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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feel)과 펀(fun)으로 소비자 일상 점유 

신세계그룹의 ‘정용진 사업’ 

조득진 기자
신세계그룹이 새로운 비즈니스를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정용진 부회장이 기획 단계부터 직접 챙긴 ‘정용진 사업’에는 필(feel)과 펀(fun)을 중시하는 그의 DNA가 담겨 있다. 시장에선 ‘튄다’는 반응이지만 소비자의 일상에 빠르게 스며들고 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새로운 비즈니스는 시장의 주목을 받는 데 성공했다. 관건은 빠른 시간 내에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다
“스토리가 있는 콘텐츠야말로 경쟁사와 근본적으로 차별화하고, 고객들과 공감을 통해 고객이 우리를 찾을 수 있게 만드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경영 화두로 ‘스토리가 있는 콘텐츠 개발’을 제시했다. 그는 “상품, 점포, 브랜드 등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콘텐츠를 다양한 스토리로 연결해 고객의 니즈에 맞춰 재편집해낼 수 있는 역량을 새로운 핵심 경쟁력으로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비자들에게 ‘꿈 같은 시간’, ‘꿈 같은 기억’, ‘꿈 같은 경험’을 전달하며 확실한 라이프셰어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 부회장은 평소 “유통업의 미래는 시장점유율인 마켓셰어(Market share)보다 소비자의 일상을 점유하는 라이프셰어(Life share)를 높이는 데 달려 있다”며 유통 환경에서 ‘혁신’을 강조해왔다. ‘라이프셰어’는 특정 제품이 고객의 생활 속에서 얼마나 활용되고 있는가를 나타내는 척도를 말한다. 소비자에게 ‘아무것도 안 하고 쉴 때는 무엇을 하느냐?’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휴대폰을 갖고 논다’, ‘영상기기를 이용한다’, ‘음료수를 마신다’라고 응답했다면 각 질문의 응답자 비율이 휴대폰·영상기기·음료수의 일상점유율이 되고, 이때 휴대폰의 경쟁 상대는 영상기기나 음료수가 된다.

정 부회장의 도전과 혁신은 업계에서 다소 파격적으로 불릴 만한 독특한 매장으로 나타났다. 잡화점 ‘삐에로쑈핑’, 가전제품 전문점 ‘일렉트로마트’, 반려동물 전문점 ‘몰리스펫샵’, 화장품 전문점 ‘센텐스’, 남성제품 편집매장 ‘하우디’, 수납용품 전문점 ‘라이프 컨테이너’, 가구&생활용품 전문점 ‘메종 티시아’, 장난감 전문점 ‘토이킹덤’ 등이 대표적이다.

‘세상에 없던’ 사업으로 유통 혁신 주도


▎이마트는 ‘재밌는 상품’과 ‘미친 가격’을 표방하는 만물잡화점 개념의 전문점 ‘삐에로쑈핑’을 지난 6월 말 서울 코엑스에 선보였다.
최근 신세계그룹이 선보인 사업들은 이른바 ‘정용진 사업’으로 불린다. 정 부회장이 기획 단계부터 직접 챙겼거나 ‘세상에 없던’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새로운 비즈니스다.

지난 6월 말 서울 강남 스타필드 코엑스에 문을 연 ‘삐에로쑈핑’은 정 부회장의 ‘필(feel)’과 ‘펀(fun)’의 DNA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매장이다. ‘재밌는 상품’과 ‘미친 가격’을 표방하는 만물잡화점 개념의 이 전문점에는 신선식품부터 가전제품까지, 천냥 코너부터 명품 코너까지 4만여 가지 다양한 상품이 빈틈없이 진열되어 있다. 특히 기존 대형 유통업체에서 잘 다루지 않았던 성인용품, 코스프레용 가발과 복장은 물론이고 파이프 담배와 흡연 액세서리도 판매한다. 한마디로 국내에 없는 새로운 콘셉트의 매장이다.

게다가 상품을 복잡하게 배치해 보물찾기 하듯 소비자가 매장 곳곳을 구석구석 탐험하는 재미를 선사한다. 상품 선정과 매입, 진열에 대한 권한을 각 매장 관리자들에게 부여해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에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했다. 신세계 관계자는 “오픈 한 달간 30만 명 이상이 방문할 정도로 성공적”이라고 말했다.

7월 중순 오픈한 신세계조선호텔의 첫 독자 브랜드 부티크 호텔 ‘레스케이프’도 정 부회장이 공을 들인 사업이다. 지상 25층 규모로 총 204개 객실을 갖추었는데, 프랑스 부티크 호텔 인테리어의 대가인 자크 가르시아가 19세기 파리 귀족사회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했다. 정 부회장은 레스토랑과 바 등 식음시설은 물론 객실 인테리어와 침구 소재, 원단 등도 직접 검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세계조선호텔은 앞으로 5년 동안 5개 이상의 호텔을 새롭게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정 부회장의 잇따른 신규 사업 진출은 그동안 벌여온 유통 혁신의 자심감에서 기인한다는 게 재계 안팎의 평가다. 그는 ‘스타벅스 커피’에서 최근 ‘노브랜드’와 ‘피코크’, ‘스타필드’, ‘트레이더스’, ‘온라인몰(SSG)’ 등 신사업 투자에 강점을 보여왔다.

특히 이마트의 체험형 가전전문점인 일렉트로마트는 올 상반기 진주점, 동탄점, 창원점, 구미점 등 8개 매장을 추가로 오픈하면서 3년 만에 25개 점포망을 구축했다. 올해 말까지 32개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매장 내에 체험존, 피규어 전문존, 3D 프린터존 등 차별화 포인트를 구성하고 패션·뷰티 남성 편집매장, 스포츠매장까지 접목한 것이 성장 원동력으로 꼽힌다.

창고형 할인점 트레이더스도 지난해 12월 군포점(13호점), 김포점(14호점)을 잇따라 오픈하면서 코스트코(13개)를 넘어 국내 창고형 매장 중 가장 많은 점포망을 구축했다. 지난해 1조5214억원의 매출을 기록해 전 년 대비 27.2%의 매출신장률을 보였다. 3년 연속 25%가 넘는 고성장세다. 신세계 관계자는 “회원비가 없는 ‘열린 창고형 할인점’ 콘셉트로 운영하고, 대용량 상품을 중심으로 일반 할인점 대비 평균 8~15%가량 저렴한 가격으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향후 선보일 새로운 비즈니스도 주목된다. 이마트는 최근 일렉트로마트의 캐릭터인 일렉트로맨을 소재로 한 한국형 히어로 영화 제작에 투자하기로 했다. 이마트는 정용진 부회장의 지시에 따라 1년여 전부터 시나리오 개발 등 영화 제작을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마트는 영화의 에피소드, 캐릭터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의류, 팬시, 완구 등 다양한 장르의 상품을 개발하고, 새로운 형태의 매장 구성에도 적용할 계획이다.

이커머스 1조 투자 유치로 위기 돌파한다


▎7월 중순 오픈한 레스케이프는 신세계조선호텔의 첫 독자 브랜드다. 신세계는 5년 내 5개 호텔을 더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잇따른 신사업 진출에 쓴소리도 나온다. 안정적인 수익으로 정 부회장의 신사업 추진에 든든한 배경이 됐던 이마트의 실적이 나빠지면서 ‘본업은 손 놓고 부업에 한눈판다’는 지적이다. 이마트는 2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보다 34.1%나 줄었다. 아마존, 알리바바 등 글로벌 유통기업들이 물류 혁신과 인공지능 개발에 투자를 늘리는 상황에서 재계 10위 그룹이 내수시장에만 주력한다는 지적도 있다.

관건은 정 부회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전문점들이 빠른 시일 내에 만족할 만한 수익을 내는 것이다. 그러나 독특함이 지속적인 매출로 이어지려면 ‘브랜드 충성도’를 끌어올려야 하는데 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재계 인사는 “현재 신세계는 이마트의 기존 주력사업이 부진에 빠져 있고, 이를 타개하기 위한 신규 사업의 초기 투자도 부담이 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 부회장은 이커머스 투자 등 끊임없는 유통 혁신으로 위기를 돌파한다는 전략이다. 그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이커머스 부문에 대한 대규모 투자와 자본 유치 계획을 잇달아 밝혔다. 지난 1월엔 외국계 투자운용사 두 곳과 이커머스 사업 성장을 위한 1조원 이상의 대규모 투자 유치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로 나뉘어져 있는 온라인사업부를 통합하고, 이커머스 사업을 전담하는 신설회사를 설립해 그룹 내 핵심 유통 채널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글로벌 시장 개척을 위한 정 부회장의 발걸음도 바빠졌다. 올해 들어 미국과 베트남, 호주, 일본에 이어 유럽까지 세계 각국에 발품을 팔며 신사업 구상에 여념이 없다. 출점 규제에 가로막힌 오프라인 매장은 해외로 시선을 돌리고, 국내에선 온라인사업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이다. 정 부회장은 최근 인스타그램에 ‘Do something even if you die tomorrow(내일 죽더라도 무언가를 시도하라)’라는 문구를 올리기도 했다.

- 조득진 기자 chodj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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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호 (2018.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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