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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리얼 크리에이터(2)] 지엔씨미디어 홍성일 대표이사 

“비판보다 포용, 돈보다 행복이 우선이다” 

글 신수진 연세대 교수
[더 리얼 크리에이터]로 두 번째 만난 인물은 홍성일 지엔씨미디어 대표다. 홍 대표는 예술 전시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에 인상파를 비롯한 서양미술 역사상 최고의 명화들을 직접 소개하면서 전시 기획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울 서교동 지앤씨미디어 빌딩에서 만난 홍성일 대표는 “예술은 제가 살면서 가장 힘든 시기에 항상 위로를 주었고 힘을 주었다”고 말했다.
홍성일(1958~ ) 지엔씨미디어 대표이사는 어린 시절에 박물관과 음악을 사랑하는 감수성 풍부한 소년이었다. 학부부터 박사까지 프랑스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던 청년기에는 관광자원과 문화유산으로서 예술작품의 재화적 가치를 학문적으로 탐구했다. 경제학자와 사업가 사이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예술작품을 다루는 사업 모델을 구상하고 전시와 저작권 관리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는 1993년 지엔씨미디어와 임프리마 코리아를 설립한 후 1997년 한국미술저작권관리협회(SACK)를 발족하고 RMN Korea를 설립하여, 예술 콘텐트에 기반한 전시, 출판, 저작권 관리 등을 통한 문화 교류와 경제적 가치 창출을 실천해왔다.

지엔씨미디어는 예술 전시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에 인상파를 비롯한 서양미술 역사상 최고의 명화들을 직접 소개하면서 전시 기획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특히 루브르박물관, 오르세미술관, 퐁피두센터 등 프랑스 국공립미술관 소장품으로 구성한 기획전들은 각각 밀레의 [이삭줍기]와 [만종],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미로의 [블루] 등 프랑스 밖에서 만나기 어려운 걸작의 원본들을 포함시켰을 뿐 아니라 ‘근대미술의 개념’, ‘선과 색의 경쟁’, ‘신화와 전설에 대한 탐구’ 등 서양미술사의 밀도 있는 주제들을 다루었다. 홍성일 대표이사는 지속가능한 문화예술 경영의 노하우를 개발하고 적용함으로써 지금까지 24차례의 대규모 전시를 개최하여 누적관람객 680만 명을 동원했고, 이를 통해 예술을 여가로서 즐기는 문화를 선도해왔다. 국내에서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전시문화사업 모델을 성공으로 이끌어온 홍성일 대표이사를 만나 예술과 경영에 관한 생각을 들어보았다.


▎홍 대표는 한국과 프랑스 문화예술 교류에 이바지한 공로로 지난 4월 프랑스 국가 최고훈장 레지옹도뇌르를 받았다.
전통적으로 예술은 돈 버는 일이 아니라는 편견이 있는데, 결과적으로 그 편견을 깨는 일을 해오셨습니다. 예술 콘텐트를 재화로 바꾸는 일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제가 일해온 사업 영역은 크게 출판 저작권, 미술품 저작권, 예술 전시의 세 영역으로 나뉩니다. 모두 제가 처음 사업을 시작했던 1990년대에는 모델이 없었던 영역입니다. 말 그대로 무모한 도전이었죠. 평생 경제학자이며 교수로 살 줄 알았던 제가 30대 중반에 한국에 돌아와서 사업을 시작하면서 제일 많이 고민했던 것은 ‘무엇을 하고 살면 행복할까?’, ‘정말 힘들 때 나는 어디에서 위로를 받았을까?’ 같은 근원적인 질문들이었습니다. 스스로 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저에겐 사업이었습니다. 너무 낭만적으로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예술은 제가 살면서 가장 힘든 시기에 항상 위로를 주었고 힘을 주었습니다. 어릴 적에도 박물관에 가서 혼자 시간 보내는 걸 좋아했고 프랑스 유학 시절에도 잠깐 짬이 나면 미술관에 가서 작품 보는 걸 즐겼으니까요. 그런 인류의 문화유산이 가지는 힘에 대한 확신이 저를 여기까지 이끌었습니다.

학부부터 박사까지 프랑스에서 공부하셨습니다. 지금처럼 유학이 흔한 시절도 아니었는데요. 그 시간을 보내며 얻은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집무실에 놓인 대형 거울 앞에서 홍 대표가 넥타이를 바로잡고 있다
십 대 시절 공부에 전혀 뜻이 없었습니다. 종교와 신학에 관심이 많아서 제가 읽고 싶은 책만 읽고 대학에 갈 생각도 없었습니다. 군대에 다녀온 후 부모님에 뜻에 따라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을 때 파리에 가보고 나서 뒤늦게 프랑스 유학을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공부를 시작하니 저의 고민과 방황이 쓸데없는 것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첫 학기 중간고사에서 강의 내용을 달달 외웠는데 여덟 과목을 전부 0점 맞고 선생님들을 찾아다니면서 이유를 물었죠. 답변은 모두 같았습니다. 기존의 생각이나 인식의 틀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견해를 피력하지 못하면 답이 아니라는 것이었지요. 오히려 마음이 놓였습니다. 가장 나답게 생각하면 된다는 것이었으니까요. 남다름을 불편해하거나 불안해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 다르게 생각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에 익숙해졌습니다. 자연스럽게 나의 행복만큼 남의 행복도 존중해야 한다는 것도 받아들였죠.

그 당시에 현재 프랑스 예술계에 중요한 인물이 된 분들과 친분도 만드셨지요?

순전히 긴 시간이 만들어낸 우연이고 인연입니다. 학교에서 한국인은커녕 다른 외국인을 보기도 힘들던 때여서 사실 선택의 여지도 없었고요. 학교 근처 술집에서 와인을 마시면서 제가 좋아하는 미술에 대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즐겼습니다. 세월이 흘러서 그들 중에 루브르미술관 관장, 프랑스 국립현대미술관 부관장, 한불수교 130주년 기념 사업의 프랑스 측 대표를 맡는 사람들이 생긴 겁니다. 그들이 저를 받아준 이유는 제가 늘 호기심에 가득 찬 아마추어였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미술사나 예술 전공이 아니니까 저는 항상 질문을 퍼부었고 때로는 그 친구들이 내가 궁금해하는 내용에 답해주려고 열심히 공부를 해오기도 했어요.

오랜 친분과 사업적 파트너가 되는 것은 다른 문제였을 텐데, 단순히 유명한 작품을 빌려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완전히 새로운 스토리와 주제를 직접 개발하기도 하시지요?

네, 물론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미술계는 다소 폐쇄적인 속성이 있습니다. 특히 귀한 소장품을 지닌 국공립 기관들은 인류의 문화유산을 다루는 일을 하기 때문에 매우 보수적으로 움직입니다. 그들의 폐쇄성은 다르게 말하면 엄격함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전시 하나를 구성하면 포함된 작품 보험가액의 총액이 1조원에 달하기도 합니다. 친분의 문제라기보단 신뢰의 문제지요. 프랑스 미술계의 주요 인사들과 친분이 있다고 사업적 파트너가 될 순 없었습니다. 오히려 자유로운 질문과 대화가 새로운 기회들을 만들었지요. 한 예로 2008년에 개최한 프랑스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의 제목은 ‘화가들의 천국’이었는데, 현재 부관장이고 당시 학예실장이었던 디디에 오탕제와 오래전부터 나누던 이야기를 전시 주제로 뽑아서 정리했던 것입니다. 한국과 동양, 프랑스와 유럽이 생각하는 이상향에 대한 생각의 차이를 토론하던 것이 화가들이 다양하게 해석한 천국에 대한 전시로 구성되었던 것이지요. 저희 전시가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고 많은 관객이 찾아주시는 것은 저의 비전문가적 호기심이 전문가적 식견과 만나서 만들어 낸 결실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전시 주제는 관객들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쉽게 풀어내시지만 기획과 운영에서 차별적인 노하우를 많이 만들어내신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국내 최장수 전시기획사이며 거의 유일한 흥행 보증수표라는 평가도 받으시는데 경쟁력이 무얼까요?


▎24차례의 대규모 전시를 개최해 누적관람객 680만 명을 동원한 홍 대표는 그 비결에 대해 ‘비전문가적 호기심과 전문가적 식견이 만나 만들어낸 결실’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20년 이상 전시 사업을 하면서 적자를 본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제가 처음 전시 사업을 시작했을 때는 IMF 외환위기로 다들 힘들어져서 과감한 투자가 어려운 환경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운이 좋았다고도 생각합니다. 첫 전시가 큰 성공을 거두어서 일간지 1면에 저희 전시 작품이 소개될 정도로 주목을 받았는데 공동 투자를 했던 파트너가 모든 수익금을 가지고 해외로 도피했습니다. 아주 단단히 신고식을 치렀다고 생각합니다. 그 후로 단 한 번도 외부 투자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프랑스 시절에 일종의 아르바이트로 펀드 매니저도 하고 기업 인수 합병에도 관여하면서 모아둔 자본을 전부 쏟아부어서 전시 사업을 이어갔습니다. 그만큼 신중하고 절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전에 모범적인 사례의 사업 모델이 없는 분야이다 보니 주먹구구식의 투자를 피하려면 스스로 분석 노하우를 개발해야 했습니다. 모든 프로젝트는 경제학적인 방법을 동원해 소비자 및 생산자 분석을 합니다. 제 박사학위 논문 제목이 [3차 사업의 거시경제학적 분석]인데 전시 사업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론이 있었거든요. 그에 따라서 전시의 개최 여부, 예산의 적절성, 기대 수익의 산출 등을 최대한 정확하게 예측하려고 합니다. 문화예술 이벤트를 재화로 전환하는 방법을 축적해온 것입니다. 최근에는 아시아 지역의 주요 언론사나 기관들과 연계해서 투어 프로그램을 만들고 비용을 낮추는 방식도 저희가 주도적으로 실행하고 있습니다.

최근 전시 콘텐트에서 영화나 애니메이션 등으로 다양화를 적극적으로 꾀하고 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요?

애초에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국제적인 무대에서 공신력을 갖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프랑스 국립기관들과 쌓아온 신뢰가 이젠 전 세계 어딜 가도 기획과 실행력 면에서 믿음을 줄 수 있을 만큼 커졌습니다. 그래서 2010년 이후로는 다양한 국가에서 여러 장르의 작품을 들여와 한국에 소개하고 있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세계적으로 미술관이 수용하는 전시 콘텐트의 폭도 확실히 넓어졌고 우리나라 관객의 눈높이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17~18세기 유럽 명화나 인상파 회화에만 머물러 있지 않으니까요. 이 부분에서는 보람과 자부심도 느낍니다. 사실 저는 사업하는 사람이지만 돈을 많이 버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돈의 양에 가치를 두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어떻게 벌고 어떻게 쓰느냐가 훨씬 중요하지요. 이런 생각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다른 분야의 사업에 뛰어들었을 겁니다. 그랬다면 큰돈을 벌었을 거란 자신도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저와 협업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영리와 무관한 국공립기관에서 일합니다. 그들의 모든 활동이 영리를 향해 있지 않기 때문에 사업 모델을 만들고 수익을 내는 일은 순전히 제 몫입니다. 큰 바다에서 항로를 정하듯이, 이것이 제 일에서 흥미로운 지점이지요.

출판과 미술품 관련 저작권 사업도 하고 계시지요?


▎홍성일 대표가 서울 서교동 집무실에서 신수진 교수와 인터뷰하고 있다.
네, 일반 소비자와 접점이 없지만 전시 사업 초기부터 병행해왔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처음 대학생들을 만났을 때 교재나 전공서적의 수준이 너무 뒤처져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언어 장벽 때문이었지만 출판계 전체가 아직 닫힌 시장이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해외 유수의 출판물들을 한국에 소개할 수 있도록 하는 번역 저작권 사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지요. 그 후 같은 루트를 역으로 활용해서 한국 출판물을 해외에 수출하는 역할도 해오고 있습니다. 한국미술저작권관리협회(SACK)는 국제저작권연맹 정회원으로서 전 세계 작가의 작품에 대한 권리를 한국에서 관리하는 일을 합니다. 작가의 창작물이 변형, 왜곡되거나 작품의 활용이 다른 사람의 이익으로 변질되거나 도용되는 것을 막습니다. 이미지 위주의 소통에 익숙해진 현대에 꼭 필요한 역할이고 앞으로도 확장 가능성이 큰 분야입니다.

문화예술계에 종사하려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지속가능한 활동을 위한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문화예술계의 영역이 엄청나게 세분화되고 있어서 한마디로 충고하는 것은 어려워졌다고 봅니다. 하지만 정말로 하고 싶은 얘기는 있습니다. 누구를 위한 예술이고 누구를 위한 문화인지를 깊이 고민해서 정확한 타깃팅을 하라는 겁니다. 시장의 주인공은 소비자입니다. 지금과 같은 실시간 커뮤니케이션 시대에 계도하고 선도하고자 하는 태도는 잘못된 것입니다. 문화예술계에서는 비판보다는 포용하는 것이 훨씬 중요한 덕목입니다. 상대에 대한 이해가 없는 비판을 앞세워서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평가하기 전에 먼저 배우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즉문 즉답

1. 10대 시절 관심사는?

천문학과 신학. 우선은 카오스로부터의 탈출이 목표였다.

2. 20대 시절 가장 몰두했던 일은?

조금씩 흔들리긴 했어도 학문으로 꽉 채워진 시간.

3. 40대 시절 품었던 인생의 목표는?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회사로 자리매김.

4. 자신의 경쟁력의 원천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집중력. 수많은 유혹에도 한 길만 걸어왔다.

5. 앞선 인물(부모나 의미 있는 사람 누구든)에게 받은 물적, 심적 유산은?

어머니의 일관된 태도. 엄함과 다정함의 균형을 한결같이 보여주셨다.

6. 현재의 나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니는 사람은?

대중, 즉 소비자.

7. 좋아하는 책이나 물건은?

플라톤의 『국가론』. 각 분야에서의 집중과 그러한 개체들의 조화가 사회정의를 구현한다. 회사도 마찬가지.

8. 충전이 필요할 때 찾는 장소나 사람은?

회사 근처 시장. 홍대 인근의 낮과 밤.

9. 휴식할 때 주로 하는 행동은?

특별한 게 없다. 음악 듣고 산책하고 가끔 요리를 한다.

10. 앞으로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K-pop의 세계적인 인기를 확신하지 못했다. 우리의 시각예술 콘텐트를 기반으로 한 아트비즈니스의 국제화.

11. 한국의 청소년이나 청년에게 하고 싶은 말

사랑하라. 그리고 즐겨라.

- 글 신수진 연세대 교수·사진 박종근 포토 에디터

※ 신수진은…심리학자이며 예술기획자이다. [더 리얼 크리에이터]를 연재하면서 문화예술과 경영을 관통하는 창의성의 비결을 탐구하고자 한다. 차별적 성과를 만드는 경험과 생각의 연결고리 속에서 새로움의 가치를 공유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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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호 (2018.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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