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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기 ‘대쉬 프로’ 체험기 

스마트폰으로부터 두 손을 자유롭게 

최영진 기자 cyj73@joongang.co.kr
지난해 12월 27일 ‘히어러블의 선두주자’라고 주장하는 독일 스타트업 브라기가 내놓은 무선 이어폰 ‘대쉬 프로’가 한국에 소개됐다. 무선 이어폰으로 대표되는 히어러블 시대가 열릴까. 1개월 동안 대쉬 프로를 체험했다. 일상생활에서 스마트폰 없이 생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대쉬 프로는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고도 전화 통화와 음악 듣기가 가능하다. / 사진:브라기 제공
스마트폰은 흔히 ‘손안의 컴퓨터’라고 부른다. 노트북이나 데스크톱 컴퓨터를 항상 소지하고 다니는 것은 무리다. 무겁고, 크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은 화면의 크기 같은 불편함을 감수하면 노트북 사용을 어느 정도 대체할 수 있다. 그런데 ‘한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는 것도 불편하다’고 말한다면? 그 대안은 있을까. 무선 이어폰으로 대표되는 히어러블(Hearable) 기기는 대안이 될 수 있다. 히어러블 기기를 1개월 동안 체험한 결과다.

히어러블은 듣다(Hear)와 웨어러블(Wearable)의 합성어다. 그 대표주자는 2013년 독일에서 설립한 스타트업 브라기(Bragi)다. 대표적인 제품은 지난해 말 한국에 론칭한 대쉬 프로(Dash Pro)다. 이 제품 외에 어떤 히어러블 기기가 있는지 살펴봤다.

구글 어시스턴트 이용해 다양한 활동 가능


# 오른쪽 귀 옆을 손가락으로 툭툭 두 번 친다. 귀에 착용하고 있는 이어폰에서 ‘띠리링’ 하는 소리가 난다. 1초 정도 기다리면 ‘틱’ 하는 소리가 나온다. 띠리링 소리는 구글 어시스턴트에 접속한다는 의미다. 틱 소리는 구글 어시스턴트가 준비됐으니 원하는 것을 말하라는 신호다. “누구누구에게 전화해줘.” 이어폰에 전화를 거는 음향을 듣게 된다.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이어폰에서 “여보세요” 하면서 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바지 주머니에 들어 있는 스마트폰을 꺼내지 않은 채 통화를 한 것이다.

# 지하철을 타고 목적지를 가는 도중이다. 마침 자리가 있어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이어폰에서 ‘띠리링’ 하는 음향이 들린다. 누군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책을 읽고 있는 중이어서, 바지 주머니에 있는 스마트폰을 꺼내는 게 불편했다. 손목에 차고 있는 스마트워치로 발신인을 확인했다. 070으로 시작하는 번호가 떴다. 마케팅 전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전화를 끊었다. 만일 회사나 집에서 전화가 왔다면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을 것이다. 그러면 전화가 연결된다. 머리 제스처로 걸려온 전화를 받을지 말지를 결정한 것이다. 바지 주머니에 있는 스마트폰을 꺼내지 않았다.

# 요즘 같은 환절기에는 어떤 옷을 입고 나가야 할지 종잡을 수 없다. 이어폰을 끼고 있는 오른쪽 귀 옆을 손가락으로 두 번 톡톡 두드린다. ‘띠리링’ 하는 소리가 난 후 ‘틱’ 하는 소리가 났다. “오늘 날씨를 알려줘”라고 이야기했다. 이어폰에서 “알겠습니다. 오늘의 서울 날씨는~”으로 시작하는 구글 어시스턴트의 날씨 예보가 흘러나왔다. 오늘의 날씨는 영상 12도에 바람이 분다고 해서 가벼운 옷차림 대신 스웨터를 입었다. 스마트폰은 여전히 바지 주머니에 들어 있다.

# 봄이 오면서 그동안 미뤄왔던 운동에 도전했다. 나이를 먹으면서 몸이 예전 같지 않다. 그동안 즐긴 라켓 운동을 하고 싶지만 자신이 없다. 격렬하게 움직이고 나면 무릎과 다리가 너무 아프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선택한 것은 수영. 지루해서 수없이 포기했던 운동이다. 건강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수영을 해야만 한다. 새벽에 일어나 동네 근처의 문화센터로 이동했다.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후 대쉬 프로를 귀에 착용했다. 4G 메모리가 내장되어 있는 덕분에 좋아하는 음악을 저장해놓은 상태다. 오른쪽 이어폰을 손가락으로 톡 한 번 쳤다. 음악이 나온다. IPX7 등급의 방수 기능 덕분에 수영을 하면서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음악을 들으면서 수영을 하니 지루함이 덜했다. 수영을 하고 난 후 스마트폰을 켰다. 심박수·시간·수영 거리 등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조깅을 하거나 사이클링을 할 때도 스마트폰을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 이어폰만 끼면 된다. 운동 중 내 활동 내역이 이어폰에 기록되고, 스마트폰과 연동되면 수치로 확인할 수 있다. 운동을 할 때 굳이 스마트폰을 가지고 다니지 않게 됐다.

# 사무실 부근의 한 공원 벤치에 앉아 있다. 점심을 먹고 난 후 쏟아지는 졸음을 쫓고 봄볕을 쬐기 위해서다. 뭔가 무료하다. 오른쪽 귀 옆을 손가락으로 두 번 톡톡 친다. 여전히 구글 어시스턴트가 응답해준다. “음악 틀어줘”라고 말했다. 구글 어시스턴트는 여전한 목소리로 “네, 알겠습니다. 구글 뮤직을 실행합니다”라고 답변한다. 구글 뮤직에 등록해놓은 음악이 이어폰을 통해 흘러나왔다. 볼륨 조정은 오른쪽 이어폰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스윽 스치면 된다. 대쉬 프로를 사용하다 보니 트위터나 페이스북, 뉴스 같은 텍스트나 영화를 볼 때가 아니면 스마트폰을 바지에서 꺼내는 일이 줄어들었다.

동시통역 가능한 히어러블 기기 속속 출시


▎내장 메모리와 방수 기능이 있는 대쉬 프로는 음악을 들으면서 수영을 할 수 있는 히어러블 기기다. / 사진:내장 메모리와 방수 기능이 있는 대쉬 프로는 음악을 들으면서 수영을 할 수 있는 히어러블 기기다.
지난 1개월 동안 브라기의 대쉬 프로를 이용하면서 경험한 일이다. 보통 무선 이어폰 하면 통화와 음악 듣기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대쉬 프로는 무선 이어폰의 일반적인 기능 외에 개인비서와 MP3 플레이어, 운동 코치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한다. 구글 어시스턴트, 애플 시리, 아마존 알렉사 같은 음성 비서와 연동되기 때문이다.

대쉬 프로의 수입판매사 프레퍼스 장영수 대표는 “미국의 음성 비서 시장에서 알렉사가 70% 가까이 점유하고 있다”면서 “구글을 제친 이유는 그만큼 인식률이 좋고, 일상적인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대화 패턴이 다양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에서는 대쉬 프로와 알렉사를 연동하면 더욱 많은 음성 비서 기능을 이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에서도 일정 관리, 날씨, 알람, 뉴스 전달, 정보, 통화, 문자 보내기 등 다양한 구글 어시스턴트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의 많은 부분을 음성 비서를 이용해 해결할 수 있다. 이런 음성 비서와 연결할 수 있다는 게 대쉬 프로의 사용성을 높여주는 핵심이다.

대쉬 프로는 귀에 끼는 아주 작은 컴퓨터다. 150여 개 이상의 소형 부품으로 이뤄졌다. 여기에 27개 센서가있어 다양한 제스처와 스와이프를 인식할 수 있다. 32bit의 프로세서는 대쉬 프로가 이어폰이 아닌 조그마한 컴퓨터라고 알려준다.

대쉬 프로가 주목받는 또 다른 기능이 있다. 바로 실시간 통역이다. 다만 이 기능은 대쉬 프로 사용자끼리만 이용할 수 있다. 대쉬 프로 수입판매사의 도움을 받아서 이 기능을 체험해봤다. 작동 원리는 아이트랜스레이트(iTranslate)라는 통역 앱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 앱에 대쉬 프로를 연동하고 통역을 받는 언어, 즉 영어와 한국어 혹은 한국어와 일본어 등을 선택하면 된다. 이후 왼쪽 이어폰을 한 번 톡 친 후에 “안녕하세요”라고 상대방이 이야기를 하면 1~2초 후에 내 이어폰에서 “Hello”라고 나오는 식이다. 일상생활이나 여행 중에 길을 묻는 등 간단한 이야기는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렇지만 아직은 대쉬 프로끼리 펌웨어 버전이 같아야 하고, 아이트랜스레이트와 버전도 맞아야 하는 등 세팅부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장영수 대표는 “아이트랜스레이트 앱을 이용하기 때문에 동시통역 기능은 한계가 있다”면서 “해외여행에서 간단한 회화는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ㅇ라고 말했다.

히어러블 시장을 연 대쉬 프로 같은 기기가 속속 출시되고 있다. 시장 규모도 계속 확대되고 있다. 2017년 7월 코트라(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장보은 일본 도쿄무역관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히어러블 시장 규모는 2020년에 2016년의 4배인 4조8000억 엔(48조4742억원)으로 추산할 정도다. 장 무역관은 히어러블 시장을 연 무선 이어폰과 관련해 “좌우 스피커를 연결하는 코드마저 없앤 ‘완전 와이어리스 스테레오’ 이어폰이 각광받고 있다”면서 “현재 미국에서 출고되는 제품만 40개 이상이며 개발 중인 것을 포함하면 60개를 넘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미국 크라우드펀딩에 론칭한 히어러블 기기는 약 40 종류나 되고, 투자액만 3000만 달러(320억원)에 달한다.

2020년 히어러블 시장 50조원에 육박할 듯

히어러블 기기로 꼽히는 대표적인 제품은 대쉬 프로를 포함해 지난해 10월 출시된 구글의 픽셀 버즈(Pixel Buds), 올해 출시 예정인 네이버의 이어폰 마스(Mars), 애플 에어팟(AirPods), 삼성전자의 갤럭시 기어 아이콘X(Gear IconX), 미국 스타트업 웨이벌리 랩스가 선보인 파일럿(Pilot)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기기들은 각각 애플 시리나 구글 어시스턴트 같은 음성 비서와 연동하는 것이다. 여기에 피트니스 트래킹 기능이 더해져 운동 후 결과나 과정 등을 스마트폰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픽셀 버즈·마스·파일럿 등의 기기는 동시통역 기능도 제공한다. 구글코리아 측은 “픽셀 버즈는 아직 한국에 출시되지 않았다”면서 “언제 출시 될지는 아직 미정”이라고 말했다.

히어러블 기기가 속속 출시되는 이유는 음성을 기반으로 하기에 확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대쉬프로는 아마존 알렉사와 연동한다. 현재에도 알렉사를 이용하면 가정의 조명을 온·오프 할 수 있고, 각종 스마트홈 기기도 컨트롤할 수 있다. 자주 구매하는 물건은 몇 마디 말로 아마존에서 주문하는 기능이 있다. 스마트폰 없이도 대쉬 프로를 이용하면 스마트홈 기기를 제어하고,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것이다.

히어러블 기기와 연동된 음성 비서의 미래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개인 운동을 할 때 개인코치가 될 수 있다. 히어러블 기기로 수집된 사용자의 심박수나 호흡을 통해 ‘더 빠르게’ 혹은 ‘천천히’ 등을 코치해줄 수 있다. 히어러블 기기는 심박수나 호흡, 혈압의 변화 등을 상시 모니터링하는 헬스케어 기기로 진화할 수 있다. 이어폰을 통해 티켓이나 물건을 구매할 수도 있다. 운전자의 상태를 수집해 졸음운전 여부를 살펴서 운전자에게 자극을 줘서 깨울 수도 있다. 자율주행차 시대에 음성 비서는 필수적인 요건이 된다. 히어러블 기기로 자율주행차를 주행시킬 수도 있고, 다양한 차량 기기를 작동할 수 있다. 히어러블 기기와 음성비서를 연동하면 이렇게 쓰임새가 다양해지는 것이다.

장보은 도쿄무역관은 “히어러블 단말기는 이용자의 현재 정보와 무엇을 하는지 상세히 파악해 적절한 정보를 음성으로 알려주는 비서 같은 존재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히어러블 시장은 단말기에 장착되는 다양한 센서와 음성 인터페이스, 인공지능과의 조합을 통한 발전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했다.

대쉬 프로를 1개월 동안 체험하면서 만족했던 또 다른 점은 양손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스마트폰에 점령됐던(?) 손마저 무선 히어러블 기기 덕분에 자유로워진다. 사람들의 양손이 스마트폰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면 책이나 신문 같은 아날로그 매체가 그 자리를 차지할지도 모른다.

- 최영진 기자 cyj73@joongang.co.kr

201804호 (2018.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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