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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리얼 크리에이터(3)] 윤도준 동화약품 회장 

“역사에 대한 자긍심이 미래를 만든다” 

글 신수진 심리학자
[더 리얼 크리에이터] 세 번째 주인공은 윤도준 동화약품 회장이다. 121년 장수기업 동화약품의 수장인 그는 독립운동을 했던 조부와 선친의 뜻을 이어 역사의식 교육에 열심이다. 그는 “역사를 기억하는 자가 미래의 주인공”이라고 강조한다.

▎서울 후암로에 있는 윤도준 회장의 집무실에 들어서면 벽을 가득 채운 책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윤 회장은 “어릴 때부터 책 욕심이 많았다”고 했다.
윤도준(66) 회장은 1897년 설립 후 121년간 이어온 장수기업 동화약품의 수장이다. 신경정신과 전문의로 경희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다가 2005년 가업을 잇기 위해 동화약품으로 옮겼고 2008년 회장에 취임했다. “큰돈을 벌기보다 바른 길을 걸어라”는 선친의 가르침에 따라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만들고 상생과 평화에 보탬이 되는 기업 활동을 추구한다. ‘생명을 살리는 물’이라는 뜻의 활명수(活命水)로 대표되는 동화약품의 창업이념은 제약보국(製藥保國). 그는 이 정신을 계승하는 한편, 대한민국의 큰 도약을 위해선 후손에게 역사에 대한 자긍심과 반성을 가르쳐야 한다는 신념을 다져왔다.

그는 자료를 수집해 생각을 정리하고 강연의 형태로 전달하는 일에 익숙한 만큼 회사 경영에도 이 방법을 적극적으로 적용했다. 윤 회장은 동화약품 임직원과 방문객을 대상으로 조국의 우수성과 나아갈 길에 대한 강연 ‘우리 조국’을 진행하다가 이를 ‘남산 역사탐방’으로 발전시켰다. 각계각층 인사들을 초청해 역사의식을 공유하고 전파하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올해 8월 말 기준으로 15회까지 실행된 역사탐방에 참여했던 인연을 계기로 윤도준 회장의 철학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스스로를 ‘오천년 얼(정신) 모티베이터(Motivator)’라 칭하며 기업인의 선한 영향력을 강조한다.


▎윤 회장이 2013년부터 유명 예술가들과 협업해 생산하는 한정판 활명수를 소개하고 있다. ‘생명을 살리는 물’이라는 뜻 그대로 수익금 전액을 물 부족 국가 어린이들을 돕는 데 기부한다.
그때는 몰랐어도 지금은 알게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인생과 사업에서 전환기는 언제일까요?

연도를 짚어가며 생각을 이어가는 걸 즐기는데, 오랜 시간 속에서 연결고리를 찾게 되면 우연이라기보다 필연처럼 느껴지는 일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활명수를 만들어서 한국의 제약산업을 태동시킨 민병호 선생과 우리나라 최초의 의료 선교사였던 알렌이 동갑이라는 사실 같은 거죠. 시대가 인물을 만들고 인물이 시대를 만든다는 걸 확인하면서 나를 돌아보게 됩니다. 올해가 2018년인데 돌이켜보면 저에게는 10년마다 중요한 일이 있었어요. 10년 전인 2008년에는 회장이 되었고, 그 10년 전인 1998년에는 의과대학에서 정 교수가 됐습니다. 또 10년 전인 1988년에는 의학박사가 되었고, 그보다 10년 전인 1978년엔 의사가 되고 결혼을 했어요. 전환기라기보다는 중요한 사건들입니다. 사람이 시간을 거슬러 살 수는 없지만,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고 의미를 부여하는가는 지금을 들여다보고 내일을 준비하는 데 꼭 필요한 작업이지요.

정신과 의사와 대학교수로서의 경험, 현재 기업인으로서의 역할을 어떻게 통합했는지요?

기업에 몸담고 있으니 의사로 재직할 때보다 만나는 사람들의 범위가 넓어졌어요. 원래 틀에 박힌 일만 하면 따분할 거라는 걱정 때문에 정신과를 전공으로 택했거든요. 다른 전공에 비해 창의적인 요소가 많을 것 같았어요. 환자가 지닌 문제나 고통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환자 자신이 해결 방법을 찾아가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는 역할을 기대했습니다. 그래서 정신과를 지망하고 합격했을 때 굉장히 기뻤고 그 후로 열심히 그 역할을 수행했죠. 병원은 약자가 모이는 곳입니다. 정신과 보호 병동은 특히 더 그렇지요. 회사에서 제가 하는 일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경영에서 제가 느끼는 부담은 매출을 늘리고 돈을 더 많이 버는 일이 아닙니다. 한 명한 명의 환자를 만나는 대신 훨씬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불편함을 덜어주고 그들을 이롭게 하는 것이 제 일입니다. 선친께서도 제게 그렇게 이르셨습니다. 이재에 밝은 것보단 보람된 일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고, 그것이 곧 자아를 실현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창업이념 ‘제약보국’과 선대 회장님들의 활동이 윤 회장님의 철학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윤 회장 집무실에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지원하며 조선산직장려계 총무를 지낸 조부 윤창식 선생(1890~1963), 광복군 주호지대 5중대장으로 독립운동에 몸을 던진 선친 윤광열 회장(1924~2010)의 사진이 걸려 있다.
우리 회사는 1897년 구한말 격동기에 창업해 민족기업이라는 수식어에 걸맞은 활동을 이어왔습니다. 민강 초대 사장은 상해임시정부의 국내 연통제의 일환인 서울 연통부 책임자로 활명수를 팔아 독립군을 지원했고, 제2의 창업을 이루신 조부께서는 민족자본 양성을 통한 국권 회복을 추구했던 조선산직장려계의 총무를 맡아 후에 물산장려운동의 마중물 역할을 하셨습니다. 아버님은 고려대 법학과 1학년 재학 중에 학병으로 징집됐다가 탈출해 광복군에 지원, 입대 하셨습니다. 광복군 주호지대 5중대장으로서 독립운동을 하셨지요. 그분들이 약을 지어서 국민의 건강에만 기여한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나라를 구하기 위해 헌신하셨던 것을 생각하면서 제가 살고 있는 21세기에 필요한 보국은 무엇일까 고민하게 됩니다. 제가 갈 수 있는 애국의 길을 찾아야죠. 나라를 이롭게 하는 방법을 찾고, 작은 것이라도 하나씩 실천하려고 합니다.

직접 강연도 하시는데 주로 누구를 상대로, 무슨 내용을, 어떻게 전달하시는지요?

처음 시작은 수평적인 소통 문화를 만들겠다는 의지에서 출발했습니다. 회사에 와서 신년회나 중요한 행사를 보니 제가 입장할 때 직원들이 박수를 치고, 강단 위에서 임원들이 돌아가면서 훈화 말씀을 하는 모습이 경직된 군대문화 같더군요. 그런 걸 하나씩 바꿔나가다 보니 회사에 의대생이나 젊은이들이 방문하면 의례적으로 진행하던 회사 소개에도 관심이 갔어요. 단순한 회사 소개가 아니라 국가관과 관련된 내용으로 대체해서 직접 연사로 나섰습니다. 제목을 ‘우리 조국’이라고 붙였는데 우리가 얼마나 자랑스러운 민족인지를 역사학자들의 연구나 신문기사들을 수집해서 제시하고 앞으로 우리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지 생각해보자고 제안했죠. 지난해부터는 이 강연의 탐방 버전을 만들어서 조금 더 적극적으로 다양한 분을 모시고 남산 주변에 남아 있는 일제강점기의 잔재들을 돌아보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미쳐야 미친다’고 하지요. 제 관심사와 신념이 결합되다 보니 계속해서 관련 자료들이 눈에 들어와서 내용을 매번 수정하고 보완해나가게 됩니다. 참가자들의 코멘트를 듣고 아이디어를 얻거나 새로운 통찰을 가지게 되는 기쁨도 큽니다.

왜 역사와 국가에 관한 주제를 다루시는지요?


▎윤 회장은 일제강점기에 남산 주변에 만들어진 조선신궁 터와 조선총독부 청사 터 등 부정적인 역사 현장을 돌아보는 역사기행을 기획·진행하고 있다. 윤 회장은 매일 일과를 마친 뒤 남산을 산책한다.
우리는 우리의 강점을 너무 모릅니다. 우리가 모르면 누구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진정한 선진국으로 한 걸음 더 도약하려면 돈 버는 얘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많은 분이 나라 걱정을 하시지만 각자 자기의 자리에서 애국하는 길을 찾지 않으면 답이 없어요. 미래의 가능성은 역사의식에서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자부심을 가질 만한 역사적 사실을 발굴하고 교육해야 합니다. 실제로 우리 고조선 문명이 동양문명의 출발이자 원류라 할 만한 기원을 가지고 있음에도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자료가 소실되고 정신이 말살되었다는 연구를 보면 안타깝기 이를 데가 없어요.

현대사에 이르러서 단시일 내에 경제성장을 이룬 것을 전 세계가 경이롭게 바라본다고 하지만 정작 우리 스스로는 자긍심이 부족합니다. 일제강점기에 대한 반성과 정리가 미미한 이유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교육의 방향에 대한 합의가 아직도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자라나는 세대에게 더 큰 역사의 스펙트럼을 인식하게 만들고 반만년 역사에 대한 자부심과 애국심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관 주도의 정책도 중요하겠지만 우선은 시민이 나서서 작은 실천이라도 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저 나름의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유럽의 선진국을 여행하다 보면 문필가, 음악가, 정치가 등의 동상이나 묘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얼마나 자랑스러울까’ 하는 부러움이 절로 듭니다. 우리는 영웅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분명히 자랑스러울 만한 것이 많은데 왜 그럴까요? 이천 년 동안 나라가 없었던 이스라엘을 보면 자신들의 역사책인 구약성서를 바탕으로 철저하게 가정교육을 시킵니다. 그러니 위기가 와도 협력해서 극복해냅니다. 우리도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자긍심의 뿌리를 튼튼하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자꾸 나누어야 합니다.

개인 삶의 질을 우선시하는 젊은이들에게 소속감이나 애국심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신경정신과 전문의로 대학교수를 지냈고, 직접 강연도 하는 윤 회장은 배석자 없이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이어진 인터뷰와 사진 촬영에 임했다.
선친께서 1978년에 전 사원 월급제를 최초로 시행하셨습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비정규직을 없앤 것이죠. 저는 직원들에게 쉬는 시간을 많이 줘야 한다고 생각해서 방법을 찾았습니다. ‘AAFW’라는 시스템을 도입했는데 ‘Any time, Any place, 40hour equivalent Workweek’로 성과를 관리하는 방식입니다. 개인, 즉 직원은 기업 내부의 고객입니다. 개인이 행복해야 조직이 행복해집니다. 그래서 2015년 신년사에서 “모두가 내 인생의 주인인 동화를 만들자”고 했어요. 여기까지는 회사가 할 수 있는 일이죠. 젊은이들을 탓하기 이전에 공동의 책임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조직이나 기업의 경쟁력도 강화될 것입니다.

남산 역사탐방을 직접 진행하시고 있는데요. 지금까지 성과와 앞으로 전개될 방향이 궁금합니다.

‘남산 역사탐방’은 일종의 다크 투어입니다.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부정적인 역사의 현장을 돌아보며 반성하고 보이지 않는 역사를 되짚어보는 프로그램입니다. 남산 안중근 선생 동상 앞에서 출발해 조선 신궁이 있었던 한양도성 발굴지, 경성신사와 노기신사 터를 거쳐 조선총독부 청사 터, 통감 관저 터 등을 지나 장충단공원과 박문사 터가 있던 신라호텔 영빈관까지 10개 코스를 개발했습니다. 이 중에 첫 번째 코스인 국사당 터였던 팔각정 계단과 조선신궁이 있었던 자리는 제게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학도병에 끌려가던 19살의 아버지가 징집되었던 곳이고, 회사 일을 하시면서 머리를 식히러 자주 찾으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제는 저도 매일 팔각정 계단을 오르며 일과를 정리합니다.

역사를 청산하고 바로 세우기 위해서 건물을 부숴버린다고 나아질 건 없습니다. 오히려 적절한 건물이나 지형지물이 필요한 경우도 많습니다. 우리는 너무 다 없애서 문제죠. 전 세계 각지에서 2차 세계대전을 기억하는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만날 수 있는데 우리도 그런 장소를 조성해야 할 것입니다. 역사탐방을 함께하신 분들이 언젠가 뜻을 함께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해볼 수도 있겠지요. 일단 과거사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이루어지면 이웃 나라 일본이나 중국과도 더 협력할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입니다. 유럽연합과 같은 아시아 연대를 준비하는 학자들의 의견처럼 동북아시아의 미래는 평화 공존을 통해서 새롭게 개척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현재로선 무엇보다도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어갈 젊은 세대의 성장 동력을 갖춘다는 의미에서 역사의식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즉문 즉답

1. 10대 시절 장래 희망은?

의사. 어머니가 장남은 의사가 되면 좋다 하셔서 그 뜻을 따랐다.

2. 20대 시절 가장 몰두했던 일은?

의사 되는 길을 묵묵히 밟았다. 지나고 나니 주어진 길을 그대로 걸은 것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

3. 40대 시절 품었던 인생의 목표는?

53세에 회사로 오기 전까진 정신과 의사와 교수로서 충실하게 살았다.

4. 자신의 경쟁력 원천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갈등보단 화합을 유도하는 성향.

5. 앞선 인물(부모나 의미 있는 사람 누구든)로부터 받은 물적·심적 유산은?

조부로부터 받은 가문, 애국, 정도(正道).

6. 현재의 나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니는 사람은?

어머니로부터 이어지는 아내.

7. 좋아하는 물건은?

좋은 가르침을 주는 책, 세상을 보는 창이 되는 신문.

8. 충전이 필요할 때 찾는 장소나 사람은?

일과를 마감할 때 매일 남산을 간다. 아버지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

9. 휴식할 때 하는 행동은?

클래식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며 강연 주제를 잡는다.

10. 앞으로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한국인을 키워내는 데 기여하고 싶다.

11. 한국의 청소년이나 청년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역사를 기억하는 자가 미래의 주인공이 된다.

※ 신수진은…심리학자이며 예술기획자이다. [더 리얼 크리에이터]를 연재하면서 문화예술과 경영을 관통하는 창의성의 비결을 탐구하고자 한다. 차별적 성과를 만드는 경험과 생각의 연결고리 속에서 새로움의 가치를 공유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1809호 (2018.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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