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남의 TRAVEL & CULTURE] 스위스 루체른(Luzern) 

루체른 호수 위에 어리는 불멸의 피아노 소나타 

글·사진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19세기 이래 세계적인 관광지로 각광받기 시작한 스위스. 스위스에서도 최고의 절경을 자랑하는 곳이 바로 루체른 주변이다. 루체른은 인구 10만 명이 넘지 않는 작은 도시로 시내는 모두 걸어 다닐 수 있으니 인간의 척도에 맞는 아주 이상적인 도시다. 이 도시는 로이스(Reuss)강과 피어발트슈테터(Vierwaldstattersee)라는 큰 호숫가에 자리 잡고 있는데, 이 호수는 보통 ‘루체른 호수’라고 불린다.

▎리기산에서 내려다본 루체른 호수. 호수 너머로 멀리 필라투스산이 보인다. / 사진:정태남
‘스위스’라는 나라는 지구상에 없다. 왜 그럴까? 우리가 ‘스위스’라고 부르는 나라의 국명은 일본 사람들의 잘못된 표기를 그대로 차용한 데서 기인하는데, 스위스(Swiss)는 국명이 아니라 영어로 ‘스위스의’라는 형용사이기 때문이다. 국명은 독일식, 프랑스식, 이탈리아식으로 각각 슈바이츠(Schweiz), 쉬스(Suisse), 스비체라(Svizzera)이며, 영어로는 스위철랜드(Switzerland)다. 그런가 하면 고대 로마인들은 이곳을 헬베티아(Helvetia)라고 불렀다. 스위스는 ‘칸톤(Canton)’이라고 하는 세포같이 작은 주(州) 26개로 이루어진 연방국이다. 그래서 헬베티아 연방(Confederatio Helvetica)이란 뜻으로 스위스의 공식 국명은 약자 CH로 표기된다.

관광객을 유혹하는 절경


스위스가 관광지로 뜨기 시작한 것은 산업혁명 덕분이다. 축적한 부를 토대로 관광이란 것을 시작한 19세기 영국 사람들이 찾아오면서 세계적인 관광지로 각광받았다. 스위스에서도 최고의 절경을 자랑하는 곳은 바로 루체른과 그 주변이다. 루체른은 인구 10만 명이 넘지 않는 작은 도시로, 시내는 모두 걸어 다닐 수 있으니 인간의 척도에 맞는 아주 이상적인 도시다. 이 도시는 로이스(Reuss)강과 피어발트슈테터(Vierwaldstattersee)라는 큰 호숫가에 자리 잡고 있는데, 이 호수는 보통 ‘루체른 호수’라고 불린다.


▎리 기산 정상. 멀리 루체른 호수가 보인다. / 사진:정태남
루체른은 원래 목가적이고 평화로운 작은 촌락이었다. 그리고 도시명은 700년경 이곳에 세워진 베네딕트 수도회의 장크트 레오데가르(St. Leodegar) 수도원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그 후 840년에 거기서 변형된 ‘루카리아(Lucaria)’가 공식 지명이 되는데 이것이 훗날 지금의 루체른(Luzern)으로 굳어졌다. 프랑스와 영어식 표기는 Lucerne이다.

이 도시는 13세기에 알프스산맥을 넘는 생고타르 고갯길이 이곳을 지나며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 고개가 이탈리아 북부의 롬바르디아 지방과 라인강 상류 지방을 연결하면서 교통요충지가 된 덕분이다. 루체른은 1333년에 이르러서 세 개 칸톤으로 구성된 초기 헬베티아 연방에도 가입했는데 루체른의 명소인 지붕 씌운 목조 다리 카펠브뤼케가 이때 놓였다. 또 아들의 머리 위에 놓인 사과를 활로 쏘아 맞춘 빌헬름 텔(영어로는 윌리엄 텔)에 관한 전설도 이 무렵 생겼다. 그 후 19세기엔 생고타르 고개를 넘는 철도 등 산악철도가 중부 스위스 산악에 가설됐고 덕분에 루체른 호수의 수상교통도 함께 발달했다. 이것이 다른 알프스 관광지에 앞서 루체른을 일약 스위스 관광의 중심지로 우뚝 서게 한 요체다.

이곳에는 호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루체른 남쪽에 있는 해발 2120m 필라투스(Pilatus)산과 호수 건너편 동쪽에 있는 해발 1800m의 리기(Rigi)산은 전 세계의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필라투스는 사도신경 중 ‘본디오 빌라도 치하에서 고난을 받으시고’라는 문구에 등장하는 ‘빌라도’의 라틴어 본명이다. 그는 예수 활동 당시 유대지방을 통치하던 로마제국의 총독으로, 유대인의 예수 그리스도 처형 요구에 반대하지 않았다. 필라투스산은 빌라도의 망령이 떠돌아다니다가 이곳에 정착했다는 전설이 있는 일명 ‘악마의 산’인데, 산세가 워낙 험준해서 붙은 이름이다. 한편 ‘리기’라는 산의 이름은 ‘(산의) 여왕’이란 뜻으로, 라틴어로 레기나(Regina)라고 부른 데서 유래한다. 베버, 멘델스존, 빅토르 위고 등 19세기 음악가와 문인들을 비롯해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도 이 산에 올라서서 루체른 호수 주변의 절경을 내려다보고 감탄했다고 한다. 당시 많은 관광객이 이 산으로 몰려들었기 때문에 1871년에는 유럽 최초의 등산철도가 개통되었다.


▎리기산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루체른 호숫가의 작은 도시 베기스. / 사진:정태남



▎루체른 구시가지의 뒷골목. 시내는 모두 걸어 다닐 수 있다. / 사진:정태남



▎리기산 중턱의 목가적인 풍경. / 사진:정태남



▎카펠브뤼케에서 본 로이스강 주변의 게르만적인 분위기의 고풍스런 건물들. / 사진:정태남



▎목조 다리 카펠브뤼케를 걷는 사람들. 지붕이 있어서 복도를 걷는 듯한 느낌이다. / 사진:정태남
특이한 목조 다리 카펠브뤼케

루체른은 아름다운 자연환경에 둘러싸인 도시다. 게다가 전쟁으로 인한 피해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게르만적인 도시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즉 고딕양식에서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를 거쳐 19세기 양식에 이르기까지 기적에 가까울 정도로 게르만적인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시가지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목조 다리 카펠브뤼케(Kapellbrucke)는 대표적인 게르만적인 랜드마크 중 하나다. 이 다리가 세워진 지점은 강과 호수의 경계점. 길이 약 200m인 이 다리는 로이스강 양쪽 강변을 비스듬히 연결한다. 루체른의 도시 풍경에서 구심점을 이루는 것은 바로 이 특이한 모양의 목조 다리와 강에서 솟아오른 듯한 바써투름(Wasserturm)이라고 하는 지붕이 있는 팔각형 돌탑이다. 수직으로 솟은 높이 43m에 달하는 이 돌탑은 옛날에 감시탑이자 고문이 행하여지는 감옥으로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수평선이 강조된 카펠브뤼케와 균형을 이루며 일체감을 준다.

한편 카펠브뤼케는 지붕이 있어서 다리를 걷는 것이 아니라 마치 실내 복도를 걷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다리의 기원은 13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니 지붕이 있는 목조 다리로는 유럽 최초인 셈이다. 지금의 다리는 1993년에 화재로 크게 망가져 상당 부분 원형대로 복원했지만 그래도 깊은 연륜이 느껴진다. 이 다리는 미술에도 뛰어났던 음악가 멘델스존이 그린 루체른 풍경화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또 영국 화가 터너는 리기산이 보이는 루체른 호수의 절경을 화폭에 즐겨 담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터너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베토벤이 문득 떠오른다. 특히 루체른 호수 위에 달이 떠 있는 밤 풍경은 그의 [피아노 소나타 Op.27 no.2] 제1악장 선율을 연상하게 한다.

베토벤의 불멸의 소나타


▎루체른 호수와 로이스강 경계에 세워진 목조 다리 카펠브뤼케. / 사진:정태남
베토벤은 1802년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4개의 피아노 소나타 Op.22, Op.26, Op.27 (no.1과 no.2), Op.28을 출판했는데, Op.22와 Op.28은 전통적인 구성으로 되어 있는 반면, 나머지 소나타는 전통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시도한 작품들이다. 그중에서 특히 Op.27 no.2의 첫 악장은 피아노의 음향을 완전히 새롭게 생각하게 하는 이정표적인 작품이다. 마치 카펠브뤼케가 로이스강 물이 막 루체른 호수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알려주는 이정표 같은 다리인 것처럼.

[피아노 소나타 작품 27 no.2]의 제1악장을 들어보면, 음이 길게 이어지다가 사라질 때쯤 해서 다시 이어지는 저음부의 선율은 엄숙함 속에 무엇이라고 꼭 집어 말할 수 없는 우수(憂愁)를 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또 리듬이 거의 바뀌지 않고 달빛처럼 영롱하면서 무한하게 고요히 퍼져 나가는 아르페지오는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진 조용한 탄식 소리로 들리고, 그 우수어린 소리와 탄식은 승화된 영혼의 울림처럼 들린다. 그런 반면 제2악장과 제3악장은 험준한 산에 휘몰아치는 폭풍처럼 격정적이다.

베토벤은 31세 때 이 소나타를 작곡하여 그가 연모하던 귀족 집안 소녀 줄리에타 구이차르디에게 헌정했다. 하지만 그녀는 다른 귀족 집안 청년과 결혼하여 이탈리아의 나폴리로 이주하고 말았다. 그런데 과연 그녀가 이런 엄청난 곡을 헌정 받을 만한 인물이었을까? 글쎄…. 19세기의 베토벤 전기작가 롤랑은 그녀를 이기주의자이며 행실이 방정하지 못한 여인으로 묘사했다.

한편 베를린 출신의 낭만시인이며 음악평론가, 언론인이자 슈베르트의 [세레나데]를 작사한 렐슈탑은 나중에 이 곡을 [월광 소나타](Mondschein-Sonate)라고 불렀다. 제1악장이 ‘루체른 호수 위에 비치는 달빛을 받은 작은 배’를 연상한다고 해서. 베토벤은 루체른에 와본 적도 없고 자신이 쓴 소나타가 나중에 그렇게 불릴 줄은 더더욱 몰랐다. 물론, 그가 만약 루체른에 왔더라면 이곳 풍광에 완전히 매료되었겠지만. 어쨌든 이 소나타는 시대와 국경을 뛰어넘는 불멸의 명곡으로 손꼽힌다.

※ 정태남은…이탈리아 공인건축사 정태남은 서울대 졸업 후 이탈리아 정부장학생으로 유학, 로마대학교에서 건축부문 학위를 받았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건축 외에 음악· 미술·언어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30년 이상 로마에서 지낸 필자는 이탈리아의 고건축복원전문 건축가들과 협력하면서 역사에 깊이 빠지게 되었고, 유럽의 역사와 문화 전반에 심취하게 되었다.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대기업·대학·미술관·문화원·방송 등에서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역사, 건축, 미술, 클래식 음악 등에 대해 강연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탈리아 도시기행,』 『건축으로 만나는 1000 년 로마,』 『동유럽 문화도시 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201808호 (2018.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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