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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권 승계의 돌파구가 공익법인? 

 

이종광 김앤장 법률사무소 공인회계사
한국에선 대기업 소속 공익법인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경영권 편법 승계 등에 악용되는 곳이란 인식이 지배적인 탓이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에선 공익법인을 활용한 경영권 승계가 일반적이다. 스웨덴엔 공익법인으로 5대째 기업을 지배해도 문제가 없다. 우린 공익법인을 어떻게 봐야 할까.

경영권 승계 현안에서 최근 ‘공익법인’이 주목받고 있다. 공익법인이란 장학·학술·종교·자선·문화 등 공익 목적으로 설립한 비영리 재단법인 또는 사단법인이다. 일반 기업의 대주주가 공익기업에 출연하는 경우 정부가 해야 할 공익사업을 대신 영위한다는 점 덕분에 상속세, 증여세 면제 등 각종 세제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외국에선 출연 한도도 없다. 대부분 공익법인 주식을 한도 없이 보유할 수 있게 해 대기업 총수들이 공익법인에 주식을 기부하고 이를 통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식으로 경영권을 승계하는 방법이 자연스럽다. 대표적인 기업으로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이 있다. 5대째 공익법인을 활용해 기업 지배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스웨덴 발렌베리, 공익법인 활용해 5대째 기업지배

그룹 지배구조의 최상위에 공익법인이 있고, 재단 이사회의 의장직을 대대로 맡아 가문이 재단을 장악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그 덕분에 가문이 계속해서 기업을 지배할 수 있다. 이 밖에도 미국 허쉬, 독일 보쉬, 덴마크 레고 등이 기업 지분의 대부분을 재단이 보유하거나 자동의결권을 보유한 재단 이사회가 기업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방식으로 승계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과 유럽 국가들도 공익법인에 출연한 재산에 세제 혜택을 주고 있다. 출연재산이 주식이어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는 공익법인이 의결권있는 주식을 최대 20%까지 보유할 수 있지만, 유럽 국가 대부분은 이 제한마저도 없다. 여기에 주식의 차등의결권까지 인정하고 있다. 재단이 차등의결권을 가진 주식을 보유하면 법적으로 경영권의 유지 및 방어능력을 갖는 셈이다.

공익법인에 혜택을 주는 대신 공익사업 목적을 제대로 달성하지 못하면 강력한 페널티가 기다리고 있다. 반대로 공익사업을 잘 영위하면 공익법인을 활용한 기업집단의 지배를 어느 정도 허용한다는 취지다.

한국은 어떤가. 공익법인 설립 시 출연받은 재산 및 설립 이후 기부받은 재산엔 증여세를 부과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비영리법인이 종교·자선·학술 관련 공익사업을 하면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 혜택을 준다. 비영리법인이 벌이는 수익사업에서 소득이 나올 경우 법인세 납부의무가 있지만, 소득의 50%에서 100%까지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을 설정하는 방식으로 비용 처리할 수 있다. 실제 낼 법인세가 많지 않다는 뜻이다.

상속세 문제(?)도 일부 해결된다. 피상속인이나 상속인이 상속세 신고기한 내에 공익법인에 출연한 재산은 상속세 과세대상에서 제외한다. 공익법인이 출연받은 재산도 증여세를 물지 않는다. 이때 출연하는 재산 또는 출연받은 재산이 주식 또는 출자지분인 경우 5%까지 상속세 등이 면제된다.

5%는 어떻게 산정할까. 출연자가 출연한 공익법인이 보유하고 주식과 출연자 및 그 특수관계인이 다른 공익법인에 출연한 주식, 상속인 및 그 특수관계인이 출연해 다른 공익법인이 보유한 주식을 포괄한다. 공익법인 중에서도 성실공익법인이라면 혜택이 더 있다. 성실공익법인은 외부감사, 결산서류 등의 공시, 장부의 작성 및 비치, 전용계좌의 개설 및 사용,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과 특수관계에 있지 않은 공익법인을 의미한다. 성실공익법인에 주식을 출연하면 10%까지 상속세를 물지 않는다. 올해 1월 1일부터는 주식 의결권까지 행사하지 않고, 자선·장학·사회복지를 목적으로만 하는 공익법인의 경우 주식 등을 출연하면 20%까지 상속세가 면제된다.

한국에는 엄격한 사후관리 요건이 있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상속세와 증여세가 다시금 부과되고, 가산세까지 물 수 있다. 그 요건을 살펴보자.

공익법인은 출연받은 재산을 공익목적사업에 전부 사용해야 한다. 그것도 출연받은 때로부터 3년 내다. 정관상 고유목적사업에 사용하고, 수익사업도 관련 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출연재산을 매각하면 90% 이상을 매각일로부터 3년 이내에 사용해야 한다.

출연재산을 굴려서 얻은 운용소득은 소득발생 과세 기간 또는 사업연도 종료일로부터 1년 이내에 70%(성실공익법인의 경우 80%) 정도를 공익사업에 써야 한다. 보유한 주식을 수익사업에 활용해도 마찬가지다. 공익법인이 5%를 초과해 보유했으면 순자산가액의 1% 이상을, 10%를 초과해 보유했다면 3% 이상을 고유 목적사업에 사용해야 한다. 성실공익법인도 아닌데 주식보유기준(자산총액의 30% 또는 50%)을 초과해 보유했으면 주식 시가의 5%를 가산세로 매긴다.

제약이 하나 더 있다. 일반 기업의 대주주가 공익법인에 주식을 기부하면 일반적으로 기본재산으로 분류된다. 이렇게 되면 주무관청의 승인 없이 처분하거나 담보로 제공할 수 없게 된다. 배당금 등 운용소득도 70% 이상 공익목적으로만 사용하도록 못 박았다. 출연자가 공익법인에 기부한 주식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막은 것이다. 실제 출연자는 공익법인에 기부한 주식에 대해 처분권과 배당수익권을 상실한다. 물론 공익법인을 통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는 있다.

韓 공익법인, 경영권 승계 활용하기엔 제약 많아

하지만 현실적으로 한국 기업 대부분이 배당에 인색하다. 실제 공익법인이 의결권행사를 할 수 있는 주식만 소유했을 뿐이지 운용소득으로 배당금을 신고하기엔 미약하다. 출자총액제한기업집단에 포함된 경우는 의결권있는 주식의 5%까지만 증여세 부담 없이 기부할 수 있고, 그 외에는 10%까지 허용된다. 공익법인을 활용해 경영권을 승계하기란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대부분의 한국 기업 총수들이 공익법인을 경영권 승계를 위한 보조적인 수단으로 쓰는 이유다.

앞으로 공익사업에 많은 기업을 끌어들이려면 외국처럼 공익법인의 주식보유한도를 대폭 늘려야 한다. 한도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공익법인을 활용한 경영권 승계의 길을 터줘 민간기업과 공익사업의 조화를 도모할 필요가 있다.

- 이종광 김앤장 법률사무소 공인회계사

201803호 (2018.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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