다.

중국 시장에서 성공을 자신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가격경쟁력이다. 앨러간의 보톡스 중국 소비자 가격은 미국에 비해 2배가 비싼 50만~70만원, 중국 란주의 제품(BTX-A)은 35만~51만원이다. 국내 시장에서 10만원대인 메디톡스 제품이 가성비로 시장을 뒤흔들 수 있다는 뜻이다.

메디톡스는 2022년까지 매출 1조원 및 글로벌 바이오 제약 상위권 진입을 목표로 한다. 정 대표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R&D베이스 회사의 도리를 다해야죠. 정직한 연구로 노화와 미용, 질병 등 인류의 흘러가는 시간을 잡겠다는 일념으로 매진할 겁니다.”

- 박지현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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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호 (2018.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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