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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50대 부자_11위 이만탓 LKK그룹 회장] 가족기업의 천년대계 

 

SHU-CHING JEAN CHEN 포브스 기자
130년의 역사를 가진 글로벌 소스기업 이금기는 다음 천 년을 살아남을 수 있을까. 막내아들 새미 이가 행동에 나섰다.
어렸을 적부터 새미 이(Sammy Lee·53)는 가족이 겪어 온 아픔을 잘 알고 있었다. 경영분쟁, 악다구니가 펼쳐지는 소송, 서로에게 남긴 깊은 상처로 홍콩의 가족기업 LKK그룹(‘이금기(Lee Kum Kee) 소스’로 유명)은 여러 번 흔들렸다. 1986년에는 그의 아버지 이만탓(Lee Man Tat)이 동생과 경영권 소송에 휘말렸다. 이만탓은 1972년에도 다른 형제 두 명과 비슷한 소송을 진행한 바 있다. 이후 형제들은 서로 완전히 연을 끊었다. 1990년대 후반에는 새미 자신도 부진한 사업부를 매각하려는 아버지에게 맞서며 2년간 갈등을 이어갔다.

분쟁이 일어났을 때 이만탓은 엄청난 돈을 차입해 형제들의 보유지분을 모두 인수하며 소송을 끝냈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이금기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이 지분으로 그는 순재산가치 85억 달러를 인정받아 올해 포브스 홍콩 부자 순위에서 11위에 이름을 올렸다. 현재 세계 최대 굴소스 업체인 LKK그룹은 2020년 세계 최대 간장 생산업체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예상된다. 포브스아시아 추산에 따르면 소스 사업부의 연매출은 30억 달러, 수익은 1억5000만 달러 선이다.

새미는 자신이 공동 설립한 중국 헬스케어 사업부의 매출과 수익이 소스 사업보다 높다고 주장한다. 그는 구체적 금액을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그룹의 연매출은 60~70억 달러, 수익은 6억 달러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금기의 역사는 처음 굴소스를 개발한 1888년 중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후 1902년 마카오, 1932년 홍콩으로 총 두 차례 이전했다. 회사는 경영권 승계와 지분을 둘러싸고 잦은 분쟁에 휘말렸다. 130주년을 축하할 수 있는 기업은 흔치 않지만, 가족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다음 130년, 아니 다음 천 년을 꿈꾸고 있다. 꿈을 현실로 만들어줄 계획을 들고 나선 이는 이만탓의 다섯 자녀 중 막내인 새미다.

가족협의회 제안해 가족분쟁과 회사 재정불안 끝내

오랜 자기탐색과 생각 끝에 새미와 형제자매는 2002년 가족협의회를 구성하자는 제안서를 아버지에게 보여줬다. 이만탓은 반대하지 않았고, 협의회는 신속하게 구성됐다. 누구도 대항하지 못했던 이만탓의 경영권은 하루아침에 크게 줄어들었다. 대신 이만탓과 그의 아내, 자녀 5명으로 구성된 가족협의회(총 7명)가 들어섰고, 이만탓과 아들 4명이 이사회(총 5명) 임원이 되어 그룹 경영 총괄을 맡았다. “가족협의회에서는 사업을 끌어오지 않고, 이사회에서는 가족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 목표”라고 새미는 말했다.

협의회가 구성되자마자 형제들은 유일한 여자형제 엘리자베스에게도 동일한 지분을 준다는 내용에 합의했다. 아들에게만 경영권을 넘겨주는 아시아 가족기업의 관례를 따랐다면, 엘리자베스는 지분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가족 보유지분은 아버지 이만탓이 소유한 신탁에서 관리한다. “새미는 정말 대단하다”고 이만탓은 말했다. “나는 생각조차 못한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참 큰일을 해냈다.”

새미가 가족협의회를 제안한 건 가족분쟁과 그로 인한 회사의 재정불안을 끝내기 위해서다. 그는 “(협의회가) 존재하면 그런 다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유권을 동일하게 나누긴 했지만, 가족 간 신뢰가 없고 공동의 목표도 없었다. 가족기업이 와해되는 이유는 의견 일치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두 번이나 가족지분 인수에 나서야 했다. 그대로 간다면 과거가 다시 반복된다고 생각했다. 많은 가족기업이 이런 교훈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나’보다 강력하다

새미는 1999년 아버지와 갈등을 겪은 후 가족협의회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당시 이만탓은 새미의 제안에 따라 1992년 아들과 함께 설립한 한약재 기업을 매각하려 했다. 아무리 돈을 쏟아부어도 실적이 부진했기 때문이다. 새미는 매각이 불가피하다는 일방적 통보를 받았다.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말한 새미는 “차라리 나한테 배분된 소스사업 지분을 팔고 의약재사업을 가져가겠다고 선언했다. 그럼 나는 가족사업에서 완전히 빠지게 될 터였고, 아버지는 나를 두 번 다시 보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어느 쪽도 양보하지 않는 상태가 2년간 계속됐고, 새미는 가족행사나 회사 경영에서 발을 빼버렸다. 그러다 2000년 그는 가족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깊이 생각했다. 내가 잘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는 ‘나’보다 강력하다”면서 마지막 문장을 노트패드에 적었다. 이 말은 이제 가훈이 됐다. 그는 약재사업을 회생시킬 테니 매각 결정을 5년만 미뤄달라는 제안을 하며 아버지와 합의했다.

홍콩 센트럴 풍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이만탓의 사무실에 가면, 책장에 잘 정돈되어 있는 사진 앨범이 보인다. 앨범에는 아들과 대립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사진이 없다. 앨범에는 1990년대 푸젠성 당서기였던 시진핑 국가주석과 찍은 사진도 몇 장 보인다. 사무실 입구에는 회사의 대표 브랜드인 굴소스 유리병이 사람 크기로 제작되어 놓여 있다. 병을 보니 청삼을 입은 아름다운 중국 여성이 종이 라벨에 그려져 있다. 2차 세계 대전 이전부터 사용했던 라벨 디자인이다.

이금기 제1공장은 조상 대대로 살았던 고향, 광둥성 신후이로 돌아왔다. 회사가 개발한 200여 개 소스의 비밀 레시피도 이곳에 보관되어 있다. 신후이에 가면 저 멀리서부터 거대한 녹색 저장고 3000여 개가 줄지어 늘어선 것이 보인다. 전 세계 소비자에게 판매될 무방부제 간장소스가 발효 중인 저장통이다. 생산공장은 광둥과 홍콩, 말레이시아, 로스엔젤레스에 1개씩 총 4개가 있다.

그러나 LKK그룹의 장수 비결을 찾아볼 수 있는 곳은 신후이가 아니라 이만탓 사무실 바로 옆방이다. 가족협의회가 운영되는 신경중추와 같은 곳이다.

목표는 천 년을 장수하는 가족기업이 되는 것

협의회 자문 역할로 한 발 물러나 있는 이만탓은 이곳에 잘 오지 않는다. 이곳을 주로 찾는 사람은 그의 자녀 5명과 손주 14명이다. 이들은 협의회에 참여해 자선재단과 학습개발센터, 가족 사안에 필요한 예산 및 투자를 감독한다. 분쟁을 해결하고 승계를 계획하며, 집안의 모든 규칙이 들어간 가족헌장도 이곳에서 결정한다.

가족 사안과 투자 문제를 총괄하는 사람은 장남 에디다. LKK그룹 회장을 맡았던 둘째 아들 데이비드는 가족재단 대표를 맡았고, 셋째 아들 찰리는 그룹 회장직을 맡고 있다.

협의회 사무실에는 지금까지 몇 번의 회의가 개최됐는지 보여주는 전자시계 겸 게시판이 15년간 총 59번의 가족회의가 열렸음을 알려준다. 가장 최근의 분기회의는 지난해 10월 신후이에서 열렸다. 회의가 있을 때면 가족들은 만나서 골프 라운딩을 함께하고, 워크숍과 팀워크 구축을 위한 게임을 한다. 2012년 새미와 형제자매는 8명의 자녀를 데리고 하버드 대학에 가서 가족기업의 차세대 경영권 승계에 대해 배우는 세션을 가졌다.

지난 수년간 가족협의회에서는 곤란한 문제를 다수 해결했다. 배우자가 경영에 참여하는 걸 금지하고, 3분의 2 이상 찬성을 받아야 가족헌장을 변경할 수 있도록 정했다. 정년퇴직 연령도 있다. 경영직에서는 65세, 가족협의회에서는 70세가 되면 은퇴를 해야 한다. 외부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가족이 아닌 사람도 그룹 내 회장이나 CEO직을 역임할 수 있다는 규정을 신설했다.

협의회에서는 가족 문제와 사업을 어떻게 분리할지 논의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이슈는 천 년을 장수하는 가족기업으로 살아남는 것이다(천 년간 이어진 장수기업은 일본에 2개, 프랑스와 이탈리아에 각 1개씩, 전 세계 총 4개밖에 없다). “천 년을 살아남기 위해 가족 구성원의 경영 간섭을 금지하는 방안을 연구 중”이라고 새미는 말했다. 경영에 참여하려는 가족을 세대별로 계속 받는다면, 외부에서 뛰어난 인재를 데려올 수 있는 자리도 그만큼 줄어든다. “그때쯤 되면 각 가족의 지분도 작아질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새미는 “지난 10년간 다양한 모델을 실험했다”며, “우리 가족의 경험이 다른 가족기업의 갈등을 예방하는 데 영감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 SHU-CHING JEAN CHEN 포브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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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호 (2018.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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