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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 가업승계 실태 

장수기업 첫 관문 후계자 딜레마 

최영진 기자
잊을 만하면 대기업 후계자의 갑질 논란이나 가족 간의 불화 소식이 터져 나온다. 대기업의 후계 승계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많은 중소·중견기업은 이제 2세 승계를 코앞에 두고 있다. 장수기업으로 가는 첫 관문으로 꼽히는 ‘후계 승계’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는 이유를 찾아봤다.

2012년 말 산업통상자원부 성장촉진과는 ‘해외 장수기업 현황 및 시사점’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국내 외 장수기업(일반적으로 100년 이상 유지된 기업)의 현황을 볼 수 있는 자료다. 이 자료에 따르면 창업 200년 이상의 장수기업은 총 57개국에 7212개 곳이 있다. 일본이 3113개사(43.2%)로 가장 많았고, 독일(1563개사)과 프랑스(331개사)가 뒤를 이었다.

한국은 어떨까. 국내 상장기업 중 100년 이상 된 장수기업은 두산(1896년 설립)과 동화약품(1897년 설립) 뿐이었다(2017년 6월 금융감독원과 한국예탁결제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은행, 성창기업지주, KR 모터스도 상장된 지 100년이 넘은 기업이다). 국내 상장기업 중 50년 이상 된 장수기업도 111개사에 그쳤다. 한국의 장수기업 수가 많지 않은 것은 근대 기업의 역사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중앙회 가업승계지원센터 오현진 센터장은 “한국전쟁 이후부터 한국 기업의 역사가 시작됐기 때문에 장수기업 수가 적고 역사가 짧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기업 후계 승계 시스템 일정 패턴 있어

이 보고서를 인용한 이유가 있다. 장수기업이 되기 위해 거쳐야 할 첫 관문이 ‘후계 승계’이기 때문이다. 이 보고서는 장수기업의 주요 특징으로 ‘차기 경영자 양성’, ‘끊임없는 변신’, ‘기술 혁신’, ‘혈연을 초월한 기업 승계’ 등 9가지 요인이 있다고 전했다. 특히 ‘장수기업은 혈연을 초월해 적임자에게 경영권을 승계함으로써 단순한 부의 대물림이 아닌 기업의 경영철학과 가치관, 축적된 기술과 노하우를 이전하여 기업의 영속적인 발전을 추구한다’고 분석했다.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의 후계 승계 준비 과정에는 큰 차이가 있다. 대기업에 비해 중소·중견기업은 후계 승계 준비 과정부터 어려움을 겪는다. 삼성생명에서 운영하는 가업승계 컨설팅 센터인 패밀리오피스 부산 성열기 센터장은 “대기업은 자본과 인력이 있기 때문에 내부에서 승계 문제를 해결하지만, 중소·중견기업은 그럴 여력이 없는 곳이 대부분”이라며 “중소·중견기업은 후계 승계를 준비할 때 우리와 같은 컨설팅 센터나 중소기업중앙회의 가업승계지원센터 같은 곳의 도움을 받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대기업의 후계자 선정과 교육 과정은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는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대기업마다 후계 승계를 위한 준비나 대책 등을 마련하는 부서가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후계자 교육도 그룹 내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임원이 맡는 게 대부분이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면 삼성의 경우 지금은 해체된 미래전략실에서 후계 승계와 관련된 일을 처리하는 식이다.

지난해 12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2017년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지배구조 현황’에 등장한 26개 대기업 중 총수가 있는 대기업은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롯데, GS, 한화, 현대중공업, 신세계, 두산 등 21개였다. 이들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후계 승계 시스템에서 일정한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이들 대기업은 대부분 창업주의 3세로 승계가 진행 중이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현대차 정의선 부회장 등이 대표적이다. SK그룹의 경우 3세 승계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후계자 대다수가 해외 유학파라는 점이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샌프란시스코대 MBA, 스탠퍼드대 MBA, 남가주대 MBA, 하버드대 정치학, 보스턴대 MBA 등은 대기업 3세의 졸업 대학이다.

졸업 후 기업에 입사할 때부터 차장이나 팀장 등의 역할을 맡기도 하지만, 사원으로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입사 후 짧은 시간에 임원이 되는 것이다. 임원의 직위는 기업마다 약간씩 다르지만 부장에서 한 단계 승진하면 임원으로 볼 수 있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은 1991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후 2001년 삼성전자 경영기획팀 상무보로 승진했다. 10여 년 정도 걸린 셈이다. 이렇게 임원이 되는 데 오래 걸리는 경우도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의 장남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은 2003년 한진정보통신 영업기획담당 차장으로 입사한 후 2007년 대한항공 자재부 총괄팀장(상무보)으로 승진했다. 임원 승진까지 4년이 걸렸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장남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도 2010년 한화 입사 후 2014년 12월 한화솔라원 상무로 승진했다. 한 언론사의 조사에 따르면 30대 대기업 총수 자녀가 입사 후 임원으로 승진하는 데 평균 6년이 소요된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중견기업 후계 승계 성공률 30%에 그쳐


전문가들은 대기업의 이런 모습에 우려감을 나타낸다. 가업승계 컨설팅을 하고 있는 시앤오컨설팅 김기백 대표는 “대기업 내에서 후계자를 교육한다고 하지만 어느 누가 미래 오너에게 강하게 대할 수 있나”라고 반문하며 “대기업은 후계자에게 능력이 없거나 창업가의 정신을 이어받지 못한다면 승계하지 못하게 하는 강력한 게이트 시스템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족 간의 불화도 대기업 후계 승계의 뇌관이라는 지적이 많다. 창업주 이후 3세로 넘어가고 있는 대기업은 비즈니스가 많아지고 가족 관계도 복잡해진다. 특히 복잡해진 가족 간에 기업 운영에 대한 협의나 소통이 없으면 ‘가족 분쟁’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현대가의 ‘왕자의 난’과 롯데그룹의 ‘형제의 난’이 대표적이다. 에프비 솔루션즈 김선화 대표는 “대기업의 후계 승계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가족”이라며 “가족 간의 협력은 말로 이루기 어렵고, 가족헌장 같은 제도를 만들어 기업 운영에 대해 협의 해놓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대기업은 그나마 후계 승계를 해결할 수 있는 여력이 있지만, 중소·중견기업은 후계 승계 준비를 거의 하지 못하고 있다. 가업승계지원센터 오현진 센터장은 “이 센터가 2008년 설립됐는데 많은 중소·중견기업의 2세 승계가 다가오는 시기였기 때문”이라며 “우리가 개별 기업에 도움을 주는 센터가 아니다 보니 역할에 한계가 있다”고 아쉬워했다.

중소·중견기업의 후계 승계 구조는 가업승계지원센터가 매년 발표하는 ‘중소기업 가업승계 실태조사’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 실태조사는 업력 10년 이상, 매출액 1500억원 이하의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이뤄진다.

2017년 12월 발표한 조사 자료에 따르면 승계 계획이 있는 기업은 67.8%였고, 그중 64.6%가 ‘자녀에게 승계할 계획’이라고 답변했다. ‘전문경영인 승계’는 1.4%에 불과하다. 내부 임직원 승계도 0.6%에 그쳤다. 문제는 ‘승계를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는 기업이 32%나 된다는 것. 승계 계획이 있는 기업도 소유권을 승계하는 방법을 묻는 설문에 ‘아직 결정하지 못한’ 곳이 58.2%나 됐다.

오현진 센터장은 “중소기업인 중 후계 승계에 성공하는 비율이 30%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30%는 자식을 믿지 못해서, 30%는 자녀가 고생하는 것이 싫어서 자녀에게 승계를 하지 않는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부산의 중견기업 선보그룹의 2세인 선보엔젤파트너스 최영찬 대표는 “지역의 중견기업 2세들은 아버지와 소통이 어려워 힘들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면서 “소통이 없다 보니 아버지는 아들을, 아들은 아버지를 믿지 못하는 상황이 생겨 지역의 중소·중견기업은 후계 승계에 어려움이 많은 것 같다”고 진단했다.

중소·중견기업 경영자가 후계 승계를 힘들어하는 또 다른 이유는 세금이다. 설문조사에서도 승계를 어려워하는 이유로 ‘상속세 등 조세 부담’을 꼽은 이가 67.8%나 됐다. 다음으로 ‘자금, 판로 등 종합적 지원정책 부족’이 17.4%, 가족과의 갈등이 2.8%로 뒤를 이었다.

세금이 과하다는 비판의 목소리에 정부는 ‘가업상속공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상속을 준비하는 기업인이 10~20년 이상 기업을 운영하면 상속재산 중 200억원~500억원까지 세금 공제를 해주는 제도다. 상속재산은 개인기업의 경우 기업 활동에 사용되는 토지나 건축물 등의 사업용 자산이 대상이고, 법인기업의 경우 법인의 주식과 출자지분 등이 대상이다. 2007년 공제 한도 액은 1억원이었지만, 2014년 1월 이후 공제액은 200억원~500억원으로 늘어났다.

그렇지만 이 제도를 이용하는 기업은 그리 많지 않다. 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오현진 센터장은 “가업상속공제제도를 이용하는 건수가 1년에 60여 건에 불과하다”면서 “이 제도를 이용하려면 오래전부터 조건을 맞출 준비를 해야 하는데, 대다수의 중소·중견기업은 그럴만한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기업인들이 이 제도의 사전 규제 중 완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하는 것은 ‘피상속인이 10년 이상 계속 경영’으로, 38.2%나 차지했다. 다음으로 ‘피상속인 최대 주주지분 50% 이상 보유’(31.8%)도 지키기 어려운 조건이라고 꼽았다. 상속을 받은 후 후계자가 지켜야 할 사후 규제 중에서도 ‘정규직 근로자 매년 평균 80%’ 유지는 지키기 어려운 규제로 꼽는다. 이 때문에 중소·중견기업인들 사이에서 정부와 지원기관 등에서 ‘종합적인 가업승계 지원정책을 수립해달라’는 요구가 많이 나오고 있다.

- 최영진 기자 cyj7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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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호 (2018.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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