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조지선의 ‘셀럽 심리학’ 

권력 가진 남자들은 왜 젊고 예쁜 여자를 탐낼까 

조지선 심리학 박사
우월한 후손을 남기는 측면에서 ‘예쁘고 어린 여자에 대한 갈망’은 적응적 성향이다. 이 원시적 이끌림이 요즘 세상에도 동일하게 ‘적응적’일까?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혁명처럼 번지는 ‘미투(Me Too)’ 폭풍 속에 한 방에 훅 가는 유명인을 보면서 아는 기자가 이런 질문을 했다. “권력 가진 남자들은 대체 왜 젊고 예쁜 여자를 욕심내는 걸까요? 이렇게 끝날 줄 몰랐을까요?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냐고요.” 그러고는 스스로 정리한다. “하긴, 권력 있는 남자들만 그러겠어요? 모든 남자가 그렇지.”

파워가 있으나 없으나, 늙으나 젊으나, 제도가 허용하는 테두리 안이든 밖이든 모든 남자는 젊고 예쁜 여자를 좋아한다? 정말 그럴까? 직간접 경험으로 마련된 심증은 그렇다. “오빠, 착한 애가 좋아? 예쁜 애가 좋아?” “응, 예쁜 게 착한 거야.” 이 오래된 농담에 모두 실소로 공감하지 않았던가.

잘나가는 남성은 지나치게 앳되거나 아름다운 여성과 짝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 특히 CEO와 연예인의 활약이 돋보인다. 1994년 당시 26세로 ‘플레이보이’지 모델이었던 안나 니콜 스미스와 결혼한 석유재벌 제임스 하워드 마셜 2세는 그때 89세였고, 결혼 후 14개월 만에 사망했다. ‘플레이보이’ 창립자 휴 헤프너도 만만치 않은데 60살의 나이 차를 극복하고 ‘플레이보이’ 모델 크리스털 해리스와 88세에 결혼했다. 이쯤 되면 25살 차이 나는 마이클 더글러스와 캐서린 제타 존스의 결합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힘 있는 남성과 젊고 예쁜 여성의 결합이 힘 있는 여성과 젊고 잘생긴 남성의 결합보다 흔한 이유는 서로 니즈가 맞아서다.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는 그의 연구에서 37개 문화권에 속한 미혼남녀에게 “배우자에게 가장 바라는 것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결과는 정말 깨끗했다.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남성은 ‘예뻤으면’이라고 답했고, 여성은 ‘돈을 잘 벌었으면’이었다. 또 남성은 어린 여성을, 여성은 연상의 남성을 선호하는 등 뚜렷한 차이가 드러났다.

동서 불문 남 ‘외모’, 여 ‘경제력’ 선호


▎슈퍼리치들의 두 번째 결혼은 큰 나이 차를 보인다. (왼쪽부터)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결혼정보업체 듀오가 1996년 이후 매해 발표한 ‘대한민국 2030 미혼남녀의 이상적인 배우자상’ 조사가 이를 뒷받침한다. 남성은 ‘외모가 좋다면 경제력은 상관없다’고, 여성은 ‘경제력만 좋다면 외모는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20년 넘게 일관적이다.

왜 이러는 걸까? 이 지점에 단골로 등장하는 것이 진화심리학이다. 이 현상을 유전자의 생존 가능성을 극대화하고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남녀의 선택으로 설명한다. 원시적 이끌림(Primal Attraction)의 법칙이 현대인의 파트너 선택에 깊숙하게 관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몇백만 년 동안 뇌에 새겨진 짝짓기 방식은 이렇다. 남성은 매우 적은 투자(기껏해야 그 수많은 정자 중 하나)로 유전자를 후세에 남기는 잭팟을 터트릴 수 있으니 여성을 선택하는 데 까다롭기보다는 자주 데이트를 시도하는 것이 적응적 행동이었다. 즉 다다익선이다. 장기적 관계보다는 단기적 관계가 유리하다. 깐깐하진 않아도 나름 의지와 취향이 있다. 예쁘면 된다. 빛나는 피부와 머릿결, 도톰한 입술, 대칭적인 얼굴과 몸, 젊음과 건강함의 신호를 예민하게 분별하고 이런 특징에 끌렸던 남성이 ‘후대 재생산’ 측면에서 성과가 좋았다. 60대 여성에게 매료된 남성은 후손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오랫동안 연습한 이 규칙은 현대인의 뇌에 ‘이성 간 매력(Inter-sexual Attraction)’ 프로그램으로 남았다.

여성이 임신(정자에 비해 엄청 귀한 난자)과 출산, 육아에 투입해야 하는 노력은 어마어마하다. 한번 삐끗해서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놈을 만나면 망하는 거다. 힘이 있는지, 배신하지 않을지 따져봐야 한다. 출산과 육아의 과정에서 여성은 의지와 관계없이 외부적 위협에 취약한 상태가 된다. 자신과 아이를 보호하고 자원을 공급해줄 파트너가 절실했고, 이런 남성을 선택한 여성들이 후대에 유전자를 남길 가능성이 높았다.

진화심리학의 설명에 대한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첫째는 ‘안도감’이다. 강의 후 한 남학생이 다가와 해맑게 웃었다. “교수님, 이제 좀 마음이 편해요. 제가 왜 예쁜 여학생들만 쫓아다니는지 완전히 이해했어요. 조상 탓인 거죠? 큭, 제가 정상이네요. 생긴 대로 살려고요.”

아뿔싸! 이런 헛다리 때문에 두 번째 반응인 ‘불쾌감’이 이해된다. “뭐라고요? 남자가 여자 밝히는 것과 여자가 남자 돈 보는 게 자연스러운 생존본능이고 적응적 행동이라고요? 지금 멍석 깔아주는 거예요?” 성차에 대한 반지성적·반문명적 인식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가짜 학문이라고 욕먹을 만하다. 생식을 중심으로 남녀관계를 단선적으로 설명하니 거북하다.

그런데 화낼 필요도, 위로받을 이유도 없다. 진화심리학은 사회현상을 진화적 관점으로 이해하려는 과학적 시도 중 하나일 뿐이다. 성차별적 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조직적 활동도, 외모와 돈을 보고 짝을 고르라고 응원하는 학문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남들이 연구해놓은 것에서 내가 뭐라도 하나 얻어가는 것이다.

일련의 연구가 제시하는 바에 따르면 우월한 후손을 남기는 측면에서 ‘예쁘고 어린 여자에 대한 갈망’은 적응적 성향이다. 그런데 이 원시적 이끌림이 요즘 세상에도 동일하게 ‘적응적’일까? 바로 답이 나온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진화의 과정을 거쳐 오늘날 살아남은 모든 여성은 충분히 아름답고 건강하다. 흉한 외모 탓에 생식력의 문제가 드러난 사람은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인공지능 시대의 남성이 생식력의 징표에 과도하게 민감하다면 이는 의미 없는 원시인 놀이가 아닐까?

유난히 태고의 법칙에 강력한 지배를 받는 듯한 집단이 있는데 바로 억만장자 셀럽들이다. 심리학자 토마스 폴렛은 ‘2012년 포브스 400 리스트’에 등장한 갑부들의 초혼 및 재혼에 대해 조사했다. 초혼에서 남성들은 7세 정도 어린 신부를 맞이해 미국 커플의 평균인 4세보다 나이 차가 더 컸다. 여성 부자들은 4세 많은 남성과 결혼했으니 이는 보편적인 것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슈퍼리치 남성들의 두 번째 결혼이다. 그들은 평균적으로 무려 22세 어린 여성과 재혼했다.

진정한 파트너 알아보는 남성이 생존 게임에서 승리

대부분의 남성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22살 어린 여자가 미쳤다고 나를?” 그런데 부러우면 지는 거다. 오히려 이 현실적인 제약은 축복의 보호 장치다. 거꾸로 말하면 ‘원하면 가질 수 있는 힘’이 오히려 취약점인 듯하다. 권력 있는 남성이 원시적 프로그램의 지배를 받아 이혼과 재혼을 반복하는 것으로 보이니 말이다.

딸이나 손녀 또래의 여성과 결혼한 부자들은 행복할까? 그러길 바란다. 나이 차이가 크다고 솔메이트(soulmate)가 되지 말란 법이 있나. 그러나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다. 부동산 재벌 리처드 루그너는 82세에 25세 모델 캐시 슈미츠와 결혼한 후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여전히 새 아내가 나보다 은행 잔고에 더 관심이 많을까봐 두렵습니다.” 이 부부는 결국 2년 뒤 이혼했다.

현대적 의미의 생존은 ‘살아남는 것’ 그 자체가 아니라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관계 치료전문가이자 심리학자 존 가트맨의 연구를 들여다보면 문명시대의 생존에 적합한 매력의 법칙이 보인다. 가트맨은 족집게 도사처럼 신혼부부의 상호작용 모습을 보고 5년 후 이혼 가능성을 90% 정확도로 예측한다. “교수님, 결혼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요? 딱 하나만 말씀해주세요.” 이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많은 이야기 가운데 단 하나만 꼽으라면, 서로의 꿈을 존중하라고 말하겠습니다.”

문명화된 남성이 원하는 파트너는 지적이고 창의적이며 서로의 꿈을 지지할 수 있는 문명화된 여성이다. 삶의 의미를 공유하고 정서적으로 공감하며 상호 영향을 수용하는 파트너십 역량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남성이 새로운 생존 게임에서 승리할 것이다. 멋지고 파워풀한, 그야말로 잘나가는 남성들의 연애와 결혼이 원시적 이끌림이 아닌 문명화된 매력 법칙의 본보기가 될 수 있을까? 그러면 좋겠다.

※ 조지선 전문연구원은… 스탠퍼드대에서 통계학(석사), 연세대에서 심리학(박사)을 전공했다. SK텔레콤 매니저, 삼성전자 책임연구원, 타임워너 수석 QA 엔지니어, 넷스케이프 커뮤니케이션 QA 엔지니어를 역임했다. 연세대에서 사회심리학, 인간행동과 사회적 뇌, 사회와 인간행동을 강의하고 있다.

201805호 (2018.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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