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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EDITION_(4)] 10년 후가 더 기대되는 유망작가 25인 Ⅲ 

선정위원 이준희 ... 양대원, 김기라, 안지산, 박영길, 라선영 

박지현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
선정위원 이준희는…


1969년 서울 출생. 경원대 미술대학과 동 대학원, 홍익대 미술대학원(예술기획 전공)을 졸업했다. 가인화랑, 담갤러리, 사비나갤러리에서 큐레이터로 근무했고, 2000년 미술전문지[월간미술] 기자로 입사해 2014년부터 편집장을 맡고있다.




양대원 | 눈물의 역설


▎안다 Embrace (or Hug) 131×101㎝ 2014
누군가를 추천한다는 것, 여간 부담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그 대상이 작가나 작품이라면 더욱 그렇다. 미술뿐 아니라 예술작품에 대한 호불호, 혹은 평가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그 판단 기준을 정량적으로 수치화하거나 계량화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처음 주어졌던 추천기준을 심사숙고해본다. ‘10년 후가 더 기대되는 작가’라! 여기서 가장 망설이게 된 건 ‘젊어야 하는가’였다. ‘젊음’은 상대적 개념이다. 예컨대 ‘애늙은이’나 ‘철없는 노인네’라는 말처럼 그 경계가 모호하고 자의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배경에서 양대원은 1966년생, 현재 물리적 나이로 50대 중반에 접어들었다. 예술에선 이런 나이 구분이 무의미하다. 작가 양대원은 향후 10년, 아니 그 이후에도 충분히 발전 가능성이 있는 작가다. 그의 작품은 진가를 제대로 인정받고 평가 받지 못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저평가되어 있다는 말이다. 양대원의 작품은 국내보다는 오히려 해외 무대에서 더 각광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작품성도 좋지만 상품성도 충분히 지니고 있다고 본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양대원의 작품은 앞으로도 특정 시류에 편승하거나 유행에 휩쓸리지 않을 것이다. 독자적이고 자기만의 작품세계를 확고하게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양대원은 화학과를 졸업했다. 회화과가 아니다. 고교시절 미대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부모님 반대로 그러지 못했다. 학부 전공은 화학과였지만, 대학 생활 줄곧 혼자서 회화작품을 그렸다. 마침내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고, 지금까지 전업 작가로 꾸준히 그림을 그려오고 있다. 남다른 이력이 말해주듯 양대원의 그림과 작업방식은 평범하지 않다. 캔버스에 물감으로 그리는 일반적인 그림이 아니다. 동양화 재료인 한지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두툼하게 만들고, 그 위에 토분을 바르고 지우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고, 콩기름을 먹이고, 뜨거운 인두를 사용해 선을 긋는다. 실제 작품을 보면 색채가 선명하고 화면의 밀도가 깊다. 형식에서뿐 아니라 내용 면에서도 매우 진지하고 깊은 사유를 담고 있다. 눈물, 인물, 칼, 문자, 어항, 계단, 국기처럼 구체적 형상을 모티프로 하지만 그 이미지는 추상적으로 표현됨으로써 뛰어난 함축성을 품고 있다. 양대원은 작품 [안다 - Embrace(or Hug)]를 이렇게 설명한다. “어항 안에 커다란 검은 눈물이 가득 차 있고 그 어항을 안고 있는 한 인간이 있다. 여러 가지 문제로 혼란스러운 슬픔의 세상을 보듬어 안는 안식을 표현하고자 했다. 각자의 세계(어항)에서 사는 이(슬픔)에게 위로의 힘(절대자)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길 바라며 그린 그림이다.”

양대원은 그동안 사비나미술관과 동산방화랑에서 여러 차례 개인전을 열었다. 사비나미술관은 한국을 대표하는 비영리 사립미술관이다. 사비나미술관을 거쳐간 작가들은 미술시장 분위기에 흔들림 없이 뚝심 있게 자기세계를 고집해온 작가들이다. 주로 고미술품과 동양화 작품을 주로 취급해온 동산방화랑이 양대원에게 주목한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 짐작할 수 있다. 시간이 많이 지나서야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고 인정받는 고미술품처럼 양대원의 작품도 급변하는 시류에 흔들림 없이 묵묵히 오랜 시간 숙성되고 있다.


양대원(1966~)... 세종대학교 화학과와 동 대학원 미술학과(서양화과)를 졸업했다. 갤러리담, 동산방갤러리, 사비나미술관, 금호미술관, Usine Utopik 등 20여 회에 이르는 개인전을 가졌으며, 서울시립미술관 2013 [자유아재], 2012 경기도미술관 [미술에 꼬리달기], 2011 사바나미술관[Study] 등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주요 작품 소장처로는 국립현대미술관, 경기도미술관, 송은문화재단, 아라리오 갤러리 등이 있다.

김기라 | 장르불문 무규칙 시각예술가


▎1. 김기라의 드로잉 전시장. 그는 “나의 시각언어 방식은 많은 기호를 수집해 편집하는 행위부터 고풍스러운 유화, 콜라주를 비롯해 환경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한 설치와 개인 역사나 사건들의 비디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고 말한다. / 2. 이념의 무게_얼굴들 A weight of Ideology_faces, 2012 pencil, oil bar and pastel on Korean paper image size: 47×74㎝ frame size: 89.5×62.5㎝
미술에서 전통적인 장르 구별이 무의미해진 지 오래. 동시대 미술의 표현 방식은 무궁무진하다. 작가 김기라를 일컬어 ‘장르 불문 무규칙 시각예술가’라고 정의할 수 있다. 표현주의적인 드로잉과 고풍스런 극사실 평면회화, 대규모 설치작품과 비디오 영상 작품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이다. 한 작가의 것이라고 하기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장르와 경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최근작에선 특히 인간의 몸짓(무용)과 소리(음악)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시각예술(가)의 활동영역을 종횡무진 확장하고 있는 셈. 일관되게 추구하는 주제는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개인과 집단의 욕망, 정치와 역사의 모순에 대한 거대담론을 담고 있다.

2000년대 초, 대안공간 루프 개인전을 시작으로 화려하게 미술계에 데뷔한 김기라는 이후 성공적으로 제도권에 안착했다. 대형 국제비엔날레 참여와 국제갤러리 개인전이 이를 증명한다. 작가적 역량과 왕성한 의욕에 비춰보면 향후 활동무대는 국내 미술계에만 안주하지 않을 것이다. 김기라의 드로잉은 작가의 개념과 생각을 일차적으로 시각화한 결과물이다. 조각, 설치, 비디오 영상 작품으로 구현될 대형작품의 설계도 같은 존재다. 김기라의 드로잉은 매력적인 컬렉션 대상으로 손색없다.


※ 김기라(1974~)... 경원대학교 회화과 학부과정과 조각과 석사를 졸업하고 런던골드스미스 칼리지에서 순수예술 석사와 언어와 문화연구이론 포스트 드플로과정을 마쳤다. 2006 영국 카운실 킹스린 아트센터 [신기루 궁전], 2008 루프갤러리 [선전공화국], 2009국제갤러리 [SUPERMEGA-FACTORY], 2010 두산아트센터 [공동선_모든 산에 오르라], 2014 패리지갤러리 서울 [마지막 잎새], 2015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등 12회 개인전과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박영길 | 현대 동양화의 숨은 고수


▎Wind-road, color on korean paper, 63㎝×93㎝, 2015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겸재 정선, 오원 장승업, 공재 윤두서…. 조선시대를 풍미한 대표 그림쟁이 면면이다. 시·서·화에 능한 사대부 문인도 있고 궁궐 도화서에 소속된 전문 직업화가도 있다. 각자 위치에서 그림에 관해서는 천재라는 소리를 들은 인물들이다. 그들이 지금 이 시대에 살고 있다면 과연 어떤 그림을 그렸을까? 동양화가 박영길의 그림을 보면서 이런 상상을 한다. “박영길은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의 장점만 고루 겸비한 작가다!” 박영길은 그림을 참 잘 그린다. 그림을 찬찬히 살펴보면 타고난 솜씨에 절로 감탄한다.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재주만 좋은 게 아니다. 그림에서 감칠맛이 난다. 천재 김홍도의 호쾌한 붓질과 신윤복의 섬세한 감성이 한꺼번에 전달된다고나 할까. 박영길의 그림은 어렵지 않다. 무겁지도 않다. 북한산, 인왕산처럼 익숙한 자연풍경과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시인의 표정과 생활상을 솔직담백하게 기록한다. 김홍도의 풍속화처럼. 산수화와 풍속화의 요소를 동시에 갖춘 박영길의 그림은 동양화의 기본과 전통화법에 충실하면서 현대적 감각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흑백 모노톤 수묵산수화의 한계를 넘어선 채색산수화의 현대적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포착한 이런 시선은 아날로그적 감수성을 짙게 풍긴다.


※ 박영길(1975~)... 홍익대 미술대학 동양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갤러리 꽃, 푸르지오 갤러리, 통인옥션 갤러리 등 5회의 개인전과 도로시 쌀롱, 진천종박물관, 스페인한국문화원 등 39회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2009년 제 9회 송은미술대상전 입선했고 2006~2008년 금호창작스튜디오에 2기 입주작가로 활동했다. 그의 작품은 천재교육의 고등학교 미술 교과서에도 수록돼 있다.

안지산 | 그림으로 맞짱 뜨는 화가


▎1. 27 sec. 67 (27초 67), 2015, oil on canvas, 53×65㎝, private collection in Seoul / 2. I mitation(흉내), 2015, oil on canvas, 53×65㎝, private collection in Seoul
화가 안지산은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을 졸업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는 대통령령으로 설립된 국내 유일 예술전문 교육기관이다. 음악원, 연극원, 영상원, 무용원 전통예술원으로 이뤄진 이 학교 재학생은 ‘영재’ 출신이 많다. 하지만 미술원은 사정이 다르다. 다른 예술 장르와 달리 미술 분야에서 영재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안지산은 천생 화가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 아버지(안창홍)처럼 화가가 된 안지산은 미술원을 졸업하고 네덜란드에서 7년간 유학하며 활동했다. 네덜란드는 유럽에서도 회화의 전통과 역사적 깊이가 남다른 국가다. 이제 40대에 접어든 작가 안지산은 요즘 한국화단에서 보기 드문 정통파 화가다. 안지산은 가장 원초적이고 직접적인 ‘회화’라는 매체와 정면 대결하고 있다. 시인(詩人)의 사유가 문자로 각인되어 은유적으로 표출되듯 화가의 표현욕구는 캔버스 위에 색채와 형상으로 구현된다. 텅 빈 캔버스 위에서 투쟁하는 화가의 몸부림은 처절하다. 그 싸움은 철저히 고독하다. 그에게 주어진 무기는 오직 붓과 물감뿐. 세상이 앞으로 어떤 식으로 변할지는 몰라도 회화의 생명은 영원할 것이다. 안지산의 그림은 그것을 증명할 것이다.


※ 안지산(1979~)...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조형예술학사를 취득하고 네덜란드 Frank Mohr Institute에서 Painting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암스테르담 라익스 아카데미 레지던시 작가로 활동하다 2014 Buning Brongers Prijzen을 수상했다. 자하미술관을 비롯해 서울, 네덜란드에서 4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약 40여 회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라선영 | 조각의 가능성과 미래


▎서울, 사람 나무에 채색, 28(h)㎝ ea., 2014
여성작가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 이런 맥락에서 젊은 여성조각가 라선영에 주목한다. 인체 조각을 작은 크기로 만드는 라선영은 이화여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영국왕립미술대학 조소과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귀국해 첫 개인전을 열었다. 2014년이었다. 전시 제목은 [서울, 사람]. 그때 보여준 작품은 맥주병 크기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사이즈 조각이었다. 서울시내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양한 인물을 나무를 깎고 다듬어 채색해서 만든 목각인형 같은 것이었다. 이미 영국에서 시작된 작은 사이즈의 인체조각 시리즈의 서울버전이었다. [심포니:영국사람] 시리즈는 여왕, 근위병, 바텐더처럼 영국 사람을 조각했고, [서울, 사람]은 제목 그대로 서울 사람을 모델로 삼았다. 2014년 개인전 이후 2017년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개인전을 열었고, 그때마다 아주 조금씩 변모한 작품을 선보였다. 흙으로 빚은 인체를 도자기로 굽기도 하고, 블록 벽돌이나 강철 H빔을 활용해 공간을 연출하기도 한다. 이처럼 나무에서 시작해 기법이나 재료가 다양해지고 표현 방식이 확장되었지만, 여전히 일관된 관심과 주제는 ‘인간’이다. 라선영이 만든 인체조각은 하나하나가 개별 오브제로서 완성도도 높지만, 그것이 여러 개 모여서 어떤 상황으로 연출되는 설치미술로서도 매력적인 작품이다.


※ 라선영(1987~)... 이화여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영국왕립미술대 조소과 석사 과정을 마쳤다. 2014 코너아트스테이스[서울, 사람], 2015 여의도 63스카이아트미술관 [BEAM], 2016 카이스갤러리 [반짝이는 것들], 2017 갤러리마크[사람들] 등 개인전을 열었고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201803호 (2018.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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