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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 가족기업 구찌와 에르메스 

 

김선화 ㈜에프비솔루션즈 대표
포브스가 발표한 올해 100대 기업 브랜드 가치 순위에서 에르메스(3위)와 구찌(36위)는 항상 순위권에 든다. 고가의 명품 브랜드로 지난해 매출만 해도 각각 64억 달러, 72억 달러에 이른다. 최근엔 중국·인도 등에서도 명품 소비가 늘면서 급성장하고 있는 두 기업이 100년 넘게 장수한 비결을 살펴봤다.

가족기업이 장수 경영을 이어가는 힘은 어디서 올까. 기업가정신, 변화와 혁신으로 환경 변화에 대응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특히 중요한 것이 가족관계다.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명품 브랜드 구찌(Gucci)와 에르메스(Hermes) 가문이 대표 사례로 꼽힌다. 한 곳씩 살펴보자.

먼저 구치가(家) 얘기다. 구찌는 세계적으로 꼽히는 명품 중 하나다. 지금은 구치가 손을 떠나 다른 가문(케링그룹)이 운영하지만, 창립자인 구초 구치(Guccio Gucci), 그의 세 아들과 네 손자를 거쳤다. 창업자인 구초 구치는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으로 고향을 떠나 영국 사보이 호텔에서 일을 시작했다. 당시 사보이 호텔은 전 세계 부호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그는 부호들의 럭셔리 취향과 문화를 체험하고 1921년 피렌체로 돌아와 부유층을 상대로 한 가죽승마용품 가게를 냈다. 1925년에는 맏아들 알도가 아버지 비즈니스에 참여했고, 아버지 이름을 딴 알파벳 GG를 이용한 로고를 처음 만들었다. 이후 핸드백, 여행가방, 장갑, 신발, 벨트 등으로 제품 라인을 확장하며 번영을 누렸다.

창업자 구초는 1953년 백만장자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성별과 노동 면에서 전통주의자로 지분을 삼등분해 세 아들 알도, 바스코, 로돌프에게만 상속하고, 맏딸 그리말라는 상속에서 제외시켰다. 구치 가문의 첫 번째 가족분쟁의 원인이 되었다. 그라말라는 자신의 남편과 함께 창업 초기부터 회사를 위해 일해왔기에 아버지의 상속 방식에 격분해 소송했지만 결국 패소했다.

둘째 아들 바스코가 일찍 사망하면서 장남 알도와 막내 로돌프가 바스코의 지분을 각각 50%씩 보유하게 됐다. 일찌감치 회사에 참여한 알도에 비해 로돌프는 회사에 기여하는 바가 적었다. 그래서 알도는 로돌프의 지분에 불만이 있었다.

구치, 맏딸 상속 제외시키면서 가족분쟁 시작

알도는 1960년대 후반 홍콩과 도쿄에 매장을 내면서 아시아를 공략했고, 액세서리 컬렉션과 향수 사업을 시작하면서 1970년대에 럭셔리 제국을 이루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알도와 로돌프의 싸움이 격렬해졌다. 첫 균열은 알도가 구찌 수익의 상당 부분을 자회사인 향수 사업으로 옮긴 것을 로돌프가 알게 되면서부터다. 향수 회사의 지분은 알도가 80%, 로돌프가 20%를 가지고 있었다.

자녀들이 기업에 참여하면서 형제간 분쟁은 세대 간 분쟁으로 커졌다. 알도의 아들들은 아버지와 함께 뉴욕에서 일을 시작했지만 권위적인 아버지와 일하는 것이 싫어서 모두 이탈리아로 돌아와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로돌프의 외아들 마우리치오는 대학 졸업 후 뉴욕의 가족기업에서 일을 시작했다.

3세대 자녀들이 회사에 들어와 일하면서 가장 큰 화약고가 된 것은 알도의 아들 파울로 구치였다. 그는 항상 독립적이며 주도적이기를 원했기 때문에 아버지, 삼촌과 갈등을 빚었다. 이 때문에 파울로는 구찌 플러스(GP)라는 이름으로 구찌보다 더 저렴한 브랜드를 만들어 독립하려고 했고, 이 일로 이사회에서 주먹다짐을 하는 난투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 와중에 1982년 알도의 동생 로돌프가 사망하며 그의 지분 50%를 아들 마우리치오가 물려받았다. 알도의 지분은 자신과 세 아들에게 분산되었기 때문에 마우리치오는 회사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삼촌 알도와 대립했다. 이렇게 삼촌과 조카가 적대관계를 형성하는 와중에 알도의 아들 파울로는 아버지에게 보복하기 위해 사촌 마우리치오와 동맹관계를 맺고 1986년 미국에서 아버지의 탈세를 고발하기에 이른다. 알도가 아들과 조카에게 당한 치욕적인 사건이었다.

엄청난 재정적 압박에 시달리던 마우리치오는 사촌들이 보유한 주식을 매수해 가문의 다른 계보를 확실하게 축출하기 위한 재정 파트너를 찾았다. 마침내 투자회사 인베스트코의 지원으로 그는 구치 가문 후손들에게 흩어져 있던 지분 50%를 인수했다. 알도는 자신의 지분을 팔면서 아들의 경영권을 빼앗는 것 외에는 아무런 조건도 내세우지 않았으니, 당시의 반목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마우리치오의 죽음이다. 마우리치오의 전 부인 피트라치아는 남편이 주식을 매각하는 바람에 자식들에게 남겨질 유산이 빼앗긴 사실을 알고 화가 나 1995년 3월, 살인청부업자를 사서 마우리치오를 총으로 살해했다. 파트리치아는 살인교사로 체포되어 29년형을 받고 투옥되었다. 이로써 구치가의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에르메스, 가족이 통제하도록 지배구조 설계

한 편의 드라마 같다. 그들은 ‘부자는 3대를 못 간다’는 속담을 뛰어넘지 못했다. 가족기업의 비극적인 결말에는 항상 기업을 공동재산이 아닌 개인 사유물로 여기고, 자기 이익에만 매몰되는 가족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가족 간 불신·대립·경쟁으로 인한 분쟁과 갈등이 상존한다. 결국 일상적인 경영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가족 간 갈등과 분쟁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는 가족기업의 가장 큰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다음은 에르메스가(家) 얘기다. 독일 콜로뉴 근처에서 태어난 티에리 에르메스는 어린 시절 노르망디에서 수련과정을 거친 뒤 수제 안장, 승마복 등을 전문적으로 생산했고, 1837년 파리에서 첫 지점을 열었다. 우수한 품질로 우아한 제품을 생산하는 그의 능력 덕분에 회사는 빠르게 성장했다. 그의 아들 에밀 에르메스는 1859년 회사를 물려받아 승마시장을 겨냥한 다양한 안전기능 제품을 도입했고, 제품군을 확장하여 승마 경주 참가자들을 위한 실크 스카프를 생산했다. 1880년에는 파리 샹젤리제로 매장을 옮겨 에르메스의 대표 지점이 되었다. 20세기에 접어들며 그의 아들 에밀 모리스와 아돌프가 회사를 물려받았다. 그들은 지퍼에 대한 특허를 받고, 승마 고객을 넘어 가죽가방, 여행용 가방, 기성복 등으로 확장하며 제품 다각화로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

아돌프는 자녀가 없었고, 딸만 셋을 두어 가업을 물려줄 아들이 없었던 에밀 모리스는 새로운 승계구도를 만들었다. 그는 1920년대 초부터 1951년 사망할 때가지 세 사위에게 에르메스 정신을 전주했다. ‘에르메스 정신’이란 공식적으로 ‘가족, 스포츠, 정제된 우아함의 전통’인데 ‘실용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추구하는’ 에르메스가의 정신이 반영되었다. 이와 같은 전통적 가치를 수호하고자 그는 견습제도와 비슷한 비공식적 교육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 교육은 가족의 유산을 기리고 유지, 발전시킬 수 있으며 동시에 사업적 재능이 있는 가족 구성원에만 주어졌다. 약 180년 동안 6대째 이어오는 에르메스 브랜드의 독특함과 신비함은 이와 같은 치밀한 가족관리에 기반을 두고 있다.

가족이 늘면 소유권부터 합의 해야

하지만 세대가 갈수록 후계자가 늘고 지분도 나뉘며 가족기업 형태를 유지하기가 어려워졌다. 그래서 소유권을 가족 내에서 통제할 수 있도록 지배구조를 설계했다. 에르메스는 100년 이상 소유권의 100%를 가족들이 보유해오다가, 일부 가족의 요구로 1993년 최초로 주식을 공개했다. 그러나 일부 지분만 공개하고 약 60% 정도는 여전히 지주회사를 통해 56명 가족이 보유하고 있다. 이 중 6명이 최대주주로 각각 5~10%를 가지고 있다. 주식공개 후 주식을 보유한 가족들은 주주합의서를 작성했다. 이 합의서의 주요 내용은, 만일 주식을 매도하려는 가족이 생긴다면 반드시 가족 내에서만 매매하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의결권이 있는 주식은 가족들만 소유할 수 있으며, 외부인이나 이혼으로 인해 가족관계가 끝난 사람은 의결권 있는 주식을 보유할 수 없게 했다. 또 회사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거나 CEO를 교체하려면 가족주주 75% 이상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이것은 법적 효력을 갖는 주주협약서로 작성되어 가족헌장에 포함됐다. 에르메스의 주주합의서는 가족들이 가문 내에서 기업을 이어가겠다는 공동의 꿈에 합의하고, 가족 간 분쟁을 예방하려는 의지가 반영된 결과물이다.

에르메스가처럼 대다수 해외 장수가족기업은 가문내 소유권 보존을 위해 주주협약서를 작성한다. 주주협약서의 목적은 주주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뿐 아니라 가족 내에서 통제권을 유지하고 가족갈등을 예방하고 가족화합을 증진하는 데 있다. 주주협약서의 내용은 가문마다 다르지만, 대부분 주식매매 절차와 매매 가격에 관한 규정을 포함한다. 예를 들어, 주식을 매도하려는 가족이 있다면 가족들에게 가장 먼저 매수권을 준다거나 가족 간에만 매매할 수 있게 한다. 어떤 기업은 주식을 회사에서 매입하는 것으로 협약을 맺는다. 회사 수익의 일정부분은 주식을 매입할 펀드를 조성하기 위해 적립하기도 한다. 사촌 경영 단계에 접어든 어떤 가족은 가계 간 균형을 위해 사촌끼리 주식을 매매하기 전에 형제들에게 우선적으로 매도하는 협약을 맺기도 한다. 이 협약은 주식의 매매 가격을 결정하는 방식을 포함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주식 매매가는 시장가격보다 낮게 책정한다. 그 이유는 가족들이 주식을 쉽게 처분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가족기업도 여느 기업과 마찬가지로, 소유권을 가진 이들이 기업의 중심이다. 창업 초기엔 창업자가 지배적인 소유권을 가지고 있지만, 언젠가는 소유권이 가족들에게 분산된다. 대개는 2대나 3대에서다. 주식을 소유한 가족이 많아지면 소유권 문제를 서로 합의해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가족주주들이 가족기업으로 유지할 것인지 아닌지에 관해 소유권 철학을 공유하는 것이다. 만일 가족기업으로 유지하기로 했다면 소유권을 어떻게 배분할 것이며, 가족들의 기업 통제권을 어떻게 유지할지를 정해야 한다. 가족기업에서 발생하는 갈등은 거의 대부분이 소유권에서 비롯된다. 세대를 넘어가면서 가족기업으로서 영속성이 불투명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주주총회와 별도로 가족주주 간 소유권 이슈에 관해 토론할 포럼을 마련해야 한다. 미국이나 유럽의 장수 가족기업들이 수대에 걸쳐 이어져올 수 있었던 것은, 초기부터 소유권 규정을 명확히 한 덕분이다.

- 김선화 ㈜에프비솔루션즈 대표

201810호 (2018.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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