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남의 TRAVEL & CULTURE] 오스트리아-툴른(Austria-Tulln) 

도나우강 변에서 만나는 로마제국과 『니벨룽의 노래』의 한 장면 

글·사진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툴른은 수도 빈에서 북서쪽으로 약 30킬로미터 떨어진 도나우강 변에 있는 인구 15000명 정도의 아담한 소도시로, 천재화가 에곤 실레가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툴른은 일반 여행자들에게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은 곳이지만,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손꼽히며 게르만 대서사시 『니벨룽의 노래』에서도 언급된다. 이런 연유로 시내 곳곳에서 로마제국 시대의 유적을 볼 수 있다.

▎서쪽에서 온 크림힐트 일행과 동쪽에서 온 훈족의 왕 아틸라 일행이 만나는 장면을 묘사한 니벨룽 분수의 조각 / 사진:정태남
도나우강 철교를 지나 툴른으로 들어오는 기차를 보니 20세기 초 표현주의 화가 에곤 실레(1890~1918)가 머리에 떠오른다. 그는 이 도시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그의 아버지는 툴른 역장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어릴 때 기차를 즐겨 그리곤 했다. 에곤 실레는 초기에는 클림트의 영향을 받다가 나중에는 자신만의 고유한 화풍을 구축했다. 그가 묘사한 인간들은 대부분 불안한 모습이고 육체는 뒤틀려 있고 그 속에는 관능적 욕망뿐 아니라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엿보인다. 에로티즘과 죽음으로 인간의 구원을 표현하려 했던 것일까? 툴른은 에곤 실레 탄생 100주년을 맞아 1990년에 그를 기념하는 박물관과 동상을 도나우강 변에 세웠다.

화가 에곤 실레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화가 에곤 실레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세운 동상. / 사진:정태남
도나우강은 툴른을 낳았고 도시의 성격을 형성했다. 그래서 툴른의 정식 지명은 툴른 안 데어 도나우(Tulln an der Donau: 도나우강 변의 툴른)다. 도나우강이라면 으레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왈츠 곡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이 연상되겠지만, 이곳에서는 로마제국의 역사가 먼저 머리에 떠오른다. 도나우강은 라인강과 더불어 로마제국의 북쪽 국경선이자 문명세계와 야만 세계의 경계선이기도 했다. 툴른은 빈과 마찬가지로 까마득한 옛날 로마인들이 제국의 최전방을 지키기 위해 도나우강 변에 세운 여러 요새 중 하나였다. 이 요새는 나중에 도시로 발전했는데 옛 지명은 코마게나(Comagena)였다.

이러한 사실을 말해주듯 거리 곳곳에 로마제국 시대의 유적이 보이고 도나우강 변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에는 도나우강 국경선을 지키고 있는 듯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121~180)의 기마상이 세워져 있다. 이 기마상은 복사본이고 원본은 로마의 캄피돌리오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로마제국의 황금기인 오현제 시대의 마지막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특이하게도 철학자 황제였다. 그런데 고명한 황제가 통치하던 시기에 로마제국은 이전의 평화 시대와 달리 외적의 침입을 받아 국경선이 곳곳에서 뚫리기 시작했다. 게르만족의 여러 부족이 도나우강을 넘어 로마제국 영토를 유린하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아들 콤모두스를 데리고 몸소 도나우강 국경 최전방까지 올라와서 이들과 대적했는데,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첫 부분은 다름 아닌 당시 상황을 재현한 것이다.

전장을 종횡무진하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병을 얻어 기원후 180년 3월 17일 도나우강이 보이는 야전막사에서 조용히 죽음을 기다렸다. 그가 죽은 후 로마제국의 국운은 서서히 기울어지다가 5세기 중반에는 로마제국의 마지막 숨통을 끊어놓으려는 듯 훈족이 대거 침입했다. 기마술과 궁술에 뛰어났던 훈족은 당시 중앙아시아에서 유럽에 이르는 거대한 제국을 세우고는 유럽을 온통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도나우강 변에 세워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기마상 / 사진:정태남
그런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기마상을 자세히 보면 뭔가 빠져 있다는 느낌이 든다. 안장이 매우 허술하고 양쪽 발이 허공에 떠 있다. 발을 받쳐주는 등자, 즉 발걸이가 없다. 등자는 말을 탈 때 균형감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장치인데 서커스에서 묘기 부리는 게 아닌 이상 등자 없이 말을 제대로 탈 수 있을까?

툴른은 훈족의 왕 아틸라와 관련된 이야기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도나우강 변 산책로 중간쯤에 있는 ‘니벨룽 분수’라고 불리는 조각 분수를 보면 두 그룹의 군상이 서로 만나는 형태인데, 동쪽 군상의 대표의 모습은 동양인에 가깝고, 서쪽 군상의 대표는 미모의 서양 여인이다. 이 조각 분수 남쪽에 놓인 두꺼운 책은 제목이 ‘니벨룽엔리트(Nibelungenlied)’, 즉 『니벨룽의 노래』다. 펼쳐진 책장에 보이는 4행 운문은 에첼(Etzel)과 그의 수행원들이 훈족의 땅으로 오던 크림힐트와 가신들을 툴른에서 맞이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서 에첼은 훈족의 왕 아틸라의 독일식 명칭이다.

게르만 서사시 '니벨룽의 노래'


▎훈족의 왕 아틸라와 결혼하러 부르군트 왕국에서 온 크림힐트 / 사진:정태남
『니벨룽의 노래』의 시대적 배경은 기원후 5세기 중엽, 로마군이 북유럽 게르만족의 일파인 부르군트족과 동맹하여 라인강 중부 지역에서 훈족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난 다음이다. 『니벨룽의 노래』는 전편 ‘지크프리트의 죽음’과 후편 ‘크림힐트의 복수’로 구성되어 있는데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전편] 라인강 변 부르군트 왕국의 절세미인 크림힐트는 왕 군터(Gunther)의 누이동생이다. 하루는 그녀에게 크산텐의 왕자 지크프리트가 구혼하러 온다. 지크프리트는 니벨룽이라고 하는 소인족(小人族)을 정복하여 보물을 얻었는데, 당시 그 보물을 지키고 있던 괴물 용(龍)을 퇴치할 때 그 용의 피를 뒤집어쓰고 불사신(不死身)의 영웅이 되어 있었다.


▎박물관에는 로마제국 시대 코마게나의 유적과 유물이 보존된 로마박물관. / 사진:정태남
한편 군터는 북방 이젠란트의 여왕 브륀힐트와 결혼하고 싶었다. 하지만 여왕과 무예로 겨루어 이겨야만 결혼이 가능하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군터는 지크프리트에게 여왕을 이기게 해주면 여동생과 결혼시켜 주겠다면서 그의 도움을 청한다. 지크프리트는 니벨룽 보물의 마법을 이용하여 군터를 도와 그녀를 이기게 한다. 이리하여 군터는 브륀힐트와, 지크프리트는 크림힐트와 결혼한다. 하지만 몇 년 후 크림힐트와 브륀힐트 간에 말다툼이 벌어져 결혼 비밀이 누설되자, 이 사실을 안 브륀힐트는 지크 프리트에게 복수하기로 마음먹고 군터의 부하 하겐을 매수하여 지크프리트의 몸에 있는 취약점을 알아낸 다음 그를 뒤에서 암살하도록 한다.

[후편] 남편을 잃고 실의에 빠진 크림힐트에게 에첼은 사신을 보내 구혼을 한다. 망설임 끝에 크림힐트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수행원들과 함께 훈족의 나라를 향해 동쪽으로 떠나고, 에첼은 그녀를 툴른에서 맞이한 다음 빈에서 성대한 결혼식을 올린다. 그녀는 훈족의 나라에서 13년 동안 살면서 자신의 입지를 굳혔는데, 하루는 죽은 전 남편의 원수를 갚을 생각을 한다. 이리하여 군터와 하겐을 훈족의 축제에 초대하고는 이들을 죽여 피의 복수를 한다. 하지만 그녀 역시 무참히 살해당하고 만다.



▎로마제국 시대 성곽의 일부였던 탑 유적(왼쪽)과 작은 호텔 / 사진:정태남
『니벨룽의 노래』는 로마제국 말기부터 구전으로 전해져 내려오던 이야기와 북유럽의 신화를 중세에 새로 각색하고 정리한 것으로, 30여 개 버전으로 된 사본이 남아 있고 그중 가장 오래된 것은 1230년경의 사본으로 모두 39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전편은 1~19장, 후편은 20~29장이다. 이 대서사시를 쓴 작가의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구성이나 내용 면에서 게르만의 중세 기사문학(騎士文學)의 최대 걸작이자 최고의 게르만 고전(古典) 중의 하나로 꼽힌다. 물론 역사적인 사실과는 많이 다르지만.

도나우강 변에 세워진 니벨룽 분수는 2005년에 제작된 것으로, 크림힐트와 아틸라의 만남을 형상화한 것이다. 한편 음악가 바그너는 『니벨룽의 노래』 전편 내용과 북유럽 신화를 다시 엮어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를 작곡했는데, 아틸라와 크림힐트의 만남이 담긴 후편 내용이 전혀 다루어지지 않았으니 툴른의 입장에서 보면 좀 섭섭한 일이겠다. 어쨌든 이처럼 로마제국의 역사와 게르만 설화가 혼재된 작은 도시 툴른에서는 여기저기 흩어진 로마제국 시대의 유적뿐 아니라 ‘니벨룽엔 호프’라고 하는 도나우강 변의 작은 호텔의 이름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 정태남은… 이탈리아 공인건축사 정태남은 서울대 졸업 후 이탈리아 정부장학생으로 유학, 로마대학교에서 건축부문 학위를 받았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건축 외에도 음악· 미술·언어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30년 이상 로마에서 지낸 필자는 이탈리아의 고건축복원전문 건축가들과 협력하면서 역사에 깊이 빠지게 되었고, 유럽의 역사와 문화 전반에 심취하게 되었다.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대기업·대학·미술관·문화원·방송 등에서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역사, 건축, 미술, 클래식 음악 등에 대해 강연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탈리아 도시기행],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 [동유럽 문화도시 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201804호 (2018.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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