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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기업에서 배운다] 헨켈(Henkel) 

혁신의 롤 모델 된 생활용품 기업 

박지현 기자
세제 하나로 주부의 일상을 뒤바꾸며 알려진 가족기업 헨켈(Henkel)은 임직원 5만 명 이상을 둔 글로벌 회사로 발돋움했다. 단순한 생활소비재 제조회사로만 알았다면 오산이다. 창립 후 142년간 지속적으로 혁신해온 ‘혁신기업’의 대명사다. 우리는 헨켈에서 R&D의 중요성, M&A 노하우, 가업승계의 비법을 배울 수 있다.

▎퍼실 제품이 포장되어 출고되는 모습. / 사진:헨켈 제공
세제 ‘퍼실’, 모기 잡는 ‘홈매트’, 바퀴벌레 잡는 ‘컴배트’… 그리고 딱풀로 불린 ‘프릿’까지.

‘세계 최초’란 타이틀이 붙는 이 제품들은 독일 헨켈의 작품이다. 특히 세제는 한국에서도 가격비교사이트에서 항상 상위권에 오를 정도로 인기가 많다. 지금이야 자동세탁기용 세제가 흔하지만, 헨켈이 전용 세제를 개발했던 1907년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세탁물은 반드시 물에 적셔 비누칠을 하고 두드리고 비벼야만 때가 빠졌고, 집안일은 고된 노동에 가까웠다. 헨켈이 자가 활성 세탁세제를 내놓은 후, 주부의 삶도 완전히 달라졌다.

‘최초’ 타이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샴푸’부터 한국에서 ‘딱풀’로 알려진 고체형 접착제 프릿(Pritt)도 헨켈이 세계 최초로 내놓은 제품이다. 헨켈은 그렇게 140년 이상 우리의 일상생활과 함께해왔다. 비결이 뭘까.

“퍼실이 존재할 수 있는 건 퍼실로만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다.(Persil stays Persil, because it never stays as Persil.)”

지난 7월 서울 마포구에 있는 헨켈코리아 본사에서 만난 김유석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2014년 7월 독일 뒤셀도르프 헨켈 본사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수없이 들은 문구라고 했다. 더불어 그는 기업의 장수 비결을 꼽으며 ‘혁신’에 방점을 찍었다. 김 대표는 “신기술은 언제나 등장했고, 그때마다 무수히 많은 기업이 혁신을 일으켰다”며 “헨켈이 140년 이상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이 기술혁신을 꾀하면서 성공이란 명찰을 달았던 헨켈에 안주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정리했다.

그의 말대로 헨켈은 더는 독일만의 기업이 아니다. 전 세계 22곳 연구개발(R&D) 센터를 운영 중이고, 2013년엔 서울에도 헨켈코리아 이노베이션 센터를 꾸렸다. 김 대표는 “독일 본사도 한국에 뛰어난 인재가 많다는 걸 알고, 기술 지원, 제품 개발 담당 인력을 한데 모아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고자 이노베이션센터를 열었다”며 “우수한 인재가 있거나 참신한 아이디어만 있다면 제품 개발부터 유통까지 전 단계에 반영하고자 노력하는 게 헨켈”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헨켈에서는 신제품 매출이 높은 편이다. 출시 주기도 3년 정도다. 특히 세계 곳곳에 있는 연구개발센터의 중심축은 언제나 ‘소비자 맞춤형 솔루션’이다. 김 대표는 “헨켈 세제&홈케어 연구센터에는 매해 백만 개 이상의 얼룩 오염포를 연구한다. 나라마다 즐겨 먹는 음식이나 주로 사용하는 섬유 재질에 따라 세탁물의 오염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라며 “센터에선 600여 개의 전세계 세탁기를 모조리 구비해 얼룩 리스트를 만들어 모두 돌려본다”고 했다. 또 세제 향을 별도로 관리하는 향료(fragrance) 센터도 운영하고 있다. 김 대표는 “예를 들어 중동 국가에선 우드 향을, 아시아에선 자연스러운 향을 첨가하는 식”이라며 “며느리에게도 안 가르쳐준다는 고유의 노하우를 끊임없이 개발한다”고 웃었다.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드는 일이다.

IT는 또 다른 혁신을 일으키는 발판이 됐다. 디지털 트렌드를 피할 수 없다면 잘하는 것에 적용하자는 모토로 움직였다. 그는 “살충제 홈매트에 사물인터넷(loT)을 적용해 세계 최초로 홈컨트롤러를 개발했다”며 “동시에 전 세계 퍼져 있는 데이터 정보를 한데 모아 다시 한번 그 과정을 복기하고 있다. 이 과정엔 142년간 쌓아온 제품 연구결과, 재무제표, 시장조사 포트폴리오가 온전히 담겨 있다”고 말했다.

독일에 있는 본사는 헨켈의 철학과 많이 닮아 있다고 한다. 김 대표는 본사 광경을 설명하며 세제 & 홈케어와 뷰티케어의 R&D 시설이 위치하며 현재 접착 테크놀러지스 이노베이션 센터를 공사 중에 있다고 했다. 또, 헨켈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세제 & 홈케어 자동화 창고와 유럽 내 가장 큰 생산 사이트가 본사에 함께 있다. 이어 그는 “이곳에서 일하는 헨켈 임직원은 약 5500명인데 이 중에서 약 2700명이 생물학, 화학, 응용 기술 분야의 전문 연구 인력”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조직 구성 덕일까. 헨켈은 사상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지난해 매출은 200억2천900만 유로(약 26조 6000억원)를 돌파했고, 영업이익도 10% 가까이 늘어난 34억6100만 유로를 달성했다. 그래도 연구개발은 멈출 수 없다. 매년 2.5%에 달하는 자금을 세제·홈케어, 뷰티케어, 접착 테크놀로지 등 크게 3개 분야에 연구개발비로 쓰는데 지난해 4억6900만 유로가 투입됐다. 헨켈이 전 시장에 내놓은 브랜드만 300여 개 정도다.

강점 부각 원칙, 전략적 인수합병


▎헨켈 세제 & 홈케어 R&D센터 소속 직원들이 퍼실 듀오캡스 제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헨켈이 혁신을 위해서 불사하는 게 또 있다. 인수합병(M&A)이다. 긴 역사를 달려오면서 경쟁자의 출현을 무수히 지켜보았을 헨켈이다. 그때마다 상대에게서 장점과 배울 점을 찾았고, 필요하면 인수합병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는 ‘1위 기업’이 빠지기 쉬운 ‘오만함’을 떨쳐내는 수단이기도 했다.


▎헨켈의 창립자 프릿츠 헨켈 (Fritz Henkel)은 1876년 독일 아헨에 헨켈을 설립했다. 세계 최초 세탁 세제 퍼실을 1907년 세상에 선보였다. / 사진:헨켈 제공
사실 독일 본사에서 아시아인인 김 대표를 부사장에 앉힌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였다. 김 대표는 IBM 미국 엔지니어로 시작해 글로벌 컨설팅 기업인 보스턴컨설팅그룹(BCG), OCI, 셀라니즈 등에서 요직을 거쳤고, 미국·유럽·한국·중국 등 주요국의 인수합병 현장에 뛰어들었던 전문가다. 김 대표도 헨켈의 차별화된 경쟁력을 ‘전략적 인수합병’에서 찾았다. 그는 “약점을 보완하거나 상쇄하려는 일반적인 인수합병의 성공율은 20% 미만”이라며 “헨켈은 약점을 보완하려는 목적보다 강점을 부각하려는 인수합병을 공격적으로 진행하다 보니 성사율이 높다”고 했다.

그간 헨켈이 인수합병에 쏟은 돈만 60억 유로가 넘는다. 슈바르츠코프(1995), 록타이트(1997), 다이얼(2004) 등에 이어 2008년 접착제 및 전자 재료 내셔널스타치, 2014년 전자산업용 열 관리 솔루션 버퀴스트 등 굵직한 인수합병을 해냈다. 2016년 미국 세제 및 홈 케어 기업 ‘더 선 프로덕츠’ 인수는 헨켈을 세계 최고 세제 기업으로 자리를 굳히는 계기가 됐고, 미국 시장점유율 2위라는 쾌거를 거뒀다.

괜찮은 매물이 있다고 무조건 달려드는 법은 없다. 헨켈은 인수합병 타깃을 설정하는 것부터 투자를 결정할 때까지 정교한 과정을 거친다. 김 대표는 “타사 입장에선 매우 답답할 수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대체로(인수합병) 결과가 좋다”며 “헨켈은 최종 결정에 이르기까지 몇 번이고 재확인한다. 주요 인수합병 업무를 맡으며 타깃을 정밀하게 분석하는 내 성향과도 맞는다”고 말했다.

물론 리스크는 있다. 헨켈이 경영체제부터 기업문화까지 완전히 다른 회사와 함께 걷는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조직의 효율적인 통합을 위해 ‘원-헨켈(OneHenkel)’을 강조한다”며 “인수합병 된 직원들과 타운홀 미팅을 하는가 하면, 1:1대면 커뮤니케이션이나 체육대회 등 어찌 보면 촌스러울 정도로 아날로그식인 친목 자리를 자주 마련하는 편”이라고 했다. 여기에는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자리만큼 유대감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는 본사 철학이 짙게 깔려 있다.

최초의 지속가능성 보고서 발간 기업


▎김유석 헨켈코리아 대표이사 사장. / 사진:전민규 기자
기술혁신과 인수합병으로 성장한 헨켈은 좀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바로 ‘친환경’이다. 사실 화학기업인 헨켈로선 꽤 민감한 문제일 수 있다. 완전한 친환경을 달성하면서 화학제품을 만들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김 대표는 “살충제, 접착제, 세정제, 샴푸 등은 대부분 환경 이슈에서 자유롭기 어려운 화학제품”이라며 “2016년 한국 대표로 부임하면서 본사에 보고한 핵심 이슈 중 하나가 바로 환경이다. 환경 유해물질 이슈가 많은 한국에선 특히 민감한 문제였다”고 한다.

헨켈은 1950년대 계면활성제의 생분해성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고 1966년 인산염 대체를 위한 연구 프로젝트를 개시했다. 1986년 헨켈은 자발적으로 세제 퍼실의 주원료인 인산염을 대체하기 위해 ‘무(無)인산염’ 퍼실을 개발했다. 또 분해가 쉽지 않은 기존 파우더 재질을 진주모양 고농축 알갱이 형태(메가펄즈)로 바꿔 물에 더 잘 녹게 만들었다. 그의 말처럼 ‘고농축’은 자연스레 기존 세제 용량 290ml를 95ml로 줄이는 계기가 됐고, 유럽 전역에서 ‘친환경’ 문화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친환경 이슈는 ‘지속가능성장’이란 이름으로 새로운 글로벌 경영방식과 철학으로 발전했다. 실제 헨켈은 세계지속가능발전기업협의회(WBCSD) 창립 회원이자, 1992년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처음으로 발간한 기업이기도 하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했던가. 헨켈은 다우존스 지속가능성지수(DJSI)에서 6년 연속 관련 부문 1위에 올랐고, 미국 기업윤리연구소가 꼽은 ‘세계에서 가장 윤리적인 기업’ 랭킹에서도 항상 상위를 지켰다. 자신만의 원칙을 지켰을 뿐인데, 타사의 롤 모델이 된 셈이다. 김 대표는 “헨켈 본사 임원들은 ‘진정한 사회책임은 리더로부터 시작된다’는 말을 되풀이한다”며 “헨켈이 지속가능성장을 실천하는 건 오너 가문이 지닌 철학이 밑 바탕에 깔려 있는 덕분”이라고 했다. 실제 헨켈에는 이사회 임원이 이끄는 중앙 정책 결정 기구로 ‘지속가능성위원회’가 설치돼 있다. 헨켈 사업부 전 분야에 걸친 지속가능성 활동을 이끌고 전략을 사업 활동에 반영하는 책임을 맡는다. 다른 회사들이 관련 분야의 전문가를 두는 것과 달리 팀원을 관리하는 매니저급 이상이 직접 행동할 수 있는 전략을 마련하는 셈이다.

61% 지분 소유 가문, 경영과 분리


▎헨켈 직원들이 지속가능성장 홍보대사로 활약하며 고객, 소비자,사회에 가치 창출을 위해 기여하고자 한다. / 사진:헨켈
헨켈의 경영 원칙은 1세기 넘게 유지되고 있다. 김 대표는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고자 했던 오너 가문 얘기를 꺼냈다. 그는 “헨켈 가문이 그룹 내 보유한 지분은 61.02%나 되고, 현재 5대 자손들이 가업을 이어가며 130명이 넘는 헨켈 가문의 후손이 기업지배권을 행사하고 있다”며 “하지만 현재 헨켈의 최고 경영진 중 헨켈 가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헨켈 가문의 역할은 회사 철학과 비전이 지켜지고 있는지를 보는 것뿐”이라고 했다.

경영학에서 소유와 경영을 분리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이성봉 서울여자대학교 경영학과 교수가 2016년에 쓴 한국경제연구원 보고서(KERI BRIEF)에는 헨켈의 지분관리가 언급돼 있다. “헨켈은 독일주식지수인 닥스(DAX)에 상장된 주식합자회사로 헨켈 가문 자손들은 ‘가족지분풀링협약, family share-pooling agreement)’을 체결했다. 가문의 지분을 집중해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2009년엔 당시 40세였던 창업자 5대 손녀인 시모네 바젤-트라 박사를 가문대표로 뽑아 감사이사회와 주주위원회회장의 역할을 맡겼다.” 독일 Dax 상장 회사 중 최초 여성이다.

김 대표는 “헨켈 가문은 기업의 철학적 지주나 다름 없다”며 “헨켈이 기술혁신·인수합병·지속가능성을 중시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이라고 말했다.

142년의 일상생활용품 시장 ‘1위’ 기업. 125개국 5만3700명에 달하는 헨켈 임직원은 오늘도 또 다른 혁신을 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박지현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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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호 (2018.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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