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질 디앙 오페라갤러리 회장 

세계 갤러리 네트워크로 맞춤형 컬렉션 완성한다 

박지현 기자
전 세계 갤러리 체인점 오페라갤러리 ‘서울’이 개관 10주년을 맞았다. 3월 22일 신사동 도산공원 앞 명품거리로 이전하고 새 단장도 마쳤다. 층마다 느낌과 색채가 다른 독특한 작품들이 시선을 끈다. 국제적인 갤러리 네트워크의 선구자인 질 디앙 회장을 23일 오페라갤러리에서 만났다.

▎질 디앙 오페라갤러리 회장은 “시장에 대한 지식도 중요하지만 작품을 느끼는 교감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전 세계에 네트워크로 고객의 취향과 수요에 딱 맞는 작품을 공급하는 갤러리가 얼마나 될까요?“

전 세계 13개 지점을 갖고 있는 ‘체인형’갤러리의 창업자 질 디앙(Gilles Dyan) 회장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일반적으로 작가의 1년 평균 작품 창작 수는 40점 정도다. 작가들의 활동을 알리고 작품을 사고자 하는 컬렉터들의 가교로 전 세계 네트워크를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으려면 그만한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있어야 한다는 게 질 디앙 오페라갤러리 회장의 지론이다.

1994년 설립된 오페라갤러리는 전 세계 주요 미술 중심지에 있다. 뉴욕, 마이애미, 아스펜, 런던, 파리, 모나코, 제네바, 취리히, 두바이, 베이루트, 홍콩, 싱가포르, 서울까지 입점하며 세계 미술시장에서 입지를 굳혔다. 오페라갤러리는 150여 명의 직원과 함께 매출 2억 유로를 달성했다. 현재 미술시장 전체의 ‘활력도’를 평가할 수 있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오페라갤러리의 컬렉션은 19세기부터 모더니즘, 세계대전 후,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파블로 피카소, 마르크 샤갈, 베르나르 뷔페, 알렉산더 칼더, 장 뒤뷔페, 루치오 폰타나, 앤디 워홀, 키스 해링 등 현대미술의 대가들의 작품도 전시한다. 앙드레 브라질리에, 페르난도 보테로, 리타 카벨뤼, 앤디 덴즐러, 피에르 술라주, 데이비드 킴 휘테커, 마이크 다르가스와 마놀로 발데스 같은 현대 미술계를 대표하는 주요 예술가들을 돕는 후원자 역할도 한다.

오페라갤러리 창업자인 질 디앙 회장은 세계적인 아트 딜러의 본보기로 꼽힌다. 유럽 상공회의소에서 인정하는 미술상거래 허가증을 가진 몇 안 되는 인물이다. 샤갈, 사미 브리스, 테오 토비아스 등 800여 점의 명작을 개인적으로 보유한 세계 50대 아트 컬렉터이기도 하다. 미술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미술시장에서 예술과 마케팅이라는 두 미지수로 이루어진 방정식에 해결책을 제시한 인물”로 통한다. 질 디앙 회장은 약 40년 전부터 미술시장에 발을 들이며 넓은 안목과 개성 넘치는 취향으로 차별화를 시도해왔다.

갤러리 문을 들어서자마자 질 디앙 회장은 서툰 한국어로 인사를 건네며 환대했다. 아시아 세 번째 지점인 오페라갤러리 서울이 개관 10주년을 맞이해 이전한 기념으로 방한한 것이다. 신사동 도산공원 정문 앞으로 옮긴 서울관 이전 행사 첫날에만 300여 명의 고객이 몰려 주차대란이 있을 정도였다며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질 디앙 회장은“전 세계 오페라갤러리 각 지점에서 이례적으로 십여 점 이상의 작품을 보내줬다”며 “서울 지점 재개관이 미술시장의 질적 성장을 촉진하고 한국 작가들의 세계적인 활동을 돕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새로 이전한 건물은 지상 3층과 루프탑을 갖춘 495㎡ (150평) 규모의 단독 건물로 색다른 전시 기획을 선보였다. 100여 점의 회화 작품과 20여 점의 조각 작품 전시가 가능하다. “홍콩 갤러리처럼 층마다 기획을 다르게 하기 위해 새 단장을 기획했다”는 오페라갤러리는 실제로 각 층에서 다른 느낌으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1층은 전속 작가 기획전, 2층은 갤러리 소장품 상설전시, 3층은 미술사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명작들을 선보인다. 4층 옥상은 조각 작품을 위한 야외 공간으로, 현재 이길래 작가가 동을 붙여 만든 소나무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싱가포르에서 첫 오페라갤러리 개관


▎Manolo Valdés 마놀로 발데스 (b.1942), Retrato con fondo naranja, Oil on burlap, 222.3 x 166.4㎝, 2007
재개관 특별전에서는 오페라갤러리 전속 작가들인 영국 작가 데이비드 킴 휘태커, 스페인 작가 마놀로 발데스, 리타 카벨뤼, 스위스 작가 앤디 덴즐러 작품을 볼 수 있다. 3층의 살롱 공간에서는 알렉산더 콜더, 베르나르 뷔페, 장 뒤뷔페의 작품을 직접 만나볼 수 있다.

“기억에 남는 일은 처음 갤러리를 열었을 때와 재개관 행사한 어제로 꼽을 수 있겠네요.”

질 디앙 회장은 오페라갤러리 서울 개관 10년 소감을 이렇게 전했다. 한국 미술시장은 지난 10년간 급변했다. 그는 “한국에는 세련되고 똑똑한 컬렉터가 많아지고 있고, 개인의 취향도 뚜렷해졌다”며 “비즈니스 측면에서도 분산투자의 하나로, 미술품 투자에 관심이 높아지는 등 라이프스타일도 성숙해졌다”고 평했다.

질 디앙 회장과 미술시장의 첫 만남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청년시절이었다. 주말마다 친구들과 젊은 예술가들의 그림이나 석판화를 파는 일을 했다. 그림을 방문 판매하거나 대형 쇼핑몰 근처에서 가판대를 설치해 팔던 그의 사업 수완은 성공적인 편이었다.

그런데도 프랑스인인 질 디앙 회장의 첫 오페라갤러리 개관은 다름 아닌 싱가포르에서 시작됐다. 파리는 당시 걸프전의 영향으로 경기가 침체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질 디앙 회장은 싱가포르에 오페라갤러리 문을 연 건 순전히 우연 때문이었다고 회고한다. 당시 르 브리스톨(Le Bristol) 호텔 옆 작은 갤러리를 운영하던 질 디앙 회장은 아트페어를 운영하던 고객과 친분을 쌓게 된다. 그때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아트페어에 참가해 3일 만에 40여 점의 그림을 판매하는 기록을 세우며 오페라갤러리는 아시아 시장에 발을 내딛었다.

질 디앙 회장은 파리, 모나코, 제네바, 런던 등에 하우스를 론칭하며 사업을 확장했다. 오페라갤러리 지점은 모두 그의 공간 전략에 포함된다. “갤러리는 꼭 명품 브랜드가 즐비한 지역과 인접한 곳”이어야 했다. 미국에서는 매디슨가와 67번 스트리트가 교차하는 코너에 위치한 뉴욕 하우스, 디자인 디스트릭트에 위치한 마이애미 하우스, 콜로라도의 아스펜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호텔들 옆에 자리했다. 아스펜은 구글 창립자, 배우 마이클 더글러스와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반바지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서울 또한 신사동 도산공원 근처로 자리 잡았다.

작가가 크려면 실력도 중요하지만 어떤 갤러리가 어떤 방식으로 소개하는지도 작가의 가치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오페라 갤러리는 전 세계 인프라와 소통망으로 유망한 신진작가를 발굴해 소개하는 글로벌 갤러리로 정평이 나 있다.

거장들의 회화와 현대 아티스트의 그림은 전 세계적으로 그의 갤러리를 순회하면서 소개한다.

오페라갤러리의 세계 지점의 운영 콘셉트는 동일하다. 하지만 나라마다 취향과 문화가 달라 대응전략도 조금씩 차별을 둔다. 질 디앙 회장은 “두바이, 한국, 파리에서 같은 작가를 소개해도 반응이 다르다”며 “예를 들어 두바이에는 누드화가 아예 반입이 안 되고 전혀 판매가 안 되는 작품도 있어서 마케팅 전략도 별도로 구상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국제적인 갤러리 작품들은 고객 맞춤형으로 가능하다고 자부했다. 지점마다 수천 점씩 보유해서다. 고객의 취향뿐 아니라 가격대까지도 맞추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전 세계 지점을 보유한 오페라갤러리의 자부심은 바로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서 나온다.

미술 작품은 다른 투자보다 안정성 높아


▎Manolo Valdés 마놀로 발데스 (b.1942), Fiori, Bronze, 124 x 180 x 71㎝, 2015
다른 갤러리들처럼 위탁하는 방식이 아니다. 질 디앙 회장은 모든 작품을 사서 되파는 방식을 택한다. 수익이 날 수 있을 정도로 시장가보다 조금 싸게 구입한다. 옥션, 갤러리, 개인 딜러 등 다양한 루트로 구입한 후 소장했다가 되파는 방식이다. 한편 1차 시장인 오페라갤러리 전속작가들 작품은 옥션보다 좀 더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해 가격의 합리성도 유지하고 있다. 서울관 구나윤 실장(director)은 “저도 경영 노하우를 배우고 있는 중”이라고 거들었다. 구 대표는 구갤러리 대표를 역임했었다.

“사업이 힘들어도 아파트를 팔았지, 컬렉션은 팔지 않는다.” 질 디앙 회장의 경영철학 중 하나다. 개인이 소장한 800여 점의 컬렉션은 비즈니스의 위기에도 세일 대상이 아니다.

사업의 어려움은 당연히 있었다. 3개 지점이 폐점했다. 카지노 근처에 열었던 싱가포르의 두 번째 지점, 두바이 몰 지점, 베니스 지점의 문을 닫아야 했다. 손실은 수백만 유로에 이르렀다. 그래도 좌절하지 않았다고 한다. “비록 저조한 곳이 있더라도 기다려보는 편이고 전 세계 네트워크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쉽게 포기하려고 하진 않는다”는 게 그의 경영방식이다.

질 디앙 회장은 미술투자의 안정성에 기댄다고 말한다. “미술품 투자는 주식, 부동산, 금 등 다른 투자 상품에 비해 안정적인 편입니다. 갑자기 가치가 상승한 작가가 아니라 오랫동안 세계 화단과 미술관에서 인정받은 작가일 경우 더 그렇죠. 피카소나 샤갈 같은 마스터피스 작품은 세월이 지날수록 가치를 더해갈 것이고 중국 등에서 좋은 작품은 계속 가치가 오르기 때문에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한국 시장은 아직 성장해야 한다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젊은 현대작가들의 국제적인 활동만큼이나 미술시장을 보는 안목도 발맞춰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질 디앙 회장의 평가에 따르면 한국 컬렉터는 일본이나 유럽 컬렉터에 비해 마스터즈에 관한 지식이 아직 부족한 상태다.

지금 현대미술에 몰려 있는 시장은 근대미술로 점차 이동하고 있다. 블루칩으로 떠오른 새로운 시장이다. 지금 미술시장에서는 피카소 작품과 현대미술 작품의 가치를 똑같이 보고 있지만 질 디앙 회장은 희소가치는 시간이 지날수록 피카소나 샤갈과 같은 마스터 작품에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아시아에서도 일본은 이미 앞서서 변화를 보이고 있고 중국도 마스터 시장에 눈뜨기 시작했다.

오페라갤러리 그룹은 지속적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인터뷰 이후 4월 1일 스위스 취리히에 제네바 이후 두 번째 지점을 오픈했다. 장기적으로는 남미를 비롯해 일본, 중국, 대만 등 아시아 시장도 목표로 두고 있다. 하지만 그는 “천천히 시간을 두고 작품을 공유하면서 투자자를 찾는 등 신중하게 결정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미술계의 큰손이 된 질 디앙 회장의 작품을 보는 안목이 궁금했다. 그는 “작품과의 교감”이라고 강조했다.

“이 업계에서는 물론 시장의 흐름을 매일 확인하면서 지식을 쌓는 것도 중요해요. 그러나 실제 좋은 작품을 고를 땐 개인적으로 관련성(connection)과 전율이 느껴져야 합니다. 스스로를 감정적으로 흥분시켜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면 그건 좋은 작품입니다. 좋은 작품의 기준엔 시대나 국가, 스타일이 상관없는 것이죠.” 오페라갤러리 서울의 작품들은 질 디앙 회장의 이 ‘안목’에 충실한 작품들로 보인다.


▎Andy Denzler 앤디 덴즐러 (b.1965), Every Single Day, Oil on canvas, 120 x 140㎝, 2015



▎Alessandro Algardi 알렉산드로 알가르디 (b.1945), 4.04.2008, Oil on canvas, 100 x 120㎝, 2008



▎David Kim Whittaker 데이비드 킴 휘태커 (b. 1964), The Paranoia Diva, Oil and acrylic on canvas ,122 x 122㎝, 2017 / 사진:오페라갤러리



- 박지현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사진 김현동 기자

201805호 (2018.04.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