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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교육 전문가의 기고 

조선 왕실의 후계자 교육 

육수화 서울대학교 교육연구소 객원연구원
선시대 왕실 교육은 일반인이 예상하는 것보다 체계적이고 강력했다. 후계자 교육이 지향하는 것은 지식교육과 더불어 통찰과 소통의 리더십이다.

▎순조의 장남 효명세자가 왕실학교 ‘세자시강원’에 입학하기 위해 성균관 문묘에 알현하는 장면을 담은 ‘정축입학도첩’.
왕관을 쓴 자 그 무게를 견뎌야 하고, 왕관을 쓰려는 자 또한 그 무게를 감내해야만 한다. 조선의 왕은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 혹자는 아마도 왕의 아들로 태어났으니, 당연히 왕이 되는 것이라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조선의 왕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차기 왕위 계승자로 지목되는 순간부터 왕좌에 오를 때까지 그들이 왕관의 무게를 견뎌내기 위해 받아야 하는 교육과정이 얼마나 엄격하고 치열한 것이었나를 알게 된다면 조선의 왕을 바라보는 시선과 인식이 달라질 것이다. 학식과 덕망을 두루 갖춘, 이른바 내성외왕(內聖外王)을 구현하는 유교의 이상적인 모델이자, 백성들의 모범이 되어야만 했던 것이 바로 조선의 왕이다.

지식교육보다 인성교육을 더 중요하게 여겨

왕실은 왕위 계승에 부족함이 없는 후계자 양성을 위해 최고의 교육환경과 교육시스템을 구축해나갔다. 후계자의 성장과정에 상응하는 교육기관을 설치하고, 각종 의례를 거행해 그들이 권위와 지도자로서의 소명의식을 내면화하게 했다.

조선의 왕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먼저 원자(元子)가 태어나면 보양청(輔養廳)이라는 보육기관을 설치한다. 보양청의 설치는 다른 형제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왕위 계승 교육은 그 시작부터 다른 형제들과 위상과 궤를 달리한다.

보양청은 교육보다 보육에 중점을 둔 기관이다. 보양관이라는 담당 관료가 있기는 하지만, 실질적인 보육은 유모와 보모가 맡았다. 특히 유모는 어머니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중차대한 존재였다. 왕의 유모에게는 외명부 종 일품에 해당하는 봉보부인(奉保婦人)이라는 직첩을 내리는 것으로 보아 그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유모의 선발 요건은 무엇일까?

물론 건강하고 젖이 잘 나와야 하지만, 품성을 가장 큰 덕목으로 꼽았다. 이유는 유모가 원자와 일상을 거의 함께하므로 그 품성이 원자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보양관을 선발할 때뿐 아니라 이후 본격적으로 교육을 담당하는 강학관의 선발에서도 품성은 매우 중요한 요건 중 하나였다.

왕실은 지식교육보다 인성교육을 더 중요시했다. 이는 비단 왕실에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유학은 수기치인(修己治人)을 표방하고 있었기 때문에 진정한 교육은 지식의 습득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성교육까지 아우르는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 교육이 지식 위주로 흘러가고 있다는 점에서 귀감으로 삼아야 할 부분이다. 얼마나 아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알고 무엇을 행하느냐가 더욱 중요한 것이다.

원자가 성장해 통상 5세 이후가 되면 강학청이라는 조기교육기관을 설치한다. 별도의 교육기관이라기보다 보양청의 기능이 이때부터 조기교육을 위한 강학청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영조는 사도세자의 나이 3세, 정조의 나이 4세에 이미 조기교육을 시작했다. 영조의 교육 열정이 남다르기도 했지만, 종통의 정통성이 미약했던 자신의 출신에 대한 콤플렉스가 자식들에게 투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군왕으로서 강력한 리더십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신료들을 제압할 수 있는 지적능력도 중요한 요건이다. 이 때문에 영조는 교육에 관한 한 자신은 물론 자손들에게도 매우 엄격했다.

왕위 계승자 미리 결정하는 이유…분란 막기 위해

본격적인 왕위 계승 교육은 왕세자와 왕세손 책봉 이후부터 시작된다. 왕세자의 경우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이라는 전담 교육기관과 함께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라는 배위기관도 설치한다. 왕세손의 경우 세손강서원(世孫講書院)이라는 전담 교육기관과 세손위종사(世孫衛從司)라는 배위기관이 설치된다. 이때부터 왕위 계승자에 대한 교육과 호위가 더욱 강화된다. 영조의 경우처럼 왕의 동생이 왕위 계승자로 확정되기도 하는데, 이를 왕세제라 칭한다.

왕세자와 왕세손, 왕세제 등 왕위 계승자를 미리 결정하는 이유가 있다. 왕위 계승을 둘러싼 정국의 혼란을 막고, 왕위의 공백을 최소화해 전대 왕의 정치를 안정적으로 계승하려는 목적이 있다. 이와 더불어 체계적인 교육을 실시해 예비 왕이 갖추어야 할 교양과 덕목을 쌓아 군주로서의 자질을 일찍부터 함양하려는 교육적 의미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오직 어진 사람이고서야 높은 지위에 있어야 하는 것이지, 어질지 않은 사람이 높은 지위에 있으면, 그 악이 아래로 파급된다”는 맹자의 말씀은 지도자의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한 가르침이라고 하겠다.

왕위 계승자의 교육은 일상이 교육이고, 교육이 곧 일상이었다. 왕세자의 경우 법강(法講)이라 하여 조강(朝講), 주강(晝講), 석강(夕講) 등 세 번의 정규적인 경전 교육이 이어진다. 수시 학습에 해당하는 소대(召對)를 통해 역사공부도 진행했다. 야간 자율학습에 해당하는 야대(夜對)도 있었다. 이 모든 교육과정에서 평가가 이뤄지고 성적은 왕에게 보고됐다.

왕세자의 나이 11세 이후가 되면 회강(會講)이라 하여 한 달에 두 번 정기적으로 신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강학이 이루어졌다. 법강에는 강학관이 당번을 정해 순차적으로 돌아가며 교육을 하지만, 회강의 경우 사, 부, 빈객은 물론 세자시강원과 세자익위사 소속의 관원 전원이 참석한다. 사헌부와 사간원의 장관들도 의무적으로 참석하게 되어 있다. 심지어는 왕이 직접 참관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교육이 얼마나 엄격하게 진행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교육은 비단 이러한 강학에만 치중되는 것이 아니었다. 심신 수양을 위한 교육과 정사(政事)를 논하는 자리에 배석하여 정책이 논의되는 과정을 지켜보게 했다. 경청(傾聽)하는 자세를 우선적으로 배우게 하는 등 리더십 함양을 위한 다양한 교육을 병행한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병권을 장악하기 위한 군사훈련과 사신접대를 통한 외교 실무, 대리청정을 통한 정치 실무에 이르기까지 왕관을 쓰려는 자가 감당해야 할 무게는 실로 일반인들이 상상할 수조차 없는 것이었다. 등극한 이후에도 경연을 통한 교육은 물론 종친 간의 친목과 군신 간의 화합을 이뤄 권위와 권력을 유지해야만 하였던 것이 바로 조선의 왕이다.

왕위 계승자의 역량에 따라 국가의 안위가 좌우되는 만큼 교육과정이 치열하지 않을 수 없었고, 국가 또한 그 시스템을 최상으로 유지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들에겐 나라를 이끌어야 한다는 소명의식이 있었다. 통제와 소외가 아닌 통찰과 소통의 리더십을 지향했다. 이는 오늘날에도 최고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소양과 덕목이기도 하다.

조선 왕실 교육의 철저함 배워야 할 때


▎2010년 5월 창덕궁 낙선재 앞에서 조선의 왕위 계승 교육 ‘성군을 꿈꾸다’ 행사가 열렸다. 영조와 장헌세자 등으로 분장한 연기자들이 조선시대 왕세자 교육의 한 과정인 회강을 재현하고 있다.
조선시대 재위 기간이 가장 길었던 영조는 후대 왕위 계승자를 위한 교육 지침서를 저술하면서 다음과 같은 시를 머리말에 두었다.

本然性善稟於天(본연의 착한 성품은 하늘로부터 받은 것이니) 充養可能爲聖賢(이를 확충하고 기르면 성현이 될 수 있다네) 做工若問遏人欲(공부함에 인욕을 막는 방법을 묻는다면) 省察克治必也先(성찰하고 극복함을 반드시 먼저 해야 한다네) 德敎政謨惟在人(덕교와 정모는 오직 사람에게 달려 있으니) 吾民苦樂卽余身(우리 백성들의 고락은 곧 내 몸에 달려 있다네) 治國欲知何以善(치국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자 한다면) 幾微深察任賢臣(기미를 깊이 살피고 현신(賢臣)을 등용하는 것이라네.)

통치자는 곧 결정자다. 그 결정이 공공의 이익에 부응하는 것인지, 사리사욕에 따른 것인지 늘 자신을 성찰하고 다스려 인욕을 막는 것이 나라 다스림의 선결과제요.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해 한 가지 일로써 만단(萬端)을 처리하는 것이 통치자가 갖추어야 할 지혜라는 것이다.

자고로 왕이 왕 노릇 하기 쉽다고 여기고, 신하가 신하 노릇 하기 쉽다고 여긴다면 이는 곧 나라가 망하는 징조라 여겼다. 왕이 왕 노릇 하기 어렵다고 여기고, 신하가 신하 노릇 하기가 어렵다고 여긴다면 나라가 흥할 징조라고 했다. 한비자는 “최하의 리더는 자기의 능력을 다 쓰고, 보통의 리더는 남의 힘을 다 쓰고, 최고의 리더는 다른 사람의 능력을 다 쓴다”고 하였으니, 지금 지도자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를 성찰해보아야 할 것이다.

기업경영이 국가경영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현시점에서 기업의 후계자, 특히 대기업의 후계자 교육은 그들의 기업만이 아니라 국익에도 영향을 미치는 만큼 체계적이고 엄격하게 이루어져야만 할 것이다.

※ 육수화는… 국내외 왕족을 비롯해 엘리트 교육 전문가로,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교육학으로 석·박사를 취득했다. 서울대학교 교육연구소 연구원,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교수 등을 역임했다. 현재 서울대학교 교육연구소 객원연구원이며, 대학과 대학원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조선시대 왕실교육』 『조선의 왕과 왕세자』 『역사 속의 교육공간 그 철학적 조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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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호 (2018.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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