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진호의 ‘음악과 삶’ 

작곡은 뇌와 마음의 문제다 

김진호 안동대 음악과 교수
작곡가가 음악을 작곡하고 그 곡을 연주가가 연주하면 감상자가 듣고 보며 춤추거나 눈물을 흘린다. 이 모든 과정에서 인간의 뇌와 그에 기초한 마음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뇌와 마음에 문제가 있으면 작곡과 연주, 감상이라는 음악적 행위를 전혀 못하거나 잘하지 못한다.

▎뇌나 마음에 문제가 생기면 음악을 잘 만들 수 없다. 작곡은 논리와 감정을 모두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물론 지금도 한자 ‘심(心)’은 ‘심장 ’이나 ‘마음’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감사(感謝)합니다’라는 표현 속 ‘감(感)’은 ‘느낄 감’으로, 마음으로 느낀다는 뜻인데, 여기에도 ‘마음 심(心)’자가 있다. 영어에서도 마음에 해당하는 단어가 심장을 뜻하기도 하는 ‘heart’다. 이 단어들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마음이 심장 혹은 가슴에서 발원한다는 오해가 오래전부터 동서양 여러 사람에게 퍼져 있었다는 점이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이런 오해를 한다. 사람들은 손을 가슴에 갖다 대며 “너에 대한 내 마음이 여기 있어!” 혹은 “내 안에 너 있다”라고 말하거나, 상대의 가슴을 가리키며 “네 마음의 소리를 들어봐” 혹은 “머리로 말고 가슴으로 느껴봐” 따위의 말들을 한다. 이런 오해는 마음을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유와 다른 것, 논리적인 것을 넘어서고 압도하는 것, 궁극적으로 진실한 것으로 보게 한다. 하지만 차갑고 냉철한 논리도 진실한 마음의 일부이며, 감정적인 것과 함께 모두 머릿속 뇌에서 발원한다.

마음은 뇌로부터


▎록그룹 너바나의 기타리스트 겸 보컬인 커트 코베인은 양극성 장애를 앓다가 27살에 자살했다.
뇌와 마음에 문제가 있으면 음악을 잘하지 못한다. 특히 작곡을 못한다. 작곡은 논리와 감정 모두를 필요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볼레로]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 같은 작품들을 남긴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의 경우는 유명하다. 라벨은 1932년에 교통사고를 당해 뇌를 심하게 다쳤다. 의사들은 그가 치매를 동반하는 신경질환인 픽병(Pick’s disease)을 앓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픽병 때문인지 라벨은 사고 전 의뢰받았던 영화 [돈키호테]의 배경음악 일부만 가까스로 작곡했다. 영화감독 팝스트는 어쩔 수 없이 작곡가를 바꾼다. 이 영화음악을 위해 라벨이 겨우 끝낸 세 곡은 이후 [둘씨네에게 끌리는 돈키호테]라는 이름으로 공연된다. 이 마지막 작품 이후 죽기까지 약 5년 동안 라벨은 작곡을 하지 못했다. 그동안 라벨은 심한 불면증, 신경쇠약, 실어증을 동반한 부분적 기억상실증과 함께 손발을 잘 쓰지 못하는 운동 장애를 앓았으며, 표상과 상징, 추상적 개념, 범주 등을 처리하지 못했다.

마음에 문제가 있었던 가장 유명한 작곡가는 슈만이다. 로베르트 슈만은 정신질환을 심하게 앓다가 자살했는데, 자살하기 전 2년 동안 작곡을 전혀 할 수 없었다. 1854년 2월 17일 이 독일 작곡가는 ‘천사들이 불러주는 음악’을 들었다고 하며, 그것을 다음 주인 26일에 [유령 변주곡]이라는 이름으로 작곡했다. 그러고는 이튿날 오후 라인강에 투신했다. 이 첫 번째 자살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피아노 독주곡인 [유령 변주곡]의 주제가 제시되면 이후 생기 없는 느낌의 변주가 이어진다. 프랑스 음악평론가 미셸 슈나이더에 따르면 진부한 화음 진행과 함께 곡 전체에 정적이고 얼어붙은 뭔가가 느껴진다. 슈나이더는 이것을 정신분열증 환자들에게서 찾을 수 있는 무심함과 공허의 느낌으로 묘사한다. 여기에 더하여, 이 음악에는 이른바 문제의 음들이 끊임없이 들려온다. 1852년 슈만이 술집에서 처음으로 들었던 라(A)음과 올림바(F#)음이다. 불협화음을 만들어내는 이것들은 슈만이 들었다는 환청을 표현한다.

작품은 짧지 않으나 그렇다고 충분히 길지도 않고, 하나의 주제에 대한 변주들은 다양하지 못하며, 각 변주들은 충분히 대조적이지 않다. 그래서 동적이거나 활달한, 혹은 극적인 느낌이 없다. 음악에서 극적인 느낌이란 반전의 느낌 혹은 충분한 대조의 느낌인데, 이런 것들이 없다는 것은 흥미를 가질 만한 요소가 없다는 이야기다. 또 점점 복잡해지거나 격렬해지며 감정이 고양되고 상승하는 분위기, 즉 절정도 없다. 무엇보다 갑자기 끝나는 느낌이 있다. 예전의 슈만이 작곡했던 매력적인 작품들과 비교해 큰 차이가 느껴진다. 낭만적 가곡들과 강렬하면서도 서정적인 피아노 소품들의 작곡가 슈만이 사라져갔다.

낭만적인 가곡의 생기가 사라진 건 마음의 병 때문


▎꽤 비만이었던 슈만의 모습.
1년 후 입원한 슈만은 병원에서 말을 거의 하지 않았으며 하더라도 논리가 없는 혼잣말만 했고, 피아노로 즉흥연주를 하면 악절이 깨지고 멜로디와 리듬의 결합이 허물어졌다. 그가 하는 말뿐만 아니라 그의 음악에도 요소들 간 연결고리와 의미가 없었다. 언어능력과 함께 작곡능력도 쇠락하다가 완전히 소멸되어갔다. 1년이 지난 후인 1856년 7월, 슈만은 그동안 찾아오지 않았던 아내 클라라와 힘없이 재회한 후 결국 죽는다.

이와 같은 증상에도 불구하고 슈만이 정말로 정신질환을 앓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사실 그는 죽기 2년 전뿐 아니라 평생 정신질환자의 증상을 호소했다. 고등학생 시절에 쓴 일기에는 “생기가 가끔 사라지는 것 같다. 그러고 나선 나도 모르게 정신착란 상태에 빠진다”라고 적었다. 슈만은 자신이 정신이상자가 될지 모른다는 강박 증세를 보였고, 18세 때 환청을 경험한 후 “음악이 밤새도록 들려와 잠을 이룰 수가 없다”고도 썼다.

슈만은 평생 정신질환에 시달리면서 작곡을 했을까? 만약 그랬다면 젊은 슈만의 정신질환 증세는 경미한 수준이었을 것이다. 여기에 당대의 낭만주의적 경향에 영향을 받은 문학청년 슈만의 낭만주의적 환상이 가미되었을 수 있다. 1845년 슈만이 적었다는 “암흑의 악마들이 나를 지배하고 있다” 같은 문장은 낭만주의 시대 많은 예술가가 가졌던 고립감, 절망적 감정 상태, 불안한 기분 등에 대한 은유적 표현일 수 있다. 사실 슈만이 정신질환자는 아니고 가족들의 잇단 황망한 죽음들을 접하면서 정신적 충격을 받아 우울증에 시달렸던 사람이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확실히, 죽기 2년 전의 슈만은 분명 정상적 인지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부인이 될 클라라와의 결혼을 반대하는 미래의 장인을 대상으로 법적 소송을 펼쳤고, 음악잡지를 창간해 운영했으며, 논리적인 글들을 썼다. [두 사람의 척탄병]과 같은 가곡은 나폴레옹을 기다리는 프랑스 군인 2명의 이야기를 가사로 삼았는데, 그런 점에서 보수적인 (그러나 명목적이기만 한) 독일 제국에서 살던 청년으로서 은근히 진보적인 정치적 지향을 드러낸 것일 수 있다. 나폴레옹이 이끌던 프랑스는 혁명과 공화정, 시민군과 근대적 법체계, 인권 등 진보적 사건들로 유럽의 젊은이들을 매혹했다. 슈만을 비롯한 당대의 독일 예술가들은 이런 프랑스를 선망했다. 이러한 정치적 선망도 조현병자와는 거리가 있는 모습이다.

요컨대 젊은 슈만은 그가 쓴 많은 훌륭한 작품과 함께 정신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지 않았음을 잘 보여주었다. 하지만 상술했듯이 죽기 2년 전에는 분명한 중증의 정신질환 증세를 보였고, 작품은 나오지 않았다.

경조증 상태에서 더 많은 작품 작곡해

그런데 이 정신질환의 원인이 흥미롭다. 슈만의 작품 [케르너의 시에 의한 12개의 가곡, Op.35]에 쓰인 시(詩)들을 썼던 당대의 의사 케르너는 말년의 슈만이 보였던 증상을 전형적인 동맥경화성 정신병으로 설명했다. 이 주장의 근거로 케르너는 슈만이 비만했고 카페인이 든 술을 즐겨 마셨으며 흡연을 했다는 사실들을 들었다. 이런 것들이 동맥경화를 촉진하고 궁극적으로 정신병 증세마저 일으켰다는 이야기다. 건강하지 못한 몸이 건강하지 못한 마음의 한 원인이었을까. 유스티누스 케르너는 1820년대에 처음으로 식중독을 일으키는 독소인 보툴리눔톡신의 존재를 확인했다. 보툴리눔톡신은 여러 유형이 있는데 그중 A형을 상업화한 것이 보톡스다. 케르너는 보툴리눔톡신의 존재를 소시지를 먹고 탈이 난 사람들로부터 확인할 수 있었다. 소시지는 독일인들이 잘 먹는 음식이며, 비대한 슈만도 엄청 먹었다고 한다. 19세기 초의 독일 사회는 비만의 위험성을 잘 인지하지 못했고, 슈만 역시 무절제한 식생활을 했던 셈이다.

말년에 정신질환 증세를 보인 것 말고도 슈만은 평생 심각한 양극성 장애를 앓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은 활력이 넘치고 기분이 매우 좋아진 경조증 상태와 우울증 상태를 번갈아 겪는 장애다. 경조증(輕躁症/Hypomania)이 심해지면 조증 상태가 되고, 이 상태에서는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기분이 고양된다. 경조증 상태에 처해 있던 슈만은 많은 작품을 작곡했다. 반면 우울증이 심한 시기에는 작품의 수가 줄었다. 슈만의 여러 작품 중 피아노곡 [카니발] 같은 작품은 정말이지 엄청난 경조증적 고양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러한 정신적·심리적 고양은 19세기의 많은 예술가에게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많은 낭만주의 예술가들은 이러한 양극성 장애를 비롯한 기분장애(mood disorders)를 앓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예술가들뿐 아니다. 많은 과학자도 이러한 장애를 겪고 훌륭한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최근의 인지과학 연구에 따르면 양극성 장애와 같은 심각한 기분장애는 인간이 높은 수준의 지능, 창의력, 뛰어난 언어능력 등 적응적 형질을 가지기 위해 지불해야 했던 비용일 가능성이 크다. 과학자들은 화가 빈센트 반 고흐,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 1990년대 인기를 끌었던 록그룹 너바나의 기타리스트 겸 보컬인 커트 코베인 등을 이런 장애를 겪었을 사람들로 거론한다. 코베인은 인기가 절정에 이르렀던 27살에 자살했다.

슈만의 정신적 문제 혹은 정신적 특이성은 슈만의 가계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슈만의 양친은 우울증을 앓았고 친척들 중에서는 두 명이나 자살했다. 그의 아들 중 한 명도 30년 이상을 정신병원에서 보냈다고 한다. 정신적 질환 역시 다른 질환처럼 유전적 요인들이 있는 것일까. 물론 그런 유전 요인들이 현실화되려면 환경적 요인들이 개입해야 할 것이다.

※ 김진호는…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와 동 대학교의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립안동대학교 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매혹의 음색』(갈무리, 2014)과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갈무리, 2017) 등의 저서가 있다.

201807호 (2018.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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