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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주의 ‘세계의 컬렉터’] 글립토테크 박물관(Ny Carlsberg Glyptotek Museum) 

유일한 건축물의 특별한 소장품 

박은주 전시 기획자
신 칼스버스 글립토테크(Ny Carlsberg Glyptotek) 박물관은 칼스버그 맥주회사 창립자의 아들이며 2대 회장인 칼 야콥센(Carl Jacobsen, 1842~1914)이 설립했다. 아버지를 이어 덴마크의 19세기를 대표하는 재벌 기업 칼스버그의 오너였던 칼 야콥센은 고대 이집트 예술품에서 모던아트에 이르는 만 여 점이 넘는 소장품을 지닌 진정한 예술의 수호자였다.

▎Auguste Rodin, The Burghers of Calais, bronze. (1884-85)/(1902-1903). / 사진:Ny Carlsberg Glyptotek.
파리의 로댕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코가 잘린 남자(The Man with the Broken Nose, 1863)] 흉상은 대리석 작품이다. 이 작품의 오리지널 점토로 만든 주형 작품 중 한 점이 2015년 7월 16일에 도난당했다. 수십만 유로의 가치를 지니는 이 작품은 단 12분 만에 도둑의 손에 들어갔다. 관광객으로 위장하고 흉상을 종이 봉지에 담아 유유히 박물관을 나온 두 도둑은 이미 같은 해에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 당시 6만6000달러의 가치를 지닌 엘리자베스 프링크(Elisabeth Frink) 조각을 훔치는 등 화려한 경력을 갖고 있어 인터폴의 수사 대상이었다.

중요한 수집품인 로댕의 작품을 잃어버리는 끔찍한 수난을 겪었던 박물관은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글립토테크(Glyptotek) 박물관이다. 글립토테크 박물관은 코펜하겐 중심부에 있으며 티볼리 공원을 마주하고 있다. 코펜하겐의 인어공주 조각상과 함께 손꼽히는 관광 명소 중 한 곳이며 아기자기한 시청 광장에서 멀지 않다.

칼스버그 맥주회사 창립자 아들이 세운 박물관


▎The main entrance and façade of Glyptoteket. Ny Carlsberg Glyptotek. / 사진:Jean Marc Decrop
덴마크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로, 행복을 추구하는 전 세계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2017년 오프라 윈프리가 자신의 토크쇼 주제를 덴마크로 정하고 직접 코펜하겐을 찾아갔다. 전형적인 큰 키에 날씬한 금발의 덴마크 여성들과 함께 오프라는 미국인들에게 일상에서 환경보호를 의식하는 덴마크인들의 생활 태도, 건강과 환경을 위해 남녀노소 대부분이 자전거를 능숙하게 타는 모습, 가정과 도시 구석구석에서 볼 수 있는 미니멀한 디자인의 매력 등을 소개했다. 그들에게 디자인은 럭셔리 라이프를 위함이 아니라 공간 활용을 위한 근검한 접근 방식이었다.

2016년 가을, 파리 루이비통 재단에서 러시아 컬렉터 슈킨의[Collection Chtchoukine]을 기획했다. 러시아의 여러 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슈킨의 수집품들을 자신의 재단에서 보면서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비통 회장은 컬렉터로서 평생의 꿈을 이루었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슈킨은 모스크바에서 프랑스 작가들의 작품만 구하기 위해 수많은 여행을 하며 마티스, 피카소, 고흐, 고갱, 세잔, 피사로, 시슬레, 모네, 르누아르, 드가 등의 작품을 수집했다. 한 점 한 점 심혈을 기울여 선별했던 그의 컬렉션 열정은 전시를 보며 절절히 실감할 수 있었다. 이런 생생한 경험은 글립토테크 박물관에서 기획한 [French Painting]으로 자연스럽게 발길을 향하게 했다. 전시관은 테마에 따라 나누어져 있었고 그중 [French Painting] 전시관에는 세잔, 마네, 드가, 모네, 고흐, 고갱 등 프랑스 작가들의 회화 작품만 200여 점이 넘게 전시되었다. 글립토테크 박물관의 전시 작품과 슈킨 컬렉션에는 다른 점이 있었다. 슈킨은 그와 동시대 작가들, 특히 프랑스 작가들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수집했고 글립토테크 박물관에는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20세기 모던아트까지의 작품들이 있었다. 모던아트 작품들 중 역사적인 프랑스 작가들의 작품 200여 점을 소장하고 있지만 스칸디나비아, 덴마크 등 유럽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도 겸비하고 있다.

신 칼스버스 글립토테크(Ny Carlsberg Glyptotek) 박물관은 칼스버그 맥주회사의 창립자의 아들이며 2대 회장인 칼 야콥센(Carl Jacobsen, 1842~1914)이 설립했다. 아버지를 이어 덴마크의 19세기를 대표하는 재벌 기업 칼스버그의 오너였던 칼 야콥센은 고대 이집트 예술품에서 모던아트에 이르는 만여 점이 넘는 소장품을 지닌, 진정한 예술의 수호자였다.

칼 야콥센이 생존했던 시대의 맥주 발전사를 보면 1873년 독일의 칼 린데가 4계절 동안 맥주 양조를 할 수 있는 액체 암모니아를 넣은 냉동기를 발명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뒤에 프랑스의 루이 파스퇴르가 저온살균법을 발견해 장시간 보관할 수 있는 발효 맥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 그러나 맥주의 보급화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실험은 칼스버그 연구소에서 실행됐다. 연구원 한센은 최상급 품질의 효모가 배양 증식하는 방법을 개발했고 이 혁신적인 기술은 맥주의 품질 향상을 도모했다. 재벌이라고 해서 당연히 예술 애호가가 되지는 않는다. 그는 유럽에서 장인정신으로 정성스럽게 맥주를 양조하는 회사에서 더 좋은 품질의 맥주를 위한 연구를 지원했던 오너로, 매우 섬세한 성격이었을 것이다. 와인과 예술에서 공통점을 찾듯이 맥주와 예술도 같은 맥락을 이룬다. 꾸준히 음미하고 탐구하면서 최고의 작품을 찾는 모험가의 정신이 근원을 이루기 때문이다. 칼 야콥센은 자신의 혼신을 담은 역사적인 소장품들을 대중에게 공개하고자 했다. 결국 박물관을 건설해 1897년에 개관했고 그의 열정은 세상에 알려졌다. 그후 박물관은 해마다 40만 명이 넘는 예술 애호가들의 순례지가 되었다.

루브르와 오르세 박물관의 축소형


▎Edgar Degas, Ballet Dancer, Dressed (also called The Little Foruteen-Year-Old Dancer), bronze and tulle.(1880~1881) Copyright Ny Carlsberg Glyptotek. / 사진:EUNJU PARK
글립토테크 미술관은 크게 다헬레루프 빌딩(Dahelerup Building), 캄프만 빌딩(Kampmann Building), 라르센 빌딩(Larsen Building), 겨울 정원(Winter Garden)으로 구성된다. 건축가 빌헬름 다할레루프(Vilhelm Dahlerup)가 초기 도안을 했던 첫 번째 건축물은 1897년에 개관했다. 그는 1906년에 완성된 박물관 내부에 자리한 겨울 정원의 책임자이기도 하다. 겨울 정원 중앙에 있는 카이 닐센(Kai Nielsen)의 [워터 마더(The Water Mother)] 조각상이 실내 정원의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같은 해에 건축가 캄프만이 완공한 캄프만 빌딩을 개관했는데 이곳에는 칼 야콥센의 소장품 중 고대 예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1996년에 박물관은 건축가 헤닝 라르센(Henning Larsen) 이 완공한 새로운 빌딩을 건설했는데 프렌치 페인팅 전시를 하고 있다. 2006년에 확장된 이 공간은 지중해 문명의 문화적 발달을 소개하는 공간이다.

글립토테크 박물관은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박물관을 합해놓은 축소형 박물관이었다. 겨울 정원은 나폴레옹 3세 시대에 활동한 프랑스 컬렉터 부부의 자크마르 앙드레 박물관(Musee Jacquemart-Andre)의 실내 정원을 연상시켰다. 유럽 예술의 뿌리를 찾아 고대 이집트의 미라, 고대 그리스, 로마, 에투르리아(Etruria)의 조각품과 모자이크 등을 통해 문명에 대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으며, 동시에 유럽 모던아트의 역사적 작품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물관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6000년 동안 이어져온 인류 발전의 흔적을 따라가는 여행지로 바뀌었다.

특별 전시로 기획한 [프렌치 페인팅]에서 가장 마음을 설레게 했던 두 작품이 있었다. 에두아르 마네의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The Execution of the Emperor Maximilian, 1867)]과 폴 세잔의 [목욕하는 여인들(Woman Bathing, 1900)]이다. 예술 애호가라면 누구나 꼭 보고 싶어 하는 작품이다. 드가의 페인팅과 [댄서]를 포함한 일련의 조각들, 로댕의 [칼레의 시민들]과 [생각하는 사람] 등 조각상, 고갱의 화려한 작품들을 감상하고도 쉴 사이도 없이 르누아르, 에두아르 뷔야르, 피에르 보나르, 폴 시냐크, 폴 세잔, 툴루즈 로트레크, 폴 세뤼시에, 고흐, 모네, 윌리엄 부게로, 장 프랑수아 밀레, 테오도르 루소, 쿠르베, 테오도르 제리코 등의 작품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특히 로댕 컬렉션은 프랑스 외 국가 중 가장 많은 작품을 보유하고 있다. 글립토테크 박물관은 프랑스 작가들의 작품뿐 아니라 19세기 덴마크 황금시대, 거장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훌륭한 기회를 제공해준다. 그중 칼 야콥센이 수집한 작품들은 크리스토퍼 빌헬름 에커스버그(Christoffer Wilhelm Eckersberg), 크리스텐 쾨브케(Christen Köbke), 요한 룬드비(Johan Lundbye) 등이다.

만약 칼 야콥센이 생존해 있다면 과연 어떤 생존작가의 작품을 수집했을까 자문해본다. 처음으로 떠오른 작가는 덴마크의 대가 올라퍼 엘리아슨이다. 겨울 정원을 건물의 실내 중앙에 놓을 정도로 뛰어난 감각을 가졌던 칼 야콥센은 테이트 모던의 날씨 프로젝트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수학, 과학, 건축, 공학을 접목시킨 태양을 인공적으로 재현한 ‘유사 자연’을 대중이 즐길 수 있도록 했던 작가를 지극히 높이 평가했을 것이다.

그다음에 떠오른 작가는 피에르 위그(Pierre Huyghe)의 비디오 작품이다. [무제: 인간 가면]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페허가 된 집이 배경이다. 이 집 안에 있는 일본 여자로 상상되는 가발을 쓴 원숭이가 비디오 영상의 주인공이다. 원숭이는 집 안을 둘러보고 때로는 무료해 보이기도 하지만 냉장고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식탁에 올려놓는 등 반복된 행위를 한다. 원숭이는 종업원 복장을 하고 서빙하는 흉내를 내고 있는데 원숭이가 쓴 마스크에서 벌써 큰 시각적 충격을 받는다. 원숭이의 행동에서 인간의 근원,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질문을 던진다. 인류의 문명과 역사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칼 야콥센이 수집했을 법한 작가다.

2018년 7월 파리의 루이비통 재단에서 베르나르 아르노는 자신이 컬렉션하고 있는 작품들인 마티스, 게라르드 리쉬터, 타카시 무라카미, 마크 브레드포드, 시그마 폴케, 이브 클랑, 모리지오 카틀란, 키키 스미스 등 [Au diapason du monde: In tune with the world] 전시에서 공개하고 있다. 2019년 파리에 세 번째 개인 박물관 개관을 코앞에 둔 프랑수아 피노는 프랑스 북쪽 렌(Rennes)의 자코뱅(Jacobin) 수도원에서 [An exhibition is conceived according to a place] 전시에서 토마스 슈트, 마를렌 뒤마, 모리지오 카틀란, 헨리 타일러, 리네트 이아돔 보아케, 타티아나 등 그의 개인 컬렉션을 대중에 공개하고 있다. 기업가들은 19세기 사업가이며 예술 메세나였던 칼 야콥센이 남긴 흔적을 따라 자기만의 취향으로 수집의 열정을 역사에 남기고 있다.


▎Vincent van Gogh, Landscape from Saint-Remy, oil on canvas,(1889) Copyright Ny Carlsberg Glyptotek. / 사진:Jean Marc Decrop



▎The Winter Garden is an oasis in the museum / 사진:Ny Carlsberg Glyptotek.



▎The Central Hall at Glyptoteket featuring a roman mosaic in the floor named Europa with the Bull.



▎Paul Gauguin, Tahitian Woman with a Flower, oil on canvas.(1891)



▎Edouard Manet, the execution of the emperor Maximilian, oil on canvas.(1867)



▎Copyright Olafur eliasson. / 사진:Ny Carlsberg glyptotek.
※ 박은주는…박은주는 1997년부터 파리에서 거주, 활동하고 있다. 파리의 예술사 국립 에콜(greta)에서 예술사를, IESA(LA GRANDE ECOLE DES METIERS DE LA CULTURE ET DU MARCHE DE L'ART)에서 미술시장과 컨템퍼러리 아트를 전공했다. 파리 드루오 경매장(Drouot)과 여러 갤러리에서 현장 경험을 쌓으며 유럽의 저명한 컨설턴트들의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2008년부터 서울과 파리에서 전시 기획자로 활동하는 한편 유럽 예술가들의 에이전트도 겸하고 있다. 2010년부터 아트 프라이스 등 예술 잡지의 저널리스트로서 예술가와 전시 평론을 이어오고 있다. 박은주는 한국과 유럽 컬렉터들의 기호를 살펴 작품을 선별해주는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201809호 (2018.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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