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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주회사의 두 얼굴] ‘극한 대립’ 공정거래법 개정안 

 

김영문 기자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두고 열린 토론회 열기는 뜨거웠다. 개정안의 골자가 공개되자 재계에선 원망 섞인 비난이 일 정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공정위도 팽팽히 맞선다. 공정경제 질서와 재벌개혁을 제대로 해야 한다며 ‘정면돌파’에 나설 기세다. 토론회에서 윤곽을 드러낸 개정안엔 대체 어떤 내용이 담겼을까.

▎지난 3월 1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자유한국당 의원들 쪽으로 다가와 법률안을 설명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지주회사, 결국 수술대에 오른다. 지난 7월 3일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재벌 지주회사의 수익 구조와 출자 현황 분석 결과를 발표하면서 현재 지주회사의 소유 지배구조 개선 효과는 줄고, 부작용은 더 커졌다고 진단했다. 내부 거래, 일감 몰아주기, 대기업 공익법인에 이어 대기업 지주회사를 향해 네 번째로 정조준하며, 다시금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꺼냈다.

지주회사 제도는 IMF 외환위기 시절이던 1999년 재벌의 복잡한 지배구조를 풀기 위해 제한적으로 도입했다. 정부가 세금 혜택까지 주고 설립 요건까지 풀며 지난 20년간 지주회사 전환을 장려해왔다. 하지만 최근 공정위가 실태조사 결과 20년 동안 지주회사 도입 취지가 훼손된 채 부작용만 커졌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전체 매출액에서 내부거래 비중은 절반을 넘어섰고, 총수 일가가 지배력을 확대하거나 사익을 편취하는 수단으로 악용한 정황이 다수 발견됐기 때문이다.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지 않은 기업들의 소유지분 관계도 많이 개선돼 정부가 굳이 기업에 지주회사로 바꿀 것을 권할 상황도 아니다.

공정위는 지주회사를 아예 없애는 대신 현행법에 대대적 메스를 가하기로 했다. 20년간 장려해온 지주회사 체제는 유지하되 행위 규제에 나선다. 다시 말해 총수 일가가 무리하게 지배력 확대에 나서거나 사익 편취 수단으로 악용할 행위는 철저히 막겠다는 취지다.

공정위는 좀 더 포괄적이고, 강한 내용을 정리한 ‘종합선물세트’를 준비 중이다. 올해 안에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더불어 수차례 기자간담회와 토론회 등을 열고 각계 의견을 들어 최종안을 촘촘하게 꾸리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공정위에 힘을 실어줬다. 7월 18일 김 장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하반기 이후 경제여건 및 정책방향’을 발표하며 “시장 경제의 규율과 공정성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공정위가 추진하고 있는 ‘재벌개혁’에 탄력이 붙게 됐다. 공정거래법 전면개편 특별위원회(이하 특위)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두고 개최한 2차 토론회 내용도 비록 확정안은 아니지만, 최종 개정안에 고스란히 담길 가능성이 더 커졌다.

개정안, 지주회사 제도 강화 등 7대 과제 담겨


7월 6일 특위는 2차 공개토론회를 열고 7대 과제의 전반적인 윤곽을 공개했다. ▶지주회사 제도 강화 ▶대기업집단 지정제도 개편 ▶해외계열사 공시 강화 ▶일감 몰아주기(사익편취규제) 강화 ▶순환출자 규제 강화 ▶금융·보험사 의결권 제한 ▶공익법인 의결권 제한 등 재벌개혁을 위한 기업집단 제도개편과 갑질을 막고, 담합을 근절하겠다는 의지가 짙게 깔려 있다. 지주회사 여부를 막론하고 대기업집단 전체를 겨냥하고 있다.

7대 과제의 면면을 하나씩 뜯어보자. 지주회사 제도 개편은 가장 뜨거운 감자였다. 지주회사 제도 도입 초기에 기대됐던 소유 지배구조 개선 효과는 크지 않으니, 자·손자회사에 대한 주식 의무 지분율을 기존 20%(비상장사 40%) 이상에서 30%(비상장사 50%) 이상으로 높이자는 게 골자였다. 하지만 적용 대상을 신규 지주회사로만 국한할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물론 대기업 지주회사가 직접 출자해야 하는 자회사 대신 자회사의 출자를 통한 손자·증손회사를 늘리는 식의 총수 일가 지배력 키우기를 막아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재계가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대로 공정거래법이 개정되면 당장 SK, 롯데그룹에 상당한 충격이다. 지주회사인 SK㈜는 자회사 SK텔레콤 지분 25.2%, 손자회사 SK하이닉스 지분 20.1%를 보유 중이다. 개정안이 그대로 통과되면 SK그룹은 자회사와 손자회사의 지분율을 30%로 맞추기 위해 각각 4.8%, 9.9% 끌어올려야 한다. 지분가액을 따져보면 7월 20일 종가기준으로 개정안에 맞춰 지분율을 끌어올려야 한다면 7조2600억원에 달하는 재원이 필요하다. 롯데지주도 마찬가지다. 롯데제과, 롯데칠성음료, 롯데푸드 지분율은 각각 21.4%, 24.9%, 22.1%다. 하지만 지분 요건이 강화되면 30%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이 밖에 한진칼, 셀트리온홀딩스, 코오롱, 한국콜마홀딩스, 동아쏘시오홀딩스, 종근당홀딩스 등도 지분율을 조정해야 한다. 7월 20일 기준으로 한진칼은 한진과 대한항공의 지분을 각각 22.2%, 29.6% 보유하고 있다. 셀트리온홀딩스는 주력 계열사인 셀트리온에 대한 지분율이 현재 20.1%, 코오롱은 코오롱생명과학에 대한 지분율이 20.4%, 한국콜마홀딩스와 종근당홀딩스는 한국콜마와 종근당에 대한 지분율이 현재 각각 23.2%, 21.2%에 머물고 있다.

이 문제는 2차 토론회에서 가장 첨예한 이슈였다. 신영수 경북대 교수는 “같은 목적으로 도입된 대규모 내부거래의 이사회 의결 및 공시제도와 기준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홍대식 서강대 교수는 “총수 일가 지분율이 20%이고 그 회사가 자회사의 지분을 50% 보유하고 있다면 그 자회사에 대한 총수 일가의 간접지분율은 10%(0.2×0.5)에 불과한데 이 자회사까지 규제에 포함되면 일관성 없는 규제가 될 위험이 있다”고 맞받아쳤다.

개정안 통과되면 SK그룹 7조원 넘게 필요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을 바꾸자는 내용도 나왔다. 현재 자산 10조원 이상으로 돼 있는 ‘대기업집단’ 규제 대상 기준을 국내총생산(GDP)의 0.5% 이상 기준과 연동하자는 의견이다. 지금은 대기업집단을 지정할 때 자산 총액을 기준으로 삼는다. 상호출자제한집단(대기업)은 자산 총액 10조원 이상을, 공시대상기업집단(준 대기업)의 경우 5조원 이상 기업으로 한다.

특위는 “대기업집단 지정기준이 그동안 경제 여건이 변화하면서 반복적으로 수정됐다”며 “기준을 바꿀 때마다 사회적 합의 비용이 발생하고, 기업집단이 변경 주기나 기준을 예측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토론회에서 나온 의견은 ‘GDP의 0.5%’ 연동안을 수용하는 분위기다. 현재 한국 GDP가 1640조원 수준이니 이를 적용하면 8조2000억가량이 넘으면 대기업집단으로 분류된다. 당장 코오롱, 한국타이어, 교보생명, 동부, 동원, 한라 등이 새로 추가된다. 하지만 특위는 GDP의 0.5%가 10조원이 되는 시점에서 시행돼야 한다고 봤다.

해외 계열사에 대한 공시 강화도 권고했다. 국내 계열사가 직·간접적으로 출자한 해외 계열사가 있다면 이들도 공시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고 제안한 것이다. 특위는 “해외 계열사 현황을 공정위에 신고하게 하는 것보다 공시를 통해 일반에 공개하는 것이 맞다”며 “시장에서 자발적으로 소유 지배구조가 개선될 수 있게 유도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총수 일가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 범위를 넓히는 문제도 주요 의제였다. 상장회사도 비상장 기업과 마찬가지로 총수 일가 지분율이 20%가 넘는 계열사를 규제 범위에 넣어야 한다고 봤다. 지금까지 비상장사는 총수 일가 지분율이 20% 이상인 경우, 상장사는 총수 일가 지분율이 30% 이상인 경우에만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 포함됐다. 총수 일가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 포함된 회사가 50%가 넘는 지분을 보유한 자회사도 새로 추가해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되면 규제를 받는 기업은 203개(2017년 기준)에서 441개로 두 배 넘게 늘어난다.

상호출자제한집단의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것도 논의됐다. 앞으로 지정될 기업집단은 물론 기존 순환출자도 규제할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기존 순환출자 고리가 지배주주의 과도한 지배력 유지, 불투명한 지배구조 등 각종 폐해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소급입법의 논란을 고려해 주식처분보다 의결권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가자는 쪽으로 정리됐다.

한누리 서정 법무법인 변호사도 “의결권을 제한할 때는 순환출자 고리 중 순환출자를 최종 완성한 출자회사의 의결권만 제한하는 방안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호영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14년 순환출자 금지를 도입하는 법 개정 당시 이해관계자들의 신뢰를 지키기 위해 신규 순환출자만 금지했다”며 “법 시행 3년 만에 이해관계자에 큰 영향을 주는 방향으로 다시 개정하면 이해관계자 간 신뢰 침해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보험사의 의결권을 제한하자는 얘기도 나왔다. 현재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소속 금융보험사의 경우 국내 계열사 지분에 대해 의결권 행사가 금지돼 있다. 고객의 돈으로 기업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어서다. 특위는 특수관계인 합산 현행 15% 한도는 유지하되, 금융·보험사만의 단독 의결권 행사 한도를 5%로 제안하는 방안으로 의견을 수렴했다.

이대로 법이 개정되면 삼성 계열사 주식만 시가 33조원, 5조원 상당을 각각 보유한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직접적인 영향권 안에 들어온다. 박성범 율촌 변호사도 “금융, 보험사만의 단독 의결권 행사 제한과 관련해 한도를 별도로 설정해 규제하는 건 무리가 있다”고 봤다. 공익법인도 같은 방법으로 규제에 나설 예정이다.

반응은 엇갈린다. 유정주 한국경제연구원 기업혁신 팀장은 “일감 몰아주기로 판단하는 기준도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한 상태에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이대로 통과되면 한국 재계는 엄청난 리스크를 떠안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증권업계 시작은 좀 다르다. 양지환 대신증권 연구원은 “이번 개정안을 보면 지분율 상향을 제외한 나머지 사안은 지주회사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며 “지분율 상향과 관련해서 신규 설립 및 전환 지주회사에 우선 적용 시 영향은 없다”고 평가했다.

특위는 이런 논란과 상관없이 다시 전체회의를 열어 토론회 결과를 반영하고 전면 개편안을 마무리 지을 예정이다. 공정위는 특위의 권고안을 토대로 공정위 입장을 더한 정부 입법안을 하반기 정기국회에 그대로 밀고 나갈 생각이다.

-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

201808호 (2018.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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