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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포브스코리아 오만 포럼] 잘된 기업 망치는 오만, 구조적으로 차단하라 

 

이기준 기자
영국에서 오만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유진 새들러 스미스 영국 서리 경영대학원 교수가 제1회 포브스코리아 오만 포럼 참석차 방한했다. 오만이 리더십에 미치는 영향과 예방책을 연구하는 ‘오만 프로젝트’를 주도한 그를 포브스코리아가 만났다.

▎유진 새들러 스미스 영국 서리 경영대학원 교수.
“유럽과 미주 지역은 많이 다녔지만 아시아엔 처음 와봤습니다. 100명이 넘는 한국 기업인이 제 강연을 주의 깊게 경청하는 모습에 감탄했습니다.” 유진 새들러 스미스 영국 서리 경영대학원 교수가 7월 17일 포브스코리아 오만 포럼에서 강연을 마친 뒤 기자에게 한 말이다. 이날 포럼엔 국내 기업인과 학자 등 120여 명이 참석해 새들러 스미스 교수의 강연을 들었다.

영국 최대 에너지 기업 브리티시가스 인재개발부를 거쳐 강단에 선 새들러 스미스 교수는 리더십과 혁신, 특히 경영자의 직관과 오만에 대해 연구한 대표적 학자다. 서리경영대에서 오만이 리더십에 미치는 영향과 예방책을 연구하는 ‘오만 프로젝트’를 주도하기도 했다. 오는 10월 영국에서 기업인의 오만을 집중 분석한 신저 『오만한 리더십(Hubristic Leadership)』 출간을 앞두고 있는 그에게 오만과 경영에 대해 물었다.

칭찬만 받고 견제 없으면 오만해지기 쉬워


▎7월 17일 새들러 스미스 교수가 포브스코리아 오만 포럼에서 강연하고 있다.
언제부터 오만 연구를 해왔나?

4~5년 됐다. 오만은 경영학계에선 비교적 새로운 화제다. 최근 많은 학자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오만 연구는 주로 정치인을 다뤘다. 영국 오만학회인 다이달로스 신탁을 설립한 데이비드 오언 전 영국 외무장관이 이 분야의 선구자다. 오언은 마가릿 대처 전 영국 총리,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등 유력 정치인의 오만이 그들의 의사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연구했다. 나는 오언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경영에서의 오만을 연구하고 있다.

오만이 경영과 무슨 관계인가?

오만은 조직 전반과 깊이 연관돼 있다. 리더로 하여금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고 무모한 결정을 내리게 만들기 때문에 조직에 아주 해롭고 위험하다. 오만한 리더는 모두 자신의 권력과 성공에 취해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과도한 자신감과 야망에 사로잡혀 있으며 타인의 비판이나 충고를 무시한다. 그 결과 무모한 판단을 내리고 예기치 못한 부정적 결과를 유발한다.

리더가 오만에 빠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오만을 유발하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크게 내적인 요인과 외적인 요인으로 나뉜다. 내적인 요인은 리더의 권력, 최근의 성과, 언론과 추종자의 찬사다. 리더가 자신의 권력을 발휘해 성과를 내고 찬사를 받으면 자신을 과대평가하기 쉽다. 리더를 억제할 외적인 장치가 없을 때도 오만이 발생하는데, 이사회가 약하거나 직언을 해줄 사람이 없는 경우, 규제가 효과적이지 못한 경우가 그렇다.

비판을 무릅쓰고 신념대로 밀어붙인 기업인이 성공한 사례도 많다.

관건은 균형이다. 적절한 자신감과 야망은 조직을 성공으로 이끄는 데 필요한 요소다. 그러나 성공은 오만을 기르는 양분이 되고, 오만은 본래 장점이었던 리더의 특징을 단점으로 바꿔놓는다. 이를테면 리더가 자기 자신과 조직의 목표를 일치시키고 조직의 목표 달성을 위해 헌신하는 것은 긍정적인 효과를 일으키지만, 이것이 지나치면 자기 자신과 조직을 완전히 동일시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내가 곧 조직’이라고 믿어버리는 거다.

오만을 사전 차단하는 시스템 마련해야


때로는 리더의 직관이 빛을 발하는 일도 있는데.

직관은 경영자에게 중요한 능력이지만 체계적인 분석이나 합리성과 상반되기 때문에 직관과 합리적 사고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직관을 맹신할 경우 자기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내가 다 안다, 나를 믿으라’고 하면서도 그 믿음에 대한 합리적인 근거를 대지 못하고 자신의 직관에만 의존한다면 오만한 리더일 가능성이 높다.

성공하는 사람은 오만을 피하기 어려울까?

오만에 빠지는 건 단지 개인의 성향 문제가 아니다. 생물학적인 요인도 있다. ‘승리자 효과’라는 말이 있는데, 운동선수가 경기에서 이겼을 때 자신감이 급격히 상승하는 현상을 말한다. 승리가 자신감 상승으로 이어지는 이유는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분비되기 때문이다. 경기에서 이긴 운동선수의 몸 안에는 테스토스테론이 많아진다. 금융시장에선 이 같은 자신감 상승이 비이성적인 과열로 이어진다. 테스토스테론은 젊은 남성에게 더 많기 때문에 조직 내에 여성이나 나이 든 남성의 비율을 높인다면 오만으로 인한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조직은 리더의 오만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가장 중요한 건 예방이다. 우리 대학 연구진은 리더의 오만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오만방지도구(Antihubris Toolkit)를 개발하고 있다. 한 가지 예방법은 고 신뢰조직(HRO)이다. HRO는 항공사, 원자력 발전소 등 사소한 실수로 막대한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조직에서 사용하는 리스크 관리 모델이다. HRO는 신뢰도(reliability)를 실적과 동등하게 취급하며 실패를 숨기지 않도록 장려한다. 예를 들면 항공사에선 낮은 직급의 승무원에게도 상급자가 내린 결정에 의문을 제기하고 설명을 요구할 의무와 권리를 부여한다. 이 같은 HRO의 원칙 일부를 조직에 도입하면 리더의 오만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리더 혼자만의 힘으로 되는 일은 아닌 것 같다.

주변 사람들이 리더에게 미치는 영향도 중요하다. 오만한 리더의 주변에는 그의 오만을 부추기는 공모자들이 있다. 리더의 오만을 수동적으로 방치하는 사람과 적극적으로 이에 가담하는 사람이 모두 공모자에 해당한다. 반면 리더에게 직언을 하는 토홀더(Toeholder, ‘발가락을 잡는 사람’이란 뜻으로 리더와 신뢰를 주고받으며 직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의미)도 있다. 토홀더가 적고 공모자가 많을수록 리더가 오만에 빠지기 쉽고, 오만에서 헤어나오기는 어려워진다. 따라서 토홀더를 곁에 두는 것은 오만을 예방하는 데 아주 효과적인 장치다.

과거 왕정 시절 왕 곁에서 직언을 하던 광대를 연상케 한다.

그래서 프랑스 인시아드 경영대학원의 만프레드 케츠드 브리스 교수는 리더에게 직언을 하는 사람을 ‘조직의 광대(organizational fool)’라고 칭했다.

CEO의 고립을 해소하라


권력자에게 직언을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광대들도 많이 사형당한 걸로 안다.

맞다. CEO는 외로운 직업이다. 조직 내에서 가장 권력이 강한 사람이지만 그만큼 다른 사람들로부터 고립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고립된 채 생활하면 현실감각을 잃고 오만에 사로잡히기도 쉬워진다. 이를 예방하려면 CEO의 행동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 주변에서 주의 깊게 관찰하고 피드백을 해주면서 그를 현실로 되돌려놓아야 한다. CEO의 말이나 행동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그 변화가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켰는지, CEO가 받고 있는 스트레스의 근원이 어디인지 등을 파악해서 알려주는 것이다. 또 CEO가 믿고 의지하면서 조언도 구할 수 있는 친구를 사귀거나 비공식적인 동료 경영자 모임에 참석하는 것도 오만을 예방하는 좋은 방법이다.

CEO의 오만이 조직 전체로 퍼질 수도 있겠다.

조직 최상부의 태도는 조직문화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고위층이 오만하면 그 오만이 조직 전체로 퍼진다. 이를 ‘집단적 오만(collective hubris)’이라고 한다. 집단적 오만을 방지하는 제도 가운데 하나는 협력적인 의사 결정 체계다. 불합리한 결정을 최소화하기 위한 거버넌스를 강화하고 합의에 이를 때까지 이사진 간의 대화를 장려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단순 다수결은 로비에 취약하며 강력한 지도자에 의해 조작되기 쉬우므로 지양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거버넌스가 가능한가?

1864년 창업한 영국의 유통업체 존루이스 파트너십(JLP)의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JLP는 오늘날 영국 전역에 존루이스 백화점 31개, 가정용품점 10개, 소형 상점 2개와 웨이트로즈 슈퍼체인점 315개에 직원 9만여 명을 두고 있는 대기업이다. JLP는 기업의 원칙과 거버넌스를 문서화한 ‘기업 헌법’을 마련해서 따르고 있다. 이 헌법은 기업 내의 모든 의사결정을 일반 직원들로 구성된 이사회, 회장과 경영진으로 구성된 위원회, 사외이사들이 공동으로 내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회장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은 거의 없으며, 사원들도 고위 임원의 행동에 책임을 묻고 해명을 요구할 수 있다. 이 같은 경영 방식은 창업자인 존 스페단 루이스가 회사를 외부 주주들의 단기적 이익에 끌려다니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고안했다. JLP는 지난 2016년 영국의 여론조사에서 ‘가장 사랑받는 기업’으로 꼽히는 등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오만의 조짐을 사전에 파악하는 방법은 없나?

일반적으로 리더의 오만은 발생 전부터 희미한 신호로 나타난다. 일상적인 대화나 가벼운 농담부터 소셜미디어, 연설에 이르기까지 리더가 하는 말에서 오만의 조짐이 드러난다. 이를 빨리 알아차리기 위해 CEO의 말을 컴퓨터언어학이나 기계학습 인공지능으로 분석하는 등 연구자들 사이에서 여러 가지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영국 석유업체 BP가 2010년 멕시코만 석유 유출 사태를 일으켰을 당시 CEO였던 존 브라운의 기존 연설을 분석한 결과 끈기, 공격성, 성취 등의 단어 빈도수가 평균 이상인 반면 소통, 인간, 관심 등의 단어는 평균 이하로 나타났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 이기준 기자 lee.kijun@joins.com / 사진 전민규 기자

201808호 (2018.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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