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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럭셔리 산업의 리더들(10) 한영아 애술린코리아 대표 

“깊은 신뢰와 가치 제공해야 진정한 명품” 

오승일 기자
한국의 명품 산업을 이끌고 있는 럭셔리 마케팅 전문가를 만났다. 내로라하는 세계적인 명품 기업들의 브랜드 북을 제작하는 한영아 애술린코리아 대표다. 국내 명품 시장의 성장을 위해 19년째 종횡무진하고 있는 그를 만나 럭셔리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들어봤다.

▎서울 강남의 애술린 플래그십 라운지에서 만난 한영아 대표. / 사진:애술린코리아 제공
애술린은 프랑스에 본사를 둔 컬처 브랜드다. 앤디 워홀, 페르난도 보테로 같은 세계적인 아티스트는 물론 샤넬, 루이비통, 크리스찬 디올, 까르띠에, 돌체 앤 가바나, 발렌티노, 도나카란뉴욕(DKNY), 랄프로렌 같은 글로벌 명품 브랜드의 아트 북을 제작한다. 아트뿐만 아니라 패션, 자동차, 주얼리, 여행, 와인 등 다양한 분야의 라이프스타일 북을 선보인다. 국내에서는 설화수, MCM, 롯데 에비뉴엘, 현대자동차 등이 애술린의 브랜드 북 제작에 참여했다.

애술린의 작품들은 단순히 보는 책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소장하고 음미하는 책으로 컬렉터들에게 회자된다. 품격 높은 콘텐트를 담아내는 애술린의 아트 북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장식품이다. 세련된 뉴요커들이 선호하는 마크 호텔과 플라자 호텔, 정통 클래식의 진수로 불리는 영국 런던의 클래리지(claridge) 호텔 등에서 애술린 라운지를 발견할 수 있다.

뉴욕, 런던, 밀라노, 두바이, 상파울로 등 전 세계 15개국에 25개 라운지를 둔 애술린은 아시아에선 유일하게 한국에만 플래그십 라운지를 운영 중이다. 서울 강남의 도산공원 앞에 있는 애술린 라운지는 샴페인과 와인을 음미하며 격조 높은 책자들을 감상할 수 있는 문화 공간이다.

지난 6월, 애술린 플래그십 라운지에서 한영아(55) 대표를 만났다. 그는 “애술린은 단순히 돈벌이를 위해 책을 만들지 않는다”며 “애술린의 문화적인 지향점이나 감성 코드와 맞아떨어져야만 클라이언트 자격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애술린의 이런 고집스러운 경영방식은 유럽과 미주를 넘어 아시아에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진정한 명품이 되려면 애술린에서 책을 제작해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죠. 애술린을 한국에 론칭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 곳에서 제작 의뢰가 들어왔어요. 그때마다 우리의 이런 정책을 설명했지만 오해를 산 적도 많았죠. 이제는 이런 우리의 경영방침이 많이 알려져 좀 수월한 편입니다.”

유명 브랜드 성장 이끈 럭셔리 마케팅의 대가


▎영국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 벤틀리의 브랜드 북
1987년 이화여대 장식미술학과를 졸업한 한 대표는 1991년 뉴욕 패션 인스티튜트 오브 테크놀로지(FIT)에서 패션 바잉 및 머천다이징, 1993년 뉴저지공과대학(NJIT)에서 마케팅 매니지먼트를 전공한 럭셔리 마케팅 전문가다. 이후 1996년부터 계명대학교 패션학부 교수로서 후학 양성에 힘을 쏟은 한 대표는 2000년 브랜드 마케팅 코퍼레이션(BMC) 대표에 오르며 명품 업계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그 시절 한 대표는 롯데백화점 명품관 에비뉴엘 총괄 기획과 론칭을 담당했으며 MCM, DKNY, BMW 같은 럭셔리 브랜드의 한국 론칭 시 마케팅을 총괄하기도 했다. 이후 2005년부터 2010년까지 MCM 뉴욕 지사장 및 글로벌 마케팅 디렉터를 거쳐 2012년 애술린코리아 대표에 취임했다.

한 대표는 “처음 명품 업계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와 비교하면 전통적인 명품 시장의 변화는 정말 놀라울 정도”라며 “무엇보다 명품 브랜드의 디자인 전개 방식과 마케팅 전략이 가장 크게 달라졌다”고 말했다. “오래전부터 유럽의 명품 브랜드들은 자신들의 미적 기준과 디자인 철학을 절대로 양보하지 않는 정책을 고수해왔습니다. 한마디로 그들만의 리그 안에서 진입장벽을 높이는 전략을 써온 거죠.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일반인들이 함부로 사용하기 어려운 특별한 브랜드’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전달했어요. 그래선지 고객들의 새로운 요구와 시대적 트렌드가 명품 업계에 반영되기 어려운 구조였어요. 하지만 지금 전통적인 명품 시장의 변화는 정말 놀라울 정도예요. 전통에만 의존하는 미학적 접근은 이제 더는 고객들에게 매력적이지 않아요. 명품 브랜드가 갖고 있는 시대적 포인트와 젊은 고객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트렌드를 과감히 접목하거나 시즌별로 디자인에 큰 변화를 감행하는 추세죠. 얼마 전 뉴욕에 새로 오픈한 구찌 매장이 좋은 사례인데요. 요즘 유행하는 스트리트 패션을 판매사원 복장에 드라마틱하게 가미한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또 일명 스트리트 캐스팅(길거리에서 섭외한 사람을 패션쇼 모델로 세우는 것)으로 유명한 신생 브랜드 베트멍(vetements)을 똑같이 따라 하는 에르메스를 보면서 새삼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한 대표가 정의하는 럭셔리는 단순히 값비싼 물건이 아니라 품격을 갖춘 제품이다. 그는 지속적으로 깊은 신뢰와 큰 만족을 주고, 가치 있게 여길 수 있어야만 진정만 명품이라고 생각한다. “고객들이 구매한 상품을 통해 값진 프라이드를 느끼게 해주는 브랜드가 바로 명품이죠. 섬세한 디테일과 좋은 품질을 바탕으로 브랜드 고유의 스토리텔링과 판타지를 만들어내는 것도 중요해요. 남들과 다른 DNA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근사한 비주얼로 전달했을 때 비로소 명품 반열에 오를 수 있습니다.”

아울러 한 대표는 섬세한 디테일이 브랜드의 명품화를 가능케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상품을 이루는 패키지가 30% 이상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쇼핑백 손잡이까지도 신경을 써야 한다”며 “해외 명품 브랜드의 쇼핑백 손잡이가 하나같이 두꺼운 것도 바로 그런 이유”라고 설명했다.

“특정 제품에 신뢰와 만족감을 느끼는 이유는 매우 다양합니다. 이를테면 디자인을 가능하게 한 장인의 손길이 느껴졌다거나, 제품의 소재가 아주 희귀하다거나, 브랜드 스토리가 감동적이었다거나 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기 마련이죠.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제품을 만든 사람들의 자부심이에요. 그것이 곧 제품의 품격이라고 생각해요.”

한 대표가 전망하는 한국 명품 시장의 미래는 장밋빛이다. 케이팝에서 시작된 한류 열풍이 케이뷰티에 이어 케이패션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트렌드에 민감하고 이를 신속히 확산시키는 우리의 특성이 새로운 명품의 흐름을 반드시 만들어낼 거라고 확신한다.

한국인의 역동성이 명품 성장의 지름길


▎(왼쪽)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샤넬의 브랜드 북 / (오른쪽)미국 팝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의 아트 북. / 사진:애술린코리아 제공
“사실 우리도 해외 못지않은 명품 브랜드를 갖고 있어요. 아모레퍼시픽의 설화수가 그렇고, 삼성의 스마트폰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죠. 특히 설화수는 이미 10년 전에 세계에서 가장 까다롭고 럭셔리한 사람들이 쇼핑하기로 유명한 뉴욕의 버그도프굿맨에 입점했어요. 지금도 유럽 화장품 회사의 값비싼 제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판매되고 있죠. 이처럼 명품 브랜드들이 각 분야에서 탄생하기 위해서는 브랜드만이 갖고 있는 DNA를 확실히 전달하는 키 메시지가 있어야 해요. 제품력 못지않게 마케팅 능력이 매우 중요한 시대예요. 비주얼로 전달되는 시각적 SNS 마케팅에 능한 우리나라 기업들에 유리하다고 볼 수 있는 거죠.”

한 대표에게 마지막으로 한국 명품 산업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조언을 부탁했다. 그는 “한국인들의 역동성을 전통문화와 잘 접목한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대답했다. “문득 현대자동차의 브랜드 북을 만들던 때가 떠오르네요. 1년 2개월에 걸쳐서 현대자동차의 역사는 물론 새로움을 향한 값진 도전들을 사진으로 전달해야 하는 방대한 프로젝트였죠. 당시 고객사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영방침에 따라 애술린 회장이 직접 현대자동차 본사를 방문했어요. 이른 아침인데도 많은 직원이 출근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열정적인 에너지를 보면서 이것이 바로 현대자동차를 만들어온 힘찬 맥박이라며 감동했던 일이 기억납니다. 이처럼 한국은 역동적인 힘을 갖고 있는 나라예요. 명품 산업의 성장을 위해 이렇게 앞을 향해 치고 나가는 강한 에너지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기에 오래전부터 우리가 갖고 있었던 전통의 원형을 지키는 지혜로운 균형감을 잘 녹여낸다면 명품 시장의 미래는 밝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 오승일 기자 osi71@joongang.co.kr

201808호 (2018.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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