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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리스크와 가족헌장 

 

김선화 ㈜에프비솔루션즈 대표
불과 2년 전 대한항공 ‘땅콩회항’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그리고 2년 후 땅콩 사건 당사자의 여동생이 ‘갑질’ 사건으로 다시 한번 구설수에 올랐다. 국내외를 불문하고 오너들이 구설수에 올라 기업경영을 위태롭게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오너 리스크’, 극복하는 방법이 있을까.

‘부자는 3대를 못 간다’는 속담이 있다. 표현은 다르지만 전 세계 모든 언어권에 같은 의미의 속담이 있다고 한다. 가족기업 연구의 대가인 존 워드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실제 기업이 3대를 넘어 생존하는 비율은 불과 4% 정도밖에 안 된다. 세금을 많이 내는 나라나 심지어 세금이 없는 나라에서도 이 비율은 거의 동일하게 나타난다. 혹자는 이를 자연현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년, 심지어 수백 년 이상 한 가문에서 기업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기업도 있다. 예를 들어, 세계최대의 사료 회사인 ‘카길’은 창업자 가문에서 약 150년째 이어가고 있다. 세계적 명품 기업 에르메스는 약 180년 동안 6대, 독일의 제약 회사 머크는 약 300년 동안 13대에 걸쳐 가족기업으로 생존하고 있다. 이들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장수기업의 성공 비결은 ‘가족헌장’

장수기업 연구로 저명한 미국 브라이언트대학의 윌리엄 오하라(William T. O’Hara) 교수는 장수기업의 공통된 비결을 명문화된 가풍에 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도 400년 동안 부를 이어온 경주 최부자 가문에는 ‘육훈’이라는 명문화되어 계승해온 가훈이 있었고, 일본의 380년이 넘은 간장 회사 ‘깃코만’은 17개 항목의 ‘모지 가족교서’를 제정하여 지금껏 준수하고 있다. 이처럼 세계적인 장수기업에는 체계적으로 문서로 정리해놓은 가족규약이 있는데 이를 ‘가족헌장(Family Constitution)’이라고 한다. 가족헌장이란 미래의 가족, 기업, 오너십 간의 균형과 안정을 위해 포괄적인 가족의 철학과 원칙, 정책 등을 명백하게 밝힌 문서다.

가족기업은 수명이 늘어날수록 가족의 수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며 소유권 관계가 복잡해지고 가족 또는 주주로서 재무나 경영 관련 욕구도 다양해진다. 만약 가족 간의 복잡한 이해관계나 개인적인 욕구로 갈등이 발생했을 때 이에 대처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이 없다면, 가족기업으로의 영속성에 걸림돌이 된다.

가족헌장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족들이 함께 자발적으로 결의한 가족의 공식 협약서다. 일반적으로 가족헌장에는 어떤 항목이 포함되며, 주요 항목들은 어떤 내용들로 구성되는지 살펴보자.

장수기업들은 창업 초기부터 이어져오는 가문의 철학과 핵심가치 등을 지켜온 것을 가장 중요한 성공 요인으로 꼽는다. 1788년 창업해 맥주 명가로 자리 잡은 캐나다 윌슨가의 경우 창업자의 철학이 ‘가문의 강령’으로 후손들에게 전해지며 행동의 기준이 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윌슨 가문은 끈기와 근면으로 지위와 영향력을 유지해왔기 때문에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은 진짜 일꾼이 되어야 하고 과거의 노력에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 가문에서 좋은 것과 훌륭한 것은 숨기지 말아야 한다. 개인 생활은 순수해야 한다. 품성은 인간에 대한 척도다. 아무리 적더라도 소득 범위 내에서 살아야 한다. 부는 주의 깊고 신중하게 오래 지키고, 투기를 해서는 안 된다. 공정하고, 있을 때 넉넉히 베풀라. 부는 저절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조심스럽게 지켜야 한다.”

미국의 또 다른 가족기업은 가족헌장에 다음과 같은 가족의 ‘비전과 임무’를 명시했다.

“우리 가족의 비전은 훌륭한 가족과 건강한 기업, 우수한 지역사회를 만드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우리 가족은 개인이 아닌 팀으로 함께 일하는 즐거움을 맛보며, 능력 있고 경쟁력 있는 개인 계발에 중점을 두고 강력하며 응집력 있는 가족을 만들고자 최선을 다한다.”

창업자가 아무리 훌륭한 철학과 가치를 가지고 가족과 기업을 이끌어간다고 해도, 가족들이 이를 듣고 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가족규정의 핵심은 가족 간 갈등을 예방하고 가족들이 서로 협력할 수 있도록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가족회의’ 또는 ‘가문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가족의 수가 적을 때는 공식적인 ‘가족회의’를 정례화하고 운영한다. ‘가족회의’의 목적은 가족들이 기업에 관한 정보를 얻고 기업이나 가족문제에 관해 자유롭게 의견을 내는 등 가족의 주요 의사결정기구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2~3대에 이르러 가족의 수가 많아지면 각 가계를 대표하는 가족들을 중심으로 ‘가문위원회’를 구성한다. 기업의 영속성 및 승계 문제를 다루며, 대를 이어 가족의 유산을 지키기 위해 젊은 세대에게 기업은 잘 유지하고 성장시켜 다음 세대에 물려주어야 할 가문의 유산이라는 ‘스튜어드십’을 심어주고, 가족주주들에게는 기업에 대한 가족의 권리와 책임을 교육한다.

그리고 세대 간 친목을 도모하고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가족관계를 증진하기 위해 매년 자녀들을 포함해 약 2박 3일 정도의 ‘가족회합(Family Retreats)’을 정례화한다. 세계에 흩어져 사는 가족들이 매년 함께 모여 가족으로서 동질성을 유지하며 자녀들에게 가족의 역사와 전통을 가르치고 가문의 일원으로서 자부심을 심어주기 위해서이다.

‘가족고용기준’ 등도 포함시킨다. ‘가족고용기준’이란 자녀들이 기업에서 일할 수 있는 조건과 기업에 들어와서 일하는 방식 등에 관한 규정이다. 이는 자녀들이 일찍부터 자신의 진로를 고민하게 하는 동시에 능력 있는 자녀들을 기업에 참여시키기 위한 방안이다. 예를 들어, 홍콩의 이금기 가족은 5세들에게 기업을 계승하는 것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을 헌장에 포함했다.

첫째, 모든 5세 가족은 대학을 졸업해야 한다. 그리고 회사에 참여하기 전 최소한 3년간 다른 회사에서 경험을 쌓아야 한다. 둘째, 5세 가족은 일반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입사시험에 합격해야 회사에 들어올 수 있다. 회사에 들어오면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셋째, 만일 직무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판명되면 다른 직무를 맡을 기회를 한 번 더 준다. 그러나 만약 새로운 일에서도 직무능력이 향상되지 않는다면 회사를 떠나야 한다.

가족기업도 여느 기업과 마찬가지로, 소유권을 가진 이들이 가족과 기업의 중심이다. 창업 초기에는 창업자가 지배적인 소유권을 가지고 있지만, 세대교체를 하면 언젠간 소유권이 여러 가족에게 분산된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주주들이 가족기업으로 함께할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소유권 철학을 공유하는 것이다. 만일 가족기업으로 유지하기로 했다면, 소유권을 어떻게 배분할 것이며 가족들이 기업에 대한 통제권을 어떻게 유지할지 기준을 정해야 한다. 가족기업에서 발생하는 갈등은 거의 대부분이 소유권과 관련된 것으로, 세대를 넘어가면서다. 미국이나 유럽의 장수기업들이 수대에 걸쳐 가족기업으로 이어져올 수 있었던 것은, 초기부터 소유권 규정을 명확히 한 덕분이다.

150년 기업 ‘카길’ 가문은 1961년 가족주주들이 모여 기업운영의 우선순위 목록을 다음과 같이 개발했다.

1. 정상에 우뚝 선 최고 기업이 되자.
2. 종업원을 믿고 주요 책임도 그들에게 맡기자.
3. 가족의 통제는 여전히 유지하자.
4. 이익을 계속해서 유지하자.
5. 자본을 늘리자.


이 가문은 소유권에 대한 철학과 규정을 정해 후세대 주주들의 단합을 위한 기초를 마련하였고 이후 수십 년간 성장하고 있다. 이처럼 가족주주 간 소유권 철학과 비전을 공유해 미래에 대한 의견을 일치시키고 헌장에 기록하는 것은 중요하다.

가족헌장에 가족 간 ‘주주협약서’를 포함시키는 경우도 있다. 1870년 창업한 에르메스가 지금껏 가족기업으로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소유권이 가족 내에서 지속적으로 통제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에르메스는 1993년 최초로 주식을 공개한 후 주식을 보유한 가족 56명이 주주합의서를 작성했다. 주요 내용은, 만일 주식을 매도하려는 가족이 생긴다면 반드시 가족 내에서만 매매하도록 한 것이다. 회사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거나 CEO를 교체하려면 가족주주 75% 이상의 지지도 얻어야 한다. 이것은 법적 효력을 갖는 주주협약서로 작성되어 가족헌장에 포함되었다. 이 합의서는 가족 내에서 기업을 이어가겠다는 공동의 꿈이 합의되고, 가족 간 분쟁을 예방하려는 의지가 발휘된 결과물이다. ‘주주협약서’의 내용은 가족마다 다르지만, 대부분 주식매매 절차와 매매 가격에 관한 규정을 포함한다.

주주협약서는 대부분 법적 효력을 갖는다. 이상의 내용을 요약해보면, 주주협약서의 주요한 목적은 다음 세가지다.

1. 소유권에 따른 권리와 책임 규정
2. 소유권을 둘러싼 갈등과 대립 해결
3. 가족의 통제권을 유지하면서 소유권 구조 구축


위험을 예방하는 방안으로 사외이사제도 있다. 사외이사의 주요 역할은 기업과 관련된 모든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감독하는 일이다. 연구에 따르면, 독립적인 사외이사가 많은 가족기업은 그렇지 못한 기업보다 평균 19% 높은 성과를 나타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므로 기업이 성장하고 규모가 커지면 사외이사제도를 도입해야 하며, 기업의 규모가 작은 경우 자문위원회를 구성하기도 한다.

세계적인 가정용품 제조업체인 SC존슨은 가족이 보유한 주식이 90%를 넘는데도 과반수를 독립적인 사외이사로 선임하고 있다.

이상과 같이 가족헌장은 여러 가지 장점이 있지만, 제정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가족들이 함께 여러 차례 의견을 모으고 결론을 도출해야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 이상도 걸리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가족헌장은 가족의 철학과 원칙을 담는 일이기 때문에 반드시 가족들이 함께 참여하여 제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가족기업 전문가인 데니스 제프(Dennise Jaffe)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장수기업일수록 가족헌장을 보유한 비율이 높았다. 특히 5세대 이상의 기업들은 가족헌장, 가문위원회, 후세대 교육, 주주협약, 사외이사, 전문경영인 제도를 100% 도입하고 있었다. 헌장의 내용이 대를 이어 잘 계승되고 지켜진다면, 앞서 얘기했던 ‘오너일가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 김선화 ㈜에프비솔루션즈 대표

201806호 (2018.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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