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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안 개구리, 금융지주사(4) 

‘동남아’에 꽂힌 시중은행 

김영문 기자
금융위기 이후 유럽·미국 은행들이 해외 사업을 축소했다. 반면 개발도상국의 은행들이 해외로 더 뻗어 나갔다. 그렇게 지난 10년간 글로벌 금융계 판도가 바뀌었다. 같은 기간 한국 금융업계도 해외 진출에 적극 나섰지만 그 성과는 초라했다. ‘동남아’를 필두로 다시금 떠오른 ‘글로벌화’, 이번엔 성공할 수 있을까.

▎사진:각 사 제공
“러시아연방(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우크라이나 등), 중국권, 남아시아권(인도네시아·베트남·캄보디아 등)을 잇는 ‘KB 트라이앵글 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

2008년 강정원 전 KB국민은행장이 밝힌 포부다. 당시 국민은행은 9541억원 투자해 카자흐스탄 센터크레디트은행(이하 BCC) 지분 41.9%(우선주 포함)를 사들였다. 2003년 김정태 행장 시절 인도네시아 BII(Bank International Indonesia) 지분을 인수하며 글로벌 진출을 위한 발걸음을 자신 있게 내디뎠다. 모처럼 대규모 해외투자 소식에 금융권도 한껏 기대감에 부풀었다.

현지 5위권 은행인 BCC는 주택담보대출과 기업대출로 빠르게 자산을 늘렸지만, 그해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데다 국제유가 급락이 더해져 부동산값이 폭락해 대규모 적자를 냈다.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2009년 KB금융지주 회장으로 내정됐던 강 행장은 1년도 채 되지 않아 물러났다.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2010년 금융감독원은 국민은행이 BCC에 투자한 경위를 비롯해 관련 사항 전반에 걸쳐 대대적인 종합감사에 들어갔고, 강 전 행장에 대한 중징계 결정을 내렸다. 결국 지난해 8월 BCC 지분 전량을 현지 테스나(Tsesna) 뱅크 컨소시엄에 매각하면서 BCC와의 악연(?)을 끝냈다. 하지만 국민은행 측은 BBC의 장부가를 1000원으로 처리해 사실상 투자금 9541억원 전액을 날린 꼴이 됐다.

‘BBC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는 여전해 보인다. 지난해 국민은행의 해외진출 성과가 4대 시중은행(신한은행·국민은행·하나은행·우리은행) 중 꼴등을 기록했다. 3월 28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국내은행 해외점포 영업실적 및 현지화지표 평가 결과’에서 점포수만 따지면 하나은행은 23개국에 진출해 해외점포(현지법인·지점·사무소 포함) 35개를 출점해 1위를 기록했고, 다음으로 우리은행이 22개국 31개, 신한은행은 19개국 29개 그리고 국민은행이 10개국 13개 해외점포를 출점하는 데 그쳤다. 국민은행은 사실상 5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점포 1개 정도 더 늘린 것 말고는 진출국 수도 그대로다. 국민은행 측은 “최근 캄보디아에 디지털 뱅크 플랫폼인 ‘리브 캄보디아’를 출시하는 등 동남아 진출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하지만 캄보디아 현지 규제 문제 등으로 개점이 늦어지고 있다.

해외점포 수 1위인 하나은행은 상황도 만만치 않다. 해외 진출에 앞섰다는 외환은행을 인수합병(M&A)하면서 금융권에서 하나은행의 글로벌 사업에 거는 기대가 컸다. 2013년만 해도 외환은행은 22개 국가에 30개 점포를 출점해 국민은행·하나은행(합병 전 9개국, 9개 점포)을 압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외환은행과 하나은행의 합병 이후 23개국 35개 점포를 두고 있다.

2013년 23개국 39개 점포에서 오히려 줄었다. 하나은행 측은 “2015년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이 통합되면서 겹치는 국가의 점포를 폐점해서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며 “지난해 멕시코 법인을 신설해 해외점포을 한 곳 더 늘렸다. 단순히 진출국가나 네트워크 수를 늘리기보다 이익을 낼 수 있는 해외 진출을 위해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나마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이 해외점포 개발에 적극적이다. 2013년 15개국에 2개 점포를 낸 신한은행은 지난 5년간 4개국 20개 점포를 더 늘렸다. 우리은행도 같은 기간 4개국 7개 점포가 더해졌다. IMF 외환위기 이전만 해도 시중은행의 해외 진출 전략은 국내 기업의 전용 금융창구 역할에 머물러 있었다. 현지 주민이나 기업을 대상으로 한 영업보다 국내 기업 위주로만 비교적 안전한(?) 영업에 집중했다.

이는 지금까지도 국내 시중은행의 글로벌화의 한계다. 주요 해외지점도 국내 기업이 최대 수출 통로로 삼는 미국 뉴욕과 LA, 영국 런던, 일본 도쿄, 싱가포르, 중국 베이징, 상하이, 홍콩 등 14개국이 전부였다. 그나마 최근 베트남, 인도, 인도네시아, 브라질 등으로도 진출하는 등 현지 영업 전략을 강조하고 있다.

‘제 2의 글로벌화’ 거점 동남아

최근엔 한국계 은행들 사이에서 동남아 진출 붐이 일고 있다. 2009년 신한은행이 베트남에 설립한 현지 은행 ‘신한베트남은행’은 지난해 12월 ‘ANZ BANK 베트남’ 리테일 부문을 인수하고 현지 외국계 은행 1위로 올라섰다. 현재 신한베트남은행의 총자산은 33억 달러, 고객 수만 90만 명에 달한다. 우리은행은 인도네시아 소다라은행, 캄보디아 여신전문금융사 말리스, 필리핀 저축은행 ‘웰스뱅크필리핀’ 등 현지 금융사들을 연이어 인수했다. 특히 웰스뱅크필리핀의 경우 지난해 말 필리핀 중부 바콜로드시 중심가에 새 지점을 열었다.

국내 은행들이 새 먹거리 찾기 대안으로 ‘동남아’를 택한 것이다. 실제 동남아는 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지역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약 10년 전부터 한국 기업들은 임금이 비교적 저렴한 동남아시아 등으로 생산 기지를 상당수 옮겼다”며 “인도네시아·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주요 국가의 경제 상황이 좋아지면서 한국보다 은행의 순이자마진(NIM)이 1.5~2.5배 높다”고 설명했다. 신한은행과 우리은행 관계자도 한목소리로 “국내 금융시장은 이미 포화된 상태라 해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해외 사업 진출을 계속해서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해외 사업에서 맥을 못 추는 하나은행도 중국·인도네시아에 이어 5대 거점(Hub)화 전략에 베트남·필리핀·인도 등을 넣어 ‘新아시아 벨트’를 완성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실제 지난해 수익도 높아졌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은행이 해외 네트워크에서 거둔 당기순이익은 8억7000만 달러로 전년보다 23.9% 늘었다. 지난해 국내 은행 총 당기순이익의 7.7%에 달하는 수치다. 4대 시중은행 중 해외 진출에 적극적이었던 신한·우리·하나은행이 해외서 거둔 순이익이 각각 13.7%, 10.7%, 16.2% 정도였다.

하지만 일각에선 실적 호조가 착시현상이라는 지적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관계자는 “2016년 4대 시중은행의 실적이 매우 좋지 않았는데 한진해운과 대우조선해양 등 부실기업이 해외점포에서 빌린 돈 때문에 생긴 대손비용이 상당했다”며 “최근 실적호조는 지난해 부실이 상당수 정리됐고, 세계적으로 금리가 조금씩 오르면서 이자이익이 늘어난 덕분이지 해외점포의 영업 능력 덕분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꼬집었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하는 국내 은행의 해외점포 현지화지표 종합평가 등급도 지난해 상반기부터 2년째 ‘2-’등급에 머물러 있다. 이 등급은 해외점포의 현지화 수준(50%)과 본점의 국제화 수준(50%)을 각각 평가한 후 종합해 산출한다. 특히 국제화 수준 부문 점수의 40%는 주관적 판단이 섞인 정성평가다.

‘동남아 편중’은 문제다. 해외수익 창출이란 목표가 지역경제 변화로 한꺼번에 뒤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은행의 전체 해외점포(현지법인·지점·사무소 포함)는 185개다. 이 중에서 베트남(19개), 미얀마(13개), 홍콩(12개), 인도네시아(8개) 등 총 64개 해외점포가 동남아 지역에 있다. 중국(16개), 인도(15개), 일본(8개) 등까지 포함하면 아시아 지역이 129개로 전체의 69.7%나 차지한다. 우리은행도 301개 해외 네트워크 중 238개가 동남아 지역에 집중돼 있다.

전체 해외점포 중 70%는 아시아에


지난해 신설한 해외점포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총 9개 해외점포가 문을 열었고, 이 중 7개가 아시아 국가다. 폐쇄한 점포 2곳도 중남미와 아프리카 지역이다. 은행별로 보면 ▶신한은행은 인도에 2곳 ▶우리은행은 인도에 2곳, 폴란드에 사무소 1곳 ▶국민은행은 미얀마와 홍콩에 각각 1곳 ▶하나은행은 멕시코에 1곳 ▶광주은행이 중국에 1곳을 신설했다. 수출입은행의 경우 모잠비크와 콜롬비아에 운영하는 사무소를 폐쇄했다.

국내 은행들도 할 말은 있다. 일단 앞서 본 대로 동남아 지역에서 수익이 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동남아 대표지역 해외점포가 거둔 이익 증가폭을 보면 인도네시아 35.2%, 베트남 28.9%다. 아시아로 확대하면 중국 지역은 389.3%, 일본 43.2%를 기록했다. 중국의 경우 사드 여파로 거래가 급등락한 덕분에 나온 수치이고, 오히려 홍콩·싱가포르에 진출한 점포 순익은 각각 19%, 13% 줄었다. 반면 영국 점포 순익은 전년보다 47.9%나 늘었다. 동남아 지역이라고 해서 해당 지역 점포에서 항상 순익을 기록할 수는 없는 법이다.

특히 자산건선성을 따지고 보면 동남아보다 선진국 경제가 더 나아 보인다. 자산건전성 지표인 *고정이하여신비율(NPL)을 보면 영국(1.6%→0.1%), 일본(1.4%→0.6%), 미국(0.6%→0.4%) 등 선진국에서 떨어졌다. 반면 4대 시중은행이 목을 매는 베트남(1.0%→1.5%)은 상승했다.

게다가 막상 현장 상황을 겪어본 금융전문가들은 동남아 시장을 녹록지 않은 곳이라 평한다. 무엇보다 동남아는 은행업이 성숙되지 않은 지역이다. 쉽게 설명하면 해당 지역에선 소액대출회사(MFI), 저축은행, 할부 금융 등 비은행 업종에 먼저 진출해서 고객과 네트워크 기반을 쌓은 뒤 맨 나중에 은행업을 추진한다. 처음엔 작은 금융사와 손잡고 규모가 큰 공공사업의 금융 거래를 성공시켜야 하는데 탄탄한 자본력 확보 없이는 힘든 구조다. 인수합병을 하려 해도 금융사 가격이 싸지도 않다. 한 글로벌사업 담당자는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 필리핀 지역 은행의 경우 성장성이 있는 곳도 있지만, 라이선스만 남은 껍데기 회사도 많다”며 “이런 회사를 값싸게 사들이려고 해봤지만 주가순 자산배율(PER) 2~3배를 부르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동남아 시장 녹록지 않은 곳”


까다로운 금융 규제와 감독도 문제다. 미얀마 쇼크가 그 예다. 2014년 10월 미얀마 정부는 외국계 은행 지점 설립 예비인가 자격은행을 발표하면서 미얀마 정부당국에 상당한 공을 들인 국내 은행 3곳(국민·신한·기업은행)이 모두 탈락했다. 이후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미얀마 지점을 모두 폐쇄했다는 점이 미얀마 금융당국의 눈 밖에 난 것이다.

은행 측의 해외 진출 기조가 바뀔 수 있다는 ‘내부적 리스크’도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장이 바뀔 경우 해외 진출 기조가 바뀔 수 있다”며 “한국 시중은행장의 임기가 통상 3년으로 짧은 편이고, 정치적 요인도 좌시할 수 없어 다른 외국은행과의 장기적인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도 4대 시중은행은 ‘글로벌화’에 꽂혀 있다. 연임에 성공한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은 올해 들어서만 중국과 베트남·일본·싱가포르·홍콩 등을 누비며 글로벌 수익 점검에 나섰다. 윤종규 KB금융 회장도 그룹 글로벌 통합조직을 신설해 그룹사 전체의 글로벌 역량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신한금융, 우리은행도 동남아 지역 진출 확대에 더 힘을 실을 계획이다. 금융권에선 “지난해부터 회장 인선이 어느 정도 확정되자 새로운 성장전략 선정에 탄력이 붙었는데 그게 바로 ‘글로벌화’”라는 분석이 있다. 해외시장을 키우기 위해 과감한 인수합병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다.

윤경수 산업은행 미래전략개발부 선임연구원은 최근 은행권의 동남아 열풍을 이렇게 정리했다.

“국내 4대 금융지주사가 대부분 금융업종을 보유한 상황이지만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선 해외 금융기관의 인수합병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물론 해외 현지 검증이 쉽지 않다는 리스크가 있어 진출 시장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고, 동남아 지역은 생각보다 진입장벽이 높은 단위 백만 달러·% 자료 금융감독원 곳이라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고정이하여신 - 통상적으로 고정이하(고정, 회수의문, 추정 손실)를 불량채권으로 여기며 이것이 전체 여신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고정이하여신비율이다. 즉 고정이하여신비율이 높을수록 부실률이 높다는 것을 의미하며, 8%가 넘어가는 은행은 보편적으로 꺼린다.

-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

201805호 (2018.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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