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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부의 신탁 

 

배정식 KEB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장
한국 50대 이상 장년층은 돈이 부족하다. 자녀 교육비 지출에, 일시금으로 받은 퇴직금은 자녀 결혼준비금 등으로 빠져나간다. 재산이 있는 이도 마찬가지다. 노후에 본인 자산을 쓰려 해도 상속은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특히 직접 상담했던 경험 중 자식이 많아서 고민인 경우와 반대로 자식이 없어서 고민인 노부부가 생각난다.

두 가지 사례를 풀어보기로 한다. 하나는 일곱 남매를 둔 노부부 사례고, 다른 사례는 자녀 없이 홀로 사는 80대 노인이 상담한 경우다. 먼저 자식이 많은 노부부의 얘기다.

사례 1 | 일곱 남매를 둔 노부부

어렵고 힘든 젊은 시절을 보냈지만 일곱 자식 커가는 모습에 힘든 줄 몰랐던 90대 노부부가 있다. 요즘처럼 부모로부터 도움받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어려운 시절 결혼생활을 시작해 재벌 소리는 못 들었지만 자녀 모두 대학까지 뒷바라지를 했다.

일곱 자녀 모두 원만한 가정을 꾸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각자 살아가는 모습과 경제적 수준은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퇴직 후 사업으로 형편이 어려워진 아들, 남편과 헤어지고 혼자 사는 딸.

최근에 더 큰 문제가 생겼다. 살던 강남의 아파트 매각자금 때문에 우리 자식들도 싸우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형편이 어려운 자녀는 빨리 달라는 눈치다. 또 혼자 사는 60에 접어든 딸도 본인의 노후 걱정을 오히려 늙은 부모에게 하소연하고 있다. 다른 자녀들은 손 벌리는 자녀들에게만 돈이 갈까 경계하고 있다. 또 한편으론 부모님 재산이니 당신들 원하시는 곳에 쓰다 남은 돈 있으면 받으면 되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부모 눈에 그런 자녀들의 갈등과 고민이 다 보인다. 아파트 매각자금과 지금 거주하는 아파트, 노부부의 생활자금인 3층짜리 상가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신탁으로 10년 나눠 상속

노부부는 강남 아파트를 팔면 거의 아들에게 줄까 생각했다. 사업으로 힘든 생활을 보냈으니 손자들 결혼자금이라도 힘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리하게 되면 다른 자녀들의 불만이 걱정되었다. 어느 한 자녀에게 더 많은 재산을 주면 부모 사후에 상속재산분할청구소송이나 유류분 관련 분쟁이 생길 수 있다는 말도 들었다.

결국 자녀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기로 했다. 상속세를 감안하면 합리적이지 못한 결정일 수도 있다. 증여 후 10년을 더 살지 못하면 사망 시점에서 남은 재산과 과거 10년간 증여재산이 모두 합산되어 상속세율이 더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증여된 현금재산은 단기보다는 5년 또는 10년으로 나눠 이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 3층짜리 건물이 어느 한 자녀에게만 상속되면 문제일 것이다. 고루 남겨도 문제다. 홀로 남은 배우자가 건물관리 문제 또는 처분문제로 나이 든 자녀들에게 시달릴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생전에 정리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 매각자금을 자녀들에게 증여했다. 다만 사업 자금으로 꼭 필요한 자금 외에는 자녀가 신탁을 통해 5년간 나누어 지급받고 임의로 해약하지 않도록 정했다.

그리고 상가 부동산은 노부부가 직접 관리하기 어렵고 매각을 위해서는 객관적인 처리 방법이 필요했다. 살아 있는 동안은 부부의 노후자금으로 사용하다가 적극적인 매각으로 현금화할 수 있는 신탁관리를 소개받았다.

매각시점을 예측할 수 없어 먼저 보유한 부동산과 현금 등의 전체 재산 평가와 이에 따른 상속세 규모를 검토했다. 상속공제를 통한 효율적인 절세 구조와 홀로 남게 될 배우자의 노후생활을 감안한 상속설계도 진행했다.

자신들을 대신하여 부동산 관리가 필요했기에 유언장 방식보다는 금융기관의 자문을 받아 유언대용신탁과 부동산관리신탁을 활용했다. 신탁으로 부동산의 임대 및 자금관리와 처분업무를 진행한 지 6개월 후 상가는 매각되었다. 양도세와 비용 등을 제외한 현금은 다시 자신들의 노후를 위한 자산관리와 상속방법을 추가하여 관리하게 되었다.

신탁관리를 통해 생전에는 치매 등의 위험에도 대비하고 남은 배우자의 생활보장, 자녀들을 위한 공정한 재산분배의 고민도 덜어내게 되었다.

사례 2 | 자녀 없이 홀로 사는 80대

다음은 자식이 없는 경우다. 무자식이 꼭 상팔자는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준 사례였다.

오손도손 함께 살던 남편을 먼저 보내고 홀로 된 85세의 나홀로 할머니. 자녀가 없어 지금은 노인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다. 활달한 성격으로 다양한 교육과정에도 참여하고 있다.

외롭지는 않지만 자신처럼 자녀 없이 혼자 살다 얼마 전 사망한 지인 때문에 아직도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망자의 형제와 조카들이 찾아와 상속문제로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되었기 때문이다.

자녀도 없기에 상속문제는 자신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나를 위해 쓰다가 남는 재산은 좋은 곳에 쓰면 그만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신탁으로 재산 일부분 사회 환원

이 경우 아무런 유언 없이 사망하면 생존한 여동생과 사망한 오빠들의 자녀인 조카들이 상속을 받게 된다. 해외에 살고 있어 몇 년 동안 만나지도 안부도 전하지 못하는 조카들이 내 재산을 두고 상속으로 다투게 될 것이다.

10여 명의 법정상속인에게 맡길 것인가 또는 자신의 뜻을 먼저 정해놓을 방법은 무엇인가. 우선 공정증서유언은 상속과 전혀 이해관계가 없는 2인과 함께 공증사무소에 가야 하고 증인 없이 손쉽게 작성하는 자필유언은 사후 검인절차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증인까지 대동하는 공증을 하더라도 또 다른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금융기관에 예치된 현금의 상속집행은 공증받은 유언장을 제시해도 즉각적인 지급이 어렵다는 점이다. 그 유언장이 마지막 유언장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홀로 할머니는 신탁으로 고민을 해결할 수 있었다. 자신이 사망하면 신탁에서 자신이 정한 사람이나 기부처에 자신의 재산을 정확하게 집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남겨놓은 상속재산을 성년이 된 손자에게 은행원이 전달하는 모습은 이젠 외국 드라마에서만 보는 모습은 아닐 것이다.

- 배정식 KEB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장

201806호 (2018.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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