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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넘고 ‘벤츠’ 잡겠다는 지리차 

 

김영문 기자
지리자동차가 중국 대표 자동차 기업으로 부상했다. 지난해 중국에서만 125만 대 가까이 팔아치우며 토종 자동차 브랜드 중 1위로 등극했다. 판매량도 전년보다 50% 이상 증가했다. 반면 베이징현대는 판매량이 30% 이상 줄었다. 사드 여파도 컸지만, 중국 토종 자동차 기업의 활약이 더 돋보였다.

▎2010년 볼보를 인수한 지리차는 올해 벤츠 모회사인 다임러사 지분도 사들였다.사진은 리수푸 지리차 회장.
“中 자동차 회사, 벤츠 모회사인 다임러 최대주주로 등극”

독일 현지의 한 언론이 대서특필한 제목이다. 지난 2월 23일(현지시간) 다임러 공시에 따르면 중국 지리(吉利·GEELY)차는 다임러 지분 9.69%를 90억 달러, 한국 돈으로 약 10조원에 인수하며 쿠웨이트국부펀드를 제치고 1대 주주로 올라섰다. 다임러 측은 “장기적인 자본투자는 환영한다”고 밝혔지만, 독일 업계에 미친 충격은 대단했다.

3개월 전만 해도 입장은 달랐다. 지난해 11월에 지리차가 다임러 지분의 5%를 매입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다임러 측은 본사 지분의 블록딜은 아무하고 하지 않는다며 단칼에 거절했다. 지리차가 자세를 한껏 낮춰 기술 공유 협정이라도 체결하자고 제안했지만 이마저도 거부당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지리차는 시장에서 공개매수를 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홍콩 언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리수푸(李書福·54) 지리차 회장은 시장에서 다임러 지분을 사들이기 위해 홍콩 페이퍼컴퍼니, 파생상품, 은행 파이낸싱 등 가능한 방법을 총 동원했다. 시장에서 조용히 매수한 덕분에 독일 어느 투자기관도 다임러 지분이 중국에 넘어가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에 페터 알트마이어 독일 경제부장관은 “독일에서 주식대량 보유공시제도를 강화해야 한다”며 리수푸 회장을 향해 날을 세우기까지 했다.

국내 언론도 이미 “돈 쓰는 방향이 달랐다… 지리차는 ‘볼보’를, 현대차는 ‘땅’을”(중앙일보 온라인 2017년 1월 24일), “시골서 냉장고 만들다가… 중국 지리차 이유 있는 질주”(중앙일보 2017년 1월 25일)라는 기사에서 지리차의 거침없는 행보를 소개한 바 있다. 하지만 불과 1년 만에 지리차의 존재감은 한층 더 커졌다. 2010년 스웨덴 볼보의 지분 100%를 집어삼키며 인수합병(M&A)에 성공했다. 8년 후 지리차는 독일 자동차 업계의 대부 격인 다임러 지분을 사들이며 세계 자동차 업계의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공교롭게도 다임러 지분값이 현대차가 산 땅값과 비슷했다. 2014년 9월 12일 한국전력은 삼성동 본사 사옥 부지 최종 매입자로 현대차를 발표했다. 현대차는 한전이 제시한 예상입찰가(3조4000억원)의 3배가 넘는 10조5500억원을 입찰가로 써냈다. 당시 현대차가 보유한 현금성 자산 25조원의 40%나 될 정도로 큰 규모였다.

4년 후인 올해 현대차는 외국계 헤지펀드와 힘겨루기 중이다. 4월 4일 미국계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현대차그룹의 계열사 3곳에 10억 달러(약 1조700억원) 규모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분을 보유한 3곳은 현대모비스, 현대차, 기아차 등이다.

한국과 중국의 자동차 기업의 행보는 이렇게 엇갈렸다. 물론 두 회사의 목표는 ‘글로벌화’로 같았다. 한 회사는 해외 인수합병에 십수 년을 매달렸고, 다른 한 회사는 다임러 지분인수 규모와 엇비슷한 가격에 강남 땅을 사들였다. 지리차는 글로벌 자동차 브랜드가 가진 노하우를 탐냈고, 현대차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들어설 ‘글로벌화’ 전략의 컨트롤타워 글로벌비즈니스센터(이하 GBC)에 한껏 기대를 걸었다.

현대차와 지리차의 차이 나는 10조 투자


볼보를 인수할 때만 해도 지리차는 그다지 주목받는 기업이 아니었다. 언론에선 연일 ‘포드가 앓던 이를 뺐다’, ‘역사상 최악의 인수합병 실패 사례가 될 것’이라는 등 비관적인 시선이 난무했다. 기업 규모도 현대차와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시가총액부터 차이가 컸다. 당시 홍콩증시에 상장한 지리차 주가(2017년 1월 6일 종가기준)는 8.44홍콩달러였고, 시총은 745억8000만 홍콩달러(약 10조1400억원)에 달했다. 같은 날 현대차는 주당 15만1000원, 시총은 33조원을 넘어설 정도로 지리차보다 덩치가 3배나 더 컸다. 하지만 올해 지리차 시총(2018년 3월 10일 종가기준)은 250% 이상 급등하며 30조원을 넘어섰다. 홍콩 증권업계에선 연말쯤 현대차 시총을 훌쩍 넘어설 거란 전망이 우세하다.

한 수 아래라고 봤던 지리차, 사실 현대차 뒤를 바짝 쫓고 있었다. 그 결과 현대차는 생각보다 빨리 글로벌 시장에서 지리차와 맞닥뜨리게 됐다. 지리차가 공격적으로 인수합병에 나선 덕분이다. 인수합병의 맛(?)을 본 지리차는 필요한 회사라면 가릴 것 없이 집어삼켰다. 지난해 다임러 외 지분을 인수한 곳은 총 4곳. 지난해 6월 지리차는 말레이시아 자동차 회사인 프로톤 지분 49.9%를 인수하면서 첫 테이프를 끊었다. 연이어 영국 스포츠카인 로터스 지분 51%를 인수하고, 11월엔 하늘을 나는 플라잉카를 개발 중인 미국 스타트업 테라푸지아도 사들였고, 볼보와 떨어져 있던 상용차 업체인 볼보AB도 지리차 그늘 안에 들어왔다. 지난해 12월 볼보AB의 지분 8.2%(의결권 15.6%)를 32억5000만 유로(약 4조3000억원)에 인수하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다임러 지분 인수는 2017년 지리차 인수합병 전략의 피날레를 장식한 셈이다.

현대차는 지난해를 어떻게 보냈을까. 지리차와 달리 지배구조 개선, 품질 경쟁력 확보, 자체 연구개발(R&D)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주력했다. 먼저 지배구조 이슈다. 엘리엇 펀드 측의 요청대로 순환출자 구조 해소는 현대차그룹 내 최우선 과제다. 올해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 현대차, 기아차 다시금 현대모비스로 얽힌 순환출자 구조에서 탈피한다는 계획이다.

현대차, ‘내재적 역량강화’에 더 집중


방법은 이렇다. 현대모비스를 지배회사 체제로 확정하고 오너 일가의 지분 매입을 늘리기로 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 간 주식 양수도 과정에서 발생할 1조원 이상의 양도세도 내겠다는 것. 다음으로 취한 전략은 ‘고급화’를 앞세운 품질 경쟁력 강화다. 사드 여파 이후 침체된 중국 시장에 내민 회생 카드도 ‘고급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제네시스’다.

연구개발 영역도 강화하고 있다. 2016년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는 친환경차·자율주행차·전기차·수소차 개발에 2조원 가까이 쏟아부었다. 유럽연합(EU)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현대차(기아차 포함)의 연구개발비는 29억6000만 유로(약 4조원)에 달한다.

물론 프랑스 르노보다 앞서지만, 일본 도요타나 독일 다임러에 비교하면 아직도 3분의 1 수준이다. 현대차가 취한 글로벌화 전략의 핵심은 ‘내재적 역량 강화’였던 셈이다. 물론 그 뜻은 야심 찼지만, 시장은 지리차에 더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특히 중국 시장에 목을 매는 현대 입장에선 지리차의 성장은 시장점유율을 깎아 먹는 직접적인 요인이 되고 있다. 실제 현대차의 중국 판매량은 2016년 114만 대에서 2017년 78만 대로 32% 이상 줄었다. 한·중 해빙무드가 도래했다고는 하나 지난해 3월부터 떨어진 판매량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반면 지리차는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다. 2017년 지리차 판매량은 전년보다 62.8% 성장한 125만 대에 육박했다. 올해 판매 목표도 150만 대로 올려 잡았다. 중국 시장조사업체 윈드(Wind)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으로 지리차의 시장점유율은 6.03%, 베이징현대는 3.13%에 머물고 있다. 지난해 2월부터 현대차그룹의 판매량은 일찌감치 따돌렸고, 3월 판매량도 현대차보다 두 배 가까이 앞서며 시장점유율 5위로 올라섰다.

중국 현지 전문가들도 이런 추세가 지속되리라 본다. 그 이유로 ‘가격경쟁력’을 꼽았다. 현동식 한국투신운용 상하이사무소장은 “지리차의 가격경쟁력과 볼보의 기술력이 더해지면서 현지인들의 평가가 매우 좋다”며 “중국에서 큰 인기를 누리는 SUV만 봐도 지리차는 10~12만 위안대인 데 반해 현대차는 20만 위안대로 심지어 15~21만 위안 정도의 혼다보다 비싸다”고 전했다. 단순히 가격 때문만도 아니다. 조용준 하나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은 “볼보 인수 등으로 지리차의 기술 수준이 높아져 옵션이나 성능 등을 따져보면 단순히 현대차 값의 절반에 불과하다고 깎아내려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현대차의 ‘고급화’ 전략 카드도 흔들리는 분위기다. 지리차가 다임러 지분 인수를 발표할 무렵, 다임러는 베이징벤츠와 2조원을 투자해 중국 현지공장을 세운다고 밝혔다. 베이징현대의 중국 측 파트너인 베이징자동차(BAIC)는 벤츠와 합작사인 베이징벤츠에 더 집중할 가능성이 커졌고, ‘제네시스’ 브랜드의 중국 출시도 생각보다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할 수도 있다.

반면 한국 기업은 아직도 인수합병 전략에 소극적이다. 그나마 지난해 삼성전자가 미국 전장부품 기업 하만을 9조272억원에 사들였다. 하지만 현대차는 삼성이 전개하는 전장부품 사업에 견제구를 던지듯 신차 대부분에 하만 카돈 사운드 시스템 대신 크렐 시스템을 장착했다. 익명을 원한 완성차업계 관계자는 “자율주행이나 커넥티드카 분야에서는 협업이 무엇보다도 중요한데, 현대차는 여전히 국내 부품사나 기업들을 견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리차 M&A 전략은 ‘소유’ 아닌 ‘협력’


반면 지리차의 인수합병 전략은 ‘소유’ 차원이 아니라 ‘협력’에 무게를 두고 있다. 다임러 지분 인수도 전기차 기술 분야에서 협력하기 위한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일본 마쓰다와 스즈키가 도요타자동차와 협력해 적은 비용으로 기술을 취득한다”며 “실제 다임러는 세계 자동차회사 중 두 번째로 많은 연구개발비를 쓰는 회사로 지리차도 일본 기업 사례를 따를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물론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실제 독일 내에선 다임러 지분이 넘어간 일로 중국 기업의 인수합병 행보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올해 독일 정부는 항공기 부품회사 코테자에 대한 중국 기업의 인수 시도를 아예 보류 시켜버렸다. 다임러 이슈에 앞서 2016년 중국 메이디에 넘어간 산업용 로봇기업 쿠카, 중국 컨소시엄에 팔린 조명업체 오스람 등을 두고도 기술 유출과 감원 논란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리차 입장은 확고하다. 볼보를 인수하면서 지리차가 발전한 건 사실이나 당시 포드의 애물단지였던 볼보를 회생시킨 점도 분명하다는 것이다. 현동식 한국투신운용 상하이사무소장은 현대차와 지리차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중국 자동차기업의 공세적 전략에 대응하려면 상대가 누구든 협력을 해야 합니다. 특히 지리차가 구사한 인수합병 전략은 기술만 빼오기 위한 술수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브랜드 파워를 가진 기업에 자본을 대고, 시장을 내주는 등 서로 주고받는 강력한 ‘협업’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의지가 짙게 깔려 있습니다.”

-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

201805호 (2018.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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