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큰 생각을 위한 작은 책들(4) 

리처드 바크 『갈매기의 꿈』 

김환영 중앙일보 지식전문기자 kim.whanyung@joongang.co.kr
『갈매기의 꿈』은 천천히 읽어도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우화소설이다. 처음에는 입소문으로 시작해 지금까지 4400만 부가 팔렸다. 1973년에는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우리 속담에 “부모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고 했다. 그러나 부모님 말씀을 안 듣는 게 더 좋은 경우도 가끔 혹은 자주 있다. 부모 말은 어떤 때 거역하거나 무시해야 더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일까.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이 있는 경우가 아닐까.




철학적이고 야심 가득한 바다 갈매기 ‘조나단’


리처드 바크(Richard Bach, 1936년생)의 『갈매기의 꿈(Jonathan Livingston Seagull)』은 천천히 읽어도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분량의 우화소설이다. 처음에는 구전(口傳, word of mouth), 입소문으로 시작해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4400만 부가 팔렸다. 1973년에는 영화로 만들어졌다. 싱어송라이터 닐 다이아몬드(1941년생)가 사운드트랙을 담당했다.

‘나이브(naive)하다’는 혹평과 ‘시대를 초월한다(timeless)’는 찬사가 엇갈렸다. ‘얼간이(simpleton)나 좋아할 내용’이라는 저격에도 불구하고 『갈매기의 꿈』에 매료된 팬들은 자신들이 아끼는 사람들에게 생일 선물, 크리스마스 선물로 이 책을 선물했다.

4부로 구성된 『갈매기의 꿈』의 주인공은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Jonathan Livingston Seagull)’이다.(국립국어원의 Jonathan 표기는 ‘조나단’이 아니라 ‘조너선’이다.) 주인공은 철학적이고 야심 가득한 ‘바다 갈매기(seagull)’다. 조나단은 부모님 말씀을 무시하고 비행 연습에 몰두한다.(여기서 ‘부모님 말씀’은 사회적 통념이나 관습, 제도를 대표하고 상징한다.)

조나단은 기본적으로 반항적(rebellious)이다. 조나단이 보기에 부모님 말씀 잘 듣는 갈매기들은 허덕허덕 산다. “대부분의 갈매기는 나는 게 아니라 먹는 게 중요하다(For most gulls, it is not flying that matters, but eating.)”라고 말하는 조나단에게 중요한 것은 나는 것이다. 먹기 위해 나는 게 아니라 나는 것 자체가 너무나 좋아서 난다. 조나단은 물질주의(materialism)에 반대한다.

조나단은 자신의 한계를 시험한다. 고속낙하도 해보고 수면비행도 해본다. 더 높이, 더 빨리 날아보려고 애쓴다. 갈매기들에게도 올림픽이 있다면, 조나단은 세계 기록을 수차례 경신하고 금메달을 여럿 수확했을 것이다.

조나단이 보기에 어선에서 어선으로 나는 것, 빵 쪼가리나 주워 먹으려는 통상적인 갈매기 비행은 비행도 아니다. 조나단은 낙하에 이은 다이빙도 개발한다. 수면 밑에는 신선한 물고기가 잔뜩 있었다. 비행 그 자체를 위해 비행하다 보니 먹을거리가 덤으로 생겼다. 얄궂은 일이다.

뭔가 잘했으면 칭찬을 받고 상도 받는 게 정상이다. 세상은 이상하다. 오히려 조나단은 무리로부터 추방당한다. 무리와 다른 개체는, 극단적인 경우에 ‘악마’ 혹은 ‘신(神)’ 취급을 당한다는 게 저자 러처드 바크의 생각이다. 바크는 둘 다 옳지 않다고 본다.

조나단은 아웃캐스트(outcast)·아웃사이더(outsider)가 됐다. 아웃캐스트는 파리야(pariah)다. 무리에서 버림받은 존재다. 아웃사이더는 무리의 그 어떤 그룹에도 속하지 않는 존재다. 둘 다 별종(別種)이다. 다르다는 것은 나쁜 게 아니다. 틀린 것도 아니다. 리처드 바크는 아웃캐스트나 아웃사이더가 ‘오히려 우월하다’고 주장한다.

『갈매기의 꿈』은 1970년대 뉴에이지, 대안적 영성(alternative spirituality) 운동을 대표하는 문헌이다.(상당수 성직자들이 신자들에게 뉴에이지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갈매기의 꿈』이 예수의 인생에 빗댄 우화, 알레고리(allegory)라는 해석이 등장했다. 하지만 바크가 그리는 조나단의 모습은 싯다르타나 티베트의 부처 밀라레파와도 통한다.

1970년대 뉴에이지 운동을 대표하는 책


▎[갈매기의 꿈] 주인공은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이다. 주인공은 철학적이고 야심 가득한 바다 갈매기다.
2부에서 조나단은 천사 같은 모습을 한 두 갈매기를 만나 ‘더 높은 존재의 차원(a higher plane of existence)’으로 이끌린다. ‘천국·낙원·선계(仙界)’ 같은 곳이다.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인지도 모른다. 조나단은 그곳에서 자신과 마찬가지로 ‘비행 그 자체’를 즐기는 갈매기들을 만난다. 그곳에서 조나단은 자신이 ‘100만 갈매기 중에서 한 마리(a one-in-a-million gull)’라는 평가를 받았다. 다른 갈매기는 1000번 환생해야 깨달을 수 있는 것을 조나단은 이번 생에서 단번에 얻었다는 평가를 ‘천국’에서 받은 것이다. (이 책은 종교 창시자들이나 종교를 교묘히 ‘홍보’하는 책일 수도, 교묘히 ‘비웃는’ 책일 수도 있다. 다른 모든 텍스트와 마찬가지로 결국 궁극적 판단은 독자들 몫이다.)

『갈매기의 꿈』의 핵심 토픽 중 하나는 완벽성(perfection)이다. 영감의 원천은 일차적으로 그리스도교다.(저자가 그리스도교 문화권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 신약성경에 보면 이렇게 나와 있다.

-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Be perfect, therefore, as your heavenly Father is perfect.”(마태 5:48)

-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요한14:12)

좋게 이야기하면, 뉴에이지는 모든 종교나 영성 전통에 ‘개방적’이다. 나쁘게 이야기하면 ‘양다리’다. 『갈매기의 꿈』도 그렇다. 조나단이 ‘정토’에서 배운 것은 이것이다. 우리가 태어날 다음 세상을 결정하는 것은 ‘이번 생에서 무엇을 배웠느냐’이다. 아무것도 배우지 않으면 이번 생과 같은 세상에서 태어나게 된다.

3부에서 조나단은 고향으로 돌아와 자신이 천국에서 배우고 연마한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친다.

『갈매기의 꿈』은 미국이 중시하는 가치가 물씬 녹아 있는 책이기도 하다. 그중 핵심 가치는 ‘네 자신이 돼라(Be yourself)’다. 미국식 개인주의를 요약하는 표현이다.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는 것은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독재·권위주의 체제에서는 나는 ‘내가 바라는 나’가 아니라 ‘국가·정부가 바라는 나’가 돼야 한다. 조나단이 바라는 것은 나는 것이다. 그에게 나는 것은 올바른 일이기도 하다.

자유는, 조나단이라는 ‘삐딱한’ 갈매기가 이해하는 갈매기의 본질이다. 자유를 방해하는 예식·미신·제약은 집어치워야 한다. 『갈매기의 꿈』은 궁극적으로 각종 규제의 완화와 철폐를 요구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갈매기의 꿈』은 자본주의 친화적 문헌이다.

『갈매기의 꿈』은 무협지처럼 읽힐 수도 있는 책이기도 하다. 조나단은 순간이동, 즉 마음먹은 장소로 즉시 이동이 가능한 스승을 만난다. 순간이동은 어떤 의미에서 즉시발복(卽時發福)이다. 목표를 세우자마자 그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다. 가고 싶은 곳에 즉시 가는 게 어떻게 가능할까. 다음 말이 그 비결을 요약한다. “당신이 이미 도달했다고 아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아라(Begin by knowing that you have already arrived.)”

조나단은 스승에게 한 수 배운 것을 자신만을 위해 간직하지 않는다. 깨달음을 제자에게 전수하기 위해 세상으로 돌아온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아웃캐스트·아웃사이더인 제자들을 가르친다. 조다단은 ‘위대한 갈매기(Great Gull)’의 반열에 오른다. 그가 결코 바란 것은 아니다. 3부의 끝에서 조나단은 “부지런히 계속 사랑하라(Keep working on love)”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사라진다. 그는 사라졌지만 수제자 플레처(Fletcher)가 지상에 남아 있다. 플레처는 그리스도교의 베드로·바울, 불교의 마하가섭(摩訶迦葉)·아난타(阿難陀)에 해당하는 제자다. 조나단은 플레처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너무나 날고 싶기 때문에, 네 무리를 용서하고 어느 날 그들에게 돌아가 그들의 배움에 도움을 주는 일을 할 수 있겠느냐?”

저자 리처드 바크는 독일 작곡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1750)의 후손이라는 설이 있다. 확증되지 않았다. 바크는 어렸을 때 고소공포증이 있었다. 17세부터 비행기를 운전했다. 롱비치주립칼리지를 1년 다니다가 미 공군 입대를 위해 자퇴했다. 전투기 조종사로 활약했다.

아들 제임스는 “아빠는 자신의 종교가 비행이라고 말했다(Dad described his religion as flying)”고 했다. 바크는 편집자 생활 등 『갈매기의 꿈』의 탄생을 위해 필요한 커리어(career)를 쌓았다. 결국 『갈매기 조나단』을 완성했지만 출판사들에게 18번이나 거절당했다. ‘보는 눈’이 있는 편집자를 만나 1970년 출간됐다.

이 책이 시작된 것은 1959년이다. 캘리포니아 롱비치에 살 때다. 산책하는데 뒤에서 목소리를 들렸다. 그 목소리는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Jonathan Livingston Seagull)’이라는 이름을 리처드 바크의 귀에 속삭였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3000 단어 분량을 미친 듯이 타이핑했다. 마무리는 하지 못했다. 목소리가 다시 들린 것은 9년 후였다. 초고를 완성했지만 문제는 분량이었다. 소설은 보통 5만 단어 이상이어야 출간할 수 있는데 1만 단어도 안 됐다. 50여 장의 갈매기 사진을 넣었지만 총 93페이지에 불과했다. 확신으로 밀어붙인 사람들 덕분에 책이 나왔다.

2012년 사고 계기로 개정증보판 펴내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바크도 인생의 굴곡은 피할 수 없었다. 1981년에는 파산했다. 세 번 결혼했다. 2012년에는 자가용 비행기의 착륙 사고로 거의 죽을 뻔했다. 일주일 동안 코마 상태에 놓였다. 임사체험(neardeath experience)을 했다. 4개월간 입원했다. 사고 후에 바크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 사고가 전혀 사고가 아니라 시험은 아니었는지 궁금했다(I wondered if it were not an accident at all, but a test.)” 또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영혼의 원칙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원칙은 시공(時空)과 무관하게 작동한다. 나는 영혼이나 몸의 믿음에 있어서나 그 원칙에 종속된다. 영혼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몇 개의 간단한 규칙을 배우면 완벽한 영적인 삶을 사는 게 쉽다.”

2012년 사고를 계기 삼아 바크는 17페이지 분량 4부를 『갈매기의 꿈』 개정증보판에 추가해 2014년 출간했다. 4부는 이미 다 써 놨으나 공개하지 않았던 내용이다. 이런 내용이다. 조나단이 사라진 후 제자들은 놀라운 일을 성취한다. 조나단에 버금가거나 앞서는 놀라운 ‘기적’들이 일어났다. 이윽고 조나단의 삶과 가르침을 왜곡하고 조나단을 우상화하는 작업이 시작된다. 하지만 새로운 부흥을 선도할 새로운 지도자가 나타난다. 이 역시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역사에 실제로 나타난 일들을 『갈매기의 꿈』이라는 소설에 옮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바크는 겸손한 사람이다.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 책들 중에서 독자에게 새로운 것을 전하는 책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배우는 게 더디다.”

이 책에 담긴 가장 중요한 뜻은 무엇일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는 ‘내면의 목소리’에도 가짜가 있고 진짜가 있다는 점이다. 조나단도 부정적인 ‘내면의 목소리’를 들었다. ‘인생에는 한계가 있다. 한계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조나단은 그런 부정적인 생각을 극복했다.

둘째는 ‘완벽성’의 중요성이다. 우리는 이미 사업을 하고 있고 글쓰기를 하고 있고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 갈매기들도 이미 비행을 한다. 하지만 조나단이 바란 것은 ‘완벽한’ 비행이었다. 새로운 완벽성은 신기원을 연다. 기존의 법이나 규칙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법이나 규칙을 만들겠다는 사람이 있는 한 『갈매기의 꿈』은 계속 사랑받는 책으로 남을 것이다.

※ 김환영은… 지식전문기자. 지은 책으로 『따뜻한 종교 이야기』 『CEO를 위한 인문학』 『대한민국을 말하다: 세계적 석학들과의 인터뷰 33선』 『마음고전』 『아포리즘 행복 수업』 『하루 10분, 세계사의 오리진을 말하다』 『세상이 주목한 책과 저자』가 있다. 서울대 외교학과와 스탠퍼드대(중남미학 석사, 정치학 박사)에서 공부했다.

201803호 (2018.02.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