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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관광 관련 정·재계 인사 모여 업계 현안과 해법 논의 

“우리가 글로벌 GDP의 10% 만든다” 

부에노스아이레스=함승민 기자
전 세계 800여 명의 관광업 경영인이 한 자리에 모였다. 업계의 트렌드를 파악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2018 WTTC 글로벌 서밋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4월 18~19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2018 WTTC 글로벌 서밋이 열렸다.
관광산업은 복잡하다. 기본적으로 사람이 움직여야 돈이 움직이는 서비스업이다. 대다수 관광이 주어진 자연환경이나 과거로부터 남겨진 유산을 활용하는 일종의 ‘자원 의존형’이기도 하다. 동시에 교통과 숙박 시설을 갖춰야 작동하므로 인프라 투자와도 관계가 깊고, 상당수가 국경을 넘는 거래라는 점에서 국제적 공조도 중요하다.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최근엔 디지털 기술이 업계의 새 변수로 떠올랐다. 그만큼 관광업 종사자들의 고민도 범위가 넓어졌다. 2018 세계여행관광협회(WTTC) 글로벌 서밋에서도 이런 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지난 4월 18~19일(현지시간) WTTC 글로벌 서밋이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렸다. 1990년 영국 런던에서 출범한 WTTC는 세계 최대 민간여행단체로, 세계 여행업계 선도 100대 기업 CEO(최고경영자)로 구성돼 있다. 올해로 17회째를 맞는 총회는 전 세계관광 관련 기업인 800여 명이 참석하는 자리다. 글로벌 기업의 CEO는 물론 대중적으로 인지도 높은 초청 인사와 세계 각국의 취재진이 몰린다. WTTC는 이 행사에서 관광산업의 현안을 주제로 세미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산업 발전을 위한 강령이나 협약을 발표한다.

전 세계 관광 관련 기업인 800여 명 참석


▎2018 WTTC 글로벌 서밋에 기조연설자로 나선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
“사실 공식 프로그램보다 행사장 한편에서 이뤄지는 만남(sideline meeting)이 이 행사의 진짜 핵심이다”. 현장에서 만난 한 글로벌 호텔의 임원은 기자에게 이렇게 귀띔했다. WTTC 서밋은 여행·관광산업 트렌드 파악은 물론 인맥 관리와 홍보의 장으로 활용된다. WTTC 서밋은 업계 기업인들이 매년 여러 나라의 관광 관련 부처의 장·차관, 때로는 대통령이나 총리까지 고위급 정부 관계자를 만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 자리에서 기업인들은 공식·비공식적으로 업계의 의견을 전달하거나 각국 정부의 정책 방향을 파악한다. 정부 관계자들은 자국으로 들어올 관광객,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바삐 움직인다.

올해 서밋에도 개최국인 아르헨티나의 마우리시오 마크리 대통령를 비롯해 십여 명의 유럽·남미·아시아 등지의 전·현직 총리와 장관급 관료, 주랍 폴로리카시빌리 세계관광기구(UNWTO) 총장 등 국제기구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서밋이 시작된 18일 오전 마크리 대통령은 관광업 기업들에게 우호적인 정책과 지원을 약속했고, WTTC는 회원사들이 아르헨티나에 19억 달러(약 2조원) 규모의 투자를 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최근 관광업에 힘을 쏟고 있는 일본도 이번 서밋에 많은 공을 들였다. 세계 최대 여행사 중 하나인 일본교통공사(JTB)의 타가와 히로미 회장을 비롯해 일본 관광부, 일본정부관광국(JNTO), 일본항공, 동일본여객 철도 관계자 30여 명이 참가했다. 이들은 예외적으로 행사 중간에 별도의 세션을 마련해 자국의 관광 상품과 정책 방향을 홍보하기도 했다. 일본 교도통신의 케이치로 오츠카 기자는 “일본 정부와 공기업, 민간기업들이 매년 WTTC 서밋에 적극적으로 참가하고 있다”며 “전략적으로 관광산업을 육성하려는 정부 기조를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러 정부 관계자의 참석은 각국 경제성장에서 관광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방증하기도 한다. WTTC는 매년 옥스퍼드대 부설연구소인 옥스퍼드 이코노믹스와 함께 전 세계 관광업의 현황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한다. 이에 따르면 관광산업은 최근 세계경제의 투자와 경제성장의 핵심 영역이다. 지난해 관광업 성장률은 4.6%로 전체 경제성장률(3%)을 웃돈다. 세계 관광산업의 규모는 약 8조3000억 달러(약 9000조원), 전 세계 GDP의 10.4% 수준이다. 산업 유발효과도 크다. 서밋에 패널로 참가한 타가와 JTB 회장은 “일본에서 중국인 관광객의 증가가 화장품 산업의 발전을 촉진한 사례가 있다”며 “관광업은 파생산업의 성장을 유도한다”고 말했다.

일자리 역시 각국 정부가 관광업 육성에 관심을 갖는 이유다. WTTC에 따르면 관광업은 전 세계 모든 일자리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3억3300만 개 일자리 창출에 기여했다. 지난해 새로 만들어진 일자리 가운데 5분의 1은 관광업과 연계돼 있다. ‘관광업-고용의 엔진’ 세션에서는 데렉 하네콤 남아프리카공화국 관광부 장관, 카즈오 야나 일본 국토교통상, 구스타보 산토스 아르헨티나 관광부 장관 등이 참석해 자국에서 관광업과 일자리 창출을 어떻게 연결시키고 있는지를 공유했다. 이들은 일자리의 숫자만이 아니라 미래형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 관광업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입을 모았다. 야나 부총리는 “(인구구조가 빠르게 바뀌는 상황에서)관광업을 통해 청년층과 고령층을 겨냥한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경 이동 자유로운 ‘심리스 여행’ 제언


▎WTTC는 이번 서밋에서 UN기후변화협약 (UNFCCC) 사무국과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야생동물 밀거래에 반대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다만 기대감과 별개로, 현재 관광업이 맞닥뜨린 산도 높다. 세계적인 보호무역주의의 대두는 관광에도 영향을 미치는 모습이다. 기후변화와 환경파괴, 예측하기 어려운 재난 등은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요소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은 관광업계에도 변화를 강요하고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가장 많이 허물어진 영역 중 하나다. 이번 서밋에서도 이런 고민에 대한 업계 관계자들의 논의가 오갔다. 글로리아 게바라 WTTC CEO는 “이 밖에도 우리는 사회의 양극화, 임금의 불평등, 고령화,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 증가 등 다양한 위기 요인을 맞고 있다”며 “관광업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 머리를 맞대고 상의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특히 올해에는 최근 까다로워진 국가 간 이동이 화두로 떠올랐다. 각국의 보호무역주의나 반이민 정책의 여파로 관광객의 이동이 제한되는 추세 때문이다. 가령 미국의 경우 간단한 신고 절차만으로 90일간 외국인을 입국시키는 ‘비자 면제 프로그램’ 적용 대상을 축소하는 등 경계 태세에 돌입하기도 했다. 이에 서밋에 참가한 업계 관계자들은 국경 통과가 비교적 자유로운 ‘심리스 여행(seamless travel)’의 당위성을 강조하면서, 이것이 현재 기술력으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역설했다. 국제사회의 정책변화를 유도하기 위해서다. 안 소렌손 메리어트인터내셔널 CEO는 “관광업의 성과 앞에서는 보호주의를 고집할 수 없을 것”이라며 “투자와 고용창출 등 우리가 만들 수 있는 기회를 국제사회에 어필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자유로운 국경 이동은 관광업 성장이 핵심 요소라고 강조했다. 마르코스 페나 아르헨티나 수석장관은 “예컨대 아르헨티나·브라질·칠레 등 인접 국가 간 이동이 더 쉬워지면 더 많은 중국인 관광객이 찾아올 것”이라며 “주변 국가 간 장벽을 낮추면 관광효과가 극대화된다”고 말했다. 호세 마리아 전 스페인 관광부 장관은 “유럽 통합과 스페인 관광업의 성장을 봤을 때 낮은 장벽이 관광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틀림없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 우려하는 보안 문제는 첨단 기술로 보완할 수 있다고 봤다. 지문·안면인식 등 생체인식 기술을 활용하는 방안이다. 이자벨 힐 미국 여행관광사업청장은 “지난 4년 동안 미국에선 안면인식을 통해 여권이나 탑승권 없이 목적지로 이동할 수 있게 됐다”며 “심리스 여행을 현실로 만들 기술은 이미 갖춰졌다”고 말했다. 폴스틸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본부장은 “여행객의 70% 이상이 심리스 여행을 위해 개인정보를 제공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그 수요와 잠재성이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여행객 편의를 위한 출입국 심사 절차의 일원화도 관건이다. 리우 팡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사무총장은 “국제사회에서 이미 보안검사에 대한 표준이 합의됐지만, 30%만 이를 적용하고 있다”며 각국 정부의 정책 시행을 촉구했다.

산업의 지속성에 대한 고민도 이어졌다. 지나친 개발, 기상이변, 해수면 상승, 생물의 다양성 파괴가 관광업의 주요 ‘자원’을 고갈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지난 4월 필리핀의 휴양섬 보라카이가 환경정화를 위해 6개월간 폐쇄에 들어간 사례도 있다. 서밋 참가자들은 지속 가능성을 위해 ‘성장에 고삐를 채울 필요가 있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 일환으로 WTTC는 이번 서밋에서 UN기후변화협약(UNFCCC) 사무국과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야생동물 밀거래에 반대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패트리샤 에스피노사 UNFCCC 사무총장은 “급성장하는 관광업은 기후변화에 책임이 있고, 동시에 이를 해결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분야”라며 “WTTC와 목표를 공유할 수 있게 돼 기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지속성 담보하려면 성장에 고삐 채워야”

세미나 프로그램 중에서는 관광업계 경영인들을 위한 조언을 듣고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자리도 마련됐다. 이번 서밋에서 주요 아젠다로 선정된 것은 재난 뒤의 위기관리와 디지털 시대 적응이다. 위기관리 측면에서는 커뮤니케이션이 강조됐다. 과거 쓰나미부터 일본의 지진과 원전 사고, 대서양 캐리비언 지역의 허리케인, 유럽의 테러 등은 사람의 힘으로 예측하거나 예방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나집 발랄라 케냐 관광부 장관은 “위기가 닥쳤을 때, 사건 자체는 문제의 일부분에 불과하고 오히려 그로 인한 연쇄효과가(업계의) 일자리와 생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며 사후에 전 세계 여행객을 대상으로 소통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중요해졌다고 지적했다.

디지털화에 대해서는 기대와 걱정이 공존했다. 거화융 유니온페이 회장은 “모바일 인터넷은 편리하고 안전한 여행을 경험하는 데 도움이 됐다”며 “기술 혁신은 관광산업의 성장 여력을 더욱 확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기술을 위한 기술’은 경계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왔다. 글로벌 여행사 토머스쿡 그룹의 피터 프랑크하우저 CEO는 “초창기 모바일 기술을 접목하는 과정에서 슬로건만 거창하게 걸고 일을 복잡하게 진행하면서 시행착오를 겪었다”며 “디지털화 자체가 아니라 고객을 위한 변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파트너를 활용하면 그들의 기술을 얻는 셈”이라며 “본업에 집중하면서, 기술기업이 되는 게 아니라 기술을 활용하는 기업이 되는 게 현명하다”고 덧붙였다.

- 부에노스아이레스=함승민 기자 sham@joongang.co.kr

201806호 (2018.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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