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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정몽헌-현정은의 개척자 정신 

남북경협은 기업가의 소임이다 

조득진 기자
1998년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소떼 방북’은 남북 민간교류의 물꼬를 텄다. 그의 개척자 정신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잇고 있다.
현대그룹의 남북경협 꿈은 30년 전부터 시작됐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1989년 1월 24일 남한 기업인 최초로 북한을 방문해 ‘금강산관광 개발 의정서’를 체결했다. 그리고 9년 뒤인 1998년 6월 16일 그는 민간인 신분 최초로 판문점을 통과해 북한에 들어갔다. 고향 강원도 통천에서 소 한 마리 판 돈 70원을 훔쳐 가출해 현대그룹을 국내 1위의 그룹으로 성장시킨 그는, 빚을 갚기 위해 소 1001마리를 이끌고 방북했다.

‘소떼 방북’ 이후 남북경협은 급물살을 탔다. 같은 해 11월 18일 역사적인 금강산관광 사업이 시작됐고, 2년 후엔 첫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됐다. 2002년엔 경의선·동해선 열차가 군사분계선을 넘어 시험운행을 시작했고 2003년 개성공단 개발, 2007년 개성관광 개시 등 경협사업이 확대됐다.

남북경협 전면화 속 현대그룹 역할 주목

남북경협에 대한 정 명예회장의 메시지는 현재도 울림이 크다. 1989년 국회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그는 “북한에서 뜯어먹을 것이 없고 벗겨 먹을 것도 없는데 초창기에는 큰 기업들이 본전치기하면서 북을 도와주고, 남북관계가 안정되고 장사가 될 때 중소기업이 나서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리스크를 이겨낼 능력을 갖춘 대기업이 먼저 진출해 터를 닦고 이어 중소기업도 참여하는 방식을 제시한 것이다. 그의 의도대로 현대그룹이 금강산관광으로 문을 연 남북경협은 중소기업이 주도하는 개성공단으로 이어졌다.

‘4·27 판문점 선언’과 북한의 비핵화 의지로 남북 경제협력에 기대감이 폭발적이다. 남측 자본과 기술, 북측 노동과 자원 결합의 시너지에 대한 기대다. 물론 우려의 시선도 적지 않다. 남북경협이 본격 궤도에 오르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단된 조국의 화해와 평화, 경제적 발전은 기업가의 몫이기도 하다. 독일 통일에도 서독 기업가의 적극적인 투자와 경협 노력이 있었다. 폴크스바겐의 카를 한, 지멘스의 조 케저 회장이 대표적이다. 그들은 동독 재건이 사업적 기회인 동시에 독일인으로서의 책임이라고 믿었다. 정부도 앞장서 1990년부터 매년 서독 국내총생산(GDP)의 5%를 동독에 투입했다. 경협은 동·서독 간의 긴장 완화, 개혁·개방 유도에 기여했다.

20년 전 ‘소떼 방북’은 정주영 회장의 기업가로서 개척자 정신을 확연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는 아들 정몽헌 전 회장에 이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으로 이어졌다. 현 회장은 10여 년간 이어진 정치적·사업적 어려움 속에서도 경협사업의 끈을 놓지 않았다. 남북경협 전면화 분위기에서 현정은 회장과 현대그룹의 역할이 주목된다.

- 조득진 기자 chodj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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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호 (2018.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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