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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럭셔리 산업의 리더들(9) 정강일 브룩스 브라더스 코리아 지사장 

“유통 구조 개선이 명품 성장의 지름길” 

오승일 기자
올해로 브랜드 탄생 200주년을 맞은 브룩스 브라더스의 정강일 한국지사장을 만났다. 명품업계에서 마케팅 전문가로 통하는 그와 함께 급변하고 있는 한국 럭셔리 시장의 미래를 진단해봤다.

▎서울 삼성동 코엑스몰에 있는 브룩스 브라더스 매장에서 만난 정강일 지사장.
1818년 설립된 브룩스 브라더스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의류회사다. 지난 200년간 아메리칸 클래식 패션을 주도하며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에이브러햄 링컨, 존 에프 케네디, 빌 클린턴, 앤디 워홀, 캐서린 헵번 등 역대 미국 대통령과 저명인사가 브룩스 브라더스의 주요 고객이었고, 버락 오마바도 대통령 취임식에 브룩스 브라더스 코트를 입고 등장해 화제가 됐다.

브룩스 브라더스는 오랜 전통과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면서도 아이코닉한 제품을 선보여온 혁신기업으로 유명하다. 브룩스 브라더스가 선보인 아이템 중 대다수에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1900년 영국 폴로 경기에서 영감을 받은 오리지널 폴로 버튼-다운 칼라 셔츠, 1902년 영국 군대의 타이에서 힌트를 얻은 스트라이프 랩 타이, 1998년 다림질이 필요 없는 논-아이론 셔츠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버튼-다운 칼라 셔츠는 브룩스 브라더스를 대표하는 아이템으로 ‘패션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아이템’으로 손꼽힌다.

브랜드 성장 견인한 마케팅 전문가


‘제작자와 판매자는 하나다(Makers and Merchants in One)’라는 모토로 소비자들에게 최상의 제품을 제공해온 브룩스 브라더스는 미국에서 거둔 성공을 발판으로 일찌감치 해외 진출을 감행했다. 1979년 일본 도쿄 아오야마에 첫 번째 인터내셔널 플래그십 스토어를 선보인 이래, 전 세계 20여 개국에 500여 개 매장을 열며 글로벌 영토 확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에는 2006년 서울 청담동에 1호 단독 매장을 열었고, 현재 오프라인 매장 16개와 온라인 채널 2개를 운영 중이다.

지난 6월 7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몰에 있는 브룩스 브라더스 매장에서 정강일(49) 지사장을 만났다. 그는 “브랜드 밸류, 퀄리티, 품격 이렇게 3박자가 맞아떨어져야 명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며 “지난 200년간 정통 아메리칸 스타일이란 일관된 패션 철학을 계승해온 브룩스 브라더스야말로 그런 조건에 부합하는 브랜드”라고 강조했다.

“브룩드 브라더스는 한마디로 어포더블 럭셔리(Affordable Luxury)를 추구하는 브랜드입니다. 이는 창업자의 철학이기도 한데요. ‘고품질의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시장에 공급하고 공정한 이윤을 남긴다’는 의미가 잘 녹아 있어요. 또 ‘정통’이라는 단어를 자신 있게 쓸 수 있는 브랜드이기도 하죠. 다시 말해온 가족이 즐겨 입을 수 있는 정통 아메리칸 캐주얼 브랜드라고 할 수 있어요. 사실 한국에는 남성과 여성 라인밖에 없지만 미국 매장에 가보면 아동복 코너도 있거든요. 타 브랜드와 다른 특징은 어디에 내놔도 자랑할 만한 아이코닉 상품이 많다는 거예요. 다림질하지 않아도 되는 논-아이론 셔츠나 바람에 칼라가 날리지 않도록 고정해 놓은 버트-다운 칼라 셔츠가 대표적이죠. 200년 역사 동안 중간에 주인이 몇 차례 바뀌는 부침도 있었지만, 미국 역대 대통령들이 꾸준히 애용해온 브랜드라는 자부심도 매우 강합니다.”

1997년 경희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정 지사장은 명품 패션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마케팅 전문가다. 1997년 삼성물산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정 지사장은 삼성물산 유통부문(구 삼성플라자)과 삼성물산 상사부문, 호텔신라 면세사업부에서 근무하며 명품업계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2011년 롱샴코리아 영업이사, 2013년 버버리코리아 영업상무를 거쳐 2017년 브룩스 브라더스 한국지사장에 취임했다. 정 지사장은 “운 좋게도 지난 21년간 유통부터 시작해서 명품 브랜드까지 두루 섭렵할 수 있었다”며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당시와 비교하면 명품 시장에는 그간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전통적인 명품 시장의 판도가 두드러지게 달라졌습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웬만한 명품 브랜드는 수월하게 두 자릿수 성장을 했죠. 막말로 뭘 갖다 놔도 팔리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러던 것이 2012년부터 질적인 변화를 겪게 되는데요. 두 자릿수 성장은 고사하고, 대부분 현상 유지나 소폭 성장하는 데 만족해야 하는 상황이 된 거예요. 심지어 마이너스도 많았죠. 결국 본사 차원에서 시장 재편을 단행하게 됐는데요. 전 직장이었던 버버리를 비롯해 루이비통, 샤넬, 에르메스 같은 전통적인 명품 강자들이 부분별한 매장 확대를 지양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쪽으로 가고 있는 추세예요. 반면 신생 브랜드는 오히려 늘고 있는 상황인데요. 앞으로 시장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양극화가 심화될 것 같습니다. 2:8법칙처럼 어퍼(상위) 브랜드를 제외한 중간의 애매한 브랜드들은 기로에 놓인 상황이죠. 위로 올라가든지 아니면 밑으로 떨어지든지. 한국 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한 돌체앤가바나나 직원 6명만 남기고 구조조정 중인 에스까다가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신생 브랜드도 힘든 상황이에요. 최근 룰루레몬, 찰스앤키스 등이 한국 시장에 진출했지만 녹록지 않아요. 매출을 놓치지 않으면서 시장에 소프트 랜딩(soft landing)하기가 예전처럼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2006년 한국 시장에 공식 진출한 브룩스 브라더스는 최근 꾸준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 수년간 하락세를 딛고 브룩스 브라더스 코리아가 이런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었던 데는 정 지 사장의 역할이 컸다는 것이 업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그는 국내 시장에서 중저가 이미지가 강한 브룩스 브라더스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노력 중이다. 특히 디지털에 익숙한 밀레니얼 소비자들에게 브랜드를 어필하기 위해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또 올 하반기에는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코엑스 SM타운 앞 외벽에 LED 광고도 진행할 계획이다. 정 지사장은 “현재 브룩스 브라더스 코리아가 글로벌 시장에서 차지하는 매출 비중이 2% 정도”라며 “글로벌 비중을 10%까지 늘리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설명했다.

“브룩스 브라더스의 회계연도는 전년도 7월에 시작해 이듬해 8월에 끝납니다. 이제 겨우 두 달 남짓 남았는데요. 올해 목표 달성 확률은 99.9%라고 자신합니다. 누적 성장률이 지난해 대비 2% 정도 앞서고 있기 때문에 이 추세로 가면 연간 목표 달성은 무난할 거라고 봅니다. 어려운 시장 상황을 이겨내고 8년 만에 처음으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인지라 의미가 남다른데요. 아주 당연한 얘기지만 브랜드가 유지되려면 돈을 벌고 이익을 내야 합니다. 그러려면 주요 소비층으로 떠오른 밀레니얼 세대에게 우리의 브랜드 밸류를 높이는 것이 급선무인데요. 이를 위해 포트폴리오를 더욱 확장하고 이커머스 영업도 강화할 계획입니다. 2~3년간 꾸준히 성장하다 보면 시장에서 우리의 위상을 새롭게 포지셔닝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밀레니얼 세대 공략으로 시장 선점


▎브룩스 브라더스의 VIP 고객이었던 에이브러햄 링컨의 코트. 다림질이 필요 없는 100% 면 소재의 논-아이론 셔츠(아래).
국내 패션 시장에서 브룩스 브라더스를 가치 있는 브랜드로 안착시키고 싶다는 정 지사장은 한국 명품 시장도 이제 발전적인 변화를 모색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브랜드를 대하는 유통업체들의 태도가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 명품 시장은 롯데, 현대, 신세계가 모든 유통 채널을 독과점하는 구조입니다. 백화점은 물론이고 아웃렛, 할인점, 이커머스 등을 유통 대기업들이 장악하고 있죠. 또 유럽이나 홍콩과 달리 백화점 중심의 리테일 마켓이 강세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는 해외에서 한국 시장을 매우 독특하게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사실 홍콩 같은 데는 돈만 있으면 매장을 빌릴 수 있고 실적이 좋든 나쁘든 계약 기간이 보장되죠. 그런데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국내 백화점은 브랜드와 계약하고 나서 실적이 좋지 않으면 매장을 철수시키는 일이 다반사였어요. 게다가 우리 백화점은 비효율 점포도 많아요. 예를 들어 롯데 청량리점이나 신세계 마산점, 현대 충청점은 누가 봐도 비효율 매장이지만 리테일러들은 거기에도 명품을 유치하려고 하죠. 브랜드 입장에서 본사 승인을 받기가 굉장히 어렵지만 백화점은 조금도 양보하지 않아요. 모든 백화점은 밸류가 있어야 한다, 그 전제는 명품이다, 이 매장에 오픈하지 않으면 저 매장을 닫아버리겠다는 식으로 모든 매장에 명품을 유치하려고 하니 그간 브랜드에 큰 부담이 돼온 게 사실이에요. 이제 브랜드를 바라보는 리테일러들의 시선이 조금 달라졌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백화점도 명품에만 너무 의존하지 말고 점포마다 차별화를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브룩스 브라더스 같은 가성비 좋고 차별화된 상품을 제공하는 브랜드에도 다양한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습니다.”

- 오승일 기자 osi71@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

201807호 (2018.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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