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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의 정석 

 

최병선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사망 후에 남겨질 본인의 재산을 생전 유언을 통해 처분한다? 기존 한국의 정서를 고려하면 아직은 낯설다. 미국이라고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때문인지 최근 들어 ‘유언’이 재조명받기 시작했다.

필자는 지난해 포브스코리아 11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유언이 없더라도 상속인들은 다툼 없이 법정상속 비율로 나눌 것 같지만, 실제 생각하지 못한 법적인 문제로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고 했다. 유언을 미리 준비해 이런 위험을 줄이자는 취지였다. 이번 호에는 유언을 준비하기에 앞서 ‘유언’이라는 용어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일반적인 의미, 즉 사전적 의미의 유언은 ‘죽음에 이르러 말을 남김. 또는 그 말’을 뜻한다. 그러나 법률적으로는 ‘사망으로 인하여 효력을 발생시킬 것을 목적으로 하여 행하는 단독의 의사 표시’라는 뜻이다. 효력이 발생한다는 뜻은 법률상 재산상에 영향력을 미치는 효력이 발생한다는 의미다.

일반적·법률적인 의미는 이렇게 다르다. 한국에서 일반적인 유언의 의미를 떠올리면 “내가 죽더라도 자식들은 화목하게 지내거라”, “내가 죽으면 화장하여 따뜻한 남쪽 바다에 뿌려달라”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법적으로 보면 아무 의미가 없는 말이다.

영국이나 미국 등 서구권에선 어떤 의미일까. 이들이 주로 쓰는 단어는 ‘wills’ 또는 ‘testament’다. ‘wills’는 ‘의지’라는 뜻을 가진 ‘will’이란 동사에 기초한다. ‘testament’는 ‘예언(서)’으로 번역되는데 미래엔 자산을 이렇게 분배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따라서 유언자는 자신의 재산을 처분하는 의사를 표시하는 것이며, 재산을 처리하는 과정도 일정한 방향으로 처리되어야 한다는 일종의 예정을 담보로 한 선언적 의미가 강하다.

하지만 한국에선 그 의미가 명확하지 않다. 한국식 유언은 일반적으로 ‘죽음에 이르러’ 말을 남기는 것으로 이해된다는 점에서, 미리 자식들에게 재산을 분배하거나 분배 방침을 정하여 자식들이 다투지 않게 해달라는 요청은 그 요청을 받은 어르신들에게는 “내가 (빨리) 죽기를 바라느냐?”고 야단을 치는 핑계가 될 뿐이다.

그만큼 한국에서 유언을 준비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어찌어찌 설득해 유언장을 작성해도 차후 수정이 어려울 것을 염려해 한참 뒤로 미루는 경우도 다반사다. 물론 유언자는 아무 이유 없이 자유롭게 그 전부 또는 일부를 철회할 수 있다. 철회할 수 있는 권리를 미리 포기하는 것도 인정되지 않는다. 유언장을 작성했다고 해서 철회하기 위해 새 유언장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기존 유언과 저촉되는 행위를 하거나 유언장이나 유언에 의한 증여의 목적물을 파훼하는 행위만으로도 해당 유언을 철회한 것으로 본다. 유언은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한 번 하기가 어렵지 일단 하고 나면 수정도 생각보다 간편하다.

현행법상 유언은 어떤 방식으로 할까. 유언하는 방법에는 자필증서, 녹음, 공정증서, 비밀증서와 구수증서(받아쓴 증서)의 5가지 방법이 있는데, 가장 흔한 것이 ‘자필증서’와 ‘공정증서’다.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은 유언자가 그 전문과 연월일, 주소, 이름을 기재하고 도장을 찍어야 하며, 대법원은 그 형식적인 요건을 매우 중요하게 판단한다. 따라서 수십 쪽에 달하는 유언장을 직접 작성하고 이름을 쓰고 서명했다고 해도 날짜나 주소 등 위 사항 가운데 하나라도 빠져 있거나 서명이 있더라도 도장 날인이 없으면 무효다. 대법원의 확고한 판례도 있다. 컴퓨터로 작성해 출력해도 유언장으로서 효력은 인정받을 수 없다. 막도장을 찍어도 무방하지만, 도장 자체가 찍혀 있지 않으면 효력이 없다. 공정증서상 유언과 달리 검인 절차가 필수다.

사례를 보자. 재산에 관한 다툼이 치열한 자식들 사이에서 처신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던 한 어르신 얘기가 떠올랐다. 자필증서의 요건을 이용해 일부러 무효인 유언장을 작성했던 경우였다.

80대 여성인 모씨는 사망하기 얼마 전부터 그나마 가정 형편이 가장 나은 둘째 아들에게 얹혀서 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둘째 아들은 이를 기회로 다른 형제들 보다 둘째 아들에게 더 많은 재산을 남긴다는 내용으로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을 하도록 강요했다. 굳이 둘째 아들에게만 재산을 더 남겨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모씨는 자필증서 유언장을 쓰면서 일부러 주소, 날짜 등 법적 유언 성립 요건 가운데 하나를 누락시켰다. 그러고는 다른 상속인들에게 그러한 사실을 알려주면서 자신의 사망 후 법정 상속분대로 상속재산을 나누도록 협의하되, 합의로 해결되지 않으면 소송으로 해결하라고 했다. 부당하게 욕심을 부리는 자식을 고려한 아이디어였으나, 상속인들 사이의 법적인 분쟁으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했다는 점에서 과연 가장 잘한 것인지는 의문이 남는다.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은 어떻게 다를까. 증인 2인이 참여한 공증인 앞에서 유언의 취지를 말하고, 이를 필기 낭독해 유언자와 증인이 그 정확함을 승인한 후 각자 서명 또는 기명날인하는 방법으로 작성한다. 2인의 증인이 참석해야 하고, ‘공증인/공증법인’이라는 공적으로 인정받은 주체가 유언 장소에 참석해 그 내용 등을 확인하고 공증까지 해야 한다. 진실성을 그만큼 확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추후 유언에 대한 검인절차 없이 바로 유언을 집행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유언자가 건강상 이유로 외부 사무실에 방문하기 어려운 경우에도 방법은 있다. 공증인/공증담당변호사로 하여금 유언 장소로 출장을 오도록 하면 된다.

‘내 자식들은 내 사후에도 서로 우애를 지키고 잘 살겠지.’

유언자는 이런 막연한 기대감을 버려야 한다. 예부터 견물생심이랬다. 형제자매가 유산을 두고 다투지 않도록 미리 유언장을 작성할 것을 다시 한번 권한다. 더불어 유언장을 작성한 배경이나 본인의 의도를 미리 알려줘 가족 간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 최병선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201805호 (2018.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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