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Cover

Home>포브스>On the Cover

[2018 포브스코리아 오만 포럼 | 지상중계(2)] 정신의학으로 본 오만 

 

박한선 정신과 전문의 겸 신경인류학자
교만, 자랑, 허세, 오만…. 모두 자신의 가치를 실제보다 과도하게 생각하는 심리적 경향을 일컫는 말이다. 이러한 부정적 심리 패턴은 실패를 부르는 핵심적인 개인적 요소이자,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숙명적인 결함이다. 인간은 왜 오만해지는 것일까?

▎박한선 정신과 전문의는 오만 포럼에서 오만을 정신의학적인 관점에서 설명해 참가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 사진:김현동, 전민규 기자
오만의 심리 경향이 너무 심해지면 정신장애로 진단받을 수 있다. 정신과 의사들은 이를 자기애적 인격장애라고 부른다. 대략 다음과 같은 증상이 주로 나타난다.

· 자신의 중요성에 대한 과도한 느낌

· 자신이 이룬 성취나 재능에 대한 과장

· 우월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

· 성공과 권력, 명성에 대한 끝없는 갈구

· 과다한 존경과 특혜 요구

· 타인을 지속적으로 이용하고 착취하려는 경향 등

우리 모두의 오만

아마 증상 목록을 보고 연상되는 인물이 있을 것이다. 멀리는 신문 사회면을 수놓는 갑질의 가해자, 가까이는 우리가 일하는 사무실의 ‘그분’이다.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심리적 경향은 기업의 오너나 중역, 의사나 변호사 등 전문직, 정부의 고급 관료, 학계의 명망가 등에게 흔하다고 한다. 그래서 종종 약간의 오만함은 사회적 성공을 위한 필요악으로 용인해주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자기애적 인격장애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약 두 배로 증가했는데, 특히 젊은 층에서 증가세가 두드러진다. 과거에는 100명에 1명 정도가 과도하게 오만한 사람이었다면, 이제는 16명 중 1명꼴이다. 언젠가부터 오만은 성공의 바람직한 자질로 취급받고 있으며, 점점 많은 사람이 오만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그렇다면 혹시 우리도 대세에 부응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병적 오만과 건강한 긍지를 구분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꺾이지 않는 자기 확신과 반성 없는 자기 기만, 거침없는 리더십과 고집 센 독선, 강인한 자신감과 완고한 자만심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그래서 긍지와 오만의 차이는 결국 결과론적으로 사후 검증되는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있다.

아널드 토인비는 강력한 리더십과 추진력이 흔히 오만 혹은 긍지를 수반한다고 말했다. 기존의 가치를 타파하고 새로운 관심을 만드는 창조적 소수에게 필요한 자질은 바로 강한 내적 자신감과 흔들리지 않는 확신이다. 성공하면 리더십이고, 실패하면 독선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정신의학적으로 보면 긍지와 오만은 완전히 다른 자질이다. 자기애적 인격장애 환자의 삶은 온통 자기 자신으로 가득하다. 이들은 화려하고 멋진 젊은 시절을 보낸다. 이상적인 관계, 즉 최고의 친구, 최고의 애인, 최고의 직장을 추구한다. 하지만 한때 추앙하던 대상은 곧 평가절하되고, 또다시 새로운 만남을 찾아 나선다. 마치 타인을 빨아들인 후 빈 껍데기를 아무렇게나 버리는 식이다.

이들은 겉으로 보이는 명성과 타이틀, 외모, 권력에 집착하기 때문에 상대에게 조금이라도 부족함이 보이면 실망하고 분노한다. 나이에 걸맞지 않은 부적절한 이성 관계에 빠지고, 자기 주변을 아첨꾼으로 가득 채운다. 상상 속에서 자신은 가장 멋지고, 매력적이고, 항상 존경받는 완벽한 인물이어야 한다. 그러면서 타인을 끊임없이 평가하고 심판하려 한다. 조금만 허점이 보여도 가차 없이 내친다.

그러면 이러한 오만은 일부 ‘이상한 꼰대’의 전유물일까? 그렇지 않다. 사실 오만함은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보편적 속성이다. 정신분석가 카를 구스타프 융은, 권력 콤플렉스에 빠지면 타인과 조화로운 관계를 맺지 못하고 사람을 오직 힘의 역학으로만 대한다고 했다. 늘 남보다 우위에 있어야 안심하고, 다수로부터의 인정을 끊임없이 갈망한다는 것이다. 권력 콤플렉스를 조절하지 못하는 이가 리더가 되면, 조직은 와해의 길을 걷게 된다.

사실 권력 콤플렉스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텔레비전에서 보는 재벌 총수나 높은 관료, 정치인이 아니더라도 매일매일 우리의 삶은 일상에서의 권력 콤플렉스로 가득하다. 하지만 권력 콤플렉스가 기승을 부리는 환경은 따로 있다.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성공’이다.

인간은 몇 가지 원초적 욕구를 가지고 있다. 첫째는 이상적인 대상을 찾아 자기 안으로 융합하려는 욕구, 둘째는 타인의 감정과 생각을 공유하고 교감하려는 욕구, 셋째는 자기 자신의 행위를 인정받고 칭찬을 얻으려는 욕구다. 정신분석가 하인즈 코헛은 이러한 기본적 욕구가 적절하게 조절되지 못하면, 병적인 자기애를 낳는다고 했다.

파멸을 향한 휴브리스의 행진

어린 시절에 이상화된 대상은 바로 부모다. 그런데 이러한 부모상이 적절하게 내면화되지 못하면, 늘 노심초사하며 무의미한 단기적 결과에 연연하게 된다. 성과주의가 삶의 목표가 되는 것이다. 교감과 공감의 욕망이 잘 해결되지 않으면, 타인의 느낌과 생각을 잘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이들의 정신세계에는 자신만 있다. 타인은 단지 자신의 우수성을 돋보이게 하는 열등한 루저, 잘해야 자신의 성공을 돕는 도구에 불과하다. 칭찬과 인정의 욕구가 좌절되면, 끝없는 찬사와 추앙을 갈구하게 된다. 아첨과 아부꾼이 들끓게 된다.

달콤한 성공 경험은 이러한 병적 자기를 폭발적으로 확장시키는 힘이 있다. 성공이라는 색안경을 쓰면 행운은 필연으로, 상술은 전략으로, 노동은 희생으로, 아부는 존경으로 달리 보이게 된다. 성공과 오만의 악순환에 한번 빠지면, 주변의 조언 따위는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만은 점점 집단 전체로 확산된다. 집단의 팔로워는 리더십을 추종하는 본성이 있다. 오만에 빠진 리더의 잘못된 태도는 금세 집단 전체로 확산된다. 조직 전체가 오만에 빠지는 것이다.

휴브리스는 바로 성공한 개인 혹은 집단이 성공의 경험을 통해서 내적인 병적 자기애를 외부로 드러내는 부정적인 심리적 경향이다. 사회적 오만, 즉 휴브리스에 빠진 이는 도덕적 균형을 잃는다. 이는 필연적으로 복수와 파멸을 부른다. 어떤 의미에서는 사필귀정이자 인과응보다.

그래서 과거부터 현인들은 오만을 경계했다. 교황 그레고리오 1세는 교만이 죄 중의 죄, 죄의 여왕이라고 했고, 16세기 영국의 성직자 헨리 스미스는 모든 죄의 으뜸이 교만이라고 했다. 예수회 선교사였던 판토하의 저서, 『칠극』에는 아래와 같은 대목이 나온다.

“높은 자리에 오르면, 남을 거느릴 것도 생각나고, 원수를 잡아들여 보복할 것도 생각나고, 나를 두려워하며 아첨하는 자들이 나를 기쁘게 할 것도 생각나고, (내가) 어떤 사람을 땅에 내칠 수도, 어떤 사람을 하늘 위로 끌어올려줄 수도 있다는 것도 생각나고, 불쌍한 사람이 하소연하면 그들을 도와줄 것도 생각나고, 도움받은 이들이 나를 칭송하고 좋아할 것도 생각나고, 그러면 (칭송을) 겉으로 사양하는 척할 것도 생각나는 것이다.”

휴브리스의 진단과 치료

나 혹은 우리 조직이 휴브리스에 빠져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몇 가지 기준이 있다. 왕년의 성공담이 널리 회자되고 있다면 일단 위험신호다. 회사 전체에 창업 초기의 신화가 반복해서 주입된다. 주력 상품의 우월성을 강조하며, 실패 사례는 감춰진다. 사업과 관련 없는 기념 행사가 연이어 벌어지고, 기념관과 동상을 건립한다. 경영 성과보다 불명확한 이상의 실현이 핵심 목표로 부상한다.

점점 회사는 종교가 되고, 리더는 교주가 된다. 직원에게는 회사의 모토와 철학이 과도하게 반복되고, 이는 충성의 척도로 작동한다.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생각을 가진 직원은 회사를 떠나고, 점점 아첨꾼이 많아진다. 조직 내부의 휘슬 블로어는 사라지고, 중요한 의사결정은 리더의 직감에 의지하게 된다.

여러분이 몸담고 있는 직장은 어떤가? 만약 이러한 증상이 보인다면, 얼른 치료에 나서야 한다. 당신의 조직을 사랑한다면, 과감하게 강력한 경고신호를 보내야 한다. 물론 정말 그랬다가 잘리면 어떡하냐고 물을 것이다. 조직에 따끔한 말을 했다고 퇴사를 각오해야 한다면, 얼른 새 길을 찾는 것이 정답이다.

정신과 의사는 자기애적 환자와 면담하면서 환자가 느끼는 경멸이나 분노, 질투의 순간을 포착한다. 바로 그 순간 ‘당신은 원하는 대로 대우받지 못하면 상처를 입는군요’라는 말로 자기애적 경향을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다. 물론 상당수의 환자는 화를 내면서 인정하지 않는다. 진료실을 박차고 나가기도 한다. 하지만 굴하지 말고 조금씩 경험을 되돌려주면서 내적 이해에 이르도록 돕는 것이다.

휴브리스에 대응하는 방법은 오로지 하나, 겸손뿐이다. 겸손은 교만을 물리치는 강력하고 유일한 덕목이다.

코헛은 자기애적 소망이 깨어지는 고통의 순간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것이 자기애를 이해하고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했다. 깊은 겸손이라는 내적 태도만이 당신의 인생, 당신이 속한 조직을 휴브리스, 즉 파멸을 향한 행진에서 구하는 단 하나의 방법이다.

※ 박한선은…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현재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강사 및 서울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연구원을 지내며, 정신의 진화 과정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가 있고, 옮긴 책으로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가 있다.

201808호 (2018.07.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