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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 보라뇨 알칸타라 회장 

친환경 택한 ‘메이드 인 이탈리아’ 명품 

이탈리아(베니스)=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안드레아 보라뇨 회장을 만났다. 알칸타라 소재는 100% 합성소재이면서 천연가죽이 지배하는 명품 시장을 노리고 있었다. 그는 ‘메이드 인 이탈리아’가 지닌 핵심 가치는 ‘아름다움’과 ‘초호화’가 아니라 ‘지속가능성’이라고 강조했다.

▎안드레아 보라뇨 알칸타라 회장은 1990년 처음 알칸타라에 발을 내디딘 이후 올해로 이 회사를 위해 일한 지 28년째를 맞는다. / 사진:알칸타라 제공
# 알칸타라·구찌·마이클코어스·지미추 공통점이 있다. 동물 털이나 가죽을 사용하지 않는 명품 브랜드다. 구찌와 마이클코어스는 올해부터 천연 모피를 쓰지 않겠다고 나섰다. 전 세계 가죽업계를 주름잡던 명품 브랜드의 파격적인 선언인 셈이다. 명품 반열에 올라선 알칸타라(Alcantara S.p.A)는 동물 가죽을 사용한 적이 없다. 그리고 이 회사는 좀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환경문제는 흔히 ‘공유지의 비극’ 논리 때문에 해결이 힘들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알칸타라엔 오히려 무기가 됐죠. 2009년부터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량 ‘0’에 도전했습니다. 2011년 유통·사용·폐기되는 전 과정에서 탄소 중립을 실현했죠. 핵심 경영전략도 ‘지속가능경영’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 덕분에 탄소중립성 실현 이후 알칸타라 브랜드 가치는 14배나 뛰었습니다. 사회적 의무이자 책무인 ‘환경보호’에 주력해도 또 다른 경쟁력을 얻을 수 있다는 증거죠.”

지난 3월 2일(현지시각) 이탈리아 베니스 국제대(VIU)에서 만난 안드레아 보라뇨(67)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한 말이다. 알칸타라와 베니스 국제대가 ‘지구온난화와 저탄소화’란 주제로 학술 심포지엄을 연 이날 총 30여 명에 달하는 동서양 경제·과학계 석학과 글로벌 기업 연구진 등이 관련 주제를 논하기 위해 모였다.

물론 보라뇨 회장의 추가 인터뷰는 심포지엄을 마친 다음에 이뤄졌다. 심지어 세계적인 석학과 기업들이 자신들의 연구결과나 성과를 얘기했지만, 알칸타라 관계자만은 빠져 있었다. 본격적인 인터뷰에 나선 보라뇨 회장은 ‘진정성’ 얘기를 꺼냈다.


▎이탈리아 테르니 인근 네라몬토로에 있는 알칸타라 생산시설과 R&D 센터.
“정말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거죠. 알칸타라 회사 관계자의 성과를 내밀었다면 자칫 심포지엄이 알칸타라 광고홍보 행사로 전락할 위험이 있습니다. 행사 취지를 200% 살리기 위해선 알칸타라 자랑(?)은 빼야 했죠. 지속가능경영을 강조하려면 맹목적인 비용절감보다는 사명감이 지닌 가치를 더 중시해야 합니다. 상업적인 목적에서 심포지엄을 연 게 아닙니다.”

그의 의지는 확고했다. 하지만 2009년 그가 뜬금없이 저탄소 운동을 펼치겠다고 했을 때 공감하는 회사보다 고개를 갸우뚱하는 곳이 더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알칸타라가 추진하는 핵심 경영전략의 하나로 ‘지속가능경영’이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알칸타라가 투자한 2800만 유로(약 370억원) 중 25% 정도인 700만 유로가 지속가능경영을 펼치는 곳에 쓰였다. 올해는 투자규모를 최대 3배 이상 늘릴 계획이다.

보라뇨 회장의 생각은 꽤 구체적이다. 그는 “알칸타라는 100% 화학 소재인 폴리에스테르와 폴리우레탄으로 출발해 패션 시장에 뛰어든 케이스”라며 “최근까지 전체 원재료 중 30% 정도는 바이오 원료로 대체했고, 각종 폐기물 처리나 유독성 화학물 사용을 절반 이상 줄였다”고 말했다. 이런 성과는 수년간 관련 연구개발(R&D)과 시설개량에 투자를 이어온 덕분이다. 2009년 유럽 최초로 민간 감독기관인 기술감독협회(TUV SUD)에서 탄소중립성 기업 인증을 받았다. 2011년부터는 제품이 유통·사용·폐기되는 전 과정에서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사실 ‘환경문제’는 섬유 산업에서 판도를 바꿀 수 있는 핵심 요소 중 하나다. 대다수 럭셔리 비즈니스가 천연 가죽을 파는 일에 집중돼 있다. 옷을 파는 패션계를 보면 매장 맨 앞에 가죽 가방을 내세운다. 자동차 시트업계의 경우 직물·인조가죽과 천연가죽 두 축으로 나뉠 정도다.

“가죽만이 명품이라는 생각은 구식”


▎페론 에어로스페이스에 납품한 항공기 실내용 소재
게다가 가죽 가공산업 자체는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꼽힌다. 염색 등 각종 가공과정에서 방대한 물을 쓰고,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화학물질을 배출한다. 디자인은 현대화·첨단화를 추구해왔지만, 생산방식이 ‘구식’이어야 명품 대접을 받는 일은 아이러니였다. 그만큼 섬유 산업에서 소재를 바꿔 명품 반열에 올라선다는 것만으로도 ‘혁신’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는 까닭이다.

최근엔 미국 테슬라와 같은 미래지향적 기업들도 앞으로 동물성 가죽 소재를 쓰지 않겠다고 나설 정도로 소재 산업은 또 다른 혁명기를 맞고 있다. 보라뇨 회장도 “가죽만이 명품이라는 생각은 구식”이라며 “디자이너와 소비자가 원하는 질감이나 색상, 느낌 모두 알칸타라 소재로 만들 수 있다”고 맞장구쳤다.

그는 앞에 놓인 책자를 꺼내 슈퍼카 브랜드 람보르기니사 시트를 보여줬다. 스웨이드 재질 느낌이 강하지만, 모든 동물 가죽이 지난 패턴과 질감을 알칸타라 소재로 표현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자신감을 드러내기 위해 알칸타라는 이탈리아 로마·밀라노, 미국 LA 등 주요 박물관과 협력해 전시회를 열고 있다. 그는 “세계적인 아티스트·디자이너·스타일리스트가 알칸타라 소재로 무한대의 창의성을 표현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페라리 488 피스타 실내.
하지만 10년 전만 해도 가죽 명가로서 ‘메이드 인 이탈리아’ 라벨이 지닌 상징성은 알칸타라 성장의 발목을 잡기도 했다. 2004년 적자에 허덕이던 알칸타라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었다. 당시는 보라뇨 회장이 회장직을 막 수락했던 때로 직원들 사이에서는 ‘결국 기능성 소재로 회사가 망할 것’이란 소문이 공공연하게 나돌 정도였다. 보라뇨 회장은 “직원들이 알칸타라라는 소재가 지닌 가능성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시기”라며 “‘메이드 인 이탈리아’ 라벨을 고집했지만, 정작 우리는 소재가 지닌 기능성에만 치우쳐 브랜드 포지셔닝을 잘못했다는 인식을 하지 못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만큼 가죽이 아닌 합성소재로 명품을 만드는 일은 무척이나 고된 일이었다.

인내한 보라뇨 회장의 ‘뚝심경영’은 통했다. 알칸타라는 2006년부터 흑자전환에 성공했고, 소재 활용영역을 꾸준히 넓혀왔다. 알칸타라의 매출액은 8년 전보다 약 세 배나 뛰어올랐다. 지난해 기준 매출액은 1억8720만 유로였고, 올해 2억 유로 돌파를 앞두고 있다. 대주주인 일본 기업도 2021년까지 3억 유로를 들여 생산시설을 확대한다는 계획에 동참하며 그의 손을 들어줬다. 현재도 대규모 투자계획을 제외한 모든 경영사항을 보라뇨 회장에게 일임하고 있다.

그의 ‘뚝심경영’엔 화학공학 전공이 한몫한다. 알칸타라 소재의 잠재력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알칸타라 소재는 본래 1970년 일본 도레이그룹의 연구원이었던 미요시 오카모토가 특허 신청한 소재에서 출발했다. 소재 활용법을 고민하던 도레이그룹은 이탈리아 석유회사 ENI그룹과 합작회사를 차린다. 그게 지금의 알칸타라다. 지금도 이 둘의 관계는 끈끈하다. 본사와 생산시설 및 연구개발 센터를 이탈리아 밀라노에 두고 있지만, 회사 주식은 도레이그룹(70%)과 미쓰이그룹(30%)이 100% 보유하고 있다. 그 바탕에는 소재의 품질에 대한 확신이 확고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보라뇨 회장도 1990년 알칸타라에 합류하면서 신소재의 잠재력을 단번에 알아봤다. 폴리에스테르와 폴리우레탄이 주성분인 100% 합성소재이면서 실크처럼 부드럽고 내구성이 강한 신소재에 주목하게 된다. 더 나아가 미래엔 패션뿐만 아니라 자동차·가구·전자제품 등 가죽이 쓰이는 모든 곳에 알칸타라 소재가 주목받을 것임을 확신했다.

그래서일까. 적자에 시달릴 때 그가 제일 먼저 단행한 것은 직원과의 대화였다. 알칸타라 소재가 가진 힘과 장점을 비즈니스 확장에 연결하려면 일선에서 뛰는 직원들이 확신해야 한다고 믿었다. 화학 소재에 이해가 높았던 그였기에 직원들의 이해도를 높이는 한편 문제의식을 느끼고 함께 토론에 참여하도록 유도했다.


▎온쿄 스피커 SC-3B. / 사진:알칸타라 제공
그 결과 알칸타라는 글로벌 기업이 찾는 주요 소재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현재 협력 중인 파트너사도 분야를 막론한다. 자동차에선 람보르기니, 마세라티, 페라리, 벤틀리, BMW, 렉서스 등이 주요 고객이다. 패션기업에선 보테가베네타, 막스마라, 아디다스, 스와로브스키, 샤넬 등이 있고 가구사로는 토레, 레오룩스, 카펠리니 같은 명품 브랜드가 알칸타라와 손잡았다. 최근 IT 시장도 알칸타라의 문을 두들겼다. 젠하이저와 온쿄의 헤드폰,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노트북, 삼성전자 갤럭시 S8 시리즈 케이스 등에도 알칸타라가 쓰일 정도로 점차 그 영역과 쓰임새가 확대되고 있다.

일각에선 명품이 지닌 ‘희소성’이란 가치가 훼손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안드레아 보라뇨 회장은 이렇게 답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금으로 만든 장신구를 그 누가 두른다 해서 가치가 사라지는 건 아닐 겁니다. 어떤 이는 미국 인텔사 얘기를 꺼내며 혹시 협력사보다 더 커지려는 전략은 없냐는 물음도 던집니다. 알칸타라는 금 같은 존재가 되고 싶은 거죠. 홀로 빛나는 것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표현물과 제품 속에 녹아들어 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알칸타라를 원하는 한국 기업이 있다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박스기사] “환경, 지속가능성, 저탄소화… 이젠 생존 문제다”


▎니컬러스 스턴 런던정경대 교수(왼쪽)
27년 전 세계적인 석학 니컬러스 스턴 교수가 중국을 찾았다. 당시 그는 스모그가 자욱한 중국 베이징을 ‘더러운 연료를 태우며 제멋대로 사는 도시’라고 표현했다. 다행히 최근엔 중국은 석탄을 줄이고 전기차 대국으로 성장했다. 경제 발전과 환경 보호는 공존할 수 있음이다. 지난 3월 이탈리아 베니스에선 환경문제를 되짚어보는 자리가 다시금 마련됐다.

“과학계, 기업, 일반 시민들은 환경문제를 두고 과연 얼마나 소통하고 있습니까?”

“미국 트럼프 정부는 지난해 6월 파리협약 탈퇴를 선언하면서 친환경 정책인 ‘청정전력계획’도 백지화했습니다. 이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수소차와 충전소 보급 정책, 그와 관련된 다양한 수소산업이 펼쳐지는 수소사회를 맞으려면 정부와 기업 중 어느 누가 나서야 할까요?”

열띤 토론이 벌어진 환경 심포지엄에서 나온 화두다. 지난 3월 1일부터 2일까지 양일간 이탈리아 베니스 ‘산 세르볼로(San Servolo)’섬에 있는 베니스 국제대학(VIU)에서 열린 이번 국제 심포지엄의 주제는 ‘변화에 대응하라: 글로벌 온난화와 저탄소화’였다. 올해로 네 번째를 맞는 이번 심포지엄은 이탈리아 소재기업 알칸타라와 베니스 국제대가 손잡고 ‘지속가능성’을 논하는 자리였다. 움베르토 바타니 베니스 국제대 학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1968년 로마클럽에서 광범위한 학술적 토론이 시작됐습니다. 이후 1972년 ‘성장의 한계(The Limits to Growth)’란 보고서에서 ‘지속가능성’이란 단어가 처음 사용됐죠. 그리고 50년 만에 베니스 국제대에서 세계적인 과학·글로업 기업과 기관, 전문가가 모여 기술과 혁신, 우리 삶을 둘러싼 환경 문제를 다시금 살펴보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세계적인 석학과 글로벌 기업·기관 전문가도 연설자로 나섰다. 특히 니컬러스 스턴 런던정경대 교수는 2006년 10월 기후변화를 경제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환경과 경제가 상충하는 의제가 아니라는 내용을 담은 ‘스턴 보고서’를 발표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글로벌 기업으로는 에넬 그룹, BP, 토요타, 닛산, 혼다, 아우디 등이 연사로 나섰다.

주로 전기차, 수소차 등 친환경 차량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는 기업들이 앞다퉈 개발 성과를 공개했다. 요시카즈 타나카 토요타 수석연구원은 “1992년부터 수소연료전지 전기차(FCEV) 개발을 최우선 전략으로 삼았다”며 “앞으로 계획은 완전한 수소차 개발에 몰두하는 것이며, 지금도 수소차를 상용화할 수 있도록 가격 현실화에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 국제에너지기구(IEA), 기후 정책 이니셔티브온라인 팩트체크 사이트 스놉스닷컴의 알렉스 카스프락 기자는 “과학계가 나서서 환경문제와 관련된 과학적 몰이해와 가짜뉴스를 배제하고, 일반인이 좀 더 쉽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알려야 한다”며 관련 전문가들의 책임감 있는 행동을 요구하기도 했다.

모든 세션을 마치며 안드레아 보라뇨 알칸타라 회장은 “환경문제를 두고 학계와 기업, 사회 간 아직도 상당한 인식 차이가 있음이 이번 심포지엄에서 드러났다”며 “기후변화와 저탄소화에 실질적으로 변화를 줄 수 있는 문제의식과 방안을 공유해 그 차이를 줄이는 계기가 됐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 이탈리아(베니스)=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

201804호 (2018.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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