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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는 독수리 다리뼈로 만든 플루트부터다? 

김진호의 ‘음악과 삶’ 

김진호 안동대 음악과 교수
지난 2월호에서 현대인들이 진짜 악기의 소리보다 컴퓨터가 내는 소리를 일상에서 더 많이 듣는다고 했다. 컴퓨터가 피아노와 같은 전통적 악기들의 존재 이유를 위협할까. 향후 수십 년 안에 세상의 모든 악기가 지구상에서 사라져버릴까. 악기가 인간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안다면 이 질문에 신중하게 답할 수 있다.

2008년, 독일 튀빙겐 대학의 고고학자들은 약 3만 5000년 전에 인간이 악기를 제작했다는 강력한 증거를 찾았다. 독일 남서쪽 슈바벤 지역의 홀레 펠스(Hohle Fels) 동굴에서 악기의 잔해가 발굴된 것. 바덴-뷔르템베르크주(州)의 작은 도시 쉘클링겐(Schelklingen)에 있는 이 동굴에서 호모 사피엔스 조상들은 독수리 다리뼈로 만든 플루트를 불며 즐겼을 것이다.

3만 5000년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약 7만 년 전부터 3만 년 전까지 호모 사피엔스는 인지혁명을 경험했다. 호모 사피엔스 뇌의 상태가 어떤 이유 때문에 이전과 달라져서 지능이 높아졌는데, 이것을 인지혁명이라 부른다. 높아진 지능과 함께 인간은 동굴벽화와 조각품들, 사냥 및 낚시를 위한 정교한 도구들, 배, 기름등잔, 옷을 만드는 데 필요한 바늘, 종교적 관념을 발명했다. 홀레 펠스의 플루트도 인지혁명기의 산물이다.

인지혁명의 원인에 대해선 이견이 있다. 인도의 신경과학자 라마찬드란은 당시 인간이 우연히 거울 뉴런을 장착하게 되었다며, 상대의 행동이나 표정을 따라 하게 해주는 이 뉴런체계를 통해 문명적 결과들이 모방되어 전파됐다고 말한다. 라마찬드란은 모방되어 전파된 최초의 문명들이 우연히 만들어졌다고 했는데, 설득력이 떨어지는 주장이다. 독수리나 백조 혹은 곰의 다리뼈를 취한 후에 털을 제거하고, 사람의 입이 닿는 홈을 만들며, 내부를 비게 만든 후 손가락으로 막을 구멍들을 바깥쪽에 내는 작업이 우연한 행위의 결과일까. 오늘날 우리가 듣는 음계에 매우 근접한 음들을 홀레 펠스 동굴의 ‘뼈 플루트’(Bone Flute)로 소리를 낼 수 있다. 이 악기는 임의의 위치에 구멍을 아무렇게나 내어 만들지 않았다. 길이 22cm, 지름 2.2cm의 이 피리 혹은 플루트의 몸체에 맞게 구멍이 나야 했다.

3만 5000년 전의 플루트


▎홀레 펠스 동굴에서 발견 된 뼈 플루트. / 사진:뉴욕타임즈
오늘날에도 어려운 작업을 당시의 조상들이 왜 했을까? 악기와 함께하는 음악에 어떤 이익이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과학자들은 이 플루트와 함께한 선사시대의 음악이 조상들의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강화된 공동체 의식 덕분에 호모 사피엔스 종이 큰 사회적 망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으로도 추측한다. 큰 사회적 공동체는 그 안에서 사는 개체들을 엄혹한 빙하기에 살아남도록 해주었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어려운 작업을 당시의 조상들은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영국의 인지고고학자 스티븐 미슨(Steven Mithen, 1960~)은 저서『마음의 역사』에서 인간의 영역별 지능들이 서로 연결되어 인지혁명이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미슨은 이 플루트를 언급한 적이 없다. 다른 여러 문명적 요소, 즉 인간의 자연사 지능, 기술 지능, 사회 지능, 언어 지능이 서로 결합해 만들어진 결과가 아닌가 하고 추측한다. 이 영역별 지능 각각을 모든 생명이 가지고 있음에 주의해야 한다. 자연에 사는 모든 생명은 저마다 특정한 자연사 지능을 가지고 있다. 이 지능을 본능으로 탑재한 덕분에 생명은 추운 겨울 남쪽으로 날아가거나, 물이 있는 쪽으로 간다. 기술 지능은 자연에 존재하는 것들을 도구로 이용할 수 있게 해준다. 인간 말고도 도구를 사용하는, 즉 기술 지능을 가진 것으로 추정되는 동물이 꽤 있다. 사회 지능은 사회 속 개체가 다른 개체의 의도를 파악하게 하여 서로 돕고 연대하거나 배반하는 것을 허락해준다. 영장류를 포함해 많은 사회성 동물이 사회적 지능을 가지고 이런 일들을 한다. 언어 지능은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해준다. 생물학자들은 놀라운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동물과 식물을 연구보고한다. 미슨에 따르면 호모 사피엔스는 이 지능들을 서로 연결하는 초유의 일을 했다. 다른 생명이 못했던 일.

플루트를 만드는 데 독수리나 백조의 다리뼈가 적합하다고 아는 것이 자연사 지능이라면 그 제작자는 자연사 지능을 가졌을 것이다. 다리뼈를 도구로 정교한 작업을 했다면 기술 지능이 있었을 것이다. 플루트의 사회적 용도가 있었으니 이것을 고려하는 사회적 지능도 필요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플루트를 비롯해 당대에 만들어진 모든 정교한 물건의 제작법이 전파되고 전승되려면 효율적으로 설명하는 수단이 있어야 했다. 언어가 그것이다. 플루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알아서 보고 따라 하라’는 식으로 무뚝뚝하게 일했던 사람의 작품이기보다는, “이건 겨울철에 남쪽 호숫가로 날아오는 백조들의 뼈로 만드는데, 구멍을 요 정도 간격으로 뚫어야 하고, 그러려면 이러저러한 일들을 해야 한단다. 이걸 입에 대고 바람을 불어넣으면 예쁜 선율이 만들어지는데, 저기 있는 저 처자가 아마 좋아할 거야”와 같은 언어적 설명을 했던 사람의 작업 결과였을 가능성이 크다. 뼈 플루트는 특정한 상태에 처한 제작자를 떠올리게 한다. 미슨의 개념인 지능과 마음의 통합 상태에 처한 선사시대의 조상. 지능들이 결합하지 않았다면 뼈 플루트를 포함한 정교한 도구들이 지속적으로 제작되지도, 갑자기 폭발적으로 늘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정확하게 오늘날의 악기 제조업자들이 하는 행위다. 이들은 피아노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자연의 어떤 원재료들로 만들어지는지 알고, 그것들이 가공되어 어떻게 결합되어야 하는지를 알며, 왜 만들어야 하는지, 무엇을 고려해 만들어야 하는지도 알고, 이 모든 앎을 서로에게 언어로 설명하고 전달한다. 당연히, 선사시대의 뼈 플루트보다 근대적 피아노가 더 복잡한 원리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그 뿌리는 선사시대의 지식 결합 및 지능 연결에 있다.

산업화 시대의 피아노 붐


▎1897년 제작된 최초의 전기악기 텔하모늄. / 사진:사이언티픽 아메리칸 표지사진 제공
오늘날 피아노를 제작할 수 있는 나라는 손으로 꼽을 정도다. 대단한 과학기술이 적지 않은 규모의 자본을 바탕으로 조직화돼야 가능한 사업이기 때문이다. 피아노 제작은 대개의 경우 대규모 공장에서 이루어지니 피아노 산업은 장치산업이다. 자본이란 사회적 협동의 산물이니 피아노 산업의 강국들은 사회적으로 잘 조직화된 나라들이다. 사람들은 자본을 끌어모으기 위해, 필요한 과학기술을 연구·설명하기 위해 언어로 소통하는 문화를 발달시켰다. 이런 나라들에서 피아노로 연주되는 음악의 사회적 수요도 많다.

소형차 제작·수출 강국인 한국은 소형 피아노 강국이다. 이 분야의 경쟁국은 현재 중국이다. 대형차 제작·수출 강국인 독일과 일본은 대형 피아노 강국이다. 고급의 대형 피아노인 그랜드 피아노는 대당 대략 2억원대다. 소형 피아노인 업라이트 피아노는 대략 3~400만원대에 판매된다. 차와 피아노 모두 고급형을 많이 파는 것이 상책이다. 모든 고급 상품의 기저에도 지식들의 결합이 있다.

한국 피아노 산업의 역사에서 최고 행운의 시기는 1990년대 초·중반이었다. 당시 서울 주변의 신도시들에서 대규모 아파트가 건설되었고, 많은 가족이 자기 집을 가지면서 피아노를 구매했다. 소형 피아노의 사회적 쓰임새가 일종의 고급 인테리어였다는 이야기다. 한국의 유명 피아노 업체들은 IMF 외환위기를 전후로 어려워졌다. 그 후 피아노 제조와 무관한 사업에 뛰어들며 사업다각화를 꾀한 회사도 있고, 악기 관련 기술연구에 매진해 전자악기 시장에 뛰어든 업체도 있다.

피아노는 사실 역사가 짧다. 18세기 초에 처음 만들어졌다. 바이올린은 16세기 초에 세상에 처음 등장했다.

이 나이의 악기들은 젊은 걸까, 아니면 늙었을까. 다시 말해 이미 한물간 것들일까 아니면 아직도 그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것으로 봐야 할까. 피아노는 하프시코드나 쳄발로로 불리는, 귀족들의 건반악기를 대체했다. 바이올린과 첼로 같은 악기들은 더 오래된 비올족의 현악기들을 대체했다. 악기들의 교체라는 사회적 현상의 기저에는 더 크고 더 강력하며 더 표현적인 음향을 바라는 수요층의 등장이 있었다. 그걸 아는 음악가들의 대응도 있었고, 그걸 모르는 음악가들의 고집도 있었다. 새로운 악기를 제작할 줄 아는 이들이 있었고, 그 기술자들에게 어필했던 음악가들도 있었다. 혁신적 음악 스타일을 추구했던 베토벤은 얼리어답터이기도 했고 프로슈머이기도 했다. 그와 함께 작업하며 피아노를 계속해 개량했던 악기제조업자가 있었는데, 베토벤은 이 제조업자에게 끊임없이 음악적 요구를 했고 제조업자는 그걸 신제품에 반영했다. 새롭게 만들어진 피아노가 베토벤에게 주어지면 이 거장은 흥분했고, 결과는 [하머클라비어 소나타] 같은 웅장한 걸작들이었다.

책상 위 컴퓨터가 지배할 미래 음악


▎쇄석 해머를 사용하는 침팬지. 일부 연구자들은 침팬지와 원숭이들이 석기시대에 진입했다고 주장했다. / 사진:justin Evans/npl
유럽과 미국은 20세기 초에 정보화 시대에 진입했다. 산업화 시대의 악기가 고전역학에 기초해 제작되었다면 정보화 시대의 악기는 전기·전자공학에 기초해 제작된다. 전기·전자악기에 관한 다양한 연구의 한 종착역이 모든 소리를 복제하는 컴퓨터다. 정확히 말하면 컴퓨터에서 작동하는 소리 합성 프로그램이다. 과거의 작곡가들이 피아노와 바이올린같이 시장에 나온 악기의 소리, 즉 주어진 소리로 음악을 만든다면 실험적 컴퓨터 음악가들은 종종 프로그램을 이용해 자기만의 소리, 세상에 없는 소리를 만든다. 어떤 작곡가들은 심지어 프로그램 자체를 만든다.

컴퓨터와 별도로 다양한 전기·전자 악기들의 개발과 실패가 있었다. 개발됐지만 연주자들이 쓰지 않는다면 실패한 것이다. 대체로 전통적 연주 방식으로 연주할 수 있는 전기·전자악기들이 성공한다. 피아노처럼 치거나 바이올린처럼 연주하는 신디사이저가 성공한 전자악기의 한 모습이다. 결국 악기는 과학기술의 산물이자 그것을 연주하는 인간과의 인터페이스다. 그것이 내는 음향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어야 한다. 선사시대 이래 지금까지 변치 않는 사실들이다.

국내외 몇몇 대학에서 새로운 악기를 제작한다며 희한한 발음원리를 개발하는 연구자들이 있다. 그들은 상술한 사항들, 특히 음악가들의 육체적 운동을 고려해야 한다. 연주는 매우 오래된 육체적 행동이다. 인간은 영장류 중에서도 특히 부산하게 움직이고, 뛰고, 소란스럽고 과장되게 춤추고 떠드는 계통에 속하며, 이런 연장선상에서 노래하고 악기 연주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좋아한다. 악기가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다. 대조적으로, 컴퓨터는 미래 음악의 중요한 측면을 제시한다. 그것은 새로운 의미로, 도전의 계기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악기와 컴퓨터 모두 필요하다.

※ 김진호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와 동 대학교의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립안동대학교 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매혹의 음색』(갈무리, 2014)과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갈무리, 2017) 등의 저서가 있다.

201803호 (2018.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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