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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티. 듀퐁클래식에 새긴 그의 스토리] 아라리오 김창일 회장 

예술을 위해 사업을 하다 

대담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 진행·정리 유부혁 중앙일보 이노베이션랩 기자 yoo.boohyeok@joongang.co.kr
기업가 김창일 아라리오 회장은 컬렉터로 대중에게 알려져 있고 미술계에선 화가로 활동한다. 그는 자신의 이런 활동들이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기여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작품을 사되 팔지 않는 것도 작품들이 자신만의 것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란다. 40년 가까이 모은 작품과 후원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이기 위해 그는 갤러리와 뮤지엄도 꾸준히 늘린다. 예술을 위해 사업을 한다는 김창일 회장을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에 있는 그만의 작업공간에서 만났다.

▎김창일 아라리오 회장은 듀퐁 셔츠 소매에 ‘dream and pain are closed friends’라고 새겼다. / 사진:S.T.듀퐁클래식 제공
세계적인 권위의 미술 매체 아트넷은 2016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부부와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그룹 회장을 세계 200대 컬렉터로 선정했다. 한국의 주식 부호 1, 2위에 이름을 올리는 유명 기업인인 데다 평소 미술 애호가로 알려져 있는 인물들이기에 놀라울 것 없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하지만 2002년 이후 꾸준히 100대 혹은 200대 컬렉터에 이름을 올리는 또 다른 인물이 있다. 대중에겐 생소한 이름 김창일. 2016년에는 세계적인 권위의 미술 매체인 아트넷으로부터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세계 100대 컬렉터에 선정돼 49위에 이름을 올렸다.

1978년 어머니가 빚 대신 받은 천안의 터미널 매점을 운영해 당시 매년 1억 이상씩 벌어들였고 이후 10년 만에 아예 터미널을 인수했다. 그는 터미널 주변 부지 약 6만6000㎡(2만 평)을 사들였고 대형주차장과 문화공간을 추가해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개념인 복합문화공간을 만들었다. 이후 세계를 돌며 지난 40년간 미술품을 4000여 점 가까이 수집했다. 씨킴(CI KIM)이란 이름의 작가로 2년에 한 번꼴로 개인전을 열며 활동하는 김창일 회장. 그는 사업가이자 컬렉터, 화가이기도 하다. 직전까지 작업에 몰두하던 맨발의 김창일 회장이 작업실 문을 열고 나왔다.

송길영: 경영인이 아닌 작가의 모습이다.

김창일: 내가 하는 작업은 아날로그다. 아날로그 감성이란 게 결국 심플함 아닌가. 난 단순하다. 어린 시절부터 나만의 우주(‘생각의 틀’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가 있었고 그것에 몰입했다. 그게 재밌었다. 오전에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어 작업하다 보니 이런 모습이다. 본인이 갖고 있는 철학을 확장해야 한다. 어린이들에게 연필을 주면, 그 친구가 그리는 사과는 볼 때마다 다르다.

그것이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이다. 단순하게 생각해야 그렇게 접근할 수 있다.

송길영: 이야기를 하는 회장은 마치 시인의 눈을 가진 것 같은 느낌이다.

김창일: 난 어린 시절 지독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꽃과 나무, 돌과 이야기했다 하면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 수업 중 나비가 지나가면 나비를 보다가 혼나는 일도 많았다. 당시는 세상에 나가면 제대로 살긴 힘들 거란 소리도 꽤 들었다. 그래도 싸움에서 져본 적은 없다. (웃음)

송길영: 그럼에도 경영학을 전공한 이유는 무엇인가?

김창일: 특별한 이유 없다. 그냥 어릴 때 ‘부자 될 거야’란 말을 늘 들어서일까…. 난 어릴 때 할아버지, 할머니랑 살았다. 집에 다섯 형제가 있었는데 나만 보면 늘 “넌 부자 될 거야”라고 하시더라. 점쟁이들도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 대학은 3수만에 갔는데 공부는 안 했다. 한번 생각이 들어오면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28살에 졸업하고 천안에 내려가서 터미널 매점을 운영했는데 그때부터 운전기사를 뒀다. 생각하다 보니 운전대를 놓쳐서 큰 사고를 당할까 걱정되더라. 어떤 일이든 몰입하면 발작할 만큼 날카롭고 손발이 마비될 정도로 에너지를 쓴다. 지금도 문자를 쓸 줄 모른다. 시작하면 빠져들까 봐.

송길영: 젊은 시절 큰돈을 벌었다. 왜 서울에 올라오지 않고 천안에 머물렀나?

김창일: 천안은 세상에서 제일 편한 곳이란 뜻 아닌가? 게다가 복합터미널이 있는 대흥동은 크게 흥한다는 뜻이고 이후 바뀐 주소는 신부동이다. 새로운 부를 쌓는. 이름이 좋더라.

송길영: 풍수를 믿나?

김창일: 믿진 않는다. 다만 어디 있느냐가 중요하더라. 난 내다보며 생각하고 실행하는 걸 즐긴다. 제주도에 내려온 것도 아날로그는 오래될수록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남들이 뭐라고 해도, 계속해서 투자하고 투자한다.

# 그가 만든 아라리오는 한국의 대표적인 민요 ‘아리랑’에서 따왔다. 외국인도 발음하기 편한 아라리오를 기업명으로 정했다. 아라리오는 국내 최초로 전속작가제도를 도입해 국내외 작가 40명을 전속으로 두고 있다.


▎송길영 부사장 (좌측)과 김창일
송길영: 미술을 전공하거나 관련 유학을 하지 않았다.

김창일: 난 실전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지혜는 행하는 것이다. 갤러리를 하는 이유는 미술관을 만들기 위해서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내가 잘하는 것만 한다. 모르는 것엔 관심이 없다.

송길영: 컬렉터의 길에 접어든 시기는 언제인가?

김창일: 28살에 사업을 시작하면서 바로 접어들었다. 28년간 열등감을 느껴본 사람의 촉이었다. 난 지금도 일을 하기 전 ‘반드시 성공할 거야’라고 입술로 반복한다. 40년간 그랬다. 난 그림을 구매할 때 다른 사람의 추천을 받지 않는다. 내 느낌대로 선택한다. 그렇게 산 작품이 데이미언 허스트의 작품이다. 당시엔 200만 달러가 비싸다고들 했지만 지금은 서로 사겠다고 찾아온다. 당시 촌놈이 그림을 비싸게 샀다고 세무조사도 받았다.

# 1978년 대학을 졸업한 후 바로 터미널 매점을 운영을 시작한 그는 그해 서울 인사동에서 남농 허건, 운보 김기창 등의 작품을 처음 구입했다. 사업가와 동시에 컬렉터로 입문한 셈이다.


▎사진:S.T.듀퐁클래식 제공
송길영: 한번 구매한 작품은 되팔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김창일: 구매는 내가 했지만 소유권은 내가 아닌 우리 사회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림 가격이 1~2만 달러이고 마음에 들면 누구든 돈 벌어서 산다. 하지만 이런 그림은 누군가 나서서 구매하고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난 단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발굴한다는 재미를 누리고 있다.

# 김창일 회장은 2013년 11월 건축가 김수근의 역작으로 불리는 공간 사옥을 150억 원에 인수했다. 이후 직접 공간을 리노베이션하고 현대미술작가 작품 100여 점을 직접 디스플레이했다.

송길영: 기업가, 컬렉터, 화가 중 무엇으로 남길 바라나?

김창일: 모든 일은 연결돼 있다. 하나의 일만 한다는 건 과거의 이야기다. 가령 나는 여자 옷을 보면서 색감을 배운다. 평소 잡지를 많이 보는데 충동이 생기면 바로 그린다. 모든 건 연결돼 있다. 다만 작업하다 보면 발작을 일으킬 만큼 내 모든 에너지를 쏟는다. 아티스트는 노동한 만큼의 결과가 나오는 게 아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상품화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자기의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으므로 자신을 믿어야 한다.

송길영: 예술을 가까이하다 보면 안목은 높아지기 마련이다. 컬렉터, 화가로서의 활동이 사업에 도움이 됐을 것 같다.

김창일: 동의한다. 1989년에 당시 250억원을 들여 복합터미널을 만들겠다고 하니 주변에서 만류하더라. 시에서도 규모를 줄이면 좋겠다고 했었고. 천안에 내려와 ‘땅장사 한다’는 비난도 들었다. 난 내가 생각하는 규모의 터미널이 있었다. 조각공원부터 멀티플렉스까지 내가 생각하는 공간은 달랐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어떤 건물이든 내부를 훤히 상상할 수 있다. 난 개인적으로 예술가는 하나님이 라이선스를 준 거라고 생각한다(그는 예술가는 어느정도 타고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소위 ‘예술가’라고 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생각을 한다. 난 작품을 볼 때나 그릴때 20년 후를 생각한다.

송길영: 현재 그리고 타인을 의식하기보다 20년 후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으려 고민한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김창일: Look at the best. 이건 내가 옷을 입으면서 배운 거다. best를 추구하는 것이 다른 이들에게도 유익하더라.

송길영: 예술가가 사업을 하면 잘할 수 있을까?

김창일: 영혼을 가지고 있다면 무엇이든 통한다.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뮤지엄의 새로운 형태를 고민하고 있다. 뮤지엄 박스. 뮤지엄의 권위를 잃지 않고 긴장감을 주되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생각한다. 음악과 미술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안내서이기 때문이다. 예술은 따라가거나 타협하는 게 아니라 이끌어가는 거라 생각한다. 일본의 츠타야는 서점이란 장소를 문화공간으로 만들었다. 나는 예술품과 럭셔리숍을 결합한 공간을 만들고 싶다.

※ 아라리오는··· - 1978년 복합문화터미널로 시작한 아라리오는 신세계백화점 충청점, 뮤지엄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해 문화예술 전문기업으로 성장했다.

- 대담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 진행·정리 유부혁 중앙일보 이노베이션랩 기자 yoo.boohyeok@joongang.co.kr

201804호 (2018.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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