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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과 열정(2) 이한주 스파크랩 대표 & 차상윤 안젤로고든아시아 대표 

시카고대 동창으로 만나 30년 우정 켜켜이 쌓았다 

최영진 기자 cyj73@joongang.co.kr
대한민국 리더들의 특별한 우정과 성공 스토리를 다루는 ‘우정과 열정’ 두 번째 주인공은 이한주 스파크랩 대표와 차상윤 안젤로고든아시아 대표다.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를 대표하는 인사와 한국 부동산 투자 기업 1위를 달리고 있는 성공 투자사의 만남은 미국 시카고대학에서 시작됐다.

▎서울 역삼동에 있는 스파크랩 사무실에서 만난 이한주 대표(오른쪽)와 차상윤 대표(왼쪽). 사진 촬영 중 차 대표는 “이 대표는 배우를 해서 그런지 사진 포즈가 잘 나오는 것 같다”며 웃었다 / 사진:박종근 기자
두 사람에게 “친해진 계기가 있었나?”라고 질문했다. 재미나 감동이 있는 에피소드를 기대했다. 두 사람은 각자 잠깐 생각에 잠겼다. 대답은 싱거웠다. “특별한 사건이 있어서 친해진 것은 아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믿음이 생겼다”라며 한 사람이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은 1990년대 초반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대학 기숙사에서 다른 친구의 소개로 처음 만났다. 이후 30년 가까이 특별한 우정을 이어오고 있다. 이들은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가장 먼저 상의하는 친구”라고 말한다. 만남은 싱거웠지만, 결과는 특별한 우정으로 이어진 것. 주인공은 한국 스타트업계에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액셀러레이터 스파크랩 공동창업자 이한주(45) 대표와 한국의 부동산 투자 1위 기업 안젤로고든 아시아 차상윤(46) 대표다. 이 대표는 “차 대표는 기숙사에서 처음 만났을 때와 지금이 똑같다. 사회를 분석하는 눈이 날카롭고 지적이었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차 대표는 “이 친구는 당시 상당히 남자답고 카리스마가 있었다. 그럼에도 왠지 신뢰가 생겼다”고 첫 만남을 회고했다.

두 사람의 현재는 무척 다르다. 한 사람은 창업 생태계를 이끌어나가는 주역이고, 다른 한 사람은 글로벌 대체 투자 운용사의 아시아 지사를 책임지는 금융맨이다. 전공도 판이하게 다르다. 이 대표는 시카고대학에서 생물학 박사 과정까지 밟았다. 차 대표는 경제학과 국제정치학을 전공했고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했다. 각자 지향했던 바가 달랐던 것이다. 성격도 무척 다르다. 이 대표는 “나는 사람을 만나고 일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인데 차 대표는 나와 성격이 정반대”라고 말했다. 두 사람이 첫 만남부터 급격하게 친해진 이유는 서로가 보완재 역할을 할 것이라고 느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시카고대 한인학생회 활동 함께해

공통점도 있다. 이 대표는 중학교 1학년 때 미국 주재원으로 파견 나간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다. 차 대표도 중학교 1학년 때 가족이 이민을 가면서 미국에 자리를 잡았다. 차 대표는 “미국에 사는 한국인은 언제 왔느냐에 따라 가치관이 상당히 달라지는데, 그런 점에서 사춘기를 겪을 즈음 미국에 왔다는 점 때문에 마음이 잘 맞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공통점은 대학에서 한국인학생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점이다. 두 사람은 ‘모임’이라는 한국시 영어 번역 모임에서 같이 활동했고, ‘한국 문화의 밤’ 같은 큰 행사도 함께 준비했다. 문화의 밤 행사에서 차 대표가 극본과 연출을 맡고 이 대표가 주연 배우로 무대에 올라가기도 했다. 차 대표는 “‘온화한 성찰(Benign Introspection)’이라는 창작 연극을 만들었는데, 그때 이 대표가 주연을 맡았다”면서 “이 대표의 연기력을 논하는 것은 조금 그렇지만(웃음) 잘생겨서 인기가 좋았다”고 말했다.

월가 메릴린치에서 금융맨으로 경력 시작


▎1992년 미국 시카고대학 부근에 있던 당시 차상윤씨(왼쪽)의 자취방에서 함께 있던 모습. 두 사람은 매일같이 자취방에서 만났다고 한다. / 사진:차상윤 대표 제공
이들은 매일같이 붙어 다녔다. 같이 공부도 하고 거의 매일 저녁마다 기숙사 방에서 함께 맥주를 마시면서 TV를 보는 게 공식 스케줄이었을 정도. 기숙사를 나와 학교 부근에서 자취를 할 때도 같은 동네로 옮겨 매일 밤마다 방에 모였다고. 이 대표는 “맥주 마시면서 하룻밤 동안 드라마 [모래시계] 1편부터 마지막까지 봤던 게 기억이 난다”며 웃었다.

대학 시절 매일같이 붙어 다녔지만, 두 사람 모두 졸업 후를 대비해야 했다. 먼저 사회에 진출한 이는 차 대표. 시카고대학 대학원에서 ‘국제정치학’ 석사 과정을 밟은 후 박사 과정이 아닌 사회 진출로 방향을 틀었다. 그는 “공부를 해보니 죽기 살기로 공부할 자신이 없었다. 공부는 내 길이 아님을 알았다”며 웃었다.

차 대표가 취업을 준비할 때는 경기가 얼어붙었던 시절이었다. 이 대표는 “90년대 초중반 미국의 취업난은 마치 한국의 IMF 외환위기 때와 비슷했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 차 대표는 경제학도의 엘리트코스로 꼽히는 세계 금융의 중심지 뉴욕 월스트리트 진출을 꿈꿨다. 하지만 매번 낙방, 심지어 “더는 원서를 낼 곳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이 때문에 ‘다시 학교로 돌아가 대학원에 들어가야 하나’ 등을 고민해야만 했다.

1994년 초반 운이 좋게도 월스트리트에 본사를 둔 메릴린치 투자은행에서 사람을 또 뽑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미국 상위 대학 30곳에서만 선발하고, 서류전형부터 입사까지 3개월이나 걸린다는 곳이다. 경제학도라면 누구나 일하고 싶어 하는 선망의 직장. 선발 과정도 복잡하다. 서류 전형을 통과한 후에 면접을 수없이 거쳐야 한다. 본사에서 본 면접만 20번. 차 대표는 “학교에서 배운 것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흐름을 볼 수 있으면 힘이 생긴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면서 “94년 입사 당시 연봉이 3만5000달러였는데, 월가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고 회고했다. 전 세계에서 입사한 300여 명 중 한국인은 그를 포함해 두명뿐이었다.

이 대표는 메릴린치 투자은행에 입사한 게 얼마나 큰 사건인지 설명을 덧붙였다. 그는 “당시 메릴린치는 월가에서 가장 잘나가는 기업 중 하나였고, 이곳에 다니는 게 경제학도의 엘리트코스였다”면서 “한국인이 미국 사회에서 그나마 맘껏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게 투자사였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일도 힘들었다. 당시 차 대표와 같은 부서에 입사한 동기 15명 중 2년 후 남은 이는 그를 포함해 단 두 명. 그렇게 버티기 어려운 메릴리치 투자은행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승승장구했다. 본사에서 3년간 일한 후 싱가포르 지사, 한국 서울 지사 등으로 파견 나가 부장까지 승진했다. 부장 승진까지 걸린 시간이 6~7년에 불과했다. 차 대표는 “2000년대 초에 닷컴 붐이 있었는데, 그때 나도 트렌드를 따라가야 하지 않을까 고민했다”면서 “그때 도이치은행에서 창업투자사를 새로 만들었다고 해서 2001년 도이치뱅크 홍콩 지사로 자리를 옮겼다”고 말했다.

차 대표가 월가에서 승승장구할 때 이 대표는 대학에 남아 생물학과 박사 과정을 밟고 있었다. 이 대표는 “시카고대학 생물학과는 보통 의대 대학원에 진학하려는 이가 많이 들어온다”면서 “사실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잘 몰라서 박사 과정까지 밟았다”며 웃었다.

3억5000만 달러에 창업 회사 매각한 이 대표

그런데 그가 대학에 머물렀던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컴퓨터와 인터넷 때문이다. 1990년대만 해도 인터넷은 대학을 포함해 일부 기관만 사용했다. 최신 기종의 컴퓨터도 대학에서는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삼성전자를 다니던 아버지 덕분에 초등학생 때부터 컴퓨터와 친했던 이 대표에게 대학은 뭔가를 꿈꿔볼 수 있는 공간이었던 것. 그는 “당시 대학에서 메신저로 타 대학 학생과 문자를 나누고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숙제를 했는데, 밖에 나오면 인터넷은 전혀 딴 세상 이야기처럼 들리던 때였다”면서 “인터넷과 컴퓨터를 보면서 뭔가 새로운 것을 해볼 수 있겠다 싶었다”고 당시 상황을 말했다.

이 대표는 졸업 후 바로 창업에 도전했다. 1998년 호스트웨이라는 웹호스팅 기업을 설립했다. 차 대표는 당시 상황에 대해 “이 친구가 창업을 한다고 이야기했을 때 멋있고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이 대표는 책도 많이 읽고 다방면에 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노력하는 친구라서 성공할 것이라 생각했다”고 칭찬했다.

차 대표의 말대로 이 대표는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봤다. 인터넷이 일반화되면서 인터넷을 이용한 창업 붐이 불기 시작했다. 그 흐름을 보고 인터넷 이용을 원활하게 해주는 인프라 사업의 가능성을 느꼈다. 시카고대학 동문 선후배와 함께 창업에 도전했다. 승승장구했다. 호스트웨이는 현재 세계 5대 웹호스팅 회사로 성장했다. 한국을 포함해 세계 각국에 데이터 센터도 설립했다. 2013년에는 3억5000만 달러(3739억원)에 호스트웨이 아메리카를 매각했다.

잘나가던 금융맨 차 대표도 2006년 승부수를 던졌다. 당시 그의 고민을 들은 이 대표는 “안 된다. 너무 험한 길이다”라고 말릴 정도였다. 2006년 안젤로고든으로 자리를 옮기기로 한 것. 이 대표는 “안젤로고든은 펀드 규모만 30조원이 넘는 글로벌 대체 운용사지만, 업계 사람만 알지 그 기업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때 차 대표가 한국 지사 설립을 준비한다고 도이치뱅크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 너무 힘든 길이라고 말렸다”고 회고했다.

차 대표는 2006년 자신이 뽑은 직원 한 명과 함께 한국 시장에 도전했다. 그가 집중한 것은 부동산 투자였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을 대표하는 대체 투자 상품으로 꼽힌다. 차 대표도 “안젤로고든은 비상장 대체 운용사로는 글로벌 1위지만, 한국에는 낯선 기업이었다”면서 “처음 자리 잡는 데 너무 힘들었다”며 웃었다.

그의 승부수는 통했다. 그는 현재 한국·중국·일본 지사를 책임지는 아시아 공동대표다. 그가 한국에서 운영하는 펀드 규모만 2조원이 넘는다. 만일 수천억 원대 대규모 부동산 매각 소식이 들린다면 차 대표가 관여했다고 생각해도 무방할 정도로 한국 부동산 시장의 큰손이 되었다. 지난해 8월 부동산 업계를 들썩이게 한 서울 명동 국민은행 본점을 사들인 곳도 안젤로고든이다. 이 대표는 차 대표의 행보에 “이 친구는 정말 고생을 많이 했는데, 어려움을 이겨내고 한중일의 거대한 회사로 키워냈다”면서 “옆에서 지켜보면서 이 친구가 정말 승부사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말을 듣던 차 대표는 “이 대표 말대로 안젤로고든 초창기로 돌아가라면 이제 힘들어서 못 할 것 같다”며 웃었다.

승부사 기질 보여준 차 대표, 성공의 과실 나누는 이 대표


▎1990년대 초반 시카고대학 기숙사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이후 30여 년 동안 우정을 이어오고 있다. 전공도 다르고 성격도 반대지만, 두 사람은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할 때면 서로를 찾는다. / 사진:박종근 기자
차 대표가 안젤로고든이라는 승부수로 이 대표를 놀라게 했다면, 이 대표는 글로벌 액셀러레이터 스파크랩 설립으로 친구를 놀라게 했다. 설립 5년이 된 스파크랩은 초기 단계에 있는 스타트업을 선발해 13주 동안 액셀러레이팅을 도와주고, 이후 데모데이를 열어 투자와 연계 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80여 개 스타트업의 액셀러레이팅을 진행했다. 이 대표는 “나름대로 한국의 초기 스타트업 생태계에 어느 정도 역할을 했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차 대표는 “이 대표처럼 엑시트에 성공하고 나면 조금 풀어질 것도 같은데, 이 친구는 성공의 노하우를 함께 나눠야 한다며 바로 액셀러레이터를 설립했다”면서 “이 대표가 초대해서 스파크랩 데모데이에 갔는데, 정말 이 친구가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다”며 웃었다.

차 대표의 말을 듣고 있던 이 대표도 질 수 없다는 듯이 친구 자랑을 늘어놨다. 그는 “친구와 밥을 먹다 보면 대단한 사람들이 와서 차 대표에게 아는 체를 하는데, 그럴 때 친구가 놀랍기만 하다”면서 “조 단위 규모의 펀드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용기와 배포를 차 대표에게 많이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의 친분은 가족으로 넓어졌다. 가족단위 모임도 많다. 특히 아이들이 같은 학교에 다니면서 가족 간의 끈끈함이 더 강해졌다. 이 대표는 “첫째, 둘째가 차 대표 첫째와 함께 미국에서 같은 고등학교에 다닌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서로의 장점을 물어봤다. 차 대표는 이 대표에 대해 “사람을 믿으면 끝까지 함께하는 의리가 많다”면서 “호스트웨이 창업이나 스파크랩을 설립할 때 대부분 시카고대학에서 인연을 맺은 이들과 함께 했다”고 말했다. 또 “이 대표의 지치지 않는 에너지와 조직 운영을 해내는 리더십이 부럽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차 대표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보여주는 날카로운 분석력이 정말 좋다”면서 “사람에 대한 배려와 일에 대한 꼼꼼함은 차 대표만의 장점이다”고 설명했다. “30년 가까이 이 친구를 옆에서 지켜보는데 사람에 대한 배려는 정말 본받아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두 사람이 각자 친구에게 바라는 것은 없을까. 대답은 두 사람의 첫 만남처럼 싱거웠다. “친구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알프스를 넘는 것이다” “친구와 함께 카페를 내서 지내고 싶다” 같은 소박한 답변이 돌아왔다.

- 최영진 기자 cyj7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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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호 (2018.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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