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일본 로봇업체 텔레이그지스턴스 

‘분신로봇’의 상용화 

MASAHARU FUJIYOSHI 포브스재팬 기자
내 몸이 하나 더 있다면 어떨까. 누구나 한 번쯤 내 대신 일하는 분신을 생각해봤을 것이다. 오랜 기간 연구가 축적된 ‘분신 로봇’이 상용화를 앞두고 올해 첫 실증실험에 돌입한다.
“바로 이거다!” 지난 2016년 8월 3일 일본과학미래관의 한 비공개 연구실. 미국 X프라이즈 재단의 비저니어스 프라이즈 디자인 팀이 소리쳤다. 그들은 머리에 착용하는 디스플레이(HMD)를 쓰고 장갑을 낀 채 몸을 움직이며 연신 탄성을 질렀다. 손을 눈높이까지 들어 올리자 눈앞에 손이 보였다. 그러나 그 손은 자신의 손이 아니었다. 연구실에 놓인 로봇 ‘텔레사 파이브(Telesar V, 현재는 게이오기주쿠대학이 소유)’의 손이다. 몸을 움직이면 로봇도 똑같이 움직인다. HMD에서 보이는 화면은 텔레사V의 눈에 비친 광경이다. 텔레사V가 나를 보면 내 눈에는 내가 보인다. 또 하나의 내가 로봇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나의 분신이다.

움직임과 시야뿐만이 아니다. 로봇이 손으로 느끼는 촉각도 동시에 내 손으로 전달된다. “이게 우리가 찾아 헤매던 아바타다”라고 탄성을 터뜨린 비저니어스 팀원들은 차례차례 텔레사V를 작동시키며 즐거워하고 ‘아바타’라는 단어를 거듭 말했다. 정확히 말하면 이 아바타는 온라인 공간의 가상 존재와 다르다. 감촉이나 체험을 분신과 공유한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다. 이는 멀리 떨어진 장소를 현실처럼 느끼게 해주는 기술인 ‘텔레프레젠스(telepresence)’와도 구별된다.

텔레사V는 유체이탈해 로봇을 자기 신체로 만드는 인간 궁극의 존재 확장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치 스스무(館暲) 도쿄대 명예교수는 1980년에 이 같은 개념을 제시하며 ‘텔레이그지스턴스(telexistence)’라고 이름 붙였다. 이후 36년이 지난 오늘날 다치가 일본의 로봇 공학과 가상현실(VR) 기술을 접목시켜 개발한 것이 텔레사V다.

그로부터 약 2개월 뒤 X프라이즈 재단은 정상회의를 열었다. 이 재단의 목적은 인류의 혁신기술 개발이다. 지금까지 유인 탄도우주비행 대회나 해수로부터 원유회수 등 대규모 프로젝트를 개최해왔다. 1927년 찰스 린드버그의 대서양 단독 무착륙 비행이 인간의 이동이나 관광에 새로운 영역을 열어젖힌 것처럼 세계적인 규모의 상금 경쟁을 통해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려는 것이다. 투자자, 학자, 사업가, 자선사업가, 예술가, 기술자 등 회원 300명이 모여 차기 상금 경쟁의 후보인 9개 테마를 이틀에 걸쳐 심사했다.

이때 실연된 것이 다치가 개발한 텔레사V다. 회의 결과 다치의 연구는 마침내 세계적 경쟁의 차기 주제로 결정됐다. 불과 지난 1년여 전에 일어난 일이다. 현재 X프라이즈 재단은 ‘ANA 아바타 X프라이즈’라는 이름으로 텔레사V와 같은 ‘아바타’ 기술을 모집하고 있다. 오는 10월 31일까지 1차 접수를 받고 2년간의 심사를 거쳐 2021년 10월 1일 최종 결승이 치러질 예정이다. 우승자에겐 1000만 달러(107억원)의 상금이 주어진다.

“보통 일이 아니에요.” 지난 1월 중국 상하이의 뒷골목에 있는 한 싸구려 여관에서 만난 도미오카 진(富岡仁)은 이렇게 말했다. 도미오카는 중국에서 늘어나고 있는 무인점포를 시찰하기 위해 상하이를 찾았다. 도미오카가 건넨 명함엔 ‘텔레이그지스턴스 주식회사 대표이사 CEO’라고 쓰여 있었다.

위험한 ‘극한작업’ 로봇으로 대신한다

도미오카는 올해 안에 신형 로봇을 발표할 예정이다. 텔레사V를 기술과 디자인 양면에서 크게 진화시킨 로봇이다. “중국에 가기 전 일본에서 96개 회사를 7개월간 돌아다니면서 텔레이그지스턴스의 개념을 설명했어요. 96개 회사 중에서 현재 10% 정도 업체와 논의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스타트업으로선 나쁘지 않은 타율 아닌가요?” 도미오카가 웃으며 말했다.

도미오카의 회사 설립 경위는 이렇다. 2016년 X프라이즈 재단의 결정에 따라 다치의 주변엔 세계로부터 사업화 문의가 쏟아졌다. 세계 최초로 실현시킨 연구지만 누군가가 양산하고 보급해서 사업화하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이었다. 마침 당시 미쓰비시상사에서 일하던 도미오카가 다치의 연구실을 찾았다. 1979년생인 도미오카는 다치가 텔레이그지스턴스의 개념을 제창했을 때 고작 1살이었다. “저는 예전부터 야구경기를 VR 생방송으로 보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해서 VR 사업화를 모색하고 있었어요. VR 생방송 얘기를 하다 보니 회사를 함께 설립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죠.”

도미오카는 2017년 1월 다치를 회장으로 세우고 텔레이그지스턴스를 설립했다. 벤처캐피털 ‘글로벌 브레인’이 일본 통신업체 KDDI와 함께 출자를 결정했다. 전 세계 로봇 벤처를 지켜봐왔던 글로벌 브레인의 아오키 에이고(靑木英剛) 파트너는 출자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상적인 로봇은 도라에몽이죠. 하지만 현재 자동로봇은 아직 어린아이 수준만도 못 합니다. 이와 달리 텔레이그지스턴스는 인간이 안에 들어감으로써 인간처럼 완벽하게 움직이죠. 범용기술이기 때문에 온갖 산업에 응용할 수 있어요.”

다치가 제창한 텔레이그지스턴스 개념은 본래 1983년 시작된 국가 프로젝트 ‘극한작업 로봇’의 핵심이었다. 로봇은 정형화된 환경에서밖에 작업할 수 없다. 원자력, 해양, 석유정제소 등에서 작업할 땐 인간의 판단이 필요한 국면이 많기 때문에 원격에서 로봇을 분신처럼 움직이는 기술을 개발해온 것이다. 또 한 가지 아오키가 “일본에서는 보기 힘든 장점”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경영이다. 아오키는 “대학에서 시작된 벤처는 기술이 훌륭하더라도 경영인재를 회사 설립 후에 영입하는 사례가 많아 개발진과 경영진 간 불화가 종종 발생한다”며 “그러나 텔레이그지스턴스는 설립 때부터 기술자인 다치가 있었고 사업 전략도 분명했다”고 설명했다.

일본인, 스리랑카인, 체코인 등 다국적 팀으로 시작된 이 회사는 ‘슈퍼 엘리트 팀’이라고도 불리지만 사실은 엘리트 코스를 스스로 박차고 나온 젊은이의 팀이라고 하는 편이 정확하다. 일본인 아버지와 대만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도미오카는 생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를 병으로 잃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재미가 없어서’ 학교를 중퇴하고 16살에 사가현 고탄다의 클럽에서 접시닦이 일을 시작했다. “밤에 일하고 아침에 퇴근하는 생활을 1년 정도 했죠. 어느 날 어머니가 캐나다에 있는 친척의 결혼식에 가자고 하셨습니다. 캐나다에 도착한 다음날 어머니는 제 여권을 들고 귀국했어요. 알고 보니 그 곳 고등학교에 제 입학 원서를 내놓으셨어요. ‘졸업할 때까지 돌아오지 말라’고 하시더군요.”

밖은 영하 40도. 말도 통하지 않는 환경이었다. 어머니는 정기적으로 손 마사요시(孫正義) 소프트뱅크 회장, 혼다자동차 창업주인 혼다 소이치로(本田宗一郞) , 이나모리 가즈오(稻盛和夫) 교세라 회장 등 기업가의 책을 소포로 보내왔다. “심심하니까 읽기 시작했어요. 손 마사요시의 책을 읽으면서 ‘난 그동안 뭘 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죠.” 도미오카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머니의 계산대로 도미오카는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을 수료했다. 미쓰비시상사에 입사해 대형 프로젝트를 담당했으나 그런 안온한 삶은 ‘손정의 식으로 말하면 환상’이라고 생각한 도미오카는 회사에서 뛰쳐나왔다.

도미오카와 함께 96개사를 나눠서 돌아다닌 최고운영책임자(COO) 히코사카 유이치로(彦坂雄一郞)는 세계적인 축구선수를 꿈꿨으나 대학 4학년 때 아버지가 경영하던 작은 운송회사가 도산하면서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가족 사정에 따라 축구를 그만두고 도쿄대 대학원을 거쳐 골드만삭스에 입사했다. 이번엔 신입사원 연수를 마친 직후 미국발 금융위기가 불어닥쳤다. 히코사카는 주변 사람들이 구조조정으로 잘려나가는 가운데 폭풍과도 같은 일상을 보냈다. “1년 만에 금융업계의 20년을 경험했다는 말도 들었죠. 9년 동안 일을 하다 보니 기술 세계에서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공계 출신인 제가 기술업계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치의 연구를 세상에 내놓고 승부하고 싶어졌죠.”

그들은 텔레이그지스턴스를 운송혁명이라고 설명했다. ‘이동을 없애고 어디에서든지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남미에서 일본으로 일하러 오지 않더라도 공장에 텔레이그지스턴스를 갖춰 놓으면 일본이 밤일 때 낮인 남미에서 원격으로 로봇 작업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 보급까지는 두 가지 과제가 있다. 첫째는 수요를 파악하는 것, 둘째는 인간형 로봇은 가격이 비싸며 상업적으로 성공시킨 기업이 없다는 역사적 사실을 극복하는 것이다.

“귀사의 사업 영역에선 이런 일이 가능합니다”라며 각 산업의 대기업을 돌아다닌 두 사람은 의외의 반응을 경험했다. 히코사카는 “솔직히 약간 미친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어서 이해를 못 받겠다는 생각도 했다”며 “그런데 자신들의 일하는 방식을 바꾸고 싶다며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는 분들이 대기업에도 있더라”고 말했다.

도시의 인구집중을 완화

재난구조나 건설업 등 위험한 작업을 대체하는 것은 상상하기 쉽다. 그러나 예를 들면 의류업체의 경우 점포에서의 화려한 일거리보다 제품을 풀고 검수하는 등 창고에서 작업하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길다. 인력부족에 대한 고민이 업계마다 다르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어느날 히코사카는 KDDI의 소개로 이시카와현 나나오시의 일본 최대 의자재생공장 에프라보로 향했다. 전국의 호텔, 결혼식장, 극장, 병원, 심지어 하와이의 호텔에서도 의자 수리 의뢰를 받고 있는 업체다.

“멀리서부터 이 회사까지 의뢰가 오는 것을 보고 그만큼 이 직종에 인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히코사카는 말했다. 접수받은 의자는 멸균작업 후 천을 벗기고 분해한 뒤 망가진 부분을 수리한다. 그다음 새로운 천을 재단하고 봉재, 가공해 덧씌우는 세밀한 작업을 진행한다. 마쓰이 마사타카(松井正尙) 에프라보 사장은 “본래 이 지역엔 의류 봉제공장이 밀집해 있었지만 생산거점이 중국으로 옮겨가면서 공장 수가 급격히 줄었다”며 “젊은이가 기술을 습득하려면 시간이 걸리는데 로봇과 인간이 일을 잘 나눠서 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텔레이그지스턴스는 최종적으로 하이브리드 모션 플래닝(hybrid motion planning)을 목표로 한다. 로봇이 숙련 기술자의 움직임을 기계학습으로 습득한 뒤 젊은 미숙련 기술자의 작업을 보정하는 것이다. 즉 로봇을 사용한 기술 전수다. 또 1인 기술자의 일을 10대의 기계가 할 수 있다면 작업량은 10배가 된다. 로봇의 완전자동화는 아직 먼 훗날의 얘기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텔레이그지스턴스의 핵심은 도시의 인구집중을 완화하는 것이다.

지난해 8월 오이타현청 도쿄사무소의 다케후지 유지(武藤祐治)가 텔레이그지스턴스사를 찾았다. “개념을 잘 몰랐는데 와서 보고 충격을 받았다”던 다케후지는 도미오카, 히코사카와 논의해나가는 과정에서 더 큰 가능성을 확인했다. 처음에 다케후지가 착안한 것은 지방에 주재하는 사람이라면 쉽게 생각해낼 수 있는 과제였다. “오이타현은 과수재배업이 많습니다. 포도 수확은 계속 위를 쳐다보면서 해야 되고, 귤 농사 같은 비닐하우스 재배는 여름이 되면 일하기가 너무 힘들죠. 텔레이그지스턴스가 고령화하는 자영업자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텔레이그지스턴스를 활용한 관광체험도 가능하다. 도쿄에서 홍보 전단지를 뿌리는 것보다 오이타를 원격 체험하는 쪽이 관광객 모집에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다케후지는 시간이 지나가면서 또 다른 가능성도 생각해냈다. 지방은 인구 감소로 일손이 부족하다는 과제에 대한 의문이다. 현청에서 정보 인프라를 담당할 때 다케후지는 저녁에 퇴근하면서 장애인시설이나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가정을 방문했다. “히키코모리 자녀가 있는 가정은 생각보다 많습니다. 나이 많은 부모는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어요. 외출하지 못하는 이유는 대인 의사소통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정보 인프라 환경을 마련하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죠.”

발달장애나 신체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들도 사회 참가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시설에서 주는 일자리는 나무젓가락 포장 같은 일로 제한돼 있고 평균 월급은 2만 엔 정도다. 자립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다케후지는 ‘노동력은 건강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일하고 싶어도 일터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오이타현 안에서도 이런 잠재적 노동력은 방치돼 있다. 일본 전체에 이런 유휴인력이 얼마나 많을까. 지방 사람들이 마을회관 등에서 작업환경을 만들어서 대도시의 일을 원격으로 할 수는 없는 걸까. “그게 바로 텔레이그지스턴스의 목적입니다.” 다케후지의 말을 들은 도미오카와 히코사카의 답변이다.

도미오카는 두 가지 사업을 모색하고 있다. 첫째는 우주사업 등 시간 대비 비용이 극단적으로 높은 고부담 고가치의 일자리다. 또 한 가지는 소매업이다. 산업 중에서도 가장 종사자가 많고 유효구인배율(신규 구인 인원을 구직자 수로 나눈 수치)도 2.6배나 된다. 그러나 점포가 있는 지역 사람만 일할 수 있어 인력부족이 일어나고 있다. 도미오카는 “중국에서 급속도로 무인점포가 늘고 있지만 무인화되는 건 결제뿐”이라며 “입하, 검수, 진열, 접객 등 원격화할 수 있는 부분은 얼마든지 더 있다”고 말했다.

도미오카는 미쓰비시상사에서 일할 때 실리콘밸리펀드를 다뤘던 경험을 바탕으로 소매업 사업 아이템을 숫자로 모델링해봤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대박이 나는 발상이다. 채산성도 있다”고 도미오카는 말했다. 신형 텔레이그지스턴스는 늦어도 올해 여름 기자회견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 MASAHARU FUJIYOSHI, NAOKI NOGUCHI 포브스재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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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호 (2018.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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