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미투와 시대정신 

 

노성호 뿌브아르 대표
시대정신이 숙명보다 더 무서운 점은 스스로 불확실한 미래를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흔히 운명(運命)은 바꿀 수 있어도 숙명(宿命)은 바꿀 수 없다고 한다. 운명은 운(運)이란 글자에서 보듯 움직이니 좋을 때와 나쁠 때가 있어 기다리면 된다. 그러나 숙명은 별자리를 뜻하는 숙(宿)이란 글자에서 보듯 천년만년 그대로다. 점성술을 신봉했던 옛날 사람들은 그래서 숙명은 바꿀 수 없다고 믿었다.

그러니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무서운 건 숙명일 터다. 예전과 달리 개인의 행복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민주·자유·인권의 시대에 살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못 하고 산다는 건 ‘무섭다’와 동의어가 된다. 누구나 재벌 2세로 태어날 수 없고, 누구나 빌 게이츠나 마크 저커버그처럼 일가를 이루고 큰 부자가 될 수 없고, 누구나 대통령이 될 수는 없다. 결국 언어의 유희일지언정 사람마다 숙명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무서운 존재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사실 숙명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있다는 걸 사람들은 모르고 산다. 바로 ‘시대정신’이다. 필자는 철학 전문가가 아니니 독일철학에서 말하는 시대정신(Zeitgeist)이라고 확신하지는 못한다. 헤겔이 말한 ‘그 시대를 관통하는 하나의 절대적인 정신’으로 표현하면 좀 거창한 듯하다. 적당한 표현이 없어 시대정신이라고 했지만 여기에서는 ‘현실감각’과 ‘시대정신’의 중간지점 정도로 해두자.

시대정신이 숙명보다 더 무서운 점은 바로 스스로 불확실한 미래를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누구를 막론하고 만일 시대정신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면 한순간에 어제까지 살아온 인생이 수포로 돌아가고 내일부터 시작되는 남은 인생 역시 무의미하게 될지도 모른다.

최근 여성들이 중심이 된 미투(Me Too)운동이 한국 사회의 화두가 되었다. 유교의 영향으로 가부장적 남성 위주의 질서였던 한국 사회가 진정 인류애를 실천하는 선진국으로 가는 중요한 사건이다. 이제 한국에서 여성은 더는 남성의 들러리가 아니라 인류를 구성하는 동일한 존재로 등장하게 되었다. 불과 50년 전인 우리의 할아버지 세대에는 첩 문화가 있었다. 30년 전 소설이나 드라마에서는 다방에서 여종업원의 엉덩이를 치거나 만지는 표현, 장면이 존재했다. 현재의 미투 운동은 시대정신 읽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준다. 인류의 보편적 인권에 남녀차별은 없다. 그럼에도 이를 무시하고 오독(誤讀)한 특정인들의 말로는 결코 밝을 수 없다.

인류는 오늘도 ‘인간답게 행복하게 살 권리’를 향해 나아가고 있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한국 사회 역시 ‘공정경쟁과 투명한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이젠 기업을 책임지고 있는 오너나 CEO 입장에서도 ‘지속가능한 경영’을 위해 시대정신을 제대로 읽는 지혜가 더 필요해졌다.

- 노성호 뿌브아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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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호 (2018.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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