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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령사회 일본의 신탁 

 

박현정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 팀장
일본에서는 나이가 들어 갑자기 인지능력이 떨어지거나 사망할 때를 대비해 투자신탁에 미리 자산관리를 맡기는 경우가 보편화돼 있다. 치매 신탁 상품까지 파는 일본, 신탁을 노후 대비와 증여·상속 등에 어떻게 활용하는지 알아봤다.

초고령사회 일본은 한국 인구구조 변화의 바로미터다. 2017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 사회도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14%를 넘어 고령사회에 접어들었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의 고령화와 인구구조 변화를 참고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한국의 변화 행태가 일본을 판박이처럼 따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2026년이 되면 우리 사회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게 되어 상속 관련 이슈가 가장 큰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 결국 신탁 활용이 필요한데,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일본의 신탁활용 사례를 연구하는 경우가 많다.

먼저,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 은행은 생애주기별 금융 서비스 수요층을 어떻게 구분하고 있는지 살펴봤다.

수입이 발생하는 시점부터 90이 넘어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현역세대, 퇴직세대, 시니어세대로 구분한다.

현역세대는 주로 결혼, 주택구입, 자녀교육자금, 노후생활 비용 마련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주로 자동으로 자금이 쌓이는 구조를 제안하며 대표적으로 투자신탁, NISA(ISA) 등의 상품으로 설계한다.

퇴직세대는 자녀 결혼비용과 퇴직 이후 여유 있는 세컨드라이프를 준비하는 자금 계획을 세운다. 퇴직 후 해외여행비용, 자가용구입비용, 골프비용, 주택 리폼 비용 등 세부적인 내용도 제안한다.

시니어세대는 의료비, 간병비, 장례비, 상속세를 미리 준비하는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손자 세대까지 재산을 이전하는 방안과 함께 상속발생 시 본인의 장례비용, 상속세 용도의 자금도 미리 준비하라고 조언한다. 일본은 세부적인 분야까지 생각하고 미리 계획하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일본은 고령화에 미리 대비했다기보다 고령화에 따른 사회적 변화에 맞춰 관련 제도를 정비했다는 쪽에 더 가깝다. 어느 순간 닥쳐온 초고령사회에 관련 이슈가 넘쳐나니 제도나 법 개정 등이 숨 쉴 틈 없이 따라가는 형태였다.

일본에서는 90년대 중·후반을 지나면서 상속 건수가 비약적으로 늘었다. 그러다 보니 본인이 상속인으로서 직접 가족 내 상속분쟁을 겪으면서 자녀를 위해 신탁을 준비했다.

신탁제도는 유언장 보관부터 유언 집행까지의 유언 신탁 및 유산정리 서비스까지 추가됐다. 1500만 엔의 세제혜택이 있는 교육자금증여신탁, 1000만 엔의 세제혜택이 있는 결혼·양육지원신탁, 증여 서포트신탁, 성년 후견지원신탁, 공익신탁 등도 등장했다.

유언이 필요하다는 인식도 많이 확산됐다. 유언은 자기의 생각을 가족에게 전하는 최후의 수단이다. 상속이 발생하면 상속재산은 공유재산이 되고 각 상속인이 단독으로 처분할 수 없게 된다. 유언이 없는 경우 상속인들 사이에 유산분할 협의를 진행하게 되고 협의가 원만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가정재판소의 조정심판을 받기도 한다. 소중한 자산을 자신이 생각한대로 상속하기 위한 유언은 꼭 필요하다고 각 신탁회사에서도 홍보하고 있다.

일본 사회도 유언에 대한 인식이 개선 된 후에는 많은 사람이 유언장을 작성하고, 신탁은행에 보관을 의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유언신탁 활용도 늘어났다.

유언신탁은 유언 작성에 필요한 상담에서 유언서의 보관, 유언의 집행에 이르기까지 신탁은행이 책임지고 인수해 관리하는 제도다.

유언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소득세·상속세 등의 자금 마련 방안도 조언한다. 상속에 필요한 제반 절차에 익숙하지 않거나 바빠서 시간을 내기 어려운 이를 돕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상속이 발생하면 3개월 이내 사망신고서 제출 및 사회보험과 연금관계 정리, 생명보험과 손실보험 수속, 상속인 확정, 상속포기와 한정승인 등 절차가 끝나야 하고, 4개월 내 소득세신고·납부가 이뤄져야 한다. 나머지 상속재산의 조사 및 유산분할 협의, 금융자산의 인출 명의변경, 부동산 명의변경, 차입금 및 채무승계와 마지막으로 상속세신고·납부는 10개월 내 이뤄져야 한다.

유언신탁 활용도 보편화된 일본

이런 절치는 신탁은행이 맡아 주도한다. 그 결과 실무적인 빈틈이 생기지 않고 자산이 매끄럽게 다음 세대로 이전될 수 있는 것이다. 초고령사회에 접어들면서 유언신탁으로 꽃을 피운 일본 신탁은 유언대용신탁의 활용도 늘고 있다. 상속발생 후 이슈들 위주로 급박하게 처리하던 신탁은행은 고객들의 생전·사후자금 관리 고민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반면 한국 신탁의 대처와 준비는 한 발 늦다. 일본은 2006년 12월 15일 신탁법을 전부 개정했다. 한국도 2011년 7월 25일 전부 개정하고 유언대용신탁과 수익자연속신탁을 도입했다. 한국도 고령화 비율이 높아질수록 유언장 작성에 관심이 높아지고 실제 작성하는 분들도 늘고 있다.

1~2년 사이 상담 요청도 크게 늘었다. 특히 고령층의 고민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재산을 남기는 문제는 자식들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금전 등은 깔끔하고 확실히 준비해두겠다는 것이다. 동시에 본인이 치매나 인지장애로 판단이 어려울 경우에 대비해 자신을 위한 생전 관리에도 초점이 맞춰져 있다.

특히 자녀가 없이 홀로 사는 어르신들의 상담이 많았다. 형제, 조카 등 상속인들 간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본인 소생이 없기 때문에 결국 조카나 주변 인척들에게 자신의 자산과 신변보호를 의존해야 하는데 자산관리에 대한 명확한 생전 계획이 없다면 편안한 요양은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최근 일본 고독사 관련 분야, 셀프 장례 관련 산업도 발전하고 있다. 한국 사회도 곧 맞닥뜨릴 문제다.

- 박현정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 팀장

201807호 (2018.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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