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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민 마린스키발레단 수석무용수 인터뷰 

발레리노의 황금발 

유주현 기자
11월, 러시아 최고의 마린스키발레단이 6년 만에 한국을 찾는다. ‘백조의 호수’ 등 차이코프스키 3대 발레를 완성한 마린스키발레단은 소위 ‘클래식 발레의 원조’로서 250년이 넘는 역사 동안 ‘순혈주의’를 고수해왔다. 그런데 2018년 현재 이곳의 간판스타는 한국인 발레리노 김기민(26)이다. 러시아 현지에서 그의 공연은 늘 전석 매진이 되고, 티켓 가격도 가장 비싸다. 전통적으로 서양인의 전유물로 여겨져왔던 발레에서 세계 최고로 우뚝 선 이 청년의 무기는 뭘까.

▎김기민이 날아오르면 시간이 멈춘다. 사진작가 박귀섭이 중력을 거스르는 그의 점프를 ‘황금발’로 표현했다.
클래식 발레의 본고장 러시아에는 러시아인들이 자랑하는 두 발레단이 있다. 모스크바의 볼쇼이발레단과 상트페테르부르그의 마린스키발레단이다. 그중에서도 18세기 러시아 최초의 발레단인 ‘황실 러시아 발레단’으로 탄생해,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속의 미녀’, ‘호두까기 인형’ 등 차이코프스키 3대 발레를 완성한 안무가 마리우스 프티파가 활약했던 곳이 마린스키다.

김기민은 2011년 열아홉 나이에 최초의 동양인 발레리노 입단으로 화제가 됐고, 입단 2개월 만에 연수단원 신분으로 주역을 꿰차더니, 2015년 수석무용수로 고속 승급했다. 2016년엔 무용계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를 한국 발레리노 최초로 수상했다.

놀라운 기록이지만, 11월 마린스키발레단의 ‘돈키호테’(11월 15~18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공연에서 차원이 다른 김기민의 점프를 보면 납득할 것이다. ‘발레의 신’이 그 순간에 깃들어 시간을 멈추고 중력을 거스르고 있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혹시 저 가공할 만한 ‘그랑 주테(공중도약)’가 그를 ‘마린스키의 간판’으로 만든 무기가 아닐까. 본인의 생각은 전혀 다르단다.

2012년 ‘백조의 호수’ 이후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발레단이 내한하는 건 처음입니다.

늘 한국 무대가 그리웠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극장은 마린스키 극장이지만 저는 한국 사람이고 한국에서 배웠으니까요. 한국 관객의 반응이 가장 그립고, 한국 무대에 더 많이 서고 싶어요. 마린스키 단원들도 한국에 흥미가 많고요. 평소에도 저에게 한국에 대해 자주 묻곤 하죠.

6년 전엔 러시아 말이 어렵고 단원들과도 아직 서먹한 사이라고 했었는데요.

많이 친해졌어요. 러시아어를 한마디도 못 할 때 갔는데, 그때는 출근이 두려웠죠. 지금은 출근길이 즐겁고 하루하루 재미난 일이 많아요. 제 공연 날에는 동료들이 특히 응원을 많이 와줘요. 365일 내내 공연이 있을 정도의 스케줄인데, 단원들이 힘들고 쉬고 싶을 텐데도 와주는 걸 보면 고맙죠. 지금은 러시아가 집 같아요.

최초의 동양인 발레리노에게 러시아 단원들의 텃세가 있었겠죠.

텃세를 저는 못 느꼈는데 이제 보니 있었을 것 같아요. 왜냐면 요즘 신입단원이 들어오면 텃세가 느껴지니까요. 제가 혼자 잘 노는 스타일이라 못 느꼈을 수도 있고요. 특이한 건 마린스키에서는 보통 주역 무용수들과 군무진들이 스케줄이 다르니 서로 어울리지 않는데, 저는 희한하게 고루 친해졌어요. 러시아인들은 잘 다가오지 않는데, 제가 먼저 다가가니 고마워하더군요.

입단 2개월 만에 주역을 꿰찼는데, 다른 환경에 적응이 빠른가 봐요.

러시아에서 유학한 분들은 모두 러시아 문화가 너무 달라서 생활이 힘들다, 각오 단단히 하라고 해요. 근데 저는 힘들다고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어요. 제 목표가 너무 뚜렷했기에 그런 것 같아요. 운동선수들이 영어 잘하는 비결은 인터뷰를 해야 한다는 뚜렷한 목표가 있기 때문이듯, 저도 적응 자체엔 신경을 못 썼어요. 들어가서 공연하고 몸 관리에 신경 쓰고, 러시아를 공부하고 동료와 친하게 지내려 노력하다 보니 저절로 적응한 것 같아요.

마린스키 가면서 목표가 뭐였나요?

큰 목표는 아니고 단기 목표들이었죠. 목표를 크게 잡았다가 중간에 틀어지면 지레 포기하게 되잖아요. 물론 주역이 되겠다는 막연한 목표는 있었겠지만, 그보다 일주일 후에 꼭 이걸 마스터해야겠다는 식의 단기 목표를 정말 많이 잡았어요.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고요. 길게는 석 달, 짧게는 2주 목표죠. 그런 식으로 7년 동안 단련되다 보니 이젠 목표를 굳이 세우지 않아도 머릿속에서 저절로 밥 먹듯이 계산이 되는 것 같아요.

인간의 한계를 넘는 점프 동작들이 마치 서커스를 보는 듯한 즐거움을 줘요. 다른 발레리노들도 연구 대상이라던데, 비결이 뭔가요?

동작할 때는 아무 생각을 안 해요. 작품 해석에만 집중하니까요. 높이 뛰어야겠다는 생각도 안 해요. 테크닉은 흘러가는 부분이기에 신경을 많이 못 쓰죠. 점프 연습도 많이 안 해요. 예전엔 ‘연습벌레’ 소리를 들었지만, 잘못된 연습방법을 계속하다 보면 오히려 안 좋은 습관이 굳어질 수 있죠. 그보다는 많이 연구해서 좋은 방법으로 한 번 연습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 생각해요.

김기민을 마린스키의 간판이 되게 한 건 시간을 멈추는 ‘그랑 주테’ 아닌가요?

전혀 아니에요. 제게 재능이 있다면 그걸 크게 키우고 조각가처럼 잘 다듬어준 선생님들이 지금의 저를 만든 거죠. 아무리 좋은 재능을 가졌어도 선생님이 없으면 재능이 없어지거든요. 혼자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죠. 저는 딱 네 분을 꼽아요. 이원국, 김선희, 블라미디르 킴, 마르가리다 쿨릭 선생님이죠.

“지금의 나를 만든 건 좋은 선생님들”


러시아인 지도위원인 블라디미르 킴과 마르가리다 쿨릭 부부는 김기민과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다. 마린스키 솔리스트 출신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기민을 가르치며 그가 마린스키에 입단하도록 적극 격려했다. 기민의 입단 후에는 그들도 마린스키에 스카우트되어 러시아로 돌아가 기민과 3년간 한 지붕 아래 살았다. “선생님들이 밥도 해주시고, 저를 거의 아들처럼 돌봐주셨어요. 이제 독립할 나이가 돼서 해방됐죠.(웃음)”

어릴 때부터 마린스키만 바라봤다던데, 순혈주의인 걸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네요.

그렇게 멋있게 말하고 싶지만, 사실 그건 아니에요. 동양인을 안 뽑는단 걸 알고 있었으니 언제든지 버릴 수 있는, 이룰 수 없는 꿈이었어요. 너무 높고도 넘을 수 없는 벽이었으니, 유니콘 보듯이 전설처럼 바라봤던 거죠.

시작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남성 발레 잡지를 우연히 접한 어머니가 학예회에서 태권무를 멋지게 추던 아들을 발레학원에 데려갔다. 형 기완(29·국립발레단)과 함께 취미로 해보라는 뜻이었지만, 형제는 발레 타이즈를 입고 거리를 활보할 정도로 발레에 푹 빠져들었다.

첫날부터 발레가 잘되었나요?

아뇨. 어릴 때는 재능이 없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콩쿠르 끝나고 어떤 교수님 두 분이 어머니한테 ‘얘는 발레 시키면 그냥 돈 버리는 거’라고 했죠. 제가 분명 타고난 게 있지만 안 타고난 게 더 많아요. 대표적인 게 다리 라인이죠. 마린스키에서 저보다 다리가 안 예쁜 사람은 없을걸요. 모든 직업인에게 장단점이 있지만, 단점을 최소화하고 장점을 최대화하는 게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전 단점을 최대한 가리고 작은 장점이라도 정말 크게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그래서 단점이 안 보이는 거죠.

또래 발레리노들은 어려서 같이 어울려 놀던 얘기를 많이 하던데, 김기민은 좀 달랐겠죠.


저도 PC방에 가고 놀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연습시간 때문에 노는 걸 즐기진 않았어요. 얻고 싶은 게 있다면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자주 가진 않았죠.

연습벌레 이미지가 영 인간적이지 않은데요.

저도 놀 때는 잘 놀아요. 주역들은 내 것만 하면 끝나니까 여가가 많은 편이죠. 학생 때나 연습을 많이 했죠. 학교 다닐 때는 연습이 중요해요. 인생에서 한 번은 주말도 없이 미친 듯이 연습이나 공부만 하는 기간도 있어야 하지만, 지금은 다른 것들에 초점을 두는 시기죠. 무용적으로 동작 측면보다는 나만의 개성을 보여주려고 하고, 그걸 연구하다 보면 나를 더 알아야 되니 나만의 시간도 가지면서 나를 찾게 되는 것 같아요.

영화 ‘댄서’의 세르게이 폴루닌은 성공 압박감 때문에 일탈도 하던데.

저도 성격 있어요.(웃음) 일탈보다 슬럼프가 있었죠. 3년 전쯤 이젠 뭐하지 싶더군요. 하나만 보고 달려오느라 많은 걸 잃어버린 게 아닌가 의구심도 들었고요.

슬럼프 때는 뭘 했나요?

엄청 놀러다녔죠. 많은 경험을 해서 그 기간이 아깝지는 않아요. 저에게 정말 좋은 재능이 하나 있어요. 항상 노력할 거리를 찾는 게 재능인 거 같아요. 나이 들어 노인이 돼도 뭔가 하나는 열심히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도 뭔가를 계속 찾고 있고, 그걸 이루는 게 재밌을 뿐이에요.

상처받거나 좌절한 적은 없나요?

없어요. 부상으로 1년을 쉬었지만 재활운동을 하면서 혼자 복귀했죠. 자기가 뭘 원하는지 잘 알아야 하는 것 같아요. 그게 확고하면 좌절할 일이 없죠. 기초가 탄탄하면 위를 좀 다쳐도 아래는 멀쩡하니까요. 회사생활 하면서도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나요. 저는 최고가 돼서 후배나 많은 이에게 도움 줄 수 있는 무용수가 되려는 목표가 뚜렷했기에, 누군가 상처를 줘도 여기서 내가 져버리면 목표를 못 이룬다는 생각으로 채찍질을 한 거죠.

엄청난 철벽을 두르고 사는 것 같아요.

자기방어도 중요해요. 전 사실 친구도 얼마 없어요. 초등학교 친구들은 예원 가면서 헤어지고, 중3 때 영재 시험 봐서 한예종 가면서 중학교 친구도 없어졌죠. 진심으로 대해주는 너댓 명에게 집중하면 돼요. 자기방어를 안 하고 상처받는 사람을 보면 안쓰러워요. 중요한 건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잖아요. 이것도 일하면서 알게 된 건데, 정말 자신을 좋아하지 않으면 무대에서 사랑받을 수 없거든요.

그는 러시아나 유럽에선 무용수들의 인기가 연예인 수준이고 기업의 후원도 끊이지 않지만, 자신은 온전히 스스로의 힘으로 주역의 자리에 오른 것이라 자랑스럽다고 했다. “선진국에서는 예술가 이미지가 한국인이 상상하지 못할 수준이죠. 유럽 유명 발레단에서 활동하는 아시아 무용수들은 자국 기업의 후원 등 많은 지지와 도움을 받아 주역이 되곤 하죠. 저는 학생 때 장학금을 받은 정도지, 마린스키 들어가서는 기업에서 연락 한번 못 받았어요. 한국에서는 마린스키를 발레인들이나 아는가 봐요. 제가 그만큼 유명하지 않아서겠죠. 그대로 적으셔도 돼요.(웃음)”

-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 사진·Photographer Baki(박귀섭) / 분장·Ines

201810호 (2018.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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